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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5. 순천하늘씨앗교회 종려주일/고난주일 가정예배 안내서
Ⅰ. 시작 : 낮춤 비움 만남
†인도자 ◎회중 ○형제 ●자매
(시간이 되면 십자가를 가운데 놓고 초를 점화한다. 잠시 침묵으로 마음을 모은 다음)
1. 성삼위의 초대
† 오늘은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마지막 수난을 기억하는 종려주일이자 고난주일입니다. 이제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드릴 수 있도록 영혼을 정갈하게 여밉시다. 모두 일어나 종소리에 마음을 모읍니다.(혹은 잠시 ‘거룩함’이라는 단어 앞에 겸손히 집중합니다.)(타종을 세 번 하거나 잠시 침묵)
2. 예배로의 부름
† 유월절 엿새 전에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아이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 외치는 소리, “높은 곳에 호산나! 큰 자비를 베푸시러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요한복음 12:1,12-13)
◎ 아멘
3. 입례송 “오소서 오소서”
오소서 오소서 <①생명 ②정의 ③평화>의 주님, 우리가 한몸 이루게 하소서. (3절 후 ‘아멘’)
4. 예배기원
◎ 오묘한 사랑의 하나님, 성자께서 스스로 십자가 고난 길을 걸어가셨으니, 저희도 스승님의 인내와 지혜를 본받아 시대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십자가 안에서 부활생명으로 함께 계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원하나이다. 아멘
[최성진목사] [오전 9:28] 5. 찬양(누군가 널위해 기도하네)
* 오늘은 온라인/가정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위해 자신의 연주실황을 유투브에 올린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 님의 연주를 감상하면서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iq5SmaolnU&list=PLMsgVhZFGs9rvWjrAZbCGjYlAdLxbW1KL&index=7
[최성진목사] [오전 9:28] Ⅱ. 말씀
6. 말씀의 초대
(타종) † 지금·여기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합시다. 성령께서 우리 귀를 열어주시고 우리 마음을 열어주시기를 청합니다. (잠시 침묵 후)
오늘의 말씀은 마가복음 15:33-41입니다.
33 낮 열두 시가 되었을 때에, 어둠이 온 땅을 덮어서,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34 세 시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그것은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6)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는 뜻이다. 35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몇이, 이 말을 듣고서 말하기를 "보시오, 그가 엘리야를 부르고 있소" 하였다. 36 어떤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을 신 포도주에 푹 적셔서 갈대에 꿰어, 그에게 마시게 하며 말하기를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두고 봅시다" 하였다. 37 예수께서는 큰소리를 지르시고서 숨지셨다. 38 (그 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 39 예수를 마주 보고 서 있는 백부장이, 예수께서 이와 같이 7)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서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하고 말하였다. 40 여자들도 멀찍이서 지켜 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막달라 출신 마리아도 있고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도 있고 살로메도 있었다. 41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예수를 따라다니며 섬기던 여자들이었다. 그 밖에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이 많이 있었다.
7. 하늘뜻 펼치기 (아래 설교문을 한 사람이 읽는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막 15:33-41)
* 회중/오프라인 예배를 가정/온라인 예배로 대체한지 1달이 넘어 4월이 됐고 이제 우리는 종려주일과 고난주간, 부활절을 맞는다. 코로나는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극복(또는 올바르게 대처)할 가능성이 보이지만 뉴스와 SNS를 통해 전해지는 다른 나라들의 사정은 여전히 녹록치 않아 보인다. 2차대전 이후 인류가 이토록 암담한 시절을 보낸 적은 처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코로나는 국경을 허물고 전 세계를 두려움에 빠트리고 있는 중이다. 생애 처음 접하는 이런 환란 속에서 인간의 연약함과 더불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 고등학생 때 알게 된 엘리엇의 시 황무지를 처음 읽었을 때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절정인 4월을 왜 시인은 잔인하다고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읽은 후, 그리고 이어 제주항쟁에 대한 논문들을 접하면서 4월이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을 실존적으로 공감하게 됐다. 이미 그때는 광주항쟁의 비극에 대해 소상히 전해들은 뒤라 학창 시절 4월과 더불어 5월까지 이어지는 봄은 언제나 화창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빚진 자의 부채의식 같은 것이 남아있었다.
* 6년 전 발생한 세월호 사건은 잔인한 달 4월을 더 잔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2020년 우리는 코로나사태의 한복판에서 4월을 맞는다. 72년 전 제주의 4월과 6년 전 팽목항의 4월, 그리고 올해의 4월은 모두 비극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433행에 이르는 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을 반복한 이유는 900만명 이상이 사망한 1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뒤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현대인의 냉정하고도 황폐한 정신세계에 대한 절망감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 엘리엇의 절망은 1차대전이라는 세계적 비극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무지한 인간들로 인해 2차대전이라는 더 큰 비극으로 현실화됐다. 그리고 우리는 2차대전 이후 가장 큰 인류의 재난이라는 코로나사태의 와중에서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일주일을 앞두고 있다. 이 재난 속에서 맞는 종려주일과 고난주간, 그리고 부활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올해는 예년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와 상황 속에서 그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하며 더 실존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최근 영국의 저명한 신학자 톰 라이트가 ‘기독교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답변을 주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글을 타임지에 기고했다. 그는 이 글에서 그동안 많은 기독교인들이 사순절이 되면, 좋아하는 음식을 삼가하고, 영화 관람이나 SNS 등 평소에 즐기던 취미활동을 자제하면서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려고 노력했는데 올해 사순절에는 코로나 19로 인해 이 모든 일들이 마치 아이들 장난처럼 됐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처럼 올해는 수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예수처럼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사순절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 2020년 사순절이 시작된 2월 26일(재의 수요일)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이후 3월 11일, WHO가 팬데믹을 선언했을 때 전 세계 확진자가 12만 4천 명 정도, 사망자가 4천 5백 명 정도였다. 그런데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전 세계 확진자 수는 110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 수도 6만 명을 넘었다. 그래서 이번 사순절은 “코로나19 사순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문제는 사순절이 끝나가고 부활절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는데 코로나19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전 세계를 뒤덮는 코로나 확산이 부활절 직전에 거짓말처럼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기적이 일어나 기쁨으로 부활절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또는 전혀) 없는 상황이다. 사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부활절 전에 상황이 극적으로 호전되어 다시 회중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소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소망이 이뤄질 가망이 거의(또는 전혀) 없는 지금 우리는 진정 절망 가운데서 2천 년 전 고통당하며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고난을 더 깊이 이해하고 절감할 수밖에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 그런 심정으로 2천 년 전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한 복음서 기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오늘 본문을 읽어보도록 하자. 복음서 기자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예수의 마지막 말을 기록하는데 가장 먼저 쓰여진 마가복음은 단 한 마디만을 기록하고 있다. 바로 오늘 본문 중 34절에 기록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이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을 가진 이 기록된 아람어는 시편(22:1)에서 인용한 것으로 흔히 예수의 고통과 절망을 표현하는 부르짖음이라고 이해된다.
* 십자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비아냥도 그런 이해에 한몫을 한다. 그러나 시편의 히브리어 원문은 단순한 절망만이 아니라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믿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고통과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 또는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믿음과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의지의 반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믿음과 소망은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필요하다.
* 따라서 하나님의 부재를 원망하는 말처럼 보이는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구절 역시 왜 예수가 고난을 당해야 했는지에 대한 마가복음 기자의 의문이 시편의 인용이라는 방식으로 제시된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의인 욥의 고난에 대해서도 그랬던 것처럼 고난의 이유를 자세히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다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의지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만을 전할 뿐이다.
* 그래서 우리는 “레마 사박다니?”보다 “엘로이 엘로이”에 방점을 찍고 이 구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이해는 마태복음 기자에 의해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깁니다"라는 절대적 순종과 내려놓음으로 완성된다. 그동안 우리는 2천 년 전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간 후 십자가에 달려 참혹하게 죽어간 예수의 고난을 피상적으로 이해해왔다. 그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인해 고난 속에서 예수의 고난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것도 은총이라면 은총이니 감사할 일이다.
* 우리는 제주항쟁과 광주항쟁,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정치적 이유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왜 그로 인해 그토록 많은 무고한 인명이 희생되어야 했는지를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고난에 함께 하셨으며 그들의 희생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역사하신다고 믿을 뿐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 수가 이미 6만 명을 넘었고 미국에서만 10만 명 이상이 사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 우리는 희생자들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면서 희생의 규모가 줄어들기를 바라며 기도할 수 있다. 더 이상의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물리적) 거리 지키기에 적극 동참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생각하며 위로하기 위한 작은 정성을 보탤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과 같은 사태에 이르는 동안 알게 모르게 과도한 소비와 환경의 파괴에 동참하거나 무관심했던 잘못을 뉘우치고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지금부터나마 노력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고 수많은 변화가 진행 중이다.
* 예배에 대한 의식의 전면적인 변화는 어떤 식으로든 기독교의 변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4월 들어 회중예배를 재개할 예정이라던 가톨릭은 코로나의 확산이 계속 되면서 부활절 미사를 온라인으로 중계(로마 교황청)하거나 평화방송을 통해 드리기로(천주교 서울대교구)도 결정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보수적인 일부 교회들도 부활절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릴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학교가 한 달 이상 동안 문을 열지 못하고 궁여지책으로 온라인개학을 하는 일도 불과 몇 달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 예수살기 등 진보적인 개신교 목사들 중 일부는 부활절의 연기를 주장하기도 했으나 이마에 재를 바르는 의식을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하든가 생략하면서 시작한 사순절의 의미 역시 소중하고 부활절 이후 오순절까지 이어지는 기간도 소중하기 때문에 부활절을 임의로 연기하는 것은 혼란의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반대하는 입장이다. 결국 회중/오프라인 예배나 온라인/가정예배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만 마스크 쓰고 모여 예배 드리는 것도,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예배 드리는 것도 나름대로의 문제와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다.
* 어차피 다 차선책일 수밖에 없지만 각자의 판단에 따라 내려진 선택이 이후 한국 기독교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 엘라 휠러 윌콕스의 시 <당신은 어느 쪽인가?>는 “오늘날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구절로 시작한다. 여러분은 그 두 종류가 어떤 것이라 생각하는가? 죄인과 성자?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겸손한 사람과 오만한 사람? 행복한 사람과 슬픈 사람? 이런 종류를 생각할 수 있지만 시인은 모두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내가 말하는 이 세상의 두 종류의 사람이란 짐을 드는 사람과 짐을 지우는 사람”이라고 단언한다.
* 그리고 “그리고 참으로 이상한 일은 세상에는 짐을 지우는 사람이 스무 명이면 짐을 드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라는 것”이라면서 “당신은 어느 쪽인가? 무거운 짐을 들고 힘든 길을 가는 이의 짐을 덜어 주는 사람인가? 아니면 남에게 기대어 자기 몫의 짐을 지우고 걱정 근심을 끼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시를 읽으며 우리는, 그리고 한국 교회는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교회는 당연히 한국 사회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존재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다니?”는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원망과 탄식이 담긴 질문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환란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이 담겨져 있음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전하고 실천하기 위해 부름 받은 존재로서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짐을 지우기보다 누군가의 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리고 그런 교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결단하는 고난주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조차 희망을 잃지 않고 부활의 기쁨을 소망하시기 바란다.
8. 말씀의 새김 (위 설교문을 읽고 잠시 묵상한 다음 찬송가 242장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찬송)
1)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피는 것을 볼 때에 구속함의 노래 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후렴) 거기 거룩한 그 길에 검은 구름 없으니 낮과 같이 맑고 밝은 거룩한 길 다니리
2)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그의 영광 볼 때에 모든 괴롬 잊어버리고 거룩한 길 다니리
3) 마른 땅에 샘물 터지고 사막에 물 흐를 때 기쁨으로 찬송 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4) 거기 악한 짐승 없으니 두려울 것 없겠네 평안함과 즐거움으로 거룩한 길 다니리
5) 거기 죄인 전혀 없으니 거룩한 자 뿐이라 주님 주신 면류관 쓰고 거룩한 길 다니리
9. 봉헌 (상황에 맞게)
10. 하늘씨앗 행동강령
†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을 성찰한다.(말씀)
◎ 우리는 날마다 교회의 개혁과 사회의 변혁을 위해 기도한다.(기도)
† 우리는 감사와 기쁨, 두렵고 떨림으로 예배와 성례에 참여한다.(경외)
◎ 우리는 전쟁과 폭력을 반대하며 생명 평화를 위해 일한다.(평화)
† 우리는 불의와 허위, 억압에 대해 정의의 이름으로 저항한다.(정의)
◎ 우리는 지구를 살리는 창조질서 보전 및 생태환경 개선에 힘쓴다. (생태)
◎ 우리는 다양성을 보전하며 이웃 종교의 가르침을 존중한다.(대화)
11. 마치는 기도
①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잠시 숨고르기를 한 다음)
† 사랑의 하나님,
◎ 교회를 교회답게 하소서. 시대의 십자가를 지는 교회, 삶으로 예배드리는 교회 되게 하소서. 모이지 못하더라도 실천으로 하나되는 참 행복, 참 기쁨의 공동체 되게 하소서.
②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잠시 숨고르기를 한 다음)
† 정의의 하나님,
◎ n번방 사건으로 세상의 비인간적인 탐욕이 다시 한번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모든 이가 인간된 존엄성을 회복하게 하소서. 총선이 다가옵니다. 이번 총선으로 적폐 잔당을 청산하고 촛불국회를 이루게 하소서. 비상시국이오니 정의와 생명평화의 질서를 다잡는 계기 삼게 하소서. 올바른 정치와 공정한 경제를 세우게 하시고, 겨레의 일치와 화해를 이루어 평화시대를 열게 하소서.
③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잠시 숨고르기를 한 다음)
† 희망의 하나님,
◎ 신종 바이러스로 지구촌 전체가 병들고 있으니 자비를 베푸소서. 가난한 이들에게 고통이 더하여지니 불쌍히 여기소서. 속히 병에서 치유되고 해방되게 하소서. 경제타격도 심하오니 이 난국을 정부와 시민이 한 마음 되어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④ 곁에 있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잠시 숨고르기를 한 다음)
† 생명의 하나님,
◎ 오랜 기간 한데 모이지 못하는 저희 교회를 강하게 하소서. 시련을 통하여 신앙을 성숙하며 일치와 연대의 정을 깊게 하소서. 순천하늘씨앗교회 공동체와 각 가정을 가장 유익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어, 부활생명을 사는 참 교회 되게 하소서.
12 마치는 찬송 - 찬송가 461 “십자가를 질수 있나”
1) 십자가를 질수 있나 주가 물어 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성도 대답하였다
후렴)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 갈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2) 너는 기억하고 있나 구원 받은 강도를
그가 회개하였을 때 낙원 허락 받았다
3) 걱정 근심 어둔 그늘 너를 둘러덮을 때
주께 네 영 맡기겠나 최후 승리 믿으며
4) 이런 일 다 할 수 있나 주가 물어 보실 때
용감한 자 바울처럼 선뜻 대답하리라
(서로 축복하며 예배를 마무리한다)
[최성진목사] [오전 9:31] 오늘도 가정에서 예배 드리는 하늘씨앗 여러분께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가 넘치도록 베풀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