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미륵도로 1... (대전을 떠나며)
임진왜란 당시 전라, 경상, 충청 3도를 통괄하기 위해서 수군통제사라는 자리가 있었다. 지금의 평택이나 동해에 있는 함대사령관이다. 수군통제사가 주둔한 곳을 통제영(統制營)이라 하는데 그 자리에 충무공이순신이 부임하였다. 여수에 있던 통제영을 한산도로... 다시 옛 충무시로 이전한 후 1895년 폐영(閉營)되었다. 여수의 진남관(鎭南館), 한산도(閑山島)의 제승당(制勝堂), 통영시의 세병관(洗兵館) 같은 유적지가 바로 통제영임을 증명해준다. 이 통제영의 준말이 바로 통영(統營)이다. 일제 강점기 이 지역을 통영군으로, 1955년 충무시가 분리되었다가 1995년 도농(都農) 통합도시로 통영시로 변경되었다.
한편 지형이 코끼리 어금니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달아(達牙)공원... 국내 최고의 일몰(日沒)을 자랑하는 곳으로 '달구경하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이 공원에 완만히 오르면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한산면, 욕지면, 사량면 등 3개 도서면(島嶼面) 관내의 많은 섬들을 조망(眺望)할 수 있다. 최고의 일출 정경(情景)을 자랑하는 미륵산과 함께 통영의 대표적인 명소(名所)다. 미륵산이 있는 미륵도... 행정구역은 산양읍으로 해안을 일주하는 23㎞의 드라이브코스가 있다. 바다 경치를 즐기다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또한 미륵산(彌勒山)... 석가의 다음으로 부처가 된다고 약속받은 보살(菩薩)을 彌勒이라한다. 도솔천(兜率天)에 살고, 장래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 부처가 되어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설법(說法)을 하는 미래의 부처가 된다고 믿는 사상이다. 석가의 지혜를 구하려는 사람을 보리살타(菩提薩陀, 산스크리트 보디사트바)라 하는데 준말이 菩薩.... 즉 구도자(求道者)를 뜻한다. 龍華樹는 석가모니가 도(道)를 깨달은 보리수(菩提樹)를 뜻하는 매우 신성한 나무 중의 하나다. 도솔천(兜率天)은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 곳이란다.
兜率天을 생각하니 요즘 폭력 시위사태... 경제 발전을 위하여 인권의 일부를 제한하였을 때의 군사정부 시절에 많은 양심범은 있었다. 이들이 종교단체에 피신할 수는 있었으나 지금의 폭력적인 데모는 절대 다수 국민들에게 인정받을 수가 없다. 이를 중재해야 할 의원들이 어느 한편에 서서 이권(利權)을 대변하면서 국방 예산을 줄여 지역구 예산을 늘려 환심(歡心)만 사는 행위... 다음 선거 때 심판하여야 한다. 이제 데모장소를 서울광장과 광화문이 아니라 국회가 있는 여의도로 옮기면 어떨까? 여행길은 대전 통영 간 고속도로로...
통영 미륵도로 2... (충렬사를 지나며)
출발시점부터 가는 눈이 내린다. 진눈개비로, 비로 바뀌었다가 통영에 도착하니 맑은 하늘이지만 바람이 세차다. 원래 계획은 미륵산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바다를 조망할 계획이었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케이블카 탑승계획을 포기하고 미륵도의 해안도로로 드라이브하기로 변경하였다. 침착하게 달리는 나OO기사님... 어쩜 말씨까지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처럼 상냥하니 모두가 기사님의 말씀과 성실함에 공감이 간다. 금산의 인삼휴게소와 고성의 공룡나라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바로 통영IC로 빠져나간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차창 밖을 바라보며 요즘의 시국사태를 생각해 본다. 월남이 공산화된 이유는? 바로 시국 불안이다. 막강한 미국의 군사력이 있었지만 바로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베트콩이었다. 또한 1949년 장개석 정부가 본토(本土)에서 대만으로 쫓겨난 이유도 부정부패에 의한 민심이반(民心離反)이다. 우리도 일부 반정부 단체의 폭력 집회는 민심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폭력 집회는 엄단해야 한다. 정부가 요구한 각종 입법을 타협을 통해서 해결할 일들을 뒤로 하고 선거구 획정에만 몰두하는 의원들도 질타(叱咤)해 본다.
이승만 박사의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는 말씀을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음주 문화... 뭉치면 죽고 헤어지면 산다. 연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친구의 자혼(子婚)이 있던 날이었다. 예식장에서 식사를 마치고 2차로 술집을 찾았다. 술집 앞에 사는 두주불사(斗酒不辭)하던 친구를 불렀다. 그 친구는 집에 없었고 볼 일을 보고 바로 오겠다고 한 것이 네 시간... 기다리는 나로서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으니 천천히 한 잔씩... 뒤늦게 친구가 왔을 때는 나는 만취(滿醉)가 되었다. 늦게 온 그 친구 때문에 다시 시작하는 격이 되었다. 부르면 바로 10분 이내에 못 올 것 같으면 오지 않는 것이 옳다.
통영IC를 빠져 나가 세병관(洗兵館)을 지난다. ‘병사를 훈련시킨다.’는 뜻으로 삼도 수군 통제영이 있던 곳이다. 경복궁 경회루, 여수의 진남관과 함께 현존하는 가장 큰 조선시대의 관아(官衙)다. 이어 지나는 곳이 충렬사... 이순신 장군을 추모하는 사당이다. 이곳을 지날 때는 장군의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이 생각난다. 이곳은 한산도의 제승당(制勝堂)과 착량묘(鑿梁廟)와 더불어 장군의 유적지다. 制勝堂은 임진왜란 때 장수들과 작전회의를 하던 곳이며 鑿梁廟는 충무공의 위패를 최초로 모신 사당이다.
통영 미륵도로 3... (달아공원에서)
통영대교를 지난다. 야경(夜景)이 황홀한 이곳은 바닷물이 빠지면 갯벌이 드러나 걸어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수세(守勢)에 몰린 왜군이 퇴로(退路)가 막히자 도망가기 위하여 물길을 뚫었단다. 그 후 일제 강점기에 동양 최초로 해저터널을 완공하였다. 우측으로 가면 삼덕항... 욕지도(欲知島)로 가는 항구다. ‘알고자 하거든’이란 欲知... 무엇을 알고 싶은지 알 수 없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일주도로는 산양 달아길이다. 다도해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데 가로수가 동백나무다. 바로 이름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근처의 박경리 묘... ‘내가 행복했다면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학은 불행의 편이고 끊임없는 단련에서 나온다. 그러나 불행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 문학보다 삶이 우선이기 때문에... 삶이... 사랑보다도, 정의보다도...’ 남편을 일찍 이별한 질곡(桎梏)의 인생... 토지가 실패하면 재봉틀이라도 사서 삯바느질을 하며 살겠다는 의지를 갖고 낯선 땅 원주에 정착하였다. 이제 통영의 주산인 미륵산과 장군봉을 청룡백호로 자리한 묘소... 이충무공의 저렁저렁한 독전(督戰)소리가 울리는 한산섬을 바라보이는 곳이다. 편히 영면(永眠)하시기를 빈다.
이어 도착한 곳이 달아공원이다. 미륵도 최남단 해안가에 자리 잡은 달아공원은 산양해안일주도로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출발할 때는 눈보라가 몰아쳤지만 이곳에 오니 청명한 날씨... 욕지도, 연화도, 연대도, 비진도, 소매물도, 거제도, 한산도, 미륵산, 지리산, 사천, 만지도, 추도 등 한려해상 100리길을 바라보는 풍경은 마음으로 다 담을 수 없는 황홀한 모습이다. 드넓은 바다에 펼쳐진 크고 작은 녹색의 이 섬들을 화폭(畵幅)에 담았으면... 아쉬운 마음이다. 일몰시간에 왔으면 한려해상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감상해 볼 수 있을 텐데...
만지도 하니 김삿갓의 시(詩)가 생각난다. ‘自知는 晩知고 補知는 早知라.’... ‘스스로 배우는 자는 늦게 배우는 것이고 보충해서 배우는 자는 일찍 배우는 법’이라는 뜻으로 선생님들이 보충수업을 독려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달아공원에서 나와 도남관광지로 달린다. 낮은 구릉성산지가 해안에 몰입(沒入)하여 해안선은 굴곡이 매우 심하고 곳곳에 소만입(小灣入)이 발달되었다. 灣入이란 부산의 다대포, 여수의 초도군도, 옹진군의 덕적도처럼 강이나 바다의 물이 활(弓)의 등처럼 뭍으로 휘어든 형태를 말한다. 이런 곳은 작은 선박(船舶)의 출입이 가능하며 연안에는 간석지가 넓게 분포되어 간조 때는 육지가 된다.
통영 미륵도로 4... (동피랑마을에서)
여행길은 도남관광지를 지난다. 국제 음악당을 비롯하여 연필등대, 요트장, 전통 공예관, 호텔 등 유락시설이 많은 곳이다. 음악 하니 이곳 출신의 윤이상... 유럽의 평론가들에 의해 ‘20세기의 중요 작곡가 50인’, ‘유럽에 현존하는 5대 작곡가’로 선정되었던 그는 동베르린 사건에 의하여 옥고(獄苦)를 치르기도 하였다. 또한 이곳의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전혁림화백, 통영과 우체국을 떠오르게 하는 깃발의 시인 유치환과 그의 형 유치진, 꽃의 시인으로 알려진 김춘수, 전자에 소개한 박경리가 있어 통영을 예향(藝鄕)의 도시라 한다.
이곳 미륵산 아래에 있는 용화사(龍華寺)... 신라 선덕여왕 때 은점선사(恩霑禪師)가 정수사(淨水寺)로 창건하였다. 조선 인조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영조 때 벽담선사(碧潭禪師)가 중건하고 龍華寺라 하였다. 이곳에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고대 아쇼카 양식의 원주석탑(圓柱石塔)인 불사리사사자법륜탑(佛舍利四獅子法輪塔)이 있다. 또한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이신 효봉(曉峰)스님의 사리탑도 있다. 판사였던 스님은 한 피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후 '인간이 인간을 벌하고 죽일 수 있는가'라는 회의에 빠져 법관직을 버리고 3년 동안 전국을 방랑한 뒤 1925년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에서 출가(出家)하였다
충무대교를 지나 중앙동 전통 수산시장을 찾았다. 옆에서 요즘 물메기가 한철이란다. 물에 빠지는 소리를 흉내 내어 물텀벙이라고 부른다. 탕으로 끓이면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내어 해장국으로 유명하다. 생김새가 못생겨서 예전에는 잡아도 바다에 버렸던 생선이었다. 회를 뜨고 탕을 끓였지만 내 입맛에서는 익숙하였던 광어나 우럭만은 못하다. 이곳사람들은 흐물흐물한 살이지만 건조시켜 찜을 하거나 묵은 김치를 썰어 넣어서 끓인 곰치국을 해 먹는단다. 한편 단체로 전통시장에 가면 빨리 회를 떠 식당으로 먼저 가야 한다.
진한 맛을 느끼지 못하고 나온 식당... 동피랑 벽화마을로... 동피랑은 동쪽 벼랑의 사투리다. 구불구불한 오르막 골목길을 따라 오르면 바다가 한눈에 내려 보인다. 담벼락 마다 그려진 형형색색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우리나라 최초란다.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統制營)의 동포루(東砲樓)가 있던 자리로 재개발을 계획하였으나 주민의 반대로 축소하였단다. 한편 서포루 옆에도 서피랑 99계단이 설치되어 있다는데 다음 기회로 미룬다. 오늘 통영 미륵도 여행길... 고속도로를 타고 대전으로 오면서 마친다. 고맙습니다.


위는 달아공원 아래는 동피랑마을 벽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