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도포초등학교 교사 박진우
나이, 사람이나 동·식물 따위가 세상에 나서 살아온 햇수이다. 장유유서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유교의 특성상, 우리나라는 서구권에 비해 나이가 다른 능력에 비해 더 대우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였을까? 어렸을 때의 나는 시간이 빨리 가길 바랬다. 빨리 어른이 되면 어렸을 때 자유롭지 못했던 나의 행동이, 더욱 큰 자유를 갖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이를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더라도 존중받고 대우받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른다. 그리고 어렸을 때는 비록 자유가 제한되긴 했어도 돈에 신경 쓸 것 없이 공부만 하면 되었다. 막상 어른이 되고 나서 보니 생각보다 빨리 먹어가는 나이가 야속하기만 했다.
가끔 아버지의 얼굴에서 늘어가는 주름살과 흰머리를 볼 때면, 그리고 거울을 내가 볼 때면 난 아직은 젊다는 것을 느낀다. 더불어 결혼식이나 장례식, 돌잔치 같은 경조사 때 어떻게 행동해야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까 고민하는 나와 달리 능숙하게 행동하는 부모님을 볼 때면, 젊은 것을 넘어 난 아직 어리다는 것을 느낀다. 더불어, 나와 동갑인데도 일찍 결혼하여 애기를 낳아 기르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난 아직 단지 나이만 먹은 법적인 어른이라는 생각도 든다.
가끔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가볼 때가 있다. 너무나 흔한 얘기지만 어렸을 때는 운동장이 그렇게 크게 보였는데 요즘은 왜 이리 작아보이던지, 이럴 때는 또 내가 나이를 좀 먹은 것 같다. 더불어 대학교 동기와 후배들 및 신입생 학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와 우리 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괜히 나이가 참 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흔히 주변에 보면 나잇갚 못한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특히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이 그런 말을 듣는 것을 보면 괜스레 두려워진다. 나도 나중에 저렇게 나잇갚 못한다고 이런 저런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닐까? 저 분들이 왜 저럴까? 등등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해 보았다. 신체적인 노화도 노화지만, 나이가 들었으니 힘들고 귀찮고 괴로운 건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어련히 알아서 도맡아 해 주겠거니 하는 그릇된 문화가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이 많은 분들이 나이 어린 사람들보다 월급을 더 많이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맡은 업무의 어려움과 그 양도 그럴까? 그것이 정비례 관계가 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인데, 오히려 우리 사회는 나잇값이라는 유교적인 비합리적 관습으로 인해 그것이 반비례 관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청년들에게 좌절감을 주고 결국 저출산으로 이어져서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심하게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내가 미래에 나이를 좀 더 먹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나이를 먹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난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난 나무와 같이 나이를 먹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이테처럼 점점 성장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쑥쑥 자라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웅장하면서도 편안한 존재가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 극찬을 받고 싶기도 하다. 또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먼 미래에 내가 과거의 한 장면을 기억했을 때, 그 장면이 다른 사람에게 공개되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고 떳떳할 수 있는 그런 나이듦. 월급이 부끄럽지 않은 능력과 깊은 마음을 소유하고 싶기도 하다.
현재의 나를 돌아보았다. 학교에서는 충분히 나잇값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집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학교에서 보여주는 책임감과 배려심만큼, 집에서도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도록 앞으로도 노력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