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이유식. 내가 아는 이유식
강남에 문화의 씨를 뿌린 산파역
- 초대 강남문인협회 회장 청다(靑多) 이유식(李洧植) 교수님-
최원현/수필가
일생동안 한 사람이 만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머니와 첫 만남을 가진 후 사람은 원하건 원치 않건 참으로 많은 만남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만남의 사람 중 오래도록 기억하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이다. 얼마 전 책에서 ‘사람이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 속 밖에 없는 것’이라는 걸 읽었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좋은 기억으로 다른 사람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사람, 그러나 그런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내가 청다(靑多) 선생을 아주 가까이서 뵙게 된 것은 1995년으로 생각된다. 그 전에는 문단의 모임이나 행사장에서 잠깐씩 뵙긴 했지만 갑자기 매일이다시피 만나야 될 형편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재정자립도 전국 1위라는 강남이란 곳은 모든 것이 넘치는 곳이라고 하지만 문화적인 부분에선 상당히 열악한 곳이란 걸 느끼던 차였다. 그 때에 강남에 문화의 향기를 문학을 통해 심어보자는 뜻에서 몇 몇 문인들이 모여 ‘강남골 시문회’를 만들게 되었다. 시인이 대부분이었지만 수필가로써 그 창립에 참여했던 나는 매월 낭송회에 참여하여 진행도 하고 낭송도 했는데 그곳엔 소설가 유현종, 최병탁, 평론가 이유식, 이명재 교수 등이 함께 했었다.
1부와 2부로 나뉘어진 낭송회의 막간에 청다 선생은 문학촌담이란 이름으로 문단야사를 재미있게 펼쳐 냈었는데 그 뒷풀이 모임에서의 어느 날 이왕이면 보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문학 조직을 갖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들이 모아져 ‘강남문인협회’를 태동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분들이 대부분 살고 있다는 강남, 그래서 선뜻 누군가 나선다는 것이 오히려 쉽지 않았던 곳이요, 문화의 상대적 빈곤을 느끼고 있던 풍요 속 문화 빈곤의 마을에 강남문인협회가 닻을 올렸던 것이다.
1996년 4월 강남구청 회의실에서 평론가 윤병로 교수를 임시의장으로 하여 개최된 창립총회에서 청다 선생이 초대 회장이 되었고 나는 초대 사무국장이 되어 척박한 문화의 땅에 문학을 통한 문화의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와 청다 선생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처음 시작 한다는 게 어찌 쉬운 일이랴. 사무실도 없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회장과 사무국장으로 첫 살림을 시작하였으니 모든 게 힘든 일 뿐이었지만 그런 중에도 내가 가장 놀란 것은 강남문협의 일을 하는 가운데 참 맑고 깨끗하게 삶을 사시는 청다 선생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평생을 가르치는 일로만 사신 분, 그러나 떳떳하고 당당한 삶으로 강단에 선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랴. 그러나 청다 선생은 그 길이 천직임을 믿고 오직 한 길만을 살아오신 분이다.
내가 만난 청다 선생, 그리고 내가 아는 청다 선생은 참 교육자요 누구보다 서민적인 분이며, 맡은 일엔 대단히 책임감이 강한 분이다.
청다(靑多) 선생은 1938년 경남 산청생으로, 진주고등학교와 부산대 영문과. 한양대학원 국문과. 세종대학원 박사로, 문단에는 1961년 현대문학에 평론으로 등단하셨으니 40년이 넘는 문단 경력을 가지신 원로 평론가시다. 월간 세대사 기자. 문협 평론분과회장과 부이사장. 국제펜클럽 이사. 한국문학비평가회 회장. 강남문인협회장을 지내셨으며, 한국소설의 위상(82)., 우리문학의 높이와 넓이(94), 오늘과 내일의 우리문학(96) 등 많은 저서와 여러 권의 수필집, 평론집에 현대문학상(71),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83), 우리문학상 본상(95), 한국예총 예술문화대상(97) 남명문학상(98) 설송문학상(99) 대한민국문학상(2002)을 수상하시는 등 우리 문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신 분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문학인이시다.
특히 평론 뿐 아니라 수필에서도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기셨다. 내가 수필을 쓰기에 관심 깊게 선생의 수필을 대하곤 했는데 그 때마다 선생의 수필에선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기발한 발상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마력이 느껴졌으며, 평론가적 참신한 작품 속 해설력과 탄탄한 작품 구성력에 논리성, 설득성이 뛰어난 작품에 경탄하곤 했었다.
평론가로써 뛰어난 수필이론가였던 선생은 이론과 실제를 겸비하여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넉넉히 충족시켜 주셨다. 특히 나는 선생의 유년기 이야기인 <진달래꽃의 사연>과 <반딧불의 서경>을 좋아하는데 가난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 슬프디 슬픈 그러면서 아리디 아린 낭만으로 가슴속을 파고든다. 뿐 아니라 시골마을의 반딧불 잡기 추억은 잊혀져 간 한 세대를 다시 살려내 주고 있다.
그만큼 선생은 나이를 초원하여 사시는 분으로 문단 모임이 있을 때마다 노래방행을 하시는 선생은 마이크를 잡으면 한바탕 그 특유의 목소리로 좌중을 압도하셨다. 분위기를 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적응을 잘 하신다고 해야 할까.
어느덧 문단데뷔 43주년, 어쩌면 정년퇴임보다도 더 값진 일이요 축하할 일이 아닐까싶다. 한 평생을 이만큼 보람되게 살아오신 분이 얼마나 될 것인가.
지금까지 학교에서 양성해 낸 후학들이 저마다 몫을 다하고 있고, 또 문단에서 수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셨던 청다 이유식 교수님, 교수님의 정년은 이제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여심일 것이다.
보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실 수 있도록 비로소 짐은 내려드리고 날개는 달아드리는 것이니 이제 무한 비상, 무한 비행을 하소서. 그래서 더 크고 높고 넓은 삶의 하늘을 유유히 비행하시며 그간 양성하신 제자들의 삶도 점검하시고, 또 이제부터 하시고자 하시는 일들도 자유롭게 맘껏 펼쳐 내소서. 무엇보다도 강남문화원 창립과 강남문인협회 창립 등 우리 강남에 문화를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워 이만큼 향기 나는 나무로 자라게 하신 그 공은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더욱 강건하셔서 더 많은 보람된 일들 하시고, 후배들을 위한 더욱 큰 나무로 큰 그늘을 드리워 주소서. 존경하는 청다 선생님, 온 마음 가득 아름다운 새 출발이 되실 정년(停年)을 축하드리오며 진심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