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
1. 21세기 들어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싸움은 극단적으로 흐르고 있다. 대한민국의 이념적 논쟁은 물론이고 오랜 민주적 전통을 지닌 미국에서도 대립은 점차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대립은 이제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위험한 신호까지 내비치고 있다. 미국의 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바른 마음』이라는 저서를 통해 미국 정치에 압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도덕’의 본질과 도덕이 어떻게 정치에 영향을 끼치는가를 분석하면서 정치적 분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시도한다.
2. 사람들이 ‘옳고 그름’, ‘좋음과 나쁨’을 결정할 때 나름 이성적 판단을 통해 결론에 도달한다는 생각은 허구에 가깝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하이트는 도덕에 영향을 미치는 이성과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코끼리를 탄 기수’라는 비유를 이용한다. 기수(이성)가 코끼리를 이끌어나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코끼리(감정)가 움직이는 대로 기수는 방향을 안내할 뿐이라는 것이다. 즉 도덕적 판단은 감정과 정서에 의한 ‘도덕적 직관’에서 결정되며 도덕적 추론은 직관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사후처방전’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이 도덕적 다툼에서 상대의 말을 수용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논쟁은 자신의 느낌을 정당화하기 위한 싸움터일 뿐이다.
3. 저자는 ‘도덕성’을 이루는 근본적 기반을 여섯 가지로 분류한다.(여섯 가지 도덕성 기반은 ①배려/피해 ②자유/억압 ③공평성/부정 ④충성심/배신 ⑤권위/전복 ⑥고귀함/추함) 보통 진보주의자들은 이러한 도덕성 기반 중에서 ‘배려’기반을 바탕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의 권리와 피해를 개선하고 공정하고 자유로운 삶을 중시하는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은 또 다른 도덕성 기반인 ‘충성심, 권위, 고귀함’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충성심과 권위’를 기반으로 진보주의자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이 다른 도덕성 기반도 받아들이고 있다.
4. 저자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적 지식인에 가깝다. 그럼에도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진보주의자’들의 지나친 도덕적 일원론에도 영향이 있다고 분석한다. 진보주의자들은 오로지 ‘배려’와 ‘공평성’에 기초하여 사회의 수많은 제도와 관습을 공격한다. 그들에게는 다른 도덕적 기반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태도는 보수주의자들에게 불쾌함을 준다. 진보주의자들의 지나친 ‘개인주의’가 국가의 권위, 가족과 공동체의 중요성, 그리고 종교의 신성함을 파괴한다고 불안해하는 것이다. 또한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이 반드시 그들의 의도대로 선한 방향으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빈민 지원프로그램이 미국 가정제도의 기반을 흔들었고 그 결과 저소득층에서 혼외자녀들의 양산들 가져왔으며, 학생들에게 학교와 교사에 대한 기소권을 부여하자 학교는 권위를 잃고 교육현장을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5. 보통 ‘도덕’은 개인적인 영향보다는 집단적 움직임에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즉 도덕성은 한 집단을 뭉치게도 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눈멀게도 하는 위험한 힘이다. 한 집단이 특정한 도덕성에 기반하여 다른 집단을 공격할 때, 공격받은 집단은 감정적으로 반응하여 더욱 격렬한 분노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싸움에서 나름 이성적인 논리와 추론이 동원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자신들이 지닌 감정과 분노를 정당화하기 위한 자폐적 움직임에 불과하다. 아무리 본질적인 도덕성일지라도 한두가지 도덕성만을 절대화했을 때, 그것 또한 진보주의자들이 공격하는 ‘극단주의적’ 성향에 불과하다. “진보주의자들은 압제당하고 소외당하는 이들을 대변하고자 한다. 그러나 희생자들을 도우려는 열의는 좋지만 그것이 충성심, 권위, 고귀함 기반을 별로 중시하지 않다보니 진보주의자들이 밀어붙이는 변화는 집단, 전통, 제도, 도덕적 자본을 약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6.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초는 타인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도덕성이 ‘직관’에 영향을 받는다면 도덕적 직관의 다원성을 기를 수 있는 경험을 늘릴 수밖에 없다. 다른 도덕성, 정치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과의 인간적인 교류가 중요한 이유이다. 또한 다른 도덕적 성향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제도적 장점에 대한 이해도 증진시킬 필요가 있다. 가령 ‘자유주의자’들로부터 ‘시장의 효율성’을, ‘사회적 보수주의자’로부터는 사회의 안정을 가져오는 ‘전통’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다. 최근 생각이 맞는 사람들만의 공간에서 서로의 생각을 강화하는 모습은 민주주의의 다원성과는 거리가 먼 움직임이다. 다원화된 과정에서 사회와 공동체가 중시하는 핵심적인 가치를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문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국가의 문화와 도덕을 인정하는 행위는 때론 통합보다는 분열의 위험을 조장할 수 있다. 상대주의라는 관점에서 상대의 도덕을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원주의라는 입장에서 상대의 도덕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사야 벌린의 다음과 같은 말은 다원주의의 대한 중요한 시사를 던진다. “다원주의의 중요한 특징은 바로, 어떤 이가 그러한 가치 중 하나를 추구할 때 나는 그 가치를 따르지 않는다 해도 왜 그 사람이 그 가치를 따르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첫댓글 서로가 다들 자기들이 옳다고 외치는 세상, 지켜야 할 가치들도 모두 다 다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