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栗谷)이 손수 초한 격몽요결(擊蒙要訣)의 앞에 쓰다 무신년(1788)
그 사람을 사모하는 데는 반드시 그분의 글을 읽어 보아야 하며, 그분의 글을 읽으면서는 반드시 그분의 마음을 추구해 보아야 하니, 마음을 이해하여야 그분에 대해서 익숙하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거슬러 올라가 옛날의 어진 사람을 벗으로 삼으려는 사람은 그분의 글을 우선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그런데 지금 사모하는 인물의 글이 있고, 거기다 그분이 손수 자구(字句)를 수정한 자취까지 있으니, 그 마음이 글자의 획에 나타난 것과 아울러 장차 내 마음속에 은연중에 뜻이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그러니 그 마음을 추구하는 오묘함에 있어 더욱 절실하지 않겠는가.
이 문성공(李文成公 이이(李珥))은 내가 존모(尊慕)하는 분이다. 《율곡전서(栗谷全書)》를 읽으며 그분을 상상하곤 했는데, 근자에 들으니 강릉에 초본(草本) 《격몽요결(擊蒙要訣)》과 남긴 벼루가 있다고 하므로 속히 가져오게 하여 살펴보았더니, 점획(點畫)이 새로 쓴 듯 처음과 끝이 한결같아 총명하고 순수한 뛰어난 자질과 비가 갠 뒤의 바람과 달처럼 깨끗한 기상을 애연(藹然)히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문득 문성이 떠난 지 2백여 년이 되었음을 모르게 되었으니, 그분의 글을 읽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그러했던 것이다. 대저 성현의 뜻에 오묘하게 부합되면서도 거침없이 써 내려간 것은 공(公)의 생각의 정밀함이고, 여기에 나아가 배운 것은 공의 일상생활에서의 공경이다. 이로 말미암아 추구하면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공부와 요(堯)임금 순(舜)임금이 백성을 다스린 계책은 단지 이것을 미루어 공부해 나아가는 데 불과하다. 뒷날 공을 사모하며 공의 마음을 추구하려는 자는 이 책을 의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책은 바로 소학(小學)의 첫 과정이니, 강릉의 자제(子弟)들이 한갓 손때가 묻은 유품을 소중하게 여겨 깊이 간직할 줄만 알고, 은혜롭게 물려준 취지를 깊이 연구하기를 힘쓰지 않는다면 어찌 도리어 이 고을의 수치스러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만일 여기에 나아가서 추구하려고 하더라도 반드시 《율곡전서》를 읽고 난 뒤에야 가능할 것이다. 내가 이것으로 인해 특별히 느낀 바가 있는데, 지난번 영남에서 이 문순(李文純 이황(李滉))이 손수 쓴 《심경(心經)》을 얻었고, 이제 또 이 본(本)을 얻었다. 두 현인이 한 세대에 나고 두 책의 출현이 마침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여 자못 기다린 바가 있는 듯하니, 우연한 일이 아닌 듯하다. 그러나 유교의 기풍이 점점 멀어지고 성인의 말씀이 날로 없어져 가므로 매번 경연(經筵)에 나아갈 적이면 두 분과 시대를 함께하지 못한 한탄을 더욱 금할 수 없다. 강릉은 바로 공의 외가(外家)이자 공이 실제로 그곳에서 태어났으니, 이른바 오죽헌(烏竹軒)이 바로 그곳이다. 뒤에 권씨(權氏) 소유의 책이 되어 역시 그의 집안에 간직되었는데, 권씨의 선대(先代)는 바로 공의 이종(姨從)이 된다. 이미 이렇게 기록하고 또 그 벼루의 명(銘)을 지어 돌려보냈다.
출전 : 한국고전번역원
題栗谷手草擊蒙要訣 戊申
慕其人。必讀其書。讀其書。必求其心。卽心而便其人也。是故。尙友者。未嘗不以書爲先。而今以所慕之人之書。重之以手自點竄之蹟。則幷與其心之著於畫。而將有所默契于中。其於求心之妙。不旣愈切矣乎。李文成。予所尊慕也。讀其全書。想見其人。近聞臨瀛有所草擊蒙要訣及遺硯。亟取而見之。點畫如新。終始若一。明粹超詣之姿。光霽灑落之象。藹然可挹於開卷之初。忽不知去文成二百有餘年。非有待於讀其書而然也。夫妙契疾書。是公之思之精也。卽此是 學。是公之居之敬也。由是而求之修齊身家之工。堯舜君民之策。直不過推將做去。後之慕公而求公心者。其有不賴於斯卷者歟。然是書乃小學初程也。爲臨瀛子弟者。徒知愛玩於手澤之遺。不務深究乎嘉惠之志。則豈不反爲玆鄕之恥。而如欲進此而求。亦必讀其全書而後爲可也。予因此別有感焉。曩於嶠南。得李文純手書心經。今又得是本。兩賢之生旣竝一世。二書之出。適相先後。殆若有待。事或不偶。而儒風寖邈。聖言日湮。每御經筵。益不禁不同時之恨也。臨瀛卽公外鄕。公實生焉。所謂烏竹軒者是已。後爲權氏有。書亦藏于其家。權之先。爲是公姨親也。旣識此。且銘其硯而歸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