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산성, 보적사, 왕송호, 꿈 같은 나들이
1. 일자: 2022. 4. 17 (일)
2. 장소: 독산성, 왕송호
3. 행로
[독산성, 2.5km / 왕송호 5.3km]
< 보적사, 독산성 >
산에 간지 오래되어서 인지 꾀가 늘고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관악산을 가려다 오산 독산성으로 행선지를 바꾼다. 미세먼지가 아직 남아 있다는 핑계를 든다. 몇 달 전 교보에 갔다가 사기엔 부담이 된 책의 내용 몇 장을 사진 찍어 놓은 게 있는데, 그 중 하나에 걷기 좋은 길로 소개된 곳이 보적사와 독산성이다.
해 뜨기 전 집을 나선다. 서녘에 커다란 황금색 공이 걸려 있다. 보름달이 지고 있다. 색다른 광경이다. 익숙하지 않은 서수원의 낯선 길을 따라 보적사 부근에 도착했다. 네비가 알려 주는 데로 가니 가파른 도로가 나타나고 그 끝에는 절이 있었다.
첫 눈에 보는 주변 풍경이 놀랍다. 돌 축대 위로 절집이 있고 그 옆으로 키 큰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태양을 등지고 서 있는 모습에 반한다. 카메라를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암문을 통해 독산성 안으로 들어선다. 보적사는 그리 크지 않은 단아한 사찰이었다. 단촐하고 고요한 절마당을 지나 산성으로 돌아든다. 목책과 성곽이 길게 이어지고, 돌담 위에 올라서자 사방 막힘 없는 그림 같은 풍경이 목격된다. 놀랍다, 꿈에서나 볼 듯한 기가 막히게 멋진 고원이 펼쳐진다. 그 중심에는 독산성이 있었다. 이런 곳에 이런 풍경이…. 아침 연무 탓에 먼 건물들이 하늘을 떠다니고, 하늘은 일출의 여운으로 붉게 물든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할 정도로 이국적이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경치가 넓게 이어진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멋지고 놀라웠다. 10여 분간 꿈 속에서 보낸 듯 황홀했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뜻 밖의 행운이 찾아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성곽을 내려선다. 비로서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돌담 옆 긴 계단을 내려선다. 아직도 유적 발굴이 한창인가 보다. 성곽 위를 걷는다. 바라보는 풍경의 도시가 오산인지, 수원인지, 평택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동 서 남 북 어느 문인지로 마찬가지다. 길의 주인은 독산성 그 자체이다. 산성의 규모도 모른 채 무작정 걷는다. 운무가 도시를 품는다. 오름을 올라선다. 풍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내려 보는 눈에 옅은 초록의 신록이 또 다른 숲과 산을 이룬다. 모든 게 처음이요, 색다르고 근사하다.
세마대 옆으로 노송들이 군락을 이후고 그 밑으로 보적사 대웅전의 지붕이 보인다. 보이는 모든 게 예술이다. 아쉬운 게 있다면 독산성은 그리 넓지 않다는 게다. 1km 남짓을 걸어 다시 보적사 앞에 선다. 아쉽다. 이대로 이곳과 이별하긴 싫어 역방향으로 산성을 다시 돌았다. 그새 해는 하늘 높이 더 솟았고, 그 빛을 받은 풍경은 더 풍요로웠다. 다시 보아도 절과 산성은 훌륭했다.
꿈 속 낙원에서 보낸 1시간이었다. 낯선 곳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는 보물 같은 풍경과 접했다. 찾는 이 드문 이른 시간, 그래서 산성을 독차지할 수 있었던 점도 멋진 기억에 큰 몫을 했다.
보적사와 독산성은 내가 애써 새 길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다시금 알려주었다.
< 왕송호수 >
적게 걸었고 너무 이른 시간에 집에 가기 싫어 주변을 검색하다, 융건릉과 용주사가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알았고, 먼저 용주사로 향했다. 넓고 반듯한 사찰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부처님오신날 준비가 한창이다. 짧은 절집 투어에 마음이 편해진다. 왕릉이 문을 열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한다.
길이 왕송호 주변을 지남을 알고, 차를 그리리 몬다. 맨 몸으로 호수를 빠르게 돌았다. 연못에는 물이 차고, 길에는 벚꽃이 아직 한창이다. 물오리와 왜가리 나르는 호숫가를 돈다. 물가에 벚꽃 잎이 떨어져 색다른 풍경을 만든다. 호숫가 나무들은 빠르게 푸르름을 되찾고 있다. 바야흐로 봄이다.
호수를 크게 돌아 원점으로 돌아왔다. 벚꽃과 그 넘어 왕송호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고는 걸음을 멈춘다.
이 역시 멋진 나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