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이든지
무르
익으면
터지게
되어있다
실록
연산군
일기를
보면
중종반정
며칠전
연산군이
후궁들과
낄낄거리며
놀다가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며
전비와
장녹수에게
물건을
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말한다
지금
태평한지
오래이니
어찌
불의에
변이
있겠느냐
마는
만약
변고가
있게되면
너희들은
반드시
면하지
못하리라
연산군도
눈과
귀가있으니
중신들의
태도를보고
곧반정이
일어나리라
예감했다
결국
반정은
일어났고
성종의
두번째
왕비였던
폐비윤씨의
아들
연산군이
왕위에서
똥가리된다
그의
뒤를이어
성종의
세번째왕비
파평
윤씨가
문의
정현왕후가
낳은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른다
그의나이
19살로
연산군에게는
이복동생
이었다
그러나
진성대군도
운명의
장난을
피하진
못한다
그의처
신씨는
박원종
일파에게
임금을
잘못
인도했다는
죄목으로
제일먼저
피살된
신수근의
딸이었다
많은
대신들이
반정이
일어나기
바로전
참여를
권유받았다
그중
대다수는
눈치껏
반정에
참여하여
공신이
되었으나
신수근은
차마참여를
못하여
적폐로몰려
죽임을
당한것이다
중신들의
파가갈려
치밀한
계획하에
반정을
기획
광해군과
반대파
중신들을
사그리
몰아낸
인조반정과
달리
아직
붕당이
나타나기전
조선초기
여서
왕연산군만
타겟이
되었고
반정에
중신이면
누구라도
참여
가능했다
어이
줄들
똑바로서
오른쪽
찬성
왼쪽은
반대
그러나
신수근은
연산군과
처남
매제지간
이니
도의상
왼편에선다
음
수근이옵빠
혼자있으니
왼쪽은
줄을설
필요가
없었다
한순간의
선택이
공신을
만들기도
적폐를
만들기도
했다
중종실록
이야
반정을
정당화
해야하니
그가적폐로
나오나
230년후
영조가
그를
복권
시키면서
재평가
내려진다
신수근은
폐비신씨의
오빠로
연산군의
총애를얻어
세력과
지위가
극히
융성하니
권세가
한때를
휩쓸었다
오랫동안
이조를
맡아
거리낌없이
방자
하였으며
뇌물이
폭주하여
문정이
저자와
같았고
조그만
원수도
남기지않고
꼭갚았다
주인을
배반한
노비들이
다투어와서
그에게
투탁
하였으며
호사를
한없이부려
참람됨이
궁금에
비길만했다
중종실록
임금이
고금동충
이라는
4자를써서
내려주고
이르기를
신수근은
포은과함께
충의가
같다하고
호조에
명하여
사우를
만들어주고
그곁에
각을세워서
이것을
새기어
걸게하라고
하였다
영조실록
먼
훗날에야
어떻게
되었던
당시에는
적폐였다
중종이
즉위식을
올린날
저녁
경북궁에서
왕비신씨를
맞으러
사람이
나왔다.
신씨는
이때
어젯밤
자기
아버지가
피살
되었다는
소식을듣고
슬픔에
잠겨있던
중이었다
남편이
임금이되고
자기는
왕비가
되었으나
그렇다고
역적으로
몰린
친정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수
없었다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착잡한
심정으로
신씨는
경북궁으로
들어갔다
회색이
만면한
임금은
궁녀들을
거느리고
신씨를
반가이
맞아들였다
그날밤
중궁의
처소로
찾아간
임금을
붙들고
왕비는
그저눈물만
흘렸다
아부지
아부지
엉엉엉
훌쩍훌쩍
흐으응
흐으응
이거는
코푸는소리
역사에
그녀가
코풀었다는
기록은
없으나
않풀었다는
기록도
없다
허
울지마오
중전
옆방에
나인들이
있소
체통을
지켜야
할게아니요
얼마를
울다가
왕비는
겨우
진정하고
고개를
들었다
상감
이몸의
운명도
길지못할것
같사옵니다
그게
무슨말이요
이제
일국의
국모인데
아니올시다
반정공신
들이
이몸을
역적의
딸이라
하여
내쫓게
되오면
상감도
도리없이
그들
말을따를
수밖에요
그건안되오
아무리
반정공신
들의
말일지라도
안되오
안되오
당시
조혼풍습이
있었다
11살의
진성대군과
12살의
소녀신씨가
혼인한지
벌써
8년으로
이제는
애정으로
깊이결합된
사이로
헤어진다는
것은
꿈도꿀수
없었다
과연
이부부의
소망이
이루어
질것인가
신씨가
궁중에
들어온지
벌써
여러날이
되었다
하루는
영의정
유순을
비롯하여
박원종
김수동
유자광
성희안
유순정
등이
중신들이
중중에게
아뢴다
신등이
여러날을
두고
생각건대
신수근의
딸을
중궁으로
두는것은
천하에
의심을
사는일이며
은연중
화근을
기르는
일이온즉
사직을
보존하자면
신씨를
폐하여
서인으로
만들게
하심이
가하오이다
마침내
올것이
오고야
말았다
중종과
중신들은
한치의
양보도없이
설전을
벌이다가
마침내
중종은
더이상
듣기도
싫다는듯
침전으로
들어
가버린다
흠
이정도면
물러서겠지
저게
누구때문에
왕이
되었는데
우리를
용달시켜
이정도로
물러날
신하들이
아니었다
박원종등의
입장에서
본다면
신씨를
몰아내는
일은
그들의
생사와
직접
관련되는
일이었다
신씨가
만약
중궁에
머물고
원자라도
생산한다면
제2의
연산군이
나와
중신들
집안의
남정네
씨를
말려버릴
것이
뻔한
노릇이기
때문이다
신씨가
타고나갈
가마까지
마련하여
중궁뜰앞에
대놓고
와글
거리며
떼창을한다
중종도
생각이있는
사람이라
버티어
보아도
소용없음을
깨달았으나
남자
체면에
조강지처를
직접
내칠수는
없었다
거사할때
먼저
신수근을
제거한것은
큰일을
성취하고자
해서였습니다
지금수근의
친딸이
대내에
있습니다
만약
궁곤으로
삼는다면
인심이
불안해지고
인심이
불안해지면
종사에
관계됨이
있으니
은정을
끊어밖으로
내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아뢰는
바가심히
마땅하지만
그러나
조강지처
인데
어찌하랴
하였다
모두
아뢰기를
신등도
이미
요량하였지만
종사의
대계로
볼때
어쩌
겠습니까
머뭇거리지
마시고
쾌히
결단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종사가
지극히
중하니
어찌
사사로운
정을
생각
하겠는가
마땅히
여러사람
의논을
좇아밖으로
내치겠다
하였다
중종실록
7일동안
버텼으나
더이상은
어려웠다
신씨가
눈치껏
나가야했다
상감
이제는
할수
없습니다
이몸은
물러가야만
하겠습니다
상감께서
이몸하나를
생각하시다
혹
용상마저
버리게되면
안되겠습니다
한참후
중종이
정신을
차렸을때는
벌써
신씨가
시녀들에게
싸여
가마를타고
궁중에서
물러
나간뒤였다
중종은
다음날
아침
간택령을
내린다
중신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연산군과
함께
폐위된
폐비신씨는
중종의
7일왕비
신씨
에게는
고모가된다
한여인은
신수근의
누이이고
또
한여인은
신수근의
딸이었다
두신씨
여인은
폐비라는
동일한
운명에
처하게
된것이다
연산군의
폐비
신씨는
연산군과
달리주위의
평이
좋았다
폐비신씨는
어진
덕이있어
화평하고
후중하고
온순하고
근신하여
아랫
사람들을
은혜로써
어루
만졌으며
왕이
총애하는
사람이
있으면
비가
또한
더후하게
대하므로
왕은
비록미치고
포학
하였지만
왕비를
매우소중히
여겼다
매번
왕이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음란
방종함이
한없음을
볼적마다
밤낮으로
근심
하였으며
때론울며
간하되
말뜻이
지극히
간곡하고
절실했는데
왕이비록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성내지는
않았다
또번번이
대군공주
무보
노복들을
계칙하여
함부로
방자한짓을
못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서는
울부짖으며
기필코
왕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되지않았다
조선왕조
실록
따라서
중종은
형수이기도
한그녀에
대한
배려를
잊지않았다
연산군은
폐위되어
교동으로
유배
되었지만
폐비
신씨는
후궁들의
처소인
정청궁에
머물다가
아버지
신승선의
집을
수리하여
머물렀다
물론
반정이후
두아들은
사사된다
중종의
폐비신씨는
폐출
되자마자
세조의
사위인
하성위
정현조
영의정
정인지의
아들의
집으로
쫓겨났다가
본가로
돌아갔다
당시
20세로
상실의
아픔을
지니면서
71세로
죽을때까지
자식한명
없이
중종의
사랑이
되돌아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강제로
헤어진
신씨는
중종이
혹시라도
자기를
잊어
버릴까봐
노심초사
했다
그는
어떻게든
남편의
머릿속에서
자신이
지워지지
않기를
희망했다
억지로
헤어진
중종또한
신씨를
그리워했다
반정
일등공신
박원종
에게는
세명의
누이가
있었다
모두들
방구깨나
뀐다는
집안으로
출가하는데
첫째가
연산군이
겁탈했다는
월산
대군의처
박씨였고
둘째는
예종의아들
제안대군
셋째는
파평
윤씨
가문의
윤여필에게
시집갔다
장경왕후
윤씨는
윤여필의
딸이었다
1506년
폐비신씨가
쫒겨난
다음날
간택령이
내려지자
공신들은
차기
왕비자리를
노리고
자기
딸들을
재빨리
궁중에
밀어넣는다
하하
중생
눈치
하나는
팔단이네
윤씨
또한이때
16살의
나이에
종2품
숙의로
궁중에
들어온다
한마디로
집안세력
다툼이었다
하지만
반정1등
공신
박원종이
외삼촌
성종의형
월산대군의
처조카
에다가
명문
파평윤씨
가문의
숙의
윤씨가
간택된다
장경왕후는
8세때
어머니를
잃고
이모
월산대군
부인의손에
길러
졌는데
어려서부터
경전과
역사에
통달하여
스스로
처신을
다스릴만큼
비범했다
그러던중
연산군4년
1498년에
박씨의
넷째
여동생이
여덟살된
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어린
조카딸이
불쌍했던
박씨는
그아이를
데려다가
기르기
시작했다
바로
이어린
조카딸이
윤씨이다
왕비는
대비
정현왕후
에게
효도하고
남편
중종을
현명하게
내조하는
것은
물론
후궁들에
대해
투기하지
않았고
그자식들까지
사랑으로
양육했다
또
아랫사람인
궁녀와
종들에게도
예의로
대하고
은혜를
베풀었으니
높은자리에
있다고
해서
교만
하거나
함부로하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왕비가
어떤
자리인지
잘알고
있었고
외척도
경계했다
소첩은
사사로운
혈육을
위하여
청을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어진
사람이라면
공론에
따라
쓰면되고
어리석다면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중종실록
왕비가
이렇게
처신하니
궁궐에
이간질하는
사람이
없었고
조정에서도
임금과
신하의
칭송이
가득했다
1515년
2월25일
장경왕후는
지독한
난산끝에
원자를
출산했으나
산후병은
치명적이었다
의녀들이
밤낮으로
달라붙고
내의원에서
온갖약을
올렸지만
결국
출산
6일만에
숨을거둔다
이때윤씨를
간호했던
의녀가
오나라~
오나라~
대장금이었다
이영애는
대장금을
통해서
깍쟁이
이미지를
세탁하고
아버지뻘
무기상을
덥썩물어
잘묵고
잘살고있다
윤씨는
혼인
4년만에
맏딸인
효혜공주를
낳았고
1515년
에는
적통대군인
원자를
낳았으나
25세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어제
첩의마음이
혼미하여
잊고깨닫지
못하였는데
생각해보니
지난해
여름꿈에
한사람이
말하기를
이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억명이라
하라
하므로
써서
벽상에
붙였었습니다
죽기전날
병세가
위중해지자
손수
중종에게
남긴글
여복이많은
중종은
세번째
여인을
또다시
맞이할
운명에
놓였다
폐비
신씨가
궁중에서
쫓겨난지도
벌써
십년 이란
세월이흐른
시점이었다
다음
왕후1순위는
복성군을
낳은후궁
숙의
박씨였고
벌써
그라인에
줄을서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때에
폐비
신씨를
다시맞아
들이자는
주장을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바로
붓을들고
구구
절절한
내용으로
상소를한다
상소문이
들어오자
조정안은
때아닌
풍파가
일어나게
되었다
중신들은
즉시모여
의논한후
임금께
아뢰었다
신씨를다시
세웠다가
신씨한테서
또왕자가
태어나면
지금의
원자와의
관계는
더욱
복잡
해지기만
할따름입니다
즉가례한
순서로보면
응당
신씨가
원실인즉
장경왕후의
소생은
곧계실의
소생이
되겠으니
이런
모순된일이
어디
있습니까
중종도
폐비
신씨와
헤어진지
10년이
지나
상처가
아물었고
무엇보다도
장경
왕후를
사랑했다
나중에
자기묘를
꼭
장경왕후
옆에
해달라꼬
당부했다니
이세상에
일편단심이
있을까
그녀와의
사이에서
나온
원자를
지키는것은
그에게도
중요했다
상소를
올린이들이
갈길은
오로지하나
귀양
길이었다
결국
파평윤씨
한미한
집안출신
문정왕후
윤씨가
18세
꽃다운
나이에
조선중종의
세번째
왕비로
입궐했다
두번째왕비
장경왕후가
원자
이호를낳고
세상을뜬지
2년
뒤였다
윤씨가
궁중에
들어올때
이미
중종의
곁에는
경빈박씨와
희빈홍씨가
왕후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궁중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중종은
아들을
많이낳은
후궁
경빈을
왕후로
삼길
바랐으나
신분이
미천해
적합하지
않았다
새로운
비를뽑아야
한다는
신하들의
청원에
간택된이가
바로
윤씨였다
윤씨의
궁궐
생활은
살얼음판과
같았다
중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빈과
희빈의
암투는
시간이
지날수록
치열해졌고
윤씨는
암투에
휘말리지
않기위해
숨을
죽였다
몇년이
지나도록
아들을
낳지못하자
생명의
위협마저
느낄
지경에
이르렀다
윤씨는
훗날을
내다보고
죽은
장경왕후의
원자
이호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정치적인
시각으로
보면
아들을
못낳을경우
원자인
이호에게
붙어
있으면
결국엔
생존할수
있을것으로
생각했다
이호또한
가장
유력한
세자
후보였지만
모친이
일찍
죽은
까닭에
그안위를
보장
할수없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만들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경빈과
희빈에의해
언제
죽어도
이상할것이
없을
정도였다
문정왕후는
훗날
왕이될
이호를
자식처럼
보호하며
오직
살기위해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어느날
권력의
흐름이
뒤바뀌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빈
박씨는
원래
미천한
집안
출신으로
경상도
농촌
상주에서
자라난
가난한
선비의
딸이었다
몰락한
양반집안
출신이나
그녀의
아버지
박수림은
정병이되어
간신히
먹고사는
정도였다
밭이나
갈아야할
그녀의
운명은
연산군에
의해
바뀐다
연산군이
극도로
음란을
즐길때
보통
궁녀로는
만족하지
못하여
각도에
채홍사를
보내서
민가의
어여쁜
처녀를
뽑았는데
절색의
그녀가
뽑히어
올라
왔던것이다
연산군이
쫓겨난후
채홍사에
의하여
징발되었던
미인
수백명은
그대로
반정공신
박원종
에게
하사된다
박원종이
시식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으나
암튼
박빈을
후궁으로
들여보냈다
중종은
바로
그녀에게
홀딱
빠진다
그러나
빈한한
농민의
딸로서
폐비
윤씨처럼
자랄때
보고
들은것이
없었던
그녀가
몸하나로
혼란한
세상을
헤쳐나가
기는
시대가
너무
어지러웠다
눈치껏
기고
적당히
수그리해야
하건만
중종의
사랑만믿고
고개
뻣뻣하게
들고
다니다가
세자의
잠재적인
경쟁자였던
그녀의
아들
복성군과
그녀를
호시탐탐
노리던
작두에
한방에
날아간다
경빈은
아들
복성군을
후계자로
만들려고
권신
심정과
결탁하여
장경왕후
소생인
세자를
흔들었다
그러나
심정의
정적이자
중종과
사돈이되는
김안로가
꾸민
1527년에
터진
작서의변
즉
조작극에
의해
그녀의
고향
상주로
복성군과
함께
쫓겨난후
5년후
사약을받고
모자는
나란히
요단강을
건넜다
희빈
홍씨도
궁중암투에
가담해
자기의세력
키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주초위왕
사건
즉
희빈이
궁궐후원의
나뭇잎에다
달콤한
즙으로
주초위왕
이라는
네글자를
써서
벌레가
갉아먹도록
했고
의심에
사로잡힌
중종은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등
선비들을
제거한다
이
여인천하를
평정한
이는
왕비가된
문정왕후
였다
17세에
입궁한
그녀는
후궁들의
위세에
휘둘려
숨죽여
지내다가
경원대군을
낳으면서
본색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