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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5 일 토요일 월악산
코스 : 동창교-송계삼거리-영봉-송계삼거리-960봉-마애불-덕주사-덕주골
산행거리 : 약
10 km 산행시간 : 약 6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282997
거 리 10.7 km
소요 시간 6h 54m 59s
이동 시간 5h 49m 41s
휴식 시간 1h 5m 18s
평균 속도 1.8 km/h
최 고 점 1,124 m
총 획득고도 872 m
난이도 보통
프로로그
어느 산에 갈까 고민해본다. 동해안과 서해안 지역에 눈이 내렸다 한다. 목요일에 서울에도 드디어 첫눈이 내렸다. 아침나절 잠깐동안 내리는 함박눈이 어른의 마음도 들뜨게 한다. 큰 도로에는 눈이 금방 녹아 없어졌지만 그늘에는 한동안 남아 있다. 눈이 만들어 낸 풍경이 참 멋지다. 비숍을 만나러 힐튼호텔에 가는 길에 남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눈오는 영상을 담아 보았다. 어렸을 때 퍼붓던 그런 눈발이다. 잠깐 차에서 내렸는데도 온 몸이 하얀 눈으로 덮혀 버렸다.
힐튼호텔안에 세워진 크리스마스 장식물
강원도 산에 가면 눈이 많이 쌓여 있을 법도 하다. 태백산에 가고 싶다. 재작년 겨울에 한 번 다녀온 산이다. 소백산에는 작년에 다녀왔다. 덕유산 겨울산행도 몇차례 갔었다. 이들 겨울산행은 1월 쯤에 가야 제맛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월악산에 가기로 했다. 산악회에서 올린 사진을 보면 눈과 상고대 풍광이 아름답다. 저정도 풍경이라면 하룻동안 흠뻑 빠져 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힐튼호텔 앞 첫눈 내린 풍경
산행기
2년전 여름 고등학교 친구들과 월악산 등반을 할 때는 보덕암에서 시작해 하봉 – 중봉을 거쳐 영봉에 올랐었다. 사방으로 조망이 트여 충주호와 월악산을 가까이 그리고 멀리 둘러 싸고 있는 주변 산그리메 풍광이 시원했었다는 기억이 새롭다.
이번 산행은 송계계곡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이 많은 건지 월악산 가는 버스에 빈자리가 많다. 나도 홀가분하게 앉아 가기를 원하면서 버스 맨 뒤자리에서 의자 두개를 차지하고 앉았다. 안내 산악회는 서로 간섭하지도 않고 간섭 받지도 않기에 편안하다.
충주호 물위로 올라오는 안개현상
들머리인 송곡계곡이 가까워 지는데 버스는 충주호를 지난다. 호수위에는 마치 끓는 물에서 김이 올라 오듯이 하얀 스증기가 일어난다. 저렇게 생긴 수증기가 위로 올라가 안개가 되고 구름이 된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보는 것은 구름공장에서 막 구름을 생산하는 장면이다.
길위에는 간밤에 내린 건지 하얀 눈이 얇게 덮여 있다. 차를 타고 올 때는 산행 안내인의 설명에 따라 아이젠을 만지작 거렸으나 막상 길을 오르면서 아이젠 없어도 별 지장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몇몇 사람들은 아이젠을 착용한다.
월악산 들머리
산행 들머리에 조그만 절이 하나 있다. 자광사라는 절인데 마을에 붙어 있어 한옥만 아니라면 그냥 마을집이라고 해도 될 만큼 크지 않은 절이다. 토요일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절에는 아무도 없는 듯 조용하다. 절 마당에서 올려다 본 월악산 암봉은 마치 큰 바위를 반으로 쪼개 놓은 듯 하다.
자광사 대웅전과 월악산
산 아래에서 올려본 월악산의 웅장한 모습
같은 버스에서 내린 산객들은 함께 온 사람들끼리 짝을 지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천천히 올라간다. 어떤 이들은 나처럼 혼자다. 모두 말없이 눈덮인 자갈길을 걷는다.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은 크지 않다. 작은 실개천 같은데 이게 송계계곡인가 ? 내눈에는 하챦게 보이는데 산 초입에 배부른 다리도 있고 길가에는 산신제를 지내는 사당도 세워져 있다. 고려때 원나라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 비바람을 일으켜 적군을 물리치는데 도움을 준 산신령에 제사를 지내왔으며 조선시대를 거쳐 근래까지 그 전통이 이어져 왔다는 설명이다. 산신당 안에 갖가지 동물모형이 있었는데 1978년도 무속신앙 철폐조치로 인해 건물도 헐리고 안에 보관되어 있던 목형도 멸실되었다 한다. 지금 이 건물은 2000년도에 이곳 한수면 주민들이 다시 세운 것이라 한다.
산신각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서 약 1 km 까지 어느 정도 완만한 돌길이 이어지다가 계곡이 끝나는 지점을 지나면서 갑자기 급격하게 오르막이 펼쳐진다.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만든 계단길이다. 이런 급경사길에서 욕심부리며 성급히 오르다가 자기 페이스를 잃어 버리면 낭패를 겪는다. 처음부터 바쁘게 오르던 사람들이 중간에 길가에 앉아 지쳐 있는 모습이 보인다. 모두 땀에 젖어 몸에서 하얀 김이 모락 모락 일어난다. 무척 추울 것을 우려해 두꺼운 파커를 챙겨 입은 이들은 잠시 쉬면서 겉옷을 벗는다. 그래도 이런 안내 산악회를 따라 오는 사람들은 산을 제법 타는 이들이다. 잠시 지쳐 있다가도 금방 원기를 회복하고 묵묵히 걸어 오른다.
가파른 돌계단길을 치고 올라간다
들머리에서 1.6 km 지점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나무데크로 널찍하게 만들어 놓은 전망대에 서면 굵직한 산군(山群)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침 햇볕을 받아 역광으로 산그리메가 비쳐지고 골짜기에는 엷은 산안개가 선녀의 옷자락처럼 흐물거린다. 멀리 지난주에 올랐던 주흘영봉과 주봉이 뿔달린 투구를 쓴 것처럼 웅장하게 비치고 거기서 이어지는 부봉은 그저 느낌만으로 볼 수 있다. 아마도 저 어디쯤 북바위산이나 신선봉도 있을 터이나 아직 가보지 못한 산이기에 서로 이름도 모른 채 인사만 한다. 아름답다. 저렇게 큰 산들이 골짜기마다 산안개를 채워 넣고 등줄기를 굽었다 폈다 넘실대는 모습은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
전망대와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닥에 쌓인 눈도 더 두꺼워진다. 산 아래에서는 얇은 눈을 보고 하챦게 여기던 사람들도 한 둘씩 아이젠을 꺼내 신는다. 여럿이 무리지어 온 산객들은 눈을 던지면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 한다. 가끔씩 큰 소나무가 보이고 크지 않은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나무숲 사이로 영봉과 중봉 하봉이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전망대에서 약 800 m 정도 급경사를 오르고 나면 산길은 능선을 넘어 잠시 평탄한 길로 작은 봉우리를 우회하여 지나간다. 산길은 그렇게 등고선을 타고 송계삼거리까지 편안하게 이어진다.
송계삼거리와 안전 대피소 모습
송계삼거리는 영봉으로 가는 길과 덕주사로 내려가는 길과 우리가 올라 온 송계계곡 동창교로 내려가는 길 이렇게 3개의 길이 만나는 지점이다. 우리의 산행코스는 덕주사로 내려가는 것이므로 이 영봉에 올랐다가 다시 이곳으로 내려 와야 한다. 삼거리에는 혹독한 날씨를 잠시 피할 수 있는 대피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2년전 여름에 왔을 때는 보이지 않던 시설이다. 국립공원측에서 여러가지 안전시설을 설치했나 보다.
송계삼거리에서 바라본 덕주사 방향
영봉으로 진행하면서 올려다 본 월악산 암봉
이곳에서 영봉까지의 길은 전에 한 번 걸었던 길이라서 눈에 익었다. 까마득한 바위 절벽이 월악산 암봉이다. 저 거대한 암봉은 솟은 것인지 깍인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깍인 것이라면 잘려 나간 바위들은 모두 어디에 쌓여 있을까. 솟은 것이라면 무슨 힘으로 저렇게 바위만 곧추 세울 수 있을까. 바위벽에서는 끊임없이 풍화작용이 일어나는 듯 암벽 밑으로 둘러가는 산길이 투명철망으로 덮여 있고 그 산길과 암봉사이에는 또 돌이 굴러내리지 않도록 철조망을 설치해 놓았다. 유추해 보건데 옛날에는 바위가 더 넓게 펼쳐져 있었으나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에 깍여 내려 산아래로 구르면서 쪼개져 돌이 되고 흙이 되었으리라.
암봉 아래 산객의 안전을 도모한 안전철망
까마득한 바위 직벽은 마치 건물을 오르는 계단처럼 지그재그로 설치되어 있다. 이런 계단이 없다면 일반인들은 영봉에 오를 엄두를 못낼 것이다. 중간에서 계단길이 끊기고 일반 흙길로 이어지는데 한 젊은이가 계단길에서 벗어나 중봉쪽을 기웃거린다. 그는 옛날 산행지도를 갖고 와서 그 지도에 표시된 대로 길을 가는 중인데 영봉으로 가는 길이 중봉을 거쳐 가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계단길을 설치하기 전에는 비탈지지만 흙위에 나무가 자라나 있는 산길을 거쳐 중봉으로 가는 길에 뒤돌아서 영봉으로 갔었나 보다.
영봉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나무계단과 잠시 트인 조망처에서 바라본 주흘산 포암산 방면
약 500 미터쯤 되는 이 계단길은 이제까지도 힘든 구간을 지나온 산객을 가히 주눅들게 한다. 어떤 이는 어차피 내려올 길이라며 무거운 배낭을 벗어서 길가에 두고 오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했던가. 고생한 만큼 비례해서 기쁨이 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떤 큰 기쁨을 얻으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요구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계단길 중간 중간 쉼터에서 바라보는 산줄기는 우리의 눈을 통해 그대로 가슴으로 이어져 한껏 부풀어 오른다. “저기 보이는 것이 소백산이야. 거기 통신탑이 보이지 거기가 연화봉이야 “ 친구들끼리 함께 산행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눈에 익은 산을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계단을 오르면서 바라본 소백산 방면
그리고 마침내 월악산 정상 영봉(靈峯 1,097 m)에 도착했다. 동창교를 출발한지 약 3시간 걸렸다. 보덕암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나처럼 동창교나 덕주사 쪽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영봉 주위는 꽤나 복잡하다. 멋들어진 한글체로 쓰여진 정상석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뒷배경에 오롯이 풍경만 나오도록 찍고 싶은데 누구 하나라도 뒤에서 어슬렁 거릴라 치면 여기 저기서 비켜달라고 소리를 높인다. 어떤이는 이에 화를 내면서 왜 자기가 비켜줘야 하느냐고 신경질을 내기도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힘들게 올라온 월악산의 정상에서 사방팔방 시원하게 트인 조망에 입을 쩍 벌리고 눈으로는 즐거운 비명을 연거퍼 질러댄다. 북쪽으로는 충주호와 월악산의 중봉과 하봉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덕주사쪽으로 장쾌하게 이어지는 호랑이 등줄기 같은 능선길이 이어지고 그 너머에는 포암산과 주흘산이 보인다. 동쪽에는 올라오면서 보았던 소백산이 보이고 그 위로 점점이 높은 산들이 이어지는데 내 눈으로는 그것들이 무슨 산인지 구분할 수 없다. 맑은 날엔는 원주 치악산까지 보인다 하니 저 희미한 산봉우리들 중에 하나는 치안산이겠지. 서쪽 아래로는 아침에 출발한 한수면 송계리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이고 그 뒷산이 말뫼봉일터이다. 신선봉이나 북바위산도 저 너머 어디쯤 있을 터인데 여전히 산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눈으로는 그저 아름다운 산자락으로 그칠 수 밖에 없슴이 아쉬울 따름이다..
영봉과 주위경관
바람이 세지도 않고 기온도 그리 낮지 않아 옷만 두툼하게 입으면 추운줄 모르는 날씨라 사람들은 산 정상에서 멋진 풍광을 바라보며 여유있게 사진도 찍고 준비해 온 음식과 과일도 먹는다. 나도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 크게 한 모금 마시고 일어섰다. 복잡한 이곳보다는 좀 내려가다가 한산한 양지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점심을 먹을 요량으로 자리를 떴다. 다시 가파른 나무계단을 내려와 안전휴게소가 있는 송계삼거리를 지나고 하얀 눈이 덮인 헬리포트를 지나 내려가는 길 양지쪽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아침 버스를 타기전 편의점에서 사온 육개장에 뜨거운 물을 부어 국물을 만들고 여기에 밥을 말아서 먹으니 집에서 먹는 밥상만큼이나 그럴 듯 하다. 여기에 사과로 마저 배를 채우고 하산을 서두른다.
영봉 바로 옆에 있는 바위봉우리에서 뒤돌아본 영봉
월악산 암봉은 이렇게 멀찍이 떨어져서 봐야 그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그 웅장한 바위산에 나무 한 그루 없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은 참 신기하다. 아무리 가파른 바위 절벽이라도 솔씨가 앉을 자리만 있으면 뿌리를 비집고 틈을 벌리면서 소나무가 자라는 것이 일반적인 것인데 이 월악산 바위 절벽은 풀한포기 나지 않은 듯 하다. 어쩌면 그런 신비스런 모습에 백두산 정상과 함께 유일하게 영봉(靈峯)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헬기장에서 바라본 영봉의 모습
덕주사 마애석불(마애석불)로 내려가는 길은 또 다시 가파른 나무데크 계단이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왼쪽으로 펼쳐진 덕주산성 아래 넓은 바위들이 마치 쿤 병풍을 펼쳐 놓은 듯 아름다운 풍경을 빚어 놓았다. 바위 사이 사이 경사가 잠깐 숨만 고르고 있어도 그 틈바구니에 파란 소나무가 자란다. 계단길 옆에는 수령이 꽤 많아 보이는 참나무도 많다.
나무 데크 계단을 내려가면서 보이는 풍경
덕주능선
서두르지 않고 시간 여유를 부리면서 오후 3시 30분쯤 마애불(磨崖佛)이 있는 상덕주사에 도착했다. 30미터는 됨직한 높은 바위면에 새긴 보살은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의 딸 덕주옹주가 아버지와 오빠(마의태자)를 그리워하며 새겨놓은 불상이라고 전해진다. 맞는 말인지 아닌지 그 진위를 제쳐두고라도 이 곳 저곳에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는 걸 보면 비록 고려에 나라를 넘겨준 패왕이었더라도 비운의 왕과 그 아들 딸들에 대한 백성들의 애틋한 정이 오랫동안 널리 퍼져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 본다. 고려가 신라를 복속시켰던 당시 상황을 전해주는 이야기는 많지 않은 듯 하다. 서기 660년에 백제를 그리고 669년에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가 고려에 저항해서 전쟁을 했다는 글은 찾아 보기 어렵다. 다만, 마의태자가 금강산에서 군사를 일으키기 위해 준비하려고 경주에서 출발하여 베옷에 은행나무 지팡이를 짚으면서 북으로 가는 노정이 그려져 전설처럼 전해진다. 우선 이 월악산에서도 덕주산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시킨 것으로 전해지며 경기도 용문사를 지날 때 마침내 신라가 고려에 넘어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꺼이 꺼이 울면서 자신이 짚고 가던 은행나무 지팡이를 땅에 꽂아 놓고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 지팡이에서 뿌리가 벋고 싹이 자라 지금의 용문사 은행나무로 자라났다는 것이다. 이런 전설을 음미해 보면 신라 왕조는 그 저변에서 고려에 맞서 싸워볼 의지가 조금은 있었으나 이미 궁예의 태봉국 그리고 견훤의 후백제를 제압하면서 거침없이 번져가는 고려의 힘을 보고 대세가 기울었음을 인정하여 그렇다할 전쟁없이 나라를 넘겨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마애불과 상덕주사 극락보전
상덕주사에서 덕주사로 내려가는 길은 잔돌이 울퉁불퉁하게 박혀 있는 꽤 넓은 길이다. 눈이 살짝 덮여 있어 조심하면서 걸어야 한다. 대부분의 산객들은 다 내려가고 인적이 드문 산길이 호젓하기 그지없다. 하덕주사까지 약 1.5 km 구간은 이렇게 조용한 산길로 이어진다. 덕주사에 이르기 전 폭이 약 3 미터쯤 되어 보이는 돌로 이루어진 성벽이 나타난다. 이런 성벽은 덕주사를 지나 덕주골을 따라 내려가는 곳에 또 하나가 보이는데 이런 형태는 작은 왕궁처럼 외성과 내성의 형식을 갖춘 모습이다. 이런 성벽은 근래 국립공원이든 지자체든 기관에서 새로 복원하여 축성한 것이겠지만 어쩌면 이 곳은 신라가 56대 경순왕을 마지막으로 끝나고 나서도 마의태자를 중심으로 왕조를 지켜보려는 신라인들의 작은 의지의 흔적인 것 같다.
덕주사로 내려가는 산길
성벽 - 덕주산성으로 보인다.
4시 30분 덕주골 상가 지역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했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식당에 들어가서 음식을 먹을 수도 있겠으나 버스출발 예정시간인 5시가 안되었는데도 회원들이 모두 내려와 있는데다 배도 고프지 않아 주변을 좀 둘러보고 승차했다. 산행 뒷풀이 하는 몇몇 회원들이 5시 임박하여 차에 타면서 곧바로 출발하여 오후 7시 30분 신사역에 도착했다. 하루 12시간을 꽉 채운 산행을 마쳤다.
덕주사 앞 관음보살상
덕주산성 성문과 남근석
덕주골 상가지역
이번 산대장님은 산행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할 즈음 산행 전 그리고 산행 후에 몸을 풀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원래 체육 대학을 졸압하고 체육 교사를 지냈다는 산대장님은 산행 후에 몸을 풀어주고 집에 가서 무릎에 약 5분간 찬물찜질을 해주면 무릎통증이 완화될 것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