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긴 폭염은 생애처음 겪는 일기와 관련, 최악의 경험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열대야를 통해 얻게 되는 신체적 특징은 쉽게 견딜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높은 습도와 함께 진행되는 고온은 짜증과 함께 쉽게 지치게 합니다. 노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신체적 환경 때문에 오랜 시간 에어컨 또는 선풍기에 노출되게 되면 참으로 견디기 어렵고 일상에서의 활동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늘어지는 자신을 보면서 한반도를 감싸고 물러 서지 않는 티베트 , 태평양, 양 고기압이 연출하는 고온다습한 기후에 혼이 나고 있는 9월입니다. 이러한 경험이 과연 있었는가 하며 걸아온 삶의 뒤 안 길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떠오르지 않는군요. 생애 최초의 경험이다 보니 슬며 시 지구가 겪는 고통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깊어지는군요. 그래도 나름대로 동안 지속적으로 해 온 일들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이어왔다는 생각에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지만 그 이면에는 날씨에 따른 고통의 행적들은 생생하게 살아 있는 편입니다. 추석연휴를 가족들과 함께 보내며 일정을 소화한 후 이젠 느긋하게 9월 말까지 쉬고 싶다 하였는데 불쑥 코로나가 우리 집으로 뛰어 들어와 제노가 잠시 피난하여 지내라는 당부에 반려견과 함께 산막으로 피신하여 내려왔습니다. 다녀간 지 오래되지 않아 산막의 환경은 보기 좋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잔디가 야간 웃자라 짐을 차에서 내리지 않고 잔디정리부터 시작한 후 단풍나무 아래에 차를 옮긴 후 실내로 들어섰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습한 기운이 다가섰습니다. 서둘러 개구부를 전부 열어 놓으니 공기가 순환되어 차츰 맑은 공기 영향으로 실내 분위기가 개선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실내 청소를 마친 후 밖으로 바라보다. 상단에 올려놓은 사진정경이 보여 통창 유리 앞에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핸드폰으로 찍었 두었습니다. 생각하는 사람 조각 위로 뻗은 넝쿨 장미에 가을 장미꽃이 피기 시작하였습니다. 봄에 피기 시작하는 장미는 탐스럽게 5,6,7월 중순까지 이어지다 중순 이후 꽃이 진 후 나뭇잎마저 전부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습니다. 산고가 아낙을 지치게 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열정도 그와 못지않게 장미나무를 지치게 하나 봅니다. 장미의 고난의 시기가 찾아오면 진딧물이 득세를 하며 장미의 본모습을 황폐화시켜 놓습니다. 약을 쳐주면 좋으련만 자연순리에 맡겨버립니다. 그러나 9월에 들어서면 기사회생하여 잎이 한 잎 두 잎 달리기 시작하면서 가을장미꽃이 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꽃송이는 아주 작습니다. 봄 장미꽃은 크고 탐스러운 반면 가을장미꽃은 아주 작고 아담한 범위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때에 따라서 거름을 (거름은 계분이 참 좋습니다) 주고 약을 쳐주면 봄 장미만큼 탐스럽지만 이 또한 자연의 섭리에 맡깁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장미를 너무 혹사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덤으로 얻은 가을꽃인 만큼 그냥 그렇게 본 후 새 봄이오면 제대로 꽃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하자는 것이 개인적인 처사입니다. 자연물을 너무 인위적으로 해석하고 인위적으로 식물의 입장에 반하는 생태의 모순을 성취하는 것은 어리 석운 짓이라는 생각을 존중하는 편입니다.
3일 내내 비소식이 있습니다. 강우량도 장난이 아닌 가을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모양입니다. 가을장마를 기준으로 어서어서 여름 폭염이 우리 곁을 떠났으면 좋겠습니다. 9월 말이면 태백산맥 고산준령은 전부 단풍이 드는 시기인데.... 올해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에는 고산준령을 찾아 단풍을 마음에 담아 두려 계획을 잡았는데 설악 내설악, 소백준령, 선자령, 곰배령, 대관령 옛길 중 반정 이후부터 대관령 박물관 구간 등과 안면도 해안 길을 다녀 올 계획을 세워 두었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우이령 길과 오봉 길을 합쳐 걸어 볼 계획도 세워 두었습니다. 이런 계획을 세우며 단서를 주문처럼 외우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더 늦기 전에라는 말입니다. 나보다 앞서서 걷는 선배들이 모습을 경험하면서 생긴 버릇이지요. 나이의 어느 시기를 벗어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각과 행위 자체가 소멸되어 자기 의사와 주체성은 사리지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대동소이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