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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수필창작아카데미 26기 예비수업 2차시
2026년 1월 12일(월)
1. 50%의 확률 /고영숙(1)
1. 아침이 왔다. 지난 밤 걱정이 채 가시지않아 불안하게 맞이하는 그런 아침이다.베란다 창문을 열어보니 늦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빗소리에 걱정이 얹혀 더욱 마음이 불안하다.
2.오늘은 바로아래 여동생이 몸이 불편하여 검진을 받기로 한 날이다.
미련하게 오랫동안 버티다가 얼마전에 예약을 했다고 말했다.버틸게 따로있지 왜 여태껏 미루었냐고 화를 내며 나무랐다.
3."언니야, 결과 나오면 알려 줄테니 걱정하지 말고 집에 있어라, 병원에 오지 말고." 이 말은 귀에 들어 오지도 않았다.용케 예약 날짜와 시간을 알아 낸 탓에 병원에 가 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이 일로 며칠간 마음이 뒤숭숭하여 내 일상생활이 마치 물위에 기름이 돌듯 겉돌고있었다.
4.버스를타고,또 지하철을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시간이 많이 남았다. 병원 로비에 앉아 동생이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병원 정원의 대나무 숲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부는대로 흔들리고 있는 저 대나무의 춤들처럼 나도 흔들리고있었다.
5.동생이 빠른 걸음으로 병원 로비로 들어왔다.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왜 왔냐고 얼굴을 붉혔다. 아무 말없이 동생의 손을 꼭 잡았다.힘들었던 삶을 잘견뎌낸 내 동생의 작은 두 손이 너무 차가웠다.
6.진료 대기실 앞에서 나란히 차례를 기다렸다. 예약은 했으나 진료 받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듯했다.침묵을 깨듯 불쑥 내가 말을 던졌다."50%의 확률이잖아? 긍정의 50%를 믿는다."동생이 힘주어 대답했다."그래, 언니야 나도 긍정의 50%를 믿어."
7.시간의 흐름도 잊을만큼 긴장되고 초조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동생의 이름이 불려졌다.진료실로 들어가던 동생이 나를보고 의연하게 웃었다.돌아서 들어가는 뒷모습이 참 슬퍼보였다.내 눈이 안개에 싸인듯 사방이 희미해졌다.아직은 아프면 안되는 내 동생이다.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덜컥 큰 병에 붙잡히면 어떡하나하는 생각때문에 요 며칠간 내 마음속엔 거대한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던게다.
8.진료실 안의 상황들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숨조차 쉬기가 어려웠다. 순간 순간 온 마음을 모아 긍정의 확률에 화살이 꽂히도록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동생이 진료실 문을 열고 나왔다. 얼굴부터 살폈다.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안도와 감사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탈의실 안으로 따라 들어가 결과를 물었다. 예상대로" 아무 일도 없다". 라는 말을 듣고 옷도 채 갈아 입지 못한 동생을 힘껏 껴안았다. 요번에는 긍정의 확률이 딱 맞아 떨어진 것이다.
9.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50%의 확률에 거미줄처럼 엮여 살아간다. 긍정의 확률에 억지로 마음을 맡겨 잠시나마 웃어도 보고, 부정의 확률에 마음을 걸어 근심을 일으켜 절망에 사로 잡히기도한다.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는 "만약에"라는 가정(假定)을 만들어 놓고 희망과 절망의 다리를 하루에도 수 천번 오고갔던 내 젊은 날의 발자욱들이 오늘 저 멀리서 다가와 나를 쳐다보며 지나간다. 힘들고 괴로웠던 부정의 확률에 잘 참고 견뎌냈다고 위로라도 하듯이.
10.바람이 차갑다.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춤을 추며 떨어진다.제 몫을 다 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저 노란잎들을 보며 그 언젠가 내 앞에 또 부정의 확률이 던져지는 날이 오더라도 말없이 겸허히 받아들여 밑으로 밑으로 낮은 자세로 살아야함을 오늘 다시한번 생각 해본다.내일은, 또 모레에는 어떤 확률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살짝 웃으며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사방에 가을이 가득찼다. 만추(晩秋)다.
2. 볼트를 만드는 남자 /임성림1
1. 공장은 기계소리로 가득하다. 낮고 굵은 소리를 내는 절단기, 높은음을 내는 단조기와 전조기 소리가 들린다. 여러 기계가 섞인 소리는 분명 소음이지만, 내 귀에 조화롭게 들리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들어온 익숙하고도 친숙한 소리다.
2. 사십 년 동안 한결같이 볼트를 만들어 온 남편에겐, 과연 어떤 소리로 들릴지 궁금하다. 십 년 들어온 나에게도 소음이 아닌데, 그에겐 멋진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리지 않을까. 지휘자로 변신한 그는 매의 눈으로 기계를 살피며, 리듬감 넘치는 곡으로 가다듬고, 음의 강약을 조절하며 박자를 절묘하게 맞춰나갈 것이다. 고장 난 기계는 수술로 치료하지만 이유없이 게으름을 부릴 땐, 아이처럼 얼르고 달래, 제 날짜에 물건을 맞추려 갖은 애를 쓰기도 한다. 그에게 기계는 묵묵히 걸어온 삶의 발자취요, 쉼 없는 일상을 독려하는 채찍질이었을 것이다.
3. 사무실 컴퓨터 전원을 켜며 하루를 시작할 부팅에 들어간다. 현장은 이미 기계들이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조직적으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출근해 내가 할 일은, 경리가 하는 업무를 컴퓨터에 잘 입력하면 끝이다. 내 노동력을 끝까지 우려내겠다는 속셈도 있지만, 자신의 건강을 믿지 못하면서, 전반적인 시스템과 입출금 내역을 알고 있으라는 것 같다.
4. 볼트만큼 여러 곳에 두루 쓰이는 물건도 없다. 크게는 선박의 엔진이나 비행기의 기체결합에 쓰이고, 철골이나 콘크리트 구조물, 기계에는 말할 것도 없다. 자동차나 가구, 건축물에도 서로 다른 종류의 볼트가 쓰인다. 하다못해 책장이나 전기스탠드의 밑바닥을 살펴보라. 십자 모양의 볼트가 당장 눈에 들어올 것이다.
5. 많이 쓰이는 만큼 종류와 크기도 다양하다. 먼저 형태는 머리 head가 있고, 없고를 나누며, 사각, 육각, 원형의 모양이 있다. 기계를 결합할 때, 자동차를 조립할 때, 또 산업 설비용으로 쓸 때, 서로 다른 종류와 크기가 사용된다. 재질은 대부분은 철로 만들지만, 스테인리스 주문도 있다. 부식을 방지하고 긴 수명이 요구될 때 쓰이고, 아주 드물지만 티타늄과 합금속으로도 볼트를 만든다.
6. 볼트의 공정을 살펴보면, 우선 재료인 철선이 운반된다. 동선에 맞게 절단기계가 공장 입구 쪽에 자리하고 있다. 크기에 맞게 절단된 것은 단조기계로 이동된다. 이때 머리 부분을 눌러서 형태를 만드는데 이를 성형成形이라 한다. 다음 단계는 전조 rolling기로 가거나 절삭기로 이동한다. 이때 볼트 몸통에 나사산 thread을 만드는 데, 기계로 그대로 눌러버리는 전조 방식과 깎아서 만드는 절삭 방식이 있다. 이 공정은 볼트의 가장 중요한 나사산을 만들어, 이음과 고정을 얼마나 견고하게 하느냐가 정해지는 핵심단계이다.
7. 그 단계를 거치면 열처리에 들어간다. 고온으로 가열해 급랭시킨다. 볼트의 조직을 단단하게 만들어, 변형이나 틀어짐에 견디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표면처리를 하는데, 녹방지나 미관을 위해 코팅이나 도금을 한다. 여성이 바르는 화장품처럼, 피부를 보호하고 외양을 좋게 하는 효과가 있다.
8. 완성된 제품은 검사를 거친다. 규격이 다르거나 흠이 있는 불량품을 찾아낸다. 수출용은 십만 개중 한 개의 불량품이 있어도 당장 전량 반품될 정도로 까다롭다. 합격을 마친 물건은 규격별로 분류되고 포장된다. 제품은 여러 공정을 거치며 태어난다. 흔히 혼을 쏟아부은 예술작품이나 정성 들인 농작물을 자식 같다고 한다. 일개 공산품이라고 다른 취급을 하지 못한다. 긴 과정을 인내한 소중한 자식인 것이다.
9. 처음 볼트는 하나의 철선에 불과하다. 아프게 잘리고 눌려지고 또 깎여진다. 달궈지고 식혀지고, 도금이 되어 비로소 모양을 갖춘다. 세상살이가 단순하지 않는 건 볼트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부모의 손에 키워지며 인성이 다듬어지고, 교육이나 학문에 의해 자의식이나 인생관이 정립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수많은 세상의 압력과 고난의 열 熱을 견디며, 꾸준히 자기 존재를 알리며 정립해 나가지 않는가.
10. 남편도 그랬을 것이다. 아버지를 고교 때 잃고, 늦은 나이에 기계 한 대값을 받아 공장을 시작했다. 코피를 쏟으며 쉴 틈 없이 제조와 영업을 하며 거래처를 쫓아다녔다. 그는 받은 기계값을 갚느라, 생활비를 제 때 주지 못할 때가 많았다. 늦게 이룬 가정과 아이를 보며 또 직원들의 가족을 보며, 막중한 책임감으로 힘이 들었으리라.
11. 이음과 고정은 볼트가 하는 역할이다. 다른 두 개의 구조물을 볼트로 잇고 결합시켜야 한다. 흔들리지 않고 굳건함을 지속하는 게 볼트의 임무라면, 사람과의 연결과 결속도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사항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편에게 말한 적이 있다. 볼트는 두 세계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며 두 손을 맞잡게 하는 화해의 장場이라고.
"이런 중요한 볼트를 오랫동안 만들었다니 대단한데요.“
그도 한마디 내게 던졌다.
"난 볼트를 기술적으로 만들어 장사꾼으로 팔기만 했어. 한 번도 인문학적인 접근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12.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도 볼트 같은 조절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무 세게 조이면 간섭과 집착으로 부담이 가고, 너무 느슨하면 무관심으로 소홀해지는. 적당한 믿음과 거리를 둬야, 관계가 더 잘 유지되는지 모른다. 우리는 사회라는 구조물에 박힌 낱낱의 볼트일지 모른다. 맡은 위치에서 각자의 무게를 떠 받들고 있기에, 세상이 이렇게라도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볼트는 비록 작지만, 세상을 지지하는 커다랁 힘이라고 본다. 또한 산업이라는 세포를 활발하게 하는 원형질같은 존재라 아니겠는가.
13. 아이가 어릴 때, 피아노를 사달라고 떼쓴 적이 있었다. 싫은 내색을 않고 그가 자꾸 미룰 때, 이유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종일 기계 소음에 노출되어 있다가 집에서까지 악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소음이 즐거운 연주로 들리기까지 얼마나 힘들었고, 어떤 고난을 극복했는지 옆에서 지켜보았다.
14. 역경으로 흔들릴 때, 신뢰가 깨어져 느슨해질 때, 마음을 다시 붙잡으려 그는 헐거워진 볼트를 부단히도 조였을 것이다. 다시 고정시키고 숨을 고른 후, 그는 아무 일 없는 듯이 다시 볼트를 만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볼트의 운명처럼, 평생을 스스로 조여가면서 살아왔다.
15. 이제는 좀 헐겁게 능놀면서, 느슨한 게으름도 부려가며 살면 좋겠다. 두 물체를 이어주고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볼트. 그것을 오래 만들다 볼트가 되어버린 남자. 예리하고 단단한 나사산같은 그의 속을, 나는 그동안 잘 감싸준 믿음의 사람이었는지 의문스럽다. 이제부터라도 그를 잘 살피고 협력하는 신뢰의 옆지기로 살아갈 생각이다. 공장은 친숙하고 힘찬 기계소리로 가득하다.
3. 서로를 알기까지 / 이자연
1. “어디에 있니?”
딱! 딱! 딱!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 소리가 산등성이에 울려 퍼진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소나무 마른 가지로 아침밥을 지으시던 아궁이에 지펴지는 불 때는 소리와 닮았다. 마천산 겨울 둘레길을 걷는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돌아보면, 화려한 깃털의 장끼가 황급히 숲 속으로 사라진다. 고라니가 눈이 마주치자 놀라 도망간다. 까마귀들이 무리를 지어 가지 끝에서 놀다가 아래로 내려왔다가 하며 자기 영역을 지킨다. 세월을 이기지 못한 참나무들이 군데군데 쓰러져 있다. 어떤 것은 뿌리째 넘어진 채, 또 사람 손에 잘려 누워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한겨울 군불을 지펴준 고마운 땔감이었을 것이다. 세월의 무게만큼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다.
2. 참나무 군락지를 지나 소나무와 잡목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골짜기를 벗어나자, 산등성이로 향하는 능선길이 나타난다. 여러 갈래 길 중, 우연히 옆길로 눈길이 갔다. 길 끝자락에 고요히 자리를 지키는 커다란 나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뿌리는 핏줄처럼 사방으로 뻗어, 아무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위엄을 풍긴다. 학처럼 고고하게 서 있는 나무는 마치 세상을 굽어보는 듯했다. 구불구불한 뿌리는 사방으로 뻗어 세월을 새긴 자국 같았다.
3. 겨울이라 앙상한 가지와 매끈한 둥치만 남아 무척 쓸쓸해 보였다. 터질 듯 두툼한 나무껍질, 잔가지에 이파리는 없고, 줄기만 있어 나무의 정체를 알 길이 없었다. 겨울이라 잎 하나 없던 그 나무는, 끝내 이름을 알 수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니 팽나무라고 했다. 오래 바라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은 겉모습만 보고 ‘이런 사람이겠지’ 하고 섣부른 판단을 내리곤 한다. 어떤 사람은 처음의 인상이 사계절을 지나도 변치 않는다. 믿음은 팽나무처럼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키는 사람에게서 생긴다.
4. 시집와서 처음 몇 해 동안, 집은 늘 사람의 기척이 가득했다. 시조모를 모시는 세상 물정 모르는 8남매 맏며느리였다. 시집가기 전 친정 부모님은 “시집에 더 잘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따랐더니 친정엄마는 “친정엔 무심하다”며 농담처럼 섭섭함을 토로하셨다.
5. 결혼과 동시에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남편이 살고 있던 집에 들어갔다. 시할머니와 쌍둥이 시동생, 그리고 시누이 한 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밤 12시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다. 남편은 결혼 후 두 달이 지나도 결혼 뒤풀이를 한다면서 12시 5분 전에 들어왔다. 시할머니는 20대 초반에 청상과부가 되신 분이다. 시아버지는 유복자였다. 손자가 결혼해서 살림이 났지만, 시골집으로 가시지 않고 새로 본 손부와 살고 싶다고 하셨다. 대학생인 쌍둥이 시동생들은 친구들을 데리고 와 몰래 담을 넘어 조용히 들어왔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발 숫자를 세어서 밥을 하곤 했다.
6. 첫애를 가졌을 때 밤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귤을 사달라고 해서 먹었다. 그런데 아침에 쓰레기통을 살피던 시할머니가 보셨다. 철없던 시절 주무시는 어른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주말이 되면 외지에 사는 남편 친구들이 선을 보러 온 김에 들렀다. 총각 때 그렇게 살았던 모양이다. 시할머니의 친정 조카들도 봉고차로 단체로 찾아오고 시누이도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 방 4개엔 온통 가족들 친구들이 그득했고 식사 때가 되면 잔치를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와 동갑인 시누이는 부엌일에 능숙해서 많이 도와주었다.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르고 어설프게 왁자지껄한 환경에서 살았다. 그 시절의 나는, 겨울 산등성이에 서 있던 이름 모를 나무처럼 말이 없었다. 나는 그 나무를 닮아갔다.
7. 시간이 흘러 시누이는 시집을 갔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동서들이 시집을 왔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은 어느새 40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던 관계가, 이제는 서로를 닮아가는 사이가 되었다. 8남매 시집 형제들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모두 따뜻한 인성을 지녔다. 나도 점차 동화되었다. 집 안에서는 누구도 다른 가족의 험담을 꺼내지 않았다. 그 일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지켜지고 있었다. 형제들은 어려울 때 서로 힘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았지만, 마음만은 푸근했다. 명품보다 수수한 일상을 소중히 여겼다.
8. 나이가 들고 난 어느 날, 대동맥 판막 협착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숨이 차고 계단 오르기가 버거웠던 것이 그 신호였다. 의사선생님은 서둘러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소식을 들은 시집 식구들은 그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코로나로 면회도 어려운 상황에서, 8남매는 번갈아 가며 안부를 물었다. 어떤 날은 짧게, 어떤 날은 길게, 별다른 말 없이도 전화를 끊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퇴원한 뒤에도 집에 사람의 발걸음이 잦았다. 얼굴을 보고 가는 이도 있었고, 문 앞에 놓고 간 봉투도 있었다. 병원비는 언제 모였는지 모르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 인사를 대신했다.
9. 산에 올랐을 때 처음 마주했던 팽나무는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았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그 자리에 머무는 힘이 느껴졌다. 넓게 뻗은 가지와 단단히 박힌 뿌리는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묵묵히 서 있으면서도 주변을 밀어내지 않고, 그저 제 자리를 내주고 있는 모습이 시집 식구들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0. 맏며느리라는 자리는 늘 중심에 놓여 있었다. 먼저 나서야 할 때도 있었고, 말없이 지나가야 할 순간도 많았다. 그 자리가 언제나 편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른 뒤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전해지던 눈빛과 말없이 건네받던 손길 같은 것들이었다.
사람은 쉽게 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나는 오래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곁에 있으면서도 다 알 수는 없고, 다 알지 못한 채 함께 살아가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것도.
11. 겨울 산에서 보았던 그 나무는 무던한 사람같았다. 잎 하나 없이 서 있었고, 이름조차 쉽게 알 수 없었다. 다만 오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그런 시간 속에서 살아왔다.
4. 엄마의 떴다방/손정희
CHAT GPT 교육을 다녀왔다. SNS를 살피다 요즘 부쩍 많이 올라오는 교육 광고를 보았다. 망설임 끝에 상세 내용을 클릭했다. 본 교육에 앞서 상품 홍보가 진행되는 행사였다. 오래전에 같은 방식으로 홍보가 포함된 김창옥 강사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비록 상품 홍보가 전제된 행사였지만 강의 내용만큼은 훌륭했다. ‘아무리 사람 마음을 홀리는 광고가 앞서더라도 나만 정신 차리면 된다’라는 마음에 참가 신청을 했다.
교육 일이 다가오자 갈등이 생겼다. 과연 상품 홍보에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교육의 질이 기대 수준에 못 미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결국 사정이 생겨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주최 측에 연락했다. 하지만 몇 주 뒤, 자리를 정해 달라는 문자가 다시 왔다. 분명 못 간다고 했고, 그 후 다시 신청한 적도 없는데 거듭 문자를 받으니 묘하게 마음이 동요했다. 교육 책자도 주고, 지금이 아니면 공짜 교육의 기회가 없을 것처럼 재촉하는 광고에 나는 결국 참석을 수락하고 말았다.
교육 당일, 넓은 교육장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다들 나처럼 CHAT GPT에 관심이 있어서 모인 모양이었다. 다양한 연령층에 옷차림들도 말끔했다. 모두가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늘씬한 몸매에 목소리도 카랑카랑한 아나운서가 무대로 나오더니 물었다. “이 강연은 시작 전, 70분간 상품 홍보가 예정되어 있다는 것 모두 알고 계시죠?”
그제야 사전 광고가 유명 상조 상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름 없는 회사의 건강용품 홍보가 아닐까 싶었던 의구심이 한 꺼풀 벗겨졌다. 믿을만한 회사라면 들어보고 유익하다 생각되면 가입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상조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현장 가입자에게만 주는 특전이 쏟아졌다. 가입 기간을 늘려 월 납입액을 줄여주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유명 브랜드인 데다 마침 가입된 상조도 없었다. 크루즈 여행과도 연계된다는 말에 홀린 듯 3계좌를 계약했다. 이미 뒤이을 교육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가입서를 쓰던 그 순간,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모습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엄마의 칠십 대 후반 즈음이었다. 당시에는 동네마다 ‘홍보관’이라 불리는 곳에서, 노인들을 불러 모아 찜질도 시켜주고 노래와 춤으로 흥을 돋우며 놀아 주었다. 매일 출석하면 생필품도 주곤 했다. 시어머님도 친정엄마도 그곳으로 매일 얼굴도장을 찍으러 다니셨다. 시어머님은 형편이 넉넉지 않아 눈치는 보여도 물건은 사지 않고 찜질만 하고 오셨다. 가끔 주변 분을 데리고 가는 날이면 휴지 한 묶음을 받아오며 좋아하셨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나름 모아둔 돈이 조금 있었던 엄마는 매트를 여러 개 사서 본인도 쓰고 나와 동생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그때만 해도 큰 염려는 하지 않았다. 인덕션과 세라믹 주방용품 등 고가의 제품과 건강식품 등 하나둘 늘어나자 가족들의 표정은 굳어졌다. 쓰지도 않을 물건이 방 한쪽에 잔뜩 쌓여있는 것을 보자 화가 치밀었다.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쓰지도 않을 걸 왜 자꾸 사 모으냐고 엄마를 다그쳤다.
엄마는 그 사람들이 얼마나 잘해주는데 고마워서 하나씩 사 주는 거라고 했다. 지하홍보관에 들어서면 “엄마, 엄마”라고 하면서 얼마나 반갑게 맞아주는지, 안아주고 업어주기까지 하는데 너희가 언제 나한테 그래봤느냐고 되물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가 얼마나 외로운지 살피지 못했던 우리는 그만할 말을 잃었다.
얼마 후 오빠의 호출로 간 친정집은 공기가 싸늘했다. 엄마의 홍보관 출입 문제로 다툼이 있었다는 것 외에도, 며칠 전 120만 원이라는 목돈을 내고 상조까지 가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생전 들어본 적 없는 회사였다. 의심스러운 마음에 연락해 보았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즉시 찾아간 홍보관은 이미 철수한 상태였다. 인터넷 어디에도 그런 회사는 없었다. 사기였다. 그동안 사 모은 물건이 천만 원은 훌쩍 넘긴데다 상조 사기까지 당한 엄마에게, 나는 어른이 어떻게 그렇게 사기를 당하느냐고 큰 소리로 다그쳤다. 어린 동생을 나무라듯 소리치는 나를 보며 엄마는 울고 계셨다. 우스꽝스럽고도 비극적인 상황이었다. 지나친 나의 행동을 보다 못한 오빠는 버릇없다며 당장 집으로 가라고 나를 쫓아냈다. 나는 화를 가라앉히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다시 찾은 친정집에서 엄마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계셨다. 사기를 당하고 엄마가 느꼈을 배신감과 상실감은 헤아리지 못한 채, 오직 손해 본 돈만 안타까워하며 다그쳤던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했다. 엄마는 속상함에 눈물만 흘리셨다. 자식보다 낫다며 안아주고 업어주던 그 사람들에게 느낀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집에서는 받아보지 못한 대우를 그들에게 받았기에, 고마운 마음에 물건을 사고 상조도 가입했던 것인데, 그 순수한 마음을 이용해 사기를 치고 도망을 갔을 때, 엄마가 느꼈던 상실감을 살피지 못했다.
이른바 ‘떴다방’이라 불리는 수법이 아직도 여전히 노인들의 외로움과 친절에 대한 갈망을 미끼로 삼아 수천만 원의 물건을 팔고 가족 사이를 갈라놓고 있었다. 교육을 빌미로 상품을 홍보하는 지금의 방식이 그때의 떴다방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를까. 현장 특전을 강조하며 당장 계약하지 않으면 손해라고 부추기는 진행자의 말에 휩쓸려 3계좌나 가입한 나처럼, 엄마 역시 그 순간 가입하지 않으면 큰 손해라고 믿었을 것이다.
당신의 가입으로 그 사람에게 조금의 이익이라도 돌아가기를 바랐을 엄마의 심정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뻔한 속임수에 넘어갔다고 기어코 울음을 터트릴 때까지 마구 다그치던 그때가 후회스럽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났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맡기고도 쥐꼬리만 한 용돈만 쥐여주던 못난 딸, 이제 혼자 있는 날이면 나도 엄마처럼 외로움에 몸을 떤다. 엄마의 당혹스럽던 마음을 이제야 이해하지만,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홀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에서 좌중을 휘어잡는 진행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서둘러 상조 가입신청서를 쓰고 있는 지금에야 나는 자식들의 무관심에 쓸쓸했을 그때의 엄마를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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