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내편>
제3편 양생주: 생명을 기르는 요체
죽음은 운명의 속박에서 풀려나는 것
4-1 노담이 죽자, 진일이 조문 가서 세 번 곡하고 나왔다.
2 제자1)가 물었다. “노담 선생은 선생님의 벗이 아닙니까?”
3. 진일이 대답했다. “벗이라네.”
4 “그렇다면 조문을 이처럼 간단하게 하실 수 있습니까?”
5 진일이 대답했다. “그렇다네. 처음에 나는 그를 도인(道人)으로 여겼는데, 지금은 아니네. 조금 전에 내가 들어가서 조문했는데, 늙은이들은 자식을 곡하듯 그를 곡하고 젊은이들은 어머니를 곡하듯 그를 곡하고 있더군.
6 저들이 모여 그처럼 조문하는 까닭이 반드시 있으니, 저들은 그에 대해 말하길 바라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를 애절하게 곡하길 바라서 곡하는 것이 아니네. 이는 그가 은연중 저들이 그렇게 하게 했기 때문이네. 이는 하늘을 거스르고, 참된 감정을 배반하며, 본성을 망각한 것인데, 옛 사람들은 이를 ‘하늘을 거스른 형벌’이라 말했다네.
7 선생이 태어난 것은 태어날 때가 되어서였고, 선생이 돌아가신 것은 순리를 따른 것이었네. 때를 편안히 여기고 순리에 따라 살면, 슬픔과 즐거움이 끼어들 수 없네. 옛 사람들은 이를 ‘천제의 저울질에서 풀려남’이라 말했다네.
8 기름은 땔감이 되어 다 타서 없어지더라도, 불씨가 다음 땔감으로 전해지면 불은 꺼질 줄 모른다네.”
주1) 제자: 대개 노담의 제자로 보지만, 진일/진실의 제자로 보는 것이 좋겠다. 노담의 제자로 보면, 문상객에게 조문이 너무 간소하다고 따지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또 이하 답변의 내용도 자신의 제자에게 노담과 그의 제자들을 비판하고 삶과 죽음의 의미 및 이를 대하는 바른 자세에 대해 가르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여기서 진일은 장자를, 제자는 장자의 제자를 대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여기서 우리는 장자가 노자를 비판하고 있는 것을 보는데, <장자> <천하>편에 따르면 노자와 장자를 다른 사상가 그룹에 배치하고 있다. 노장을 같은 도가로 묶는 시각은 사마천의 <사기> 이후의 사태이고, 또 장자의 후학들의 작품인 <장자>의 <잡편>과 <외편>이 노자 사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강신주에 따르면, 노자가 국가의 교환논리와 군주를 위한 정치 철학자라면 장자는 단독적인 개체와 삶의 실존 철학자이고, 노자가 도를 매개로 하는 매개적 소통의 철학자라면 장자는 무매개적 소통의 철학자이며, 노자가 나무 이미지의 중심이 있는 필연성의 철학자라면 장자는 뿌리줄기 이미지의 중심이 없는 우발성의 철학자이다.(<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49~80쪽 참조)
주2) 하늘을 거스른 형벌: "자연의 원리에서 벗어남으로써 받는 형벌. 노담의 제자들이 스승이 좀 더 오래 사셨으면 하는 아쉬움으로 인해 스승도 원치 않았던 과한 조문을 하는 것은 그 아쉬움이 그들의 마음에 맺힘[結]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이 맺힘을 말한다. 그런데 이 맺힘은 노담이 일으킨 것이다."(김정탁)
** “장자는 <양생주>에서 자연의 무한함과 개체 생명의 미미함을 대비하면서 이를 일관되게 강조한다. 이런 강조는 자연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볼 때 우리의 생명은 보잘 것 없다고 판단해서이다.
또 이에서 볼 때 우리의 삶도 달리는 말이 작은 틈을 지나가는 것처럼 한 순간으로 판단해서이다. 그러니 우리의 삶과 생명이 소중할지라도 이것에 우리가 집착할 필요는 없다.
장자는 이런 생명관을 지녔기에 팽조처럼 오래 사는 걸 추구하지 않았다. 대신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몸을 온전히 보존하겠다는 소박한 바람만이 있었다. 이것이 제대로 삶을 달관한 모습이다.
나아가 앎과 도덕을 넘어서서 삶과 죽음까지 초월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장자가 말하는 양생이란 자연의 거대한 변화 속에 자신을 용해시켜 생사와 존망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작업에 해당한다. 이때 우리는 땔감(육체)으로선 유한하지만 우리의 생명은 세상과 자연 속으로 끝없이 전해진다.”(김정탁)
(<장자 내편> 274~279, 김정탁 지음, 2018, 성균관대학교출판부;
<장자> 개정판 110~111, 기세춘 옮김, 2020, 바이북스)
養生主
4-1 老聃死, 秦失弔之, 三號而出。
2 弟子曰: “非夫子之友邪?”
3 曰: “然。”
4 “然則弔焉若此, 可乎?”
5 曰: “然。 始也, 吾以為其人也, 而今非也。 向吾入而弔焉, 有老者哭之, 如哭其子; 少者哭之, 如哭其母。
6 彼其所以會之, 必有不蘄言而言, 不蘄哭而哭者。 是遁天倍情, 忘其所受, 古者謂之遁天之刑。
7 適來, 夫子時也; 適去, 夫子順也。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也, 古者謂是帝之縣解。
8 指窮於為薪, 火傳也, 不知其盡也。”
** 老聃(노담): 노자(老子: ?~?)
** 失(일): 놓다(放/逸); 잃다(실)
** 號(호): 부르짖다; 통곡하다, 호곡하다(哭)
** 其人(기인): 도인(道人), 진인(眞人), 지인(至人)<장자의 이상적 인간>
** 向(향): 지난번에, 조금 전에
** 蘄(기): 구하다; 바라다
** 遁(둔): 숨다; 달아나다; 피하다; <거스르다, 거역하다>
** 倍(패): 등지다; 배반하다; 위배되다; 곱(배)
** 所受(소수): 받은바<본성=하늘=자연>
** 適(적): 얻다(得)
** 縣(현): (거꾸로) 매달다; 저울(稱); 저울질(하다)<천제가 저울질하는 대로, 즉 알 수 없는 운명대로 사람의 삶과 죽음이 좌우된다. 아래 영역의 Burton Watson은 '(신의) 속박'으로 의역함>
** 指(지): 손가락; <기름(脂)>
** 薪(신): 섶, 땔나무, 땔감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