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거의 매일 오패산의 귀룽나무가 얼마나 초록 잎을 키웠는 지 보는게 유일한 기쁨이기라도 한 것처럼
또는 하나의 필수적인 의무인 듯이 그곳을 향해 마음의 촉각이가 움직이고 있다.
오늘 보니 귀룽나무 싹은 이제 1cm를 조금 넘어서 있었다. 오패산 둘레를 한바퀴 돌고 다시 한바퀴 같은 곳을 돌았더니
어둠이 점차 그 숲을 휩싸여와 거리를 분간하지 못하게 했다.
늦은 저녁 너무 어두워서 내 발자국 소리가 크게 들려오고 바스락 거리는 낙엽에 놀랄때까지 그곳을 서성였다.
가족들에게는 누구 만나러 간다고 하고 나와서 걱정할 것은 없다. 다만 깊어가는 어둠이 두려울 뿐....
걸으면서 나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나하나 분석하려고 애쓴다.
오늘 들은 언어들 속의 의미라던가 누군가가 나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메세지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곰곰히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단어에 집중해서 파생되어 나오는 다른 단어들과 연관지어 보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왜 소크라테스가 한자리에 서서 오랫동안 그렇게 몰두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하고 산책하는 시간이 너무 귀해서 일하는 시간을 이후 줄이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금년에 계획들이 몇 가지 있었지만 책에 대해서는 따로 세워둔 것이 없었다.
그저 월든과 코스모스를 원문으로 조금씩 해석하며 내면화 시켜 보는 것 정도... 그리고 관심 분야 책들을 도서관에 갈 때마다 몇 권씩 가져와서 그림으로라도 훑어 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내가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그는 버트란트 러셀이다. 러셀은 이전부터 수학에 대한 관심도나 죽음에 관한 그의 유년시절부터의 이야기를 수소문으로 들어서 알던 사람이다. 러셀보다는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아들과 여러 대화를 하며 진정 위대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고 추켜 세우기도 했는데
아하... 이후 러셀에 대해 알고 보니 그가 비트겐슈타인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을 찾아서 기뻤다.
내가 러셀을 만나려고 하는 이유는 철학의 전반적인 것에 대해 그에게 배울 것이 많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자신을 평생동안 탐구의 대상으로 삼고 섬세하게 관찰하고 기록해 나간 몽테뉴의 그 철저함에 나는 숭고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몽테뉴의 책에 자주 등장하는 보에티우스가 궁굼했는데 누군가가 그의 책에 대해 소개해 주었다.
철학의 위안이다.... 정의로움을 위해 소신을 지켰으나 서로마로부터 배신당하여 사형 선고를 받고 철학으로 마지막까지
내면을 공고히 한 그의 책을 읽을 때 나 역시 소신을 포기하지 못해서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그 때 많은 걸 자포자기한 나는 만약 어쩔 도리가 없다면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코스모스 책을 깊이깊이 계속 파헤쳐 읽어야겠다고 마음 한 켠에 등불을 켰었다.
같은 처지로 공감되었던 보에티우스를 만나게 된 뒤 철학자들이 다양한 자기 분석과 행운으로 살아 남았고 자신의 기록을 남긴 생존자라고 믿게 되어 그저 고상하고 남들에게 멋있게 보이기 위한 허세가 철학의 진정한 모습이 아님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치열한 학문에 매료되었다.
니체, 비트겐슈타인, 다산 정약용, 러셀, 몽테뉴 그리고 내가 알거나 또는 알지 못하지만 위대한 정신의 승리를 한 사람들이 위대해 보였다.
뉴스를 안 본지가 오래 되었다.
뉴스에서 홍보하는 내용들에 내 정신이 오염되는 것 같아 회피하는 것이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란 건 알지만
이전에 어떤 사소한 진실을 밝혀 보려고 대법원까지 가고 그 결과를 받고 난 후 나는 판사, 검사 같은 사람들의
내면을 너무나 잘 보게 되었고 그 후로 그들에 대한 신뢰감이라는 것이 거의 완전히 무너졌다.
온갖 선동적인 말로 교묘하게 의심을 묵살시키고 중세 시대나 있을 법한 언어로 진실이 자라날 여지를 절대 주지 않는
언론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선과 악 이분법적인 세상에서 교육 받고 안정감을 누렸지만 뭔가 결핍된 것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것이 철학의 부재였던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의 고통을 보며 삶과 죽음을 향한 그의 용기에 대리 만족을 느끼면서 나는 몽테뉴가 무수한 역사 속 인물들을 통해 알려 준 삶의 방식에 집중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철학을 좀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었는데 마침 딱 좋은 책을 찾았다. 동양 쪽은 아니지만 2500년의 서양 역사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천을 받은 책이다. 그동안의 철학에 대한 갈증이 내 우발적인 성격과 만나서 이 책을 꼭 금년에 읽어야 할 당위성이 명백해졌다.
이 책 러셀 서양철학사는 꼭 원문으로 읽어야 그 해석이며 문체의 아름다움을 명료하게 발견한다고 해서 원문으로 주문했고
일단 도서관에서 1000 페이지가 넘는 책을 빌려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오늘 3월 5일 처음 읽으면서 금년 23년 한 해 동안 꾸준히 읽을 책으로 정했다.
책을 통해 러셀이 말해주는 여러 철학자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
남편에게 이것 저것 얘기할 것도 많을 것 같고.....
남편은 1년동안 잠자기 전까지 재미있는 철학자 얘기를 제발 조금만 들어달라고 애원하는 내 말에 정말 조금만 말하라고 할테지..
산책을 할 때도 알게 된 철학자들에 대해 꼼꼼히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보고 되새겨 봐야겠다.
와우~~~ 정말 많은 사람들을 소환해서 만날 수 있는 2023년에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