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윤호
경제선임기자
같은 일을 하면 임금도 같아야 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오랜 염원이다. ‘같음’의 상대는 정규직이다. 일리 있어 보이지 않나. 더 달라는 것도 아니고 정규직과 같게 해달라는 것이니. 보편적 평등의식을 파고든다. 그래서일까.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와 강봉균 의원이 이를 지키겠다고 잇따라 천명했다.
그런데 말처럼 간단치 않다. 이는 100년도 훨씬 더 된 이상이자 구호다. 능력과 실적이 아닌 성·인종·국적 등으로 근로자를 차별하지 말자는 거다. 미국에선 대체로 남녀 임금격차를 해소하자는 취지로 강조돼 왔다. 미국에서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실제 미국 여성의 소득은 남성보다 낮다. 학사 이상의 학위를 지닌 정규직 여성의 연소득 중간값은 약 4만7000달러라 한다. 같은 조건의 남성은 6만6000달러를 번다. 40%나 차이 난다. 또 하버드대를 나온 여성의 연봉이 남자 동창들의 절반밖에 안 된다는 조사도 있다. 그뿐인가. 53세에 성전환을 한 미국의 경제학자 디어드리 매클로스키는 여성이 되고 난 뒤 수입이 줄었다고 했다. 그야말로 100% 동일인이 동일노동을 하는데도 말이다. 아무리 법으로 차별을 금지해도 남녀 간 소득 격차는 현실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학자들은 여러 이유를 든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결혼 후에도 계속 근무할 가능성이 크고, 남자에겐 야근이나 출장을 쉽게 시키지만 여자에겐 그리하기 어렵고….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고 동일노동은 아니다. 몇 분 만에 수십 명분의 면발을 뽑아내는 달인과 한 시간을 꼼지락거려야 하는 신참내기가 동일노동인가. 슈퍼스타K의 허각이 국민가수 조용필과 같은 노래를 부른다고 같은 출연료를 받는가. 박지성이 웨인 루니와 같이 뛴다고 같은 연봉을 받나.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원외 지구당 위원장(비정규직)이 의원(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나.
임금 차이를 정하는 잣대엔 숙련도나 생산성, 조직 기여도만 있는 게 아니다. 여러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소비자의 판단, 계속 근무 가능성, 과거의 경력, 장래의 잠재력, 대체인력의 유무, 사업의 전망, 노동시장의 수급사정…. 이런 차이로 인한 차별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백번 양보해 그런 차이가 없는 분야가 있다고 치자. 아무나 똑같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모두 싼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만일 이런 분야에서도 정규직 임금이 높다면, 그건 기득권 보호 탓이다. 이를 감안하지 않고 무작정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강제한다면 또 다른 왜곡이다.
공짜는 없다. 그 결과 임금은 평균적으로 하락하거나, 비정규직으로라도 일할 수 있었던 근로자의 상당수는 실직할 거다. 또 기업은 그 비용을 소비자에게 떠넘길 거다. 이처럼 왜곡의 피해는 다수에게 흩어져 돌아간다. 반면 이익은 이를 관철시킨 정치인이나 운동단체가 짭짤하게 누린다. 그 한가운데 손 대표와 강 의원이 있다.
물론 비정규직의 권익 보호라는 순수성은 인정한다. 하지만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정말 비정규직의 권익을 보호하려면 정규직의 호응과 협조가 있어야 한다. 정규직 노동시장을 더 유연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가능할까. 정규직 근속자 자녀에게 채용 가산점을 달라는 노조까지 나온 판에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환상이다.
특히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경제장관을 지낸 강 의원이 이를 외치는 건 꼭 기억해 둘 만하다. 혹시 그가 또다시 책임 있는 자리에 갈 경우 그 환상을 어떻게 현실로 바꾸는지 지켜보자.
[기고] 현대차 비정규직에 더 많은 임금을 | |
2010.12.2 | |
현대자동차㈜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제로 심각한 노사갈등을 겪고 있다. 나라가 외환위기 때 구제금융을 받아 연명하던 때 현대차 대표이사·사장으로 일한 필자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현대차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믿는다.
현대차는 사내하도급 비정규직 근로자가 2년을 채우기 전 하도급 업체를 바꾸고, 그 근로자를 바뀐 하도급 업체의 또다른 비정규직 근로자로 고용해왔다. 동일 직장에서 2년 근무 시 정규직으로 간주된다는 조항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대법원이 근무 성격과 장소 등 고용관계의 실질적인 변경이 없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로 고등법원에 파기 환송한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현대차는 고등법원의 판결을 기다려보아야 하며 당해 근로자의 고용관계 당사자는 하도급 업체이기 때문에 노사협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궁색하다. 이미 세계적인 자동차회사인 현대차의 논리로서는 궁색한 형식논리라 하겠다. 그러나 이 문제는 현대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경제 전반에 걸친 매우 심각한 논쟁거리다. 특히 현대차와 같이 경기에 따라 판매량이 크게 변하는 회사는 고용의 유연성을 갖는 것이 회사 존립의 선결요건이라 할 만하다.
불황일 때 미국의 지엠·포드 등 다른 나라 경쟁업체와 같이 일시해고 등 고용의 유연성을 보장하는 수단은 회사가 지속할 수 있는 선결조건이라 할 만하다. 현대차가 비정규직을 선뜻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이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비단 현대차 등 자동차산업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수출 의존도가 유달리 높은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산업과 회사가 부딪쳐 있는 문제라 하겠다. 노동의 유연성 확보는 ‘국가의 과제’이다.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경제의 기본으로, 경제원리로 돌아가자. 일반적으로 고용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 되는 근로조건은 무엇인가? 임금과 고용 보장이다. 고용의 유연성 확보는 고용 보장과 부딪친다(상충된다). 안정된 고용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고용의 유연성 확보, 바꿔 말해 안정된 고용의 포기가 공짜로 되는 것인가?
요즘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현실은 어떤가? 고용 보장이라는 보호막이 없는 비정규직의 임금은 어떤가? 회사, 산업, 나라의 경쟁력 확보, 나아가 지속가능하기 위한 고용의 유연성 확보를 위해 고용 보장이라는 보호막을 벗기는 것도 부족해서, 비정규직의 임금, 연금, 건강보험 등 부가급부(프린지 베니핏, 임금 외에 받는 부가혜택)는 어떠한가?
우리나라 경제는 1997년 아이엠에프 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고용 분야에서는 나아진 것이 보이지 않는다. 비정규직만 양산하는 꼴이다.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고용 불안정에 낮은 임금으로 산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아이를 낳을 것인가.
저출산 고령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우리 사회, 나라의 미래는 암울하다. 열심히 공부한 청년들은 직장을 잡기 어렵고, 잡는다고 할지라도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사회가 된 것이다. 이런 경제에서 어떤 활력이 있을까? 비정규직 문제는 현대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경제 전체에 관한, 우리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다. 이 문제를 현대차 한 회사에 맡겨둬서는 안 된다.
고용노동부가 기업 쪽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듯해서는 안 된다. 아주 단순한 경제원리를 적용해볼 때 해법은 나와 있다. 고용의 안정성을 포기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것이다. 한쪽에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공정사회가 아니다. 바로 이 점에서 정부가 할 일이 있다. 단계적으로 노사관계를 전향적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법제화하는 것, 이에 대한 노사 대타협을 이끌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정부와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다.
이계안 2.1연구소 이사장, 전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patriamea 조국
5. 또한 남 기자는 스웨덴 경제성장의 비결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있다는 점을 공부하길 바란다. http://j.mp/jR
congjee 공지영
동감!!!"@suhcs: 자존심은 스스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이다. 현실에선 본래 뜻과 무척 다르게 쓰인다. "저 친구 자존심이 세니까 건드리면 안돼"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쉽게 상처받지 않는다. 타인의 비판을 기꺼이 듣는다. 스스로를 믿기에 낙관 jsjeong3 정재승 Jaeseung Jeong
카이스트, 오늘의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데, "망각"해가고있는 듯해서 전 우울합니다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