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문화 찾아가기> 3-2
2) <청풍대 바삐 올라>
서문택(徐文澤) <청풍대 바삐 올라>·
청풍대 바삐 올라 사선암을 건너오니
천간 지비하여 몇 천 년을 기다린다
아마도 갈 길이 천리니 다시 볼까 하노라
=> 이런 시조가 있다. 한자어를 한자로 적어 풀이하면 “淸風臺 바삐 지나 四仙巖을 건너오니 天慳地秘(천간지비, 하늘과 땅이 신비)하여 몇 千年을 기다리는가? 아마도 갈 길이 千里니 다시 볼까 하노라”라고 하는 말이다.
사선암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바위이다. 주위가 절경이어서 옛적의 신선 상산사호(商山四皓)가 놀다갔다고 하고, 신라 때 영랑(永郞), 술랑(述郞), 남랑(南郞), 안상(安詳)이 머물렀다고도 한다. “淸風臺”는 확인되지 않으나 그 근처에 있을 듯하다.
둘 다 어디 있는지 몰라도 이름을 보면 맑은 바람이 불고 신선들이 노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바삐 오르고 건너와 바라보는 두 곳의 빼어난 경치는 하늘과 땅의 신비를 간직하고 몇 천 년을 기다리고 있는가 하고 묻는다. 갈 길이 천리여서 이번에는 오래 보고 있지 못하고 다시 와서 볼까 한다.
“아마도”는 다시 와서 보게 되리라고 추측하는 말이면서, 화제를 전환하는 표시이기도 하다. 기다린다는 “천년(千年)”과 갈 길이 “천리(千里)”라는 말이 짝을 이룬다. “아마도”가 대조를 이루는 것들의 경계를 만드는 또 하나의 기능을 수행한다.
3) 구천동
구천동(九千洞)이라는 지명은 구천 명의 생불(生佛)이 나올 정도로 깊고 그윽한 계곡이라 해서 구천둔(九千屯)이라 불리던 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구천명의 스님이 살았다는데서 연유했다는 말도 있다.
구(具)씨와 천(千)씨가 사는 계곡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구씨가 천씨에게 부당하게 핍박을 당해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사 박문수가 지나다가 알고 구씨를 구하고 천씨를 귀양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 구천동은 이름이 별난 명소여서 유래 전설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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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 구천동 계곡
![](https://t1.daumcdn.net/cfile/cafe/272D0733585A44F024)
*구천동 무주리조트
4) 매산바위
설천면 청량리에 매산바위가 있다. 그 유래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에 염소 두 마리가 각각 바위를 지고 이동하고 있었다. 매산바위 두 개는 숫매산바위와 암매산바위였다. 숫매산바위에는 소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암매산바위는 잡풀만 나 있었다.
두 바위는 “저녁에 가자, 낮에 가자하고 옥신각신을 했다. 염소 두 마리는 이런 바위 두 개를 지고 이동을 하다가 너무 무거워 그 자리에서 집어 던지고 가버렸다. 이후부터 이곳에 매산바위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성역으로 여기면서 고기를 구워먹지 못하게 하고, 조용하게 노는 것만 허용한다.
=> 염소가 바위를 지고 이동했다는 것은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렵다. 비슷한 예가 보이지 않아 비교고찰로 타개책을 삼지도 못한다.
5) 백련사 스님과 구렁이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백련사(白蓮寺)가 있었다. 고승들이 도를 닦았던 곳이다. 창건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없다. 구전에서는 신라 때 창건했다고 한다.
해마다 섣달그믐이 되면 절 근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오면 스님들이 사라졌다. 백련사 큰 스님은 올해는 반드시 이 소리의 정체를 밝혀내려고 했다. 삼경이 가까워 올 무렵이었다.여보시오. 누구 좀 이리 와 주시오.드디어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첫해에는 당당하게 들렸던 이 소리가 해가 지날수록 점점 힘을 잃고, 이제는 애원하는 것처럼 바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백련사 승려들은 하나같이 두려워하고,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간 승려는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 소님은 자신이 직접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다른 승려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 간 곳은 앞산에 있는 못봉이었다. 못봉에는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있었다. 구렁이를 본 큰 스님은 뒷걸음질을 쳤다.
"놀라지 마십시오. 절대로 해치지 않습니다."
구렁이는 애원하듯이 말했다.
“저는 본래 제자동 중화사 수좌였으나, 전생에 많은 죄를 지어서 이러한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왜 해마다 무고한 승려들을 끌어다 죽였는가?"
스님은 노기 띤 얼굴로 구렁이를 크게 꾸짖었다. 구렁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구렁이는 자신이 승려들을 해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소리를 듣고 자기를 찾아 온 승려들이 순간적으로 혼절을 해서 숨을 거둔 것이라고 했다. 구렁이는 큰 스님에게 간절한 소원이 있다고 말을 한다. 구렁이의 소원은 자기를 위해서 재를 한 번 지내달라고 했다. 스님은 구렁이를 위해서 백련사로 돌아와 정성껏 재를 지내주었다.
재를 지낸 후 백련사에 큰 불이 났다. 백련사 스님들은 불에 탄 절을 다시 세우기로 하고, 힘을 쏟았다. 그러나 불에 타서 소실된 절을 재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조금씩 들어오는 시줏돈도 턱 없이 부족했다.
큰 스님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명나라의 스님에게 도움을 얻기 위해서 길을 떠났다. 당시 명나라 황실은 공주가 태어나는 경사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태어난 공주는 울지 않았고, 자라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른손을 꼭 쥔 채 손가락을 펴지도 못했다. 그리고 병이 나서 점점 쇠약해지고 있었다. 명나라 황실은 공주를 조용한 절로 보내 요양을 하도록 했다.
이 무렵에 백련사 큰 스님은 돌아다니다가 유서 깊은 절 하나를 찾아서 들어갔다. 큰 스님이 절로 들어가려는데, 병사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명나라 황실의 공주가 요양하는 절로 백련사 큰 스님이 들어가려고 한 것이었다. 잠시 쉬어가겠다는 백련사 큰 스님과 병사들은 옥신각신 하는데, 때마침 시녀들과 함께 산책을 하던 공주와 큰 스님의 눈이 마주쳤다.
마주치는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태어나서 말 한마다 못했던 공주가 갑자기스님! 스님!하고 소리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주는 큰 스님에게 가는데, 움켜쥐고 있던 손바닥이 펴지면서 그 안에서 무엇인가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거기에는 "해동조선국 덕유산 제자동 선승후신(禪僧後身)”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러고는 공주는 병이 나았다.
명나라 황제는 공주의 병이 낫자 크게 기뻐했고, 백련사 큰 스님을 대궐로 모셔 와 대접을 극진하게 했다. 큰 스님은 여기까지 온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황제는 큰 스님의 설명을 듣고, 큰 상금을 내렸다. 백련사 큰 스님은 돌아와서 받은 상금으로 백련사를 재건했다. 못봉의 구렁이가 공주로 환생해서 백련사의 큰 스님에게 받은 은혜를 갚은 것이었다.
=> 승려가 죄를 짓고 구렁이가 되어 사람을 해쳤으나, 가엽게 여겨 재를 지내주니 좋은 일이 생겼다고 흥미로운 사건을 갖추어 이야기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7336646585E0D830F)
*설천면 삼공리 반송
![](https://t1.daumcdn.net/cfile/cafe/25249237585A460729)
* 덕유산 휴양림
![](https://t1.daumcdn.net/cfile/cafe/27159333585A451D37)
* 무주 읍내 시가지
<관련사항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