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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나는 사무실
정파 / 심 종 은
▢ 제1편 : 최 양의 향기
사무실 분위기가 좋아야 제 때 출근하고 싶은 맛이 나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무실
만큼은 아주 적격이라고나 할까? 대장 이하 전 직원이 하나로 똘똘 뭉쳐 분위기 하나는 끝내
주기 때문이다.
최상의 분위기에서 근무하는 만큼, 그래서 다른 동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우리 사무실로
오고 싶어 한다는 소문이 날이 갈수록 파다하여, 공공연한 사실로 되가고 있다는 것이 요즘
풍문으로 나도는 현실 속의 이야기다.
문득 대장이 출입문을 들어서며 한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무실에 웬 향기가 이렇게 가득 넘치지?”
“그거〜요?, 아마 최 양이 새로 전입 와서 그런 것 같아요. 하다 못해 냄새가 풋풋한 것이,
마음까지 싱그러워져요. 너무 환상적이라니까요?”
“아닐 걸? 파견 나갔던 최 양이 들어오면서 사무실 분위기가 확 달라진 걸 꺼야.”
“그게 아니라, 새로 온 최 양 때문이라니까요! 보지도 못했어요? 총각들이 곁에 가지 못해
안달하는 꼴을 말에요.”
“천만의 말씀! 내가 방향제를 몇 개 사다놓은 걸 모르시나 봐! 사무실이 워낙에 비좁은데
다가 너무 낡아서 분위기도 사뭇 바꿀 겸 그랬는데, 고것도 몰라요?”
“어쩐지…, 최 양이 들어오고 나선 무언가 분명 달라졌어!”
“사무실 분위기를 띄울 속셈으로 그래본 건데, 확실히― 좋긴 좋지요?”
“암, 물론이지… 그렇다마다”
“그러면요, 말씀만 넙죽 하지 마시고, 방향제 사들인 값이나 얼른 주세요. ‘쌩 돈’이 2만원
이나 넘게 제 주머니에서 빠져나갔걸랑요.”
“그랬던가? 역시, 우리 최 양은 못 말려. 가만있자, 지금 잔돈이 없네…. 그래서 하는 이야
긴데, 나중에 주기로 하면 어떨까?”
“그렇게 하세요. 그렇지만, 틀림없이 주시는 거예요. 떼어먹기 없기예요.”
“사람을 뭘로 알고 그래! 준다면 주는 거야.”
“분위기 좋게 만들려면, 역시 돈푼 꽤나 든다니까요!”
“그만하면 됐다. 됐어!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다리 타기 하면 어떨까?”
“그거 좋지요!”
“방향제 구입한 덕분에 진짜 분위기 한 번 끝내주는데….”
“맞아요! 하하하… 호호호… 히히히…”
---------------------------------------------------------------------- 1편 끝 -------
▢ 제2편 : 처녀의 향기
업무가 폭주할수록 마음도 분주한 가 보다. 그래서 짜증이 왕창 뻗치는 날이 어찌 한 두 번
뿐이겠는가. 아무리 향기 나는 사무실이라도 분위기가 가끔 침울해지는 것은 역시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도 대장이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창구에 앉아있는 여직원에게 다가
가며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요즈음은 우리 사무실에 향기가 나지 않는 것 같은데, 어찌 된 거야?”
“혹시…, 정화조가 가득 차서 냄새나는 게 아닐까요?”
“화장실이 어디 있는데, 설마 여기까지 침범할까?”
“그게 아니고요, 옆집에서 화장실 청소하느라 그런 것 같아요.”
“방향제를 사다 놓아도 큰 효과는 보지 못하는군!”
“우리 사무실이 하루 빨리 이사를 가야하지 않겠어요?”
“이사는 언제 가게 되나요?”
“김치 국부터 먼저 마시네. 그래도, 최 양이 있으니까 아직까지는 괜찮아!”
“어머나! 대장님은 역시 멋지셔!”
“최 양이 둘씩이나 있으니, 향기도 다발로 폴폴거리네!”
“대장님! 미스만 생각하지 마시고요, 이왕이면 총각들 생각도 좀 해주세요!”
“이사 가게 되면, 저 낡은 총각은 빼놓고 가는 게 어때요?”
“하하하… 호호호… ”
“그런데, 말이죠. 대장님! 방향제 값 2만원은 언제 줄 거죠?”
“나, 지금 무척 바빠. 환경순찰 끝내고 오면, 그 때 가서 얘기하자.”
뒤도 안 돌아보고 문밖으로 줄행랑치는 대장님 모습에 창구 앞에 모여들었던 직원들이
모두 배꼽을 잡으며 웃는다.
“하하하… 호호호… 헤헤헤……”
----------------------------------------------------------------------- 2편 끝 ------
▢ 제3편 : 반대급부
요즈음 대장님이 너무 분주하신 모양이다. 오늘도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시던 맡에 또
한 말씀하신다.
“요즈음은 우리 사무실에 진짜로 향기가 사라졌나 봐!”
“갑자기 또, 무슨 말씀이시죠?”
“얼마 전만 해도 우리 사무실에서는 여직원들이 출근하면 커피 한 잔씩 쭈악- 돌려
주었잖아?“
“그런데, 지금은 왜 안 주는 거냐, 간단하게 이 말씀이시죠?”
“허…, 알긴 잘도 아시네”
“대장님! 저희들이라고 왜 모르겠어요. 다 이유가 있지요.”
“그래〜? 그 이유라는 게 뭔데, 들어보기나 하자.”
“우리가 그렇게 성의를 보여주면, 반대급부라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뭐? 반대급부…?”
“커피를 돌리는 게 문제가 아니죠! 최소한도 재료비 정도는 응당 참작하셔야 되지
않겠어요?“
“하기야, 딴은 그렇기도 하겠군!”
“오고 가는 것이 있어야 따뜻한 동료애가 싹트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 내가 저 번에 만두 한 보따리 사준 적이 있잖아?”
“겨우 고것 한 번요? 너무 하다는 생각 안 드세요?”
“그런가?”
“그리고요, 저번에 방향제 값도 아직 안 받았는데요?”
“나, 지금 무척 바빠! 나갔다 와서 나중에 이야기하자!”
“호호호......., 헤헤헤........., 까르르.............”
------------------------------------------------------------------ 제3편 끝 --------
▢ 제4편 : 발렌타인•데이
대장님이 들어오던 맡에 자기 책상 위에 자그마한 꾸러미가 하나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포장도 예쁘장하다.
“누가 이런 걸 여기다 갖다 놓았지!”
“아〜 그거요? 아까 최 향기씨가 올려놓는 것 같던데요?”
“최 향기? 그게 누구지?“
“향기 최도 모르세요. 대장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미스 최...”
“아하! 향기 오른 최양. 그런데, 이건 뭐지?”
“아마, 오늘이 발렌타인․데이라고 하죠, 아참! 그것도 모르세요?”
“모르긴 내가 왜 몰라! 이런 게 다 일본에서 들여온 상술이란 거야!”
“그래도 갖다 준 사람 성의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요?”
“무슨 성의? 장사꾼 상술에 넘어가는 짓이란 걸 몰라. 더구나 IMF시대에….”
“그래요, 텔레비전에서도 대학생들이 초콜릿 대신 촛불로 대신하자고 캠페인하는 것을
봤어요.
“맞는 말야, 우리는 너무 형식에 지나치고 고가사치품에만 매료되어 있어!”
“양주가 동이 났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지!“
“그래서요, 그럼 그 선물꾸러미는 필요가 없겠네요. 제가 가져갈까요?”
“어허! 안 되지. 사온 사람 정성을 봐서 그럴 순 없는 일이지.”
“그러면, 맛있게 잡수세요!”
“그럼, 최 양을 생각해서 한 번 먹어볼까?”
“그리고요, 나중에 화이트․데이는 꼭 기억해 주셔야 되요.”
“화이트․데이?”
“대장님 것도 모르세요? 2월 14일은 발렌타인․데이라고 해서, 여자가 초콜릿을 남자에게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고,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라고 반대로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
선물하는 날이잖아요.”
“아-, 그런가?”
“또, 있어요. 사월은 블랙․데이라고 짜장면 사주는 날이고, 오월은 로즈․데이…”
“허―참! 갈수록 장관이로구나…!”
“저는 요, 만원짜리걸랑요. 물론, 제가 준 것보다 더 좋은 걸 사주시겠지요?”
대장님 얼굴색이 금방 표시가 나게 달라진다.
“그리고요, 오늘은 백년만에 남자가 여자한테 사주는 날이라고 하던데요?”
“이 놈의 초콜릿, 왜 이렇게 텁텁하지?”
“호호호……, 우헤헤……, 히히히…….”
--------------------------------------------------------------- 4편 끝 -----------
▢ 제5편 : 세계화
대장님이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또 하시는 말씀이,
“요즈음 세상은 진짜 향기다운 향기가 사라졌나 봐.”
“오늘 또 무슨 말씀하시려고요?”
“요즘 아가씨들 보면 말씀이 이만저만이 아냐! 말세현상인가 봐“
“무엇 때문에 그러세요?”
“농사짓는 시골 아낙네를 한번 봐. 흙과 땀으로 아무리 뒤범벅이 되 있어도 순박한 여인의
향기가 가득 풍기는데, 요즘 길거리를 다녀봐야 지나가는 아가씨들은 하는 꼴이 하나같이
외제 화장품을 잔뜩 발라놓고 부엉이눈깔만 하고 다니잖아. 그 꼴이 뭐냔 말야! 도대체,
왜들 그러는 지 정말 모르겠어!”
“세계화, 국제화가 되어가나 보죠, 뭐.”
“외제 화장품 쓴다고 사람도 외제 되나?”
“오히려 부작용이 심한 사람도 많던 데요. 거기다가 머리털까지 노랗게 염색하고 다니는
게 마치 칠면조 모습 같잖아요.“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고 했는데, 갈수록 세상 꼴이 말씀이 아냐!”
“대장님 진정 좀 하세요. 우리 여직원들은 그래 봐도 화장품도 국산이고 화장도 아주
약하게 할뿐더러, 거의 원판 천연색이니 안심하셔도 되요!”
“그런가? 어쩐지 우리 사무실 향기는 너무 은은해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니까!”
“또, 최 양 이야기하시려고 그러는 거죠? 사람 차별하면 안 되요!”
“아무리 그래봤자. 역시 향기 최 양이야!”
“최 향기씨! 대장님한테 방향제 값 받았어?”
“가만있어 봐, 깜빡 잊었네. 빨리 나갔다 와야지.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쏜살같이 달려 나가시는 대장님의 모습이다.
“역시, 대장님은 못 말려!”
“호호호……, 헤헤헤……, 까르르…….”
------------------------------------------------------------------ 5편 끝 -----------
▢ 제6편 : 스마일작전
관공서마다 때 아닌 비상이 걸린 적이 있었다. 왜냐? TV프로에 이경규의 스마일 냉장
고 타기 친절 캠페인이 연일 계속해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짜증내지
않고 친절을 베풀 줄 아는 공무원의 표상을 찾아 모델로 뽑게 되는 행사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원처리도 깔끔해야 하거니와 단정한 용모에 태도마저 상냥하게
품위를 유지하려면 아무래도 늘 신경을 써야 할 입장이었다.
그래도, 가끔씩 찾아오게 되는 못마땅한 민원과의 잦은 마찰로 열 내서 입씨름을
하다 보면, 스마일은커녕 그 날 하루는 옴팡 죽 쓰기 일쑤라 때를 맞춰 제때 우그러진
인상을 필 수나 있을지 그건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평소에 늘 미소를 보이는 사람이 그나마 가장 강력한 수상후보인 셈인데, 상탔다는 사람의
면면을 보면, 평상시 손꼽던 인물과는 전혀 상관없는 의외의 인물에게 낙착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더구나, 어느 날 어느 관청을 기습하게 될는지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불시에
닥쳐들 운명적인 그 날. 만남의 시간에 타이밍을 맞춰 실감나게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인가
여 직원들 마다 자못 신경을 쓰곤 하는 것이었다. 꼭, 냉장고를 타고 싶어 한다기보다는
윗사람에게 찍히지 않기 위해서다.
진정, 어느 때라도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있다면, 그녀는 아마 천사표 내지 선녀표는 되어 있어
야만 할 게다. 그래서, 대장은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나서 뭔가 집히는 바가 있는지 시험삼아
점잖게 창구로 다가갔겠다.
“아니, 민원인이 앞에 서서 한참을 기다리는데도 미소는커녕, 쳐다볼 생각도 안 하시네.
도대체, 왜 그러는 게야? 시집 갈 준비하느라 냉장고는 이미 다 들여놨다 이거지?“
“무슨 말씀이세요? 우린-요 대장님이 앞에 서 계신다는 걸, 벌써 다 알고 있걸랑요. 눈치
하면, 바로 우리 미녀삼총사가 아니겠어요?“
“그래〜? 난 또, 모른 척하기에 혼 좀 낼까 한참 궁리하던 중이었는데….”
“염려 마세요, 대장님! 우리가 그래봐도 눈치만큼은 알아준다고요. 너무 재빨라서요.
‘대한민국 안에서’만큼은 꼽아주는 솜씨걸랑요.“
“그래도 평소에 열심히 웃는 연습을 해두는 게 좋아. 그러다가 갑자기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안 웃다가 갑자기 웃어봐. 부자연스러워져서 볼 상 사나운 꼴 보일지 누가 알아!”
“웃는 것이 우는 것처럼 보인다는 그 말씀이시죠?”
“알긴 잘 아시네!”
“그래서, 누구는 아무 생각 없이, 항상 실실 웃고 다니나 봐요.”
“맞아요. 방향제도 새로 사다놓고 열심히 신경 쓰든 데…요!”
“정말! 어쩐지 최 양이 요즘 웃는 횟수가 너무 많아진 것 같지? 아주 심각한 일인데…”
“저는 어떻고요? 저도 요즘 신경을 좀 쓰는 편인데요?”
“넌, 그래봤자〜야, 모르긴 몰라도 말짱 헛수고일 걸.”
“너무해요, 대장님!”
“글쎄, 난 좋게 말해주고 싶은데, 남들이 인정해줄 것 같지 않아서 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전 도무지 잘 안 되나 봐요. 통째로 짐싸고 나갔는지 재주가 도통
무재주인가 봐요.”
“해서 안 되는 일 없다고 하잖아. 누군 처음부터 잘 했나? 열심히 하다 보면, 다 되는
수가 있는 법이지.“
“가만있어〜 넌!, 쬐그만 게…. 그래도 안 된다면-요? 대장님!”
“그렇다면, 일찌감치 보따리 쌀 준비나 해야지, 뭐”
“요게 말끝마다 물고 늘어지네. 누가 너보고 얘기하랬어!”
“오매? 벌써 열 받아버렸네요. 아까도 그러더니… 이집 구석 냉장고 타기는 이미 다
글렀구먼.”
“또오- 또! 정말 안 되겠네. 손을 보지 않으려 했더니, 쬐그만 게 너무 버릇이 없다니까!”
“누가 더 쬐그만한 데 그래! 키 대볼래? 진짜 누가 할 소린지 모르겠네.”
“아쭈-우…, 어디 진짜 한 번 맛 좀 볼래?”
“야야! 그러다 진짜 싸움박질 하겠다. 진정들하고 모두 참아! 자꾸 그러면, 모두 다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게야. ‘잘 나고 못 나고’가 어디 있어!”
“그리고, 너도 그렇지. 한 살이라도 나이 먹은 사람에게 윗사람 대우를 할 줄 알아야지.
그게 당연한 이치 아니겠어!“
“대장님 죄송해요. 하지만, 언니가 너무 잘난 척 하길래…”
“뭐? 잘난 척! 요것이 정말…”
“그래도, 또! 나이 먹었으면 나이 값을 해야지! 동료 간에 우애가 있어야 직장생활이
편안한 거야, 이러다간 그 좋던 직장 분위기 너희들이 망쳐놓겠다!”
“대장님. 이젠 우리 사무실 안에서마저 향기가 폭삭 삭으러들 조짐인 가 봐요.”
“그렇진 않겠지. 더구나, 여기 예뿐이 최 양이랑 깜찍이, 성실이, 곰살맞이… 모두 다
건재하잖아. 왕비나 공주마마도 있고…, 안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뭐가 또 하지만이야!”
“그게 아니고요. 대장님이 최 양만 무지무지 편애하시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허허허… 또, 그 소리! 착각도 자유라 어디까지나 네 생각대로니까.”
“헤헤… 난, 역시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스타일인가 봐요.”
“야!, 그러다 병 생기겠다.”
“그러게 말이에요. 그거 있잖아요? 질투심만 특출 나게 뛰어난 거”
“이힝〜 모두들 나만 갖고 그래, 엉엉엉……”
“그런 하찮은 일 갖고, 뭘 그래…”
“대장님도 나빠요. 모두들 나만 미워하고… 엉엉엉……”
“하하…! 그것 참 못 말리겠네. 내 한 마디만 얘기하지.”
“무슨 얘긴 데요? 대장님.”
“솔직히 터놓는 이야기지만, 우는 네 모습을 가만히 살펴 보건대, 너는 몽울이 피어나지
못하는 꽃에 비유할 수 있을 게다. 그런 꼴로 어찌 꽃망울이 피겠니! 모르긴 몰라도, 아마
영원히 향기 안 나는 유일한 꽃으로 남겨질까봐 지레 걱정이다.”
“하하하…… 호호호…… 헤헤헤…… 까르르……”
-------------------------------------------------------------------- 6편 끝 ----------
▢ 제7편 : 여인의 향기
“향기가 나지 않는 여자는 여자가 아니겠지?”
“요즘 말씀이 없으시더니, 웬 뚱딴지같은 말씀이시죠?”
“오늘 아침 버스 타고 출근하는데, 웬 향기가 콧속으로 감겨오는 거야”
“그래서요?”
“그래서, 벌써 ‘봄기운’이 지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겠어!”
“눈 오던 날이 바로 엊그젠데, 벌써 봄이 왔을라고요?”
“그래도, 요즈음은 날이 많이 풀렸잖아!”
“하기는 요!”
“너 때문에 잊어 먹었나 보다.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향기가 나서 둘러보았다면서요!”
“그렇지! 그런데, 그 향기는 바로 옆에 있는 아가씨였어!”
“기분 무지 좋았겠네요?”
“엣끼-! 그런 게 아니고, 가만있어! 잠자코 듣기나 하라니까.”
“알겠습니다. 명심하지요!”
“허허…, 그런데, 이상하게 그 아가씨는 화장발이 너무 요란했어!”
“.....”
“자세히 보니, 화장품을 아주 덕지덕지 발라놓은 것 같단 말씀이야!”
“.....”
“아니, 왜 잠자코 있어?”
“가만 있으라면서요?”
“그래도 박자를 맞춰줘야 말하는 사람이 흥이 나지!”
“알았습니다 ─ 이. 그래서요?”
“옛날에는 화장품 냄새만 맡아도 질색이었는데, 기분이 묘해지는 거야!”
“아가씨가 너무 예뻐 보였던 모양이죠?”
“그런 셈이지. 최 양보단 별로 예쁘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또, 최 양을 내세우시네요-잉?”
“그게 아니고, 그 아가씨 이야기라는데, 넌 또 참견할 거냐?”
“알았어요. 최 양 얘기만 빼면 절대 말 안하지요.”
“그래서, 그 아가씨 얼굴을 자꾸 쳐다보게 되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원래 내가 여자 앞에서는 점잖은 사람 아니냐!”
“대장님이 언제부터요?”
“또…또… 대장님 말씀하시는데〜”
“버스에서 내려 걸어오는데, 자꾸 그 아가씨 생각이 난단 말씀이야!”
“큰 일 났네요. 사모님이 무척 걱정되는데요?”
“말하는 내가 잘못이지, 그만 둬!”
“알았습니다. 절대로 입 놀리지 못하게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겠습니다.”
“허허… 나이가 먹었나 봐. 요사이는 여자만 지나가면,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걸
자꾸 느껴지게 되는 거야!”
“이거... 비상사태 깜이네. 당장 사모님한테 전화해드려!”
“그런데, 내 얘긴, 깐죽이 바로 네 말인데, 왜 향기가 나지 않는 거야!”
“하하하… 호호호… 까르르… …”
--------------------------------------------------------------------- 7편 끝 ---------
▢ 제8편 : 봄바람
오늘따라 사무실에 들어서는 대장님 얼굴이 몹시 시무룩해 보인다.
“대장님! 요즈음 영 안색이 안 좋으시네요?”
“그런 것 같지? 왜 그럴까? 도대체, 나도 모르겠단 말씀이야.”
“엘니뇨현상으로 올 봄은 유난히 길다면서요?”
“맞아 예년 같으면, 아직도 찬 기운이 남아있을 텐데, 안 그래?”
“봄빛이 완연한 것이 벌써 몸이 나른해지는 걸요.”
“본시 봄이란 생리적으로 여자들만의 계절이라잖아. 더욱이 최 양은 꽃피는 4월이 오면
곧 결혼할 참이니 어쩌겠어!“
“맞아요! 어쩐지 최 양이 요즘 따라 갈수록 더 예뻐지는 것만 같아요.”
“때는 봄이라 꽃향기 드날리니, 어느 나비라고 가만 놓아두겠어. 이제껏 버텨온 것만
해도 아주 신기한 일이지.”
“이 봄이 가면 우리 사무실에도 향기가 가시겠지?”
“무슨 말씀이세요? 또 다른 최 양도 있잖아요. 그 걸 잊으셨어요?”
“아! 그렇지. 그 걸 몰랐네. 미안 미안…”
“혹시 최 양이 시집간다고 풀 죽어 계신 것은 아니겠지요?”
“엣끼-! 이 사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우리 사무실 노총각들 혈안이 될 소리만 하고
있구먼.“
“요새 안색이 영 신통치 않으신 것 같아서 여쭈워봤어요. 별 일 없으시죠?”
“글쎄다. 봄바람이 하도 싱숭생숭해서……”
“대장님! 방향제 값까지 잊으신 거는 아니시겠지요?”
“고만 해라. 고만 해! 내가 부조금 낼 때 한꺼번에 갖다줄 테니, 염려 붙들어 매.
정말이지 생각할수록 되게 치사하군 치사해!”
대장이 돌아선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최 양이 조그맣게 하는 말.
“ 치사한 건 누가 할 소린데…”
“하하하… 호호호… 헤헤헤… 깔깔깔…”
-------------------------------------------------------------------- 8편 끝 -----------
▢ 제9편 : 거스름돈
출근 시각에 맞추어 최 양이 헐레벌떡 사무실에 들어서자, 턱 밑에 바 대장님이 지켜
서 있었다. 얼굴상이 몹시 찌푸려져 있고, 시무룩해 보이는 게 도대체 말씀이 아닌 것 같다.
“대장님! 안색이 별로 안 좋으시네요. 설마 저 때문만은 아니시겠지요?”
“그건 네 생각이겠지만, 별로 기분이 안 나는 건 사실이다.”
“죄송해요. 하지만 저도 오늘만큼은 기분이 제로지대를 헤매고 있어요.”
“그러니까, 네 기분에 맞게 내가 처신해야 하겠구먼?”
“그런 뜻이 아니고요, 오는 길에 이상한 운전기사를 만났다고요.”
“이상하다니? 그 사람도 황사현상에 병들었나 보지, 왜 그렇겠어?‘
“그런 말씀 마시고요, 한 번 들어봐 주세요.”
“오늘따라 최 양이 말이 많네-그려.”
“변명하는 게 아니고요. 하여튼 들어보기나 하세요!”
“알았다. 타당한 일이라면 물론 내가 봐줘야 되겠지.”
“시간이 늦을 것 같아 택시를 잡아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그러는 거예요.”
“무슨 말이야 도대체?”
“대장님도 워낙 참지 못하는 성격이신가 봐요? 제대로 얘기도 하기 전에?”
“아! 그렇지. 그 걸 몰랐네. 미안, 미안…”
“택시기사 왈, ‘천 원짜리 내면 곱지만, 만 원짜리 주면 미워!’ 하는 거지 뭐예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그러게 말예요. 그래서 기사 아저씨를 쳐다봤죠?”
“그랬더니-?”
“오늘 새벽에 거스름 돈 5만원을 갖고 나왔는데, 손님 4번 모시니까 그게 바닥이 났다는
거지 뭐겠어요!”
“그건 자기 사정이지. 그래서?”
“가만히 생각하니 잔돈이 없지 않겠어요? 성질이 나기도 하고, 미안한 감이 들기도 하고…”
“참 곤란 했겠는 걸…?”
“그런데, 어제 대장님이 방향제 값 주신 거 있잖아요?”
“그랬지…, 그게 어때서?”
“그걸로 어제 만두 사먹고 잔돈이 남아있는 거지 뭐겠어요.”
“옳다! 아주 다행이었군 그래!”
“방향제 값 때맞춰 주셔서 아주 감사해요.”
“뭘, 그런 것 같고….”
“그런데, 오 개월 동안 묵힌 이자는 언제 주실 거죠?”
“뭔 말이야, 우리 사이에 이자라니?”
“저기 있잖아요, 택시기사 말인데-요.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은 잘 보지 못했지만,
하는 행동이나 하는 말씀이 꼭 대장님 같은 거 있죠?“
“야! 오늘 저녁 직원 간담회는 취소다.”
“하하하… 호호호… 헤헤헤… 깔깔깔… 히히히…”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