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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사상
1)기본적인 유교 인ㆍ천(人ㆍ天)사상과 제(祭)
유교 사상은 언제나 하늘과 인간을 두 축으로 삼고 있으며, 이 두 축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가 유교 사상의 핵심을 이해하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유교의 종교적 신념은 도덕적 규범이나 의례의 행위에서도 나타나지만, 그 근원은 하늘과 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에서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교의 핵심 가르침을 인(仁), 도(道), 덕(德), 예(禮), 중용(中庸) 등 여러 가지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유교를 현세 중심적이고 도덕적 사상체계로만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유교 사상의 기반에는 천(川), 상제(上帝), 신(神), 귀신 등의 초월적 존재에 대한 종교적인 신앙과 태극(太極), 이(理), 도(道)의 형이상학적 근원에 대한 현실 합리성이 내포된 사상체계를 복합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유교에서 말하는 '천(天)'이나 '신(神)'의 존재는 초월적 세계에서 고립된 존재가 아니며, 인간을 통하여 언제나 드러내는 존재이고, 인간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다. 즉 천이나 신은 이 세상의 인간과 항시 상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존재이다. 정호의 『이정전서』에는 "진실함은 하늘의 도이고 공경함은 사람도리의 근본이니, 공경하면 곧 진실하게 된다."고 하였다. 즉 인간이 천이나 신과의 만남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진실함의 성(誠)과 공경함의 경(敬)이며, 이것이 제의 기본이다.
정이천(程伊川)은 "천(天)이란 집중하여 말하면 도(道)요, 나누어 말하면 형체로는 천(天)이요 주재로는 제(帝)라 하고 작용으로는 귀신이라고 하며 신묘한 작용으로는 신(神)이라 하고 성정(性情)으로는 건(乾)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명칭들은 높고 유일한 존재인 천의 성격과 기능의 다양한 측면을 말하고 있다. 일체성과 근원성을 손상하지 않는다면 다양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천도(天道)는 천이 운행하는 방법과 원리이면서 인간 행위의 규범이 되는 정당성의 근거이다. 『주역』에는 "하늘의 도(道)를 세워 음(陰)과 양(陽)이라 하고 땅의 도를 세워 유(柔)와 강(剛)이라 하고 사람의 도를 세워 인(仁)과 의(義)라고 한다."고 하였다. 도는 하늘과 땅과 사람에 따라 나타나는 양상이 다르더라도 그 바탕에는 하나로 두루 통하는 근원적 원리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금장태는 "상제께서는 일정하지 않으시고 선을 행하면 온갖 상서로움을 내리시고 선하지 않음을 행하면 재앙을 내리신다."고 하였다. 이것은 필연의 자연법칙이 아니라, 상제(또는 天)는 스스로 인간의 도덕적 가치의 근원이 되고 이에 따라 복과 재앙을 내리는 주재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과 자연현상의 배후에는 일정한 질서와 규칙이 있다. 그것이 천도이다. 자연은 만물을 생성하고 변화를 주재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자연의 일이다. 다음 만물을 관리하여 인간의 삶에 유익하도록 활용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인간이 감당해야 할 역할과 책임은 인도(人道)이다.
유교 사상에서 기(氣)는 중요한 요소이다. 어떤 사람이 죽을 때는 그 사람의 기(氣)는 반드시 흩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흩어짐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 의례는 그 영향과 응답의 리(理)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리(理)는 취산유무(聚散有無)와는 연관이 없고 리(理)가 기(氣)의 근거가 된다. 즉 존재적 측면에서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는 것이 리(理)이다. 리(理)는 우주를 지배하는 모든 법칙과 온 누리에 충만해 있는 생명력과 정신적 원리의 근원이 된다.
위와 같은 근거로 기가 흩어진다면 기의 모양으로 남아 있는 귀신은 존재할 수 없지만, 정신과 생명의 근원인 리(理)는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유교 사상에 맞는 유교식으로 존재가 없는 대상에 제를 지낸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형식 논리에 불과하다. 유교의 제는 조상에 대한 효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
중국의 장재는 기본론(氣本論)에서 "귀신이라는 것은 기(氣)운동 변화의 형태이며, 기가 모여 물체를 이룬 것을 신(神), 기가 분산되어 드러나지 않고 숨어있는 것을 귀(鬼)라고 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양기가 펼쳐진 것을 신(神), 주로 음기가 강한 것을 귀(鬼)라고 보고 있다. 이것은 귀신이 지니고 있는 인격신의 성질을 부정하고, 귀신 영혼의 영원한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즉, 불교의 윤회전생을 비판하고 있다.
맹자는 '입명(立命)'을 주장하여 자기 본분을 강조하였으며, 장자는 '안명(安命)'을 주장하여 편안한 마음을 강조하였다. 그 밖에 '분명설(分命設)'은 일종의 숙명론으로 사람의 운명은 선천적으로 결정되었다는 학설이다. 중국의 철학자들은 인생의 길흉화복, 수명의 길고 짧음, 부귀 귀천 등의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공자는 '지명(知命)'이라 하고, 묵자는 '비명(非命)'이라 하여 인생 운명론을 반대하였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는 유교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이다. 조선 시대 유교식의 제는 활성화되었다. 제5대 국왕인 문종은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성리학은 천지자연의 법칙과 귀신 및 인간의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는 천지자연을 예언하고 귀신을 부르고 쫓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는 인물이다.
문종 원년에 황해도 황주 지역에 전염병이 유행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 당시에는 의료수준이 약하여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국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 노여움을 푸는 방법밖에 없었다. 귀신의 객기를 여기(厲氣)라고 하는데, 문종이 직접 제문을 지어 위로하고 여기를 부리지 않게 하였다. 아래 내용은 조선시대 제사와 귀신에 대한 관념을 잘 보여주고 있는 문종의 제문 사례이다.
자연의 이치에는 순전히 양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음도 있는 것이요, 모든 생물은 영원히 살지 못하고 죽게 마련이다. 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고, 신(神)이 있으면 반드시 귀(鬼)도 있다. 귀신은 진실로 만물에 이르지 않는 데가 없는 것이니 어찌 여기라고 주재함이 없겠는가? 의식이 없음을 음양이라 하고 의식이 있음을 귀신이라고 한다. 의식이 없는 것은 함께 이야기를 해볼 수가 없지만 의식이 있는 귀신에게는 말이 통하니 이치를 가지고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 건데 물과 불은 사람에게 주는 것이지만 때로는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귀신은 사람에게 이로움을 준다고 하지만 가끔은 사람에게 해를 가한다. 그렇다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물과 불이 아니라 사람 자신이며, 사람을 해치는 것도 귀신이 아니라 사람 자신인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날씨가 춥고 덥고 비오는 것과 단맛 쓴맛 신맛 짠맛 매운맛의 다섯 가지 맛은 모두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인데, 사람이 스스로 그 조화를 잃으면 병의 근원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귀신은 덕이 성하여 이치가 천지와 같은 것이다. 예로부터 여기는 실상 귀신이 해독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스스로 만드는 재앙일 것이다. 지금 임금인 나 한 사람이 지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전염병이 널리 퍼져서 해가 지나도 그치지 않으니, 죄 없는 백성이 병에 걸려 얼마나 많이 생명을 잃었는지 헤아릴 수 없다. 이는 임금 한 사람의 실수로 착한 사람 나쁜 사람 할 것 없이 한꺼번에 희생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덕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일국의 백성과 귀신들의 주인이 되어 살펴서 걱정하였는데, 하물며 우리 백성들이 뜻밖에 제명에 죽지 못하는 것을 어찌 차마 볼 수 있으랴! 이에 담당자에게 명하여 지방마다 정결한 곳을 가려 단을 만들게 하고 술과 밥과 국으로써 제사를 지내고 귀신들에게 잘 타일러 깨닫게 하노니, 하늘의 뜻을 잘 받들어 분한 기운을 거두고 끊임없이 만물을 살리는 귀신의 본래 덕성을 펴도록 하라.
상기 제문은 문종의 지혜와 백성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 제문을 통해서, 모든 재앙은 귀신의 의지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비롯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모든 허물을 문종 스스로에게 돌리고 귀신들을 타이르고 있다.
전통사회가 근대로 넘어오면서 유교의 권위는 많이 위축되고 조상숭배의 비중과 의미도 급격한 쇠퇴를 겪고 있다. 조상을 아는 일이 현재의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없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도시에서는 조상을 잊으려 하며 기피하고 있다. 더구나 서양 종교가 물밀듯이 들어와 서구적 가치관이 일반화되면서 유교의 가족 중심 사회구조가 대가족 중심에서 핵가족으로 변하여, 가족의 비중도 매우 축소된 형태로 남아 있다. 이것은 조상숭배 위축과 전통의 파괴가 가속되고 있음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한국사회에서의 전통의 유교는 서양의 종교 문화로부터 충격을 받았으며, 그 대안으로 전통의 폐쇄성을 탈피하고 현대의 새로운 사회질서에 적응하기 위해 현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덕은 오래전에 유교의 현대화 과업의 일환으로 4종류의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종교화, 공맹화(孔孟化), 한국화, 대중화이다. 여기서 종교화를 표방한 것은 유교의 활력을 회복하기 위해 종교적 각성을 제시한 것이며, 그 하나가 관습에 젖은 제 문화를 올바로 인식하고 시행하는 것이다.
2)죽음 및 제와 연관된 유교사상
죽음에 대한 생각과 인식은 그 시대의 변화와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전통 유교 사회에서의 죽음은 혐오스런 것이 아니라 친숙하고 일상적인 것이다. 즉 사회적 현상이며, 공동체적 반응을 조성하고 집합적인 상징들과 의식들로 둘러싸인 사건이라고 본다. 죽음은 한 개인이 사회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 일부를 상실함을 의미한다.
전통 유교 사회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방식은 대립적인 반대 방향이 아니며 생성이나 소멸 그리고 변화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순환론의 세계관 안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재탄생이 끊임없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이승과 저승이 서로 공존하는 틀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안겨준다. 즉 제는 죽음을 생각하는 곳에서 삶을 성찰하게 된다.
유교는 불교에서 하는 천도의 의미를 부정하고 "죽은 자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거나 내세에서의 복을 기원하는 불교 의례 행위는 오히려 죽은 조상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유교의 생사관은 사람의 본원적 욕구인 내세관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유교에서 제를 행하는 것은 영혼의 실재를 믿어서가 아니다. 조상에 대한 효를 행함으로써 살아있는 후손들의 좋은 심성을 생활화하고자 함이다. 또 혼백인 조상을 강림하게 하는 의식이 있다. 이것은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유교에서 영적 존재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실현하고 있다.
옛날부터 중국전통에서 죽은 사람을 추모하기 위한 장례문화가 있었지만, 그들의 사후 영혼관이나 생사관은 하늘을 주관하고 있는 상제나 우리 가까이 있는 조상신에 대한 숭배 사상이다. 불교의 윤회사상과 다르게 고대 중국 유교에서는 인간의 삶은 현세 생 한 번으로 끝난다고 보았다. 즉 그들의 혼백론은, 인간이란 하늘과 땅에 내려 왔다가 죽으면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간다는 1차적인 삶의 순환에 한정되어 있었다. 윤회가 없는 생사관이다. 때문에 혼백의 2차 순환과 연관된 동일성 문제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논어』에서 자로와 공자의 문답 내용이 있다. 자로가 귀신 섬기는 일과 죽음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의 대답은 "사람을 섬기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삶도 모르면서 어떻게 죽음을 알겠느냐." 이와 같은 내용으로 봤을 때 유교의 가르침이 현생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현대에서도 영혼과 귀신의 구분이 불분명하지만, 당시 중국은 귀신의 귀와 신을 백과 기로 설명하고 있다. 본래 인간의 영혼은 기와 백이라는 두 개의 요소로 구성되는데 백과 기는 형백과 혼기를 일컫는 말이다. 즉 '백은 땅으로, 기는 하늘로 올라간다.' 이것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혼백관이다.
중국의 혼백관 사고에서 바라볼 때, 불교 윤회사상은 충격과 혼란을 가져왔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불교의 사생보응(死生報應)설을 접한 왕공대인들은 모두 화들짝 놀래어 얼이 빠지지 않는 자가 없었다" 당시 중국인들의 사고와 사상의 바탕에는 내가 죽어서 다시 태어나고 죽는다는 윤회관념은 생각할 수 없었다. 중국불교 초기부터 본인들 사상과 맞지 않는 윤회에 대한 저항은 극심하였다. 사람의 정신과 육체는 어떤 관계이며, 사람이 죽었을 때 육체와 함께 정신도 소멸 여부에 관한 형이상학적 실체논쟁도 많아졌다.
그 후 경전들이 번역되어 중국에 들어옴으로써 그동안 믿지 않았던 불교 윤회 사상이 유교 사상과 자연스럽게 접목되어 찬ㆍ반 혼란을 겪게 된다. 예를 들면, 『법구경』에서는 "사람의 신체는 죽지만, 정신은 모양이 없다. 죽어도 다시 생(生)한다."고 하였으며, 『육도집경(六度集經)』에서는 "중생의 혼령들이 천인, 사람, 아귀, 짐승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와 같은 내용은 지금까지의 유교 사상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도가는 "도(道)로부터 우주 만물이 생성되고 다시 소멸하여 도로 돌아가듯이, 사람 또한 태어났다가 다시 죽는 것이다."고 하였다. 장자는 생사를 기(氣)의 취산(聚散)으로 규정하여 기의 모임이 생(生)이고 기의 흩어짐이 사(死)이다. 그리고 생과 사는 명(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명은 도로부터 부여받은 운명이다. 유가에서는 인간이 받아들여야 하는 명은 바로 하늘에서 결정하는 천명(天命)인데, 도가는 하늘도 도의 하위 개념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생사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도명(道命)이다. 하여 인간의 생사는 결국 도에 달려 있다.
『주역』에서는 "정기가 물로 변하고 혼도 따라서 변한다. 하여 귀신의 정상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즉 기가 합하면 정기의 물로 되고 흩어지면 유혼으로 변화함을 말하고 있다. 성리학(性理學)을 완성한 주자(朱子)도 인간의 생을 아래와 같이 기(氣)로 보고 있다. "사람이 태어난 것은 기(氣)의 변화이다. 음과 양의 오행이 합쳐질 때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 이것은 붓다가 말한 변화와 같다. 지금도 변화로 많이 생겨난다." 위에서 주자는 생(生)을 기(氣)나 음양오행의 변화나 결합에 의하여 생(生)이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이런 점은 유교에서 혼백(魂魄)을 분리했던 의례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
아래 내용은 성리학 관점의 죽음관이다.
사람은 정과 기의 합의 결과이다. 사람은 많은 양의 기를 갖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없어진다. 없어질 때 혼의 생명력은 하늘로 올라가고 사람은 사(死)한다. 사람이 죽을 때는 따뜻한 기운은 올라가는데 이것을 혼이 올라간다고 한다. 신체의 하 부분은 점차 차가워진다. 이것을 백이 내려간다고 말한다. 생(生)이 있으면 반듯이 사(死)가 있고 시작이 있으니 끝도 있다. 모았다가 다시 흩어지는 것이 기(氣)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죽음으로 인하여 혼(魂)과 백(魄)이 분리되는 것으로 인식하였으나 실체를 가진 존재는 아니다. 기의 관점에서만 보고 있다. 즉 모든 만물의 생성은 기의 취산에 의한 것이며, 소멸 과정을 통하여 다시 기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육체와 정신은 근본이 다르다는 중국의 심신 평행 이원론(二元論)은 육체와 정신은 우연히 자연스럽게 결합한 것이라고 하였다. 즉 "우연히 분리되기도 하고 결합하기도 하여 죽고 사는 변화를 한다. 형질은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고. 가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하는 세력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육체와 정신이 서로 결합한 것이며,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곧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것이다. 육체는 죽어도 정신은 결코 단멸되지 않는다. 이것은 정신과 육체 둘을 상즉하는 하나로 볼 수 없고, 양자는 다만 서로 결합하고 작용을 하고 있다는 형신상합(形神相合)론이다.
혜원은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에서 정신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정신은 만물에 감응하지만 사물이 아니므로 만물이 변하여도 정신은 멸하지 않는다." 정신은 구체적인 형상을 지니고 있지 않아서 구체적인 사물의 모양처럼 형상으로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정신은 신묘한 것이다.
중국에서 혼백이라는 개념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최초로 볼 수 있다. 정(鄭)나라의 자산(子産)이 인간의 영혼을 혼과 백으로 나뉘어 설명하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맨 처음 작용하는 것을 백이라 하며, 이미 백이 생기고 난 후의 양기를 혼이라고 한다" 위에서 보듯이 하늘의 인연 창조 작용으로 현세에 오게 된 인간들은 외형적인 신체인 몸과 백과 혼이라는 정신적인 실체를 가진 두 개 이중의 생성구조로 성립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혼은 하늘의 기운이며 백은 땅의 기운이다. 사람은 하늘과 땅의 두 기운의 조합으로 이루어졌음을 말하고 있다.
그 당시의 중국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소멸하지만, 이 혼백은 사라지지 않고 각각 본래 있던 장소인 하늘과 땅으로 되돌아간다고 믿었던 것이다. 즉 일부 학자들은 인간의 정신은 육체를 떠나도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정신을 혼(魂)이라고 하였다. 즉 사람은 혼백을 갖고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백(魄)은 형체를 따라 소멸되고 혼(魂)은 형체를 떠나 귀(鬼)로 변한다고 생각하였다.
혼이 나간 상태가 죽음이다. 생명을 끝낸 육신은 이승에 남아 있고, 정신적 주체인 혼은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이 숨을 거두면 망자의 윗도리를 들고 지붕 위에 올라가 흔들면서 망자의 이름을 크게 외쳐서 육신으로부터 벗어난 혼을 다시 불러오고자 하였다. 이것을 복(復) 혹은 고복(皐復), 초혼(招魂)이라고 한다. '돌아오다'는 뜻이다. 망자의 혼이 육신으로 돌아와서 소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행하는 의례이다.
위와 같이 그들은 '혼'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죽음을 존재의 소멸로 보지 않고 존재의 이동으로 보고 있다. 즉, 죽음을 이별의 문제로 인식하고 이별을 슬퍼하고, 떠나간 존재에 대한 효를 지속하도록 규범화를 권장하고 있다.
<사후 사찰 기재의 현대적 실천방안 연구/ 정기옥(무여) 한림대학교 대학원 생명교육융합 협동과정 생사학전공 철학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