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들여다보는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평
프레디 머큐리는 노동자였고 게이였으며 퀸이란 그룹을 만들어 대성공 함.
영화가 시작하면서 나오는 첫 노래는 'Somebody to Love'. 의미심장하다. 게이라는 그의 정체성을 대입해 가사를 보면 더욱 그렇다. 평생 외로웠고 사랑을 찾아 헤맸고, 가정, 종교적 배경 때문에 동성애자임을 인정하는 과정까지의 괴로움이 남달랐을 프레디. 영화는 영리하게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제를 첫 곡을 통해 보여준다. 웸블리 라이브 공연장에 뛰어들며 과거로 점프. 프레디의 'Somebody to Love'라는 기도는 이런 내용쯤 된다.
"사랑이 하고 싶은데, 내겐 아무도 없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난다는 건 서서히 죽어간다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서서 숨쉬는 것조차 힘이 듭니다. 이런 제 꼴을 보고 있자니 아침부터 눈물이 나네요. 주여, 도대체 제게 왜이러시는 겁니까. 평생토록 당신을 믿어왔는데, 아무런 안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주님!
누군가, 누군가 사랑할 사람을 제게 주시면 안되나요.
평생 뼈가 삭도록 고된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왔습니다. 일당을 손에 쥐고 집에 돌아와 무릎을 꿇고 주께 기도드립니다. 제 눈에는 눈물이 흐릅니다. 주여! 제가 사랑할 그 단 한 사람을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매일 같이 애써보지만, 사람들은 저를 무시합니다. 제가 돌았다고,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니냐고 수근댑니다. 남들하고 같은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주여. 제가 사랑할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는 건가요?
아무 감흥도, 리듬도 생기지 않네요. 제 감각을 잃어가고 있어요. 그러나 전 괜찮아요. 전 이 고난을 극복하고 말 겁니다. 이 감옥을 벗어나, 결국 저는 자유를 얻을 거예요. 그 날은 오고야 말 겁니다. 주여 제게 사랑할 단 한사람을 주소서."
과거로 돌아간 첫 장면은 공항. 비행기에서 수하물을 나르는 노동자 파로크 불사라(Farrokh Bulsara프레디 머큐리 본명)에게 감독관이 "야, 파키스탄놈"이라고 호통을 치고, 파로크 불사라는 "난 파키스탄 사람 아닌데."라고 대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후 퀸의 결성과정부터 시작해 디테일한 진행을 보여준다. 사실 영화 자체는 감독이 신랄하게 퀸을 파헤친다기보다는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를 봐가며 모두가 행복해할 만한 스토리로 윤색한 느낌이 좀 났다. 예를 들어 그루피를 엄청 끌고 다녔을텐데, 영화 속의 브라이언 메이는 대학 총장 같은 인자함과 근엄함으로 아무런 일탈을 하지 않고 영화 속을 거닌다. 현실의 대학 총장의 망나니 청년 시절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중간은 가서 보시고.
영화는 중반 이후 다시 웸블리 현장을 보여준다. 20분간 이어지는 라이브. 브라이언 메이(기타)와 로저 테일러(드럼)가 프로듀싱해서 OST앨범을 냈는데. 백미는 웸블리 라이브 음원을 처음으로 공개했다는 것. 배우가 어찌나 입을 잘 맞췄던지, 본인이 불렀다해도 믿을 지경의 연기를 보여줬다. 그 황홀한 20분을 위해 13,000원의 아이맥스 영화표값은 정말 저렴한 것.
공연의 마지막 곡은 'We are the Champion'. 아, 이 얼마나 절묘한 선곡인가. 'Somebody to Love'로 시작해 'We are the Champion'으로 마무리 되는 구조.
"I take my due time after time. 난 계속되는 (이 수많은 고난을) 견뎌냈어요
I've done my sentence, but committed no crime 난 징역을 살았어요, 하지만 지은 죄는 없었죠."
1967년 Sexual Offences Act 1967이 나오기 전까지 영국에서 남성 간 동성애는 불법이었고, 징역감이었다. 스코틀랜드는 1980년, 북아일랜드는 1982년이 되어서야 동성애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사랑하는 대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죄를 짓지 않았으나 징역을 살아야 했던, 혹은 살 수도 있었던 깜깜한 시절에 20대를 보낸 프레디(그는 47년생이다)의 고민을 담은 가사라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And bad mistakes I've made a few 꽤 큰 잘못들을 내가 저지르기도 했죠
I've had my share of sand kicked in my face, but I've come through 사람들은 나를 괴롭혔지만, 난 결국 이겨냈어요
And we mean to go on and on and on and on 우리는 행진해야 하고, 계속 행진할 거예요.
We are the champions, my friends. And we'll keep on fighting till the end 우리는 승리자입니다, 동무여. 우리는 끝까지 함께 싸워갈 거예요.
No time for losers, 'cause we are the champions of the world 패배자를 위한 자리는 없어요, 우리가 이 세상의 승리자이기 때문이죠."
영국이란 땅에 이민자로 넘어와 아시안 소수민족, 노동자, 조로아스터교인, 성소수자로 살았던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이 영화의 첫 곡을 'Somebody to love'로 꼽은 Bryan Singer 감독의 탁월한 선택. 영화 내내 이 노래의 절규가 그대로 녹아나온다.
그리고 Bryan Singer는 마지막 곡으로 'We are the Champion'을 선택했다. 아니, 웸블리 Live Aid의 마지막곡이기도 했으니 어쩌면 예정된 숙명.
그 소수자의 핍박 받던 인생을 살았던 프레디가 다른 소수자들과 함께 We가 되고 결국 Champion이 된다는, 혹은 Champion이 되었다는 자기 선언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가을높은 하늬바람에 반대할 수 없다. 바다로 흐르는 강물에 반대할 수 없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누구라는 사실로 그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를 반대할 수 없다. 혐오와 증오가 넘쳐나는 지금. 소수자라는 이유로, 나와는 다르다는 이유로 남을 대놓고 핍박하곤 "그저 의견이 그렇다는 거야"라고 말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판치는 21세기에 함께 보았으면 하는 영화.
영화의 중간은 생각보다 지루할 수도 있으나. 웸블리의 20분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그 영화. 당신이 퀸을 안다면 보실 것을 적극 권해드린다.
잡담. 배급사는 뭐하나. 보컬과나 뮤지컬과 대학생 한 20명 고용해서 극장을 찍어 "떼창 부르는 상영관"을 하나 만들어라. 영화관이랑 콜라보해서. 그리고 떼창을 유도해보자. 한달 동안은 와서 같이 노래 부르고 울고 웃고할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그래도 퀸인데. 당장 나부터 표 사겠네.
이번에 공개된 1985년 웸블리 라이브 음원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m0LPV_J4zbOJUCpOMz1Yv55rsn7YMs6G
(함께 관람한 종식님, 경순님, 은실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첫댓글 유희팀 이끄시느라 정말 애쓰셨어요.
고맙습니다.
우왕~ 즐거운 시간 되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