맥이 안 뛰는 아기와 산모의 고통을 흡수한 버리데기
- 잠시 사이, 내실에서 괴성이 들린다.
보살이 울부짖는 소리다.
모두가 놀란다.
오서방, 이씨, 그리고 여인네들이 동시에 내실로 들어가려고 서로 엉킨다.
그 사이 산파가 놀란 얼굴로 나와서 태내 아이가 잘못 되었다고 떨면서 말한다. -
여자 3 : (라디오를 끄면서) 세상에, 아기가 죽었다고 ?
여자 2 : 그럼 어떻게 해. 이러다간 산모조차 ...
여자 1 : 어쩌다 이런 일이 ...
오서방 : (그동안 내실에 들어갔다 나와서) 아직 강씨는 안 갔지요 ? (이씨에게)
저기, 밖에 나간 사람들 좀 들어오시라고 할래요 ?
- 이씨가 문 밖으로 나간다. -
오서방 : 아줌씨들은 여기 탁자며 의자들도 좀 옆으로 치워 주시구요,
누님을 모시고 나가야 쓰것구만요.
- 여인들이 탁자, 의자를 옆으로 치우기 시작한다.
밖에서 남자 2 명과 여자 1 이 급하게 들어선다. -
오서방 : 저기 들어오셔서 담요를 다 같이 들어야겠네요.
남자 1 : 강씨 오토바이가 와야 허는디.
남자 2 : 음, 소리나는 것 같은디 ... (여자 1 에게) 강씨더러 오토바이를 안으로 들라고 하게.
- 두 남자가 이씨, 오서방과 함께 내실로 들어간다.
잠시 후, 강씨가 오토바이를 끌고 들어오고, 모포에 쌓여 누워있는 오부인을 들고 내실 밖으로 나온다. -
강씨 : 정신을 잃었는가 보네.
남자 1 : (귓속말로) 아그가 잘못되었다는구먼.
오서방 : 내가 누님을 안고 갈께요, 그럼 되겠지요 !
강씨 : 뒷자석이 없어서 가능은 한데, 꽉 잡아야 할 텐디.
남자 2 : 그러지 말고 뭘로 묶지, 혹시 모르니까,
강씨 : 그럴까 ? (뒷좌석에 두꺼운 고무줄을 풀어 오서방과 오부인을 함께 묶는다)
여자 1 : 얼른 가요, 얼른 ... 한시가 급헌디.
여자 2 : 우리도 따라가야 안 쓰것는가 ?
정읍댁 : 난 버스로 갈라요.
여자 2 : 잠깐 기다려, 우리도 갈랑께.
- 강씨가 오토바이를 끌고 나간다.
사람들이 뒤따른다.
그때 버리데기와 봉이가 초췌한 얼굴로 내실에서 나온다. -
정읍댁 : 내 정신 좀 봐, (버리데기에게) 고생허셨어요.
그래도 용케 알아내느라고 ...
여자 1 : 어떻게 알았당가 ?
정읍댁 : 맥이, 애기 맥이 안 뛴다고 ... (울먹인다)
여자 1 : (버리데기에게) 자네도 환자나 다름없구먼 ... 냉수라도 한 잔 할란가? (물 한 잔을 건네준다)
버리데기 : ... (말없이 물을 받아 마신다)
여자 2 : 어딜 가려구, 잠깐 앉아 쉬어. 그러다간 쓰러져 불 것 그먼 그래.
남자 1 : 우린 그만 가볼라요. 나중에 소식 알면 알켜주시오.
어이 우린 가세.
- 남자들 모두 나간다. -
여자 3 : 나도 가야제. (라디오를 들고 나간다)
정읍댁 : (할매에게) 여그 좀 계시죠. 여그 집 좀 봐 주시라구요.
할매 : 걱정 말고 다녀와, 여그는 내가 알아서 할텡께.
여자 1 : 그런디, 보살은 어떻게 한다냐 ?
할매 : 갈려면 어서들 가, 보살도 내가 알아서 할테니께.
여자 1 : 그럼 부탁혀요.
여자 2 : 난 집에 들렸다 갈라는디.
정읍댁 : 그럼 두 분은 그렇게 해요. (산파에게) 산파님도 고생 많았어요.
산파 : 나야 뭘 ... 그럼 저 먼저 가볼께요.
- 여인들, 산파, 정읍댁이 나간다.
주막에는 버리데기, 봉이, 그리고 할매만 남는다. -
할매 : 힘들었제 ?
버리데기 : ...
봉이 : (버리데기에게) 가, 집 가.
할매 : 애야, 지금은 안돼야. 뭐 좀 먹고 쉬어야제.
(버리데기에게) 여기 안 올라고 했담서 ? (사이) 이럴 줄 미리 알았는감 ?
버리데기 : ... (고개를 젓는다)
할매 : 그래 ... (사이) 자네 땜세 몸이 나은 사람들을 난 많이 알고 있는디 ...
(사이) 오늘도 사람하나 살린 것 아닌가 ? (사이, 탁자에 엎드리는 버리데기 옆으로 가서 앉으며)
애기의 아픔이, 죽음이 자네의 고통으로 뻗어왔던가 ?
그래서 그리 소리를 지른 거였어 ? (버리데기를 등 뒤에서 살며시 껴안으며)
그게 자네의 업이거늘 ... 그런디, 세상은, 이 세상 사람들은,
자넬 곱게, 그대로 가만 안 놔둘꺼로구먼 ... (사이) 그것도 알고 있는가 ?
버리데기 : ... (고개를 들어 할매를 쳐다보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 바람 소리가 거세지면서 함박눈이 휘몰아친다. 서서히 암전된다. -
생명굿의 탄생 역사
최헌진 : 생명굿에서 '굿' 이라는 작은 씨앗은 20대에 내 마음에 자리 잡은 것 같다.
1973년 서울 의대 의극회 (연극부 졸업생 극회) 창립 기념 공연 작품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연출할 때다.
희곡을 우리나라 상황으로 번안할 때, 승전하고 귀국하는 맥베스의 운명을 예언하는 요정들의 첫 장면을
한국의 무녀들이 춤을 추며 집단으로 공수를 주는 우리의 전통 굿 형식을 따랐다.
(안무는 당시 이화여대 대학원 한국 무용과의 김복희 선생이 맡았다)
내 삶에는 항상 문제가 있었다.
내 민감성 때문이다.
뭣 하나 대충 넘어가지 못하는 성격 탓이다.
모든 감각이 다른 사람보다 예민해서 꽤나 고생도 많이 했거니와
타인의 부당함이나 잘못을 못 본 체 하지 못하는 면,
그리고 특히 오랫동안 날 괴롭히는 문제는 내가 한국인이냐, 미국인이냐 하는 정체성의 갈등이었다.
영어로만 배워야 하는 의대 교육은 그렇다고 해도 사이코드라마라는 영어 제목으로 활동하는 내가
서양의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는 꼭두각시처럼 느껴졌다.
1978년 순천향병원 유석진 선생님께 처음 배운 사이코드라마,
그리고 93년 2개월의 미국 사이코드라마 연수 기간에 느꼈던 한국과 미국의 국민성 차이,
제자들을 양성하면서 더욱 심하게 느껴야만 했던 정체성 갈등,
결국 1997년 2월 15일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사이코드라마 학회가 창립되고
초대회장으로 인사말을 하게 되었을 때, 드디어 하나의 돌파구를 찾은 듯했다.
인사말 제목은 ' 한국적 사이코드라마를 위하여 ' 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타협책이요, 반환점이기도 했지만
어떻든 생명굿의 씨앗은 20여 년 만에 싹을 틔웠다.
하지만 전념하지 못했다.
사이코드라마도 아직 충분히 홀로서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직 나만의 한국적 이론들을 개발 하는가 하면
다양한 기법을 만들어 낼 때, 우리 전통의 세시풍속이나, 놀이를 많이 참고했고,
굿의 형식을 어떻게 사이코드라마에 접목할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그 결과가 제의 형식의 사이코드라마 였다.
이제 한국 사이코드라마 학회 창립 이후,
생명굿이 탄생하기까지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다음과 같다.
1997년 9월 : 제 4차 환태평양 국제집단 정신치료학회 (일본 동경) 에 대회장
이소다의 초청으로 ' 사이코드라마와 문화 ' 를 발표하였다.
2003년 1월 : [ 사이코드라마의 이론과 실제 ] (학지사) 에서 하나의 장의 제목을
' 한국적 사이코드라마' 라 하고 처음으로 뫔풀이 굿 이라는 용어를 소개하였다.
2003년 8월 : 한국 사이코드라마 학회, 제 1회 여름 축제 제목을
' 뫔풀이 굿마당 ' 으로 하였다.
2005년 4월 : 미국 사이코드라마 60차 연차대회에서
' 제의적 사이코드라마 ' 라는 제목으로 강의 및 시연하였다.
(당시 한국과 미국 학회가 자매결연 맺음)
2007년 : 한국 사이코드라마 학회지 10권에 논문 { 뫔굿 - 제의적 사이코드라마 } 가 실렸다.
2010년 8월 : 학회의 제 3차 실험 마당 제목이 ' 생굿' 이었다.
2013년 7월 : 서울 뫔굿 마당을 끝으로 약 10 년간 사용해 왔던 뫔굿 마당이라는 용어가 사라졌다.
2014년 2월 : 한국 사이코드라마 학회 명예 회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생명굿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977년부터 운영하던 사이코드라마 연구원을 최헌진의 생명굿 연구원으로 개명하였다. (2012년 9월 24일)
2015년에 임시 ' 생명굿' 교재를 만들어 교육을 시작하였다.
2019년 5월까지 총 8기 교육을 진행하였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많이 홀가분해진 느낌이다.
남은 일은 생명굿의 이념이라고나 할까, 생명굿을 더욱 완성된 완전체로 변화시켜 가는 일이다.
비록 생명굿이 탄생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더욱 연구해 나가야 할 영역이 끝이 없음을 느낀다.
시대가 그리고 인간이 끝없이 변화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책 - 생명굿
생명굿의 탄생역사 136 p
: 위의 글을 읽으니
생명굿이 탄생하기 전까지 끊임없는 도전 정신과 실험 정신으로 절차탁마 해오신 최선생님의 노력이 느껴집니다.
한편으로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고 솔직하게 소회를 밝히시는 부분이
한 개인으로서의 개척자 정신이 느껴지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