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안중근의사 거사의 장소 하얼빈역
안중근의사 거사 표지석(하얼빈역 1번 플래트 폼) 안중근, 우덕순, 유동하의 사진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거사 당시
하얼빈은 러시아 소속.
동청철도 관리중심지, 러시아 중국 동북지역 침략의 발판지.
총 인구 : 59,694명,
중국인 : 5,352명
한국인 : 268명
일본인 : 627명
1909년 9월:
안중근의사 블라디보스토크 대동공보사에서 이토의 만주 시찰 소식을 듣고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적장을 포살하기로 결심.
10월 21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덕순과 함께 기차로 허얼빈 행.
10월 22일: 밤, 하얼빈 도착. 김성백의 집에서 묵음.
10월 23일:
하얼빈공원(현 조린공원) 부근에서 이발, 사진 촬영, 점심 무렴 김성백의집으로 귀가. 신문에서 이토의 일정확인, 10월 25일 장춘 출발 기사를 확인함.
우덕순과 함께 유동하 외에 한 명의 통역을 김형재의 소개로 만남. (조도선)
대동공보사 이강에게 김성백에게 빌린 돈을 갚아달라는 편지를 씀. 안중근은 '장부가', 우덕순은 '거의가'를 지음.
10월 24일:
안중근, 우덕순 일행 하얼빈역 조사, 기차표 구입, 원계획은 장춘에 가서 거사를 하는 것이었으나 차이자거우에서 열차가 교화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획 수정, 12시 13분 차이자거우역에 도착. 우덕순과 조도선은 차이자거우에 남고 안중근은 하얼빈으로 돌아옴 .
10월 25일: 차이자거우에서 돌아오고 26일을 위한 마지막 준비.
10월 26일:
아침 7시쯤 새옷으로 갈아입고 권총을 가지고 하얼빈역으로 가심.
역에 도착했을 때 러시아 장관과 군인들이 이토를 맞이할 준비로 분주.
2시간 동안 차를 마시며 대기.
아침 9시경 이토가 탄 열차 도착.
9시 30분경: 도열한 군대와 군악대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는 이토를 안중근의사 저격.
대한의군 중장으로서 대한제국을 유린한 적장 이토를 저격."코레아 우레!" 를 외치고 잡히심.
10시 : 이토의 송장은 장송곡 속에서 다렌으로 떠남.
1909년 안중근의사가 이토를 저격했던 당시의 하얼빈역
1909년 당시 성 소피아 성당
장춘에서 하얼빈으로 들어오는 철로 (하얼빈역 뒤)
1903년 당시 중똥철도 망 , 하얼빈에서 여순까지 이어진다.
하얼빈역의 역사
하얼빈역의 프래트폼 (가장 안쪽에 있는 플래트 폼에서 저격했다고 함)
하얼빈역의 플래트 폼
하얼빈역의 플래트폼
1989년 10월 1일 완공된 하얼빈역 ( 낡고 비좁아서 신청사 건축중임)
신축 공사중인 하얼빈 역사 (2017. 6월 현재)
님은 갔지만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 날의 총성 기억합니다.
님께서 품은 동양평화에 대한 염원!
조국 독립과 평화에 대한 염원!
문명에 대한 신념!
진리에 대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대한제국의
독립전쟁을 천하에 알린 의군중장님께
거수경례!!!
우덕순열사님께 거수 경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