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강산
이효철
친구 용석이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고등학교 다닐 때는 거의 만나본 적이 없었으나 양도면 하일장터로 이사온 후 알게 되어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전기도 들어오기 전의 하일장터 마을은 길가 양쪽으로 장터를 끼고 집들이 자리 잡고 있어 보통의 시골 동네에서 느낄 수 있는 아늑한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을씨년스럽고 삭막한 모습을 가졌는데 특히 겨울방학 때에는 그야말로 재미없는 동네였다.
그 몇 해 전 양도면에서 벼르고 별러 새 시골장터를 그 곳에 세웠으나 장이 제대로 서지 않아 몇 가게 외에는 장터 집이 모두 살림집으로 변한 지 오래였고 우리 가족도 그 중의 한 집으로 이사와 살던 때였다. 여름방학 때야 좋아하는 낚시 때문에 심심할 틈이 없었고 대학교 친구들도 강화도 섬에 사는 친구 집이라고 자주 찾아왔으나 긴 겨울방학 동안을 하일장터에서 지내기는 정말로 따분했다.
한 번은 낚시하러 집에 놀러왔던 대학 친구 하나가 하일장터 마을을 보고
"야, 효철아. 이 동네에서 한국판 서부영화 찍으면 아주 그만이다. 이렇게 훌륭한 촬영 장소는 찾으려 해도 못 찾을 거다.
봐라. 신작로 지나는 마을에 마차 설 수 있는 정류장 있지, 결투 벌이기 딱 좋은 넓은 장터도 있고 술집도 있지, 보안관 있는 지서에다 공회당 건물, 우체국, 교회, 이발관......
저 고개 하오고개라 했나, 거기서 보이는 동네 모양도 그럴듯하고. 뒷산도 황량하기가 서부 영화의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야, 안 그러냐?"
라고 해서 그 말도 그럴싸하다고 웃은 적이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황량하다는 진강산의 이미지를 그대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길정리에서 도장리를 지나 조산리 그리고 능내리를 거쳐 하일리까지 길 따라 가면서 보는 진강산은 어려서부터 그때까지 늘 벌거숭이 산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살무니에서 살 때는 그래도 숲이 우거진 쪽에서 진강산을 보아왔는데 겨울에는 인근 마을에서 살무니 쪽으로 많이들 나무하러 오기 때문에 나이 많은 형들이나 또래들과 같이 산에 올라 "나무하지 마라라, 나무하지 마라라." 외치며 동네 산을 돌아보는데 쫓아다니기도 했다. 그래도 늦은 오후에는 여기저기서 몇몇씩 나무꾼들이 나뭇짐을 해서 산을 내려와 자기 동네로 향하는데 남자들은 지게에 지고 여자들은 머리에 이고 종종걸음으로 바삐 사라지곤 했다. 가끔은 동네에서 나무꾼이 해가는 나뭇짐을 뺏고 하는 일도 있었지만 나무할 산이 없는 마을에서는 살무니 쪽으로 어쩔 수 없이 큰 맘 먹고 나무하러 다니던 때였다.
어려서 보아온 살무니 쪽의 진강산은 그래도 숲이 있어 그 모습이 보기 싫지 않았지만 하일 쪽의 벌거숭이 진강산은 어디서 봐도 삭막한 모습이었다.
살무니에서 15년간 동광중학교를 출퇴근하신 아버지는 살무니에서 큰길로 나와 마근대미 고개를 지나 노랑새고개 그리고 하오고개를 넘어 하일까지 걸어서 출퇴근하면서 늘 진강산의 산자락을 지나치셨는데
"진강산은 말이다. 큰 길에서 보면 종개이(존강부락을 고향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지날 때 조금 예쁘다가 다른데서는 예쁘게 보이는 데가 없어."
라는 말씀을 가끔 하셨다.
아버지 말씀 덕분에 세뇌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그래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고향을 떠날 때까지 결코 진강산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거기다가 친구 용석이의 한 마디.
"내가 진강산에 나무숲이 자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작년 재작년 식목하러 많이 다녔지만 진강산은 나무 자랄 곳이 아냐."
친구 용석이의 내뱉는 이야기에는 나름대로 그의 강한 생각이 그대로 실려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고향의 정든 산이고 양도초등학교 교가의 첫머리를 시작하는 진강산이라 산 서쪽도 언젠가는 푸른 모습을 가지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도 가졌었지만 하일 쪽의 진강산에는 나무가 절대로 자랄 수 없다는 친구 용석이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이후로 그것이 진강산의 한계로구나 하는 선입관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그동안 봄마다 엄청 많이 진강산에 식목하러 다녔는데 그 나무 그대로 다 자라면 산에 나무 빽빽해지겠지만 나무가 자라기커녕 그 전에 뿌리도 못 내리고 다 말라 죽었을거야. 이 쪽 진강산은 땅이 말라 내가 보기엔 아닌 거 같아."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 가기 전 마땅히 할 일도 없어 용석이는 봄마다 면에서 주관하는 나무심기에 열심히 쫓아다녔던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자기가 심은 나무들이 잘 자라기를 원했지만 마음에 안 드는 사정들이 많았던 것 같았다.
강화를 떠나 살면서 강화에 관심을 가지는 주위의 사람에게 강화를 소개할 경우가 생기면 마니산을 이야기한 적은 있어도 진강산 이야기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진강산은 가볼만한 절 하나 없는 산이라는 점도 강화도의 다른 산에 비하여 초라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이유의 하나였다.
그런데 나는 고향을 떠나 사는 동안에도 꿈 속에서는 자주 진강산을 넘었다.
배를 타고 인천을 가려고 진강산의 고갯길을 넘는 도중에 산 중턱에 새로 생긴 옛 마을을 보거나 고개 위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는 절경의 정상을 바라보면서 진강산에 이런 곳도 있었나 하다가 다른 꿈 속으로 빠지곤 하는데 분명한 것은 언제나 나 혼자서 진강산을 넘고 있으며 산길 중간에 초면이면서도 낯설지 않은 산 속의 마을을 지나며 그 마을 사람들과 반갑게 어울리기도 하다가 마을 안에서 아는 사람도 만나보다가 하면서도 언덕길을 넘을 때는 거의 다 나 혼자였고 언제나 인천 쪽으로 가는 경우인데 한 번도 언덕 너머까지 가보지 못하고 꿈이 바뀌거나 그치는 것이다.
꿈 깨어 더듬어보면 실제 진강산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대부분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산골길에 만나는 그 마을의 위치와 모습도 꿈꾸는 그때 그때 다르지만 늘 꿈속의 산길은 진강산이었지 그러니까 마니산 같은 다른 산은 꿈 속에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늘 이런 식의 진강산 꿈을 계속 꾸게 될 거다.
해마다 팔월 십오일이 되면 집안이 살무니에 모여 진강산의 선산 묘소 벌초 해오기를 이십년 이상 계속해오는데 살무니의 윤씨 집안도 같은 날 벌초를 하기 때문에 늦여름 하루는 진강산 자락에 종일 예초기의 소리가 넘친다. 오랜만에 집안이나 동네 사람들을 만나는 분주한 날로 벌초 후 산골 냇가에서 목욕하는 순서는 나 홀로 칠팔 년 계속해오는 습관이 됐다.
명절 때나 벌초하는 날 정도에나 찾던 살무니의 선산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모신 후로는 제삿날인 4월 10일에도 온 식구와 함께 진강산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 때가 한창 진달래가 만발하는 시기라 어른 키보다 훨씬 큰 진달래 나무들을 보면서 어렸을 적에는 진달래 나무는 절대 크게 자라지 않는 나무라고 믿던 기억을 떠올려본다. 하기야 그 때는 해마다 진달래 나무도 뿌리만 남기고 모두 베어 땔감으로 쓸 때니까 그런 생각이 당연했다. 지금은 모든 산에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많이 진강산 전체가 예전보다 훨씬 푸근한 느낌을 주며 정상도 예전의 빡빡머리에서 잘 손질된 어른 머리로 달라져 보기가 더 좋아졌다.
아버지 제사날은 일부러 초지대교를 건너 온수리를 거친 후 하일을 지나 살무니로 향하는데 멀리서 보이는 진강산의 서쪽에는 절대 자라지 못하리라 믿었던 나무들도 제법 여기저기 자리 잡아가고 있으며 온통 붉은 진달래 빛이 가득하여 마치 촌티 나던 시골처녀가 서울물 먹고 몰라보게 달라진 것처럼 나름대로의 예뻐진 모습을 보인다.
하기야 초등학교 이학년 때 소풍 가본 적 있는 혈구산 줄기의 퇴모산도 나무가 적어 볼품 없기는 마찬가지였다가 요사이 나무가 자라 산 모습이 살아나는 것처럼 진강산도 건너편 마니산의 유명세를 조금씩 극복하고 있는 것 같아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사람도 늙어 가면 예쁜 여자나 못난 여자나 다 같아진다 했는데 산이야말로 숲이 우거지면 다 예뻐지는 모양이다.
요새는 진강산 등산 코스도 여기저기 소개되고 있고 인터넷에도 진강산을 찾으면 여러 등정기가 사진과 함께 실린 것을 볼 수 있는데 금년 새해 첫날에는 양도초 동문들도 진강산에 올라 그 소식을 카페에 올렸다. 그 날 집안 모임이 강화읍에 있어 그 등산 모임에 가지 못했는데 살무니의 조카는 아침에 진강산에 올라 해돋이를 하고 나서 집안 모임에 참석했다 하면서 수십 명이 그 곳에서 해돋이를 했다고 전했다.
금년도에는 어떻게든 틈을 내서 진강산 정상을 오르겠다고 다짐해보면서 또 다른 다짐도 해본다.
"친구 용석아, 지금 어디 있는지 소식을 알고 싶구나. 집사람도 잘 있고 태권도 국가 대표 했던 아들도 잘 있냐.
그런데 네 손에 장 지질 일이 생겼는데 내가 진강산 꿈꿀 때 산골 동네에서 만나자."
첫댓글 생전에 할머니께서 "너희 아버진 새벽에 진강산 꼭대기에 올라갔다 왔다."란 말씀을 하셨다. 부지런함을 일깨우시는 말씀이겠죠. 기억 한 편에 있는 상상속의 진강산을 효철 회장님 추억의 글로 잘 알게 되었네요. 올 봄엔 진달래 구경하러 진강산을 가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