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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산 브랜드
-유산(流産)된 로맨스 중의 일장(一章)
나다니엘 호오돈(Nathaniel Hawtho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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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이 투박하고 육중해 보이는 석회구이장이인 바아트램은 어린 아이가 흩어진 대리석 조각을 가지고 집짓기를 하며 놀고 있는 동안 숯검댕이 묻어 더러운 채로 앉아서 석회 가마를 지키고 있었다. 날이 저물 무렵이었다. 그때 저 아래 산허리로부터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유쾌한 웃음이 아니라 마치 숲속의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처럼 느릿느릿하고 엄숙하기까지 한 그런 웃음이었다.
"아빠, 저게 뭐예요?"
어린애는 놀이를 중단하고 아버지의 두 무릎 사이로 파고들면서 이렇게 물었다.
"아마 주정꾼인 게지." 하고 석회구이장이는 대답했다.
"마을의 주막에서 기분 좋게 술은 취했는데 집 안에서 웃었다간 지붕이 날아갈까 봐 참고 있던
사람인 게지. 그래서 지금 이 그레일락 산기슭으로 나와 배를 쥐고 웃는 것이겠지."
"그렇지만 아빠."
하고 이 둔한 중년의 어릿광대 같은 석회구이장이보다는 눈치가 빠른 소년이 말을 이었다.
"저 사람 웃음 소리가 기쁜 웃음이 아니에요. 그래서 난 겁이 나는 걸요."
"못난 소리 말아." 하고 아버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 사내다운 사람 되기는 글렀다. 네 어미를 너무 많이 닮았단 말야. 나뭇잎이 버석거리기만 해도 깜짝깜짝 놀라는 애니까. 잘 들어봐! 그 흥에 취한 사람이 이리로 오는구나. 아무 해도 끼치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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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를 주고받는 동안 바아트램 부자는 왕년 이산 브랜드가 '용서받지 못할 죄'인가 뭣인가를 찾아 탐구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외롭고 명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던 터전인 바로 그 석회 가마를 지켜보고 앉아 있었다. 우리가 이미 본 바와 마찬가지로 그 '착상'이 싹트기 시작한 그 불길한 밤으로부터 이젠 여러 해가 지났다. 그러나 산허리에 있는 이 석회 가마는 여전했다. 말하자면 그가 그 어두운 생각들을 가마의 노(爐) 속에 넣어 녹여서 그를 사로잡은 집념을 만들어내던 때 이래로 아무 변화도 없었다는 말이다. 그 가마는 약 20피트 높이의 거칠고 둥근 탑같이 생긴
모양으로서 막돌로 육중하게 쌓아 올린 것인데 이 탑 둘레에는 거의 뺑 돌려 흙더미가 치쌓여져 있다. 그래서 대리석 덩어리나 조각들을 수레에 싣고 이 흙더미 위로 끌고 올라가 가마의 꼭대기로부터 부어 넣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 탑 밑부분에는 오븐의 입처럼 입을 벌린 문이 있었으며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고, 여기에는 육중한 쇠문이 장치되어 있었다. 이 문틈으로부터 연기와 불길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이 문이 마치 산 복판으로 들어가는 문같이 보이기도 해서, 마치 '쾌락의 동산'에 사는 목동들이 순례자에게 보여 주던 지옥지대에 이르는 출입문을 닮아 보이기도 했다.
이 지방의 산들은 대체로 대리석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석회 가마가 이 지방엔 많았다. 그들 중 어떤 것들은 여러 해 전에 건립되었다가 방치된 지 오랜 것도 있어서 그런 가마는 천정이 터져 있고 비어 있는 내부의 바닥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돌 틈바귀에도 잡초와 야생의 꽃나무가 피어나 마치 고대의 유물같이 보이며 앞으로 여러 세기를 거치는 동안 이끼로 뒤덮일 여지가 있어 보였다. 아직도 석회구이장이들이 밤과 낮을 이어 계속 불을 지피고 있는 다른 가마들은 통나무나 대리석 무더기에 걸터앉아 이 고독한 사나이와 잡담을 건네기 위해서 이런 곳을 찾는 산중의 방랑객에게는 구경거리를 제공한다. 이것은 외로운 직업이며, 그 주인공이 사색적 경향을 가진 사람인 경우에는 매우 사색적인 직업일 수도 있다. 이미 지난 옛날 이 가마 속에서 불이 타고 있는 동안 그처럼 이상한 뜻을 품은 생각에 골몰했던 이산 브랜드의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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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불을 지키고 있는 사나이는 전혀 성질이 다른 사람이어서 자기 직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일을 제외하고는 아무 사색도 안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주 무거운 쇠문을 덜컹 열어젖히고 휘황한 불길을 외면하면서 커다란 참나무 토막을 던져 넣거나 길다란 장대로 불타는 숯을 쑤셔대었다. 화덕 속에는 굽이쳐 광분하는 불길이 보이거나 이 강렬한 열에 거의 녹아내린 불타는 대리석 덩어리가 보였다. 그리고 밖에는 불길의 반사가 주위의 어두운 숲에 비쳐 아른거렸고, 전경(前景)에는 작은 오두막집과 그 문 곁의 우물, 숯검댕이에 더럽혀졌지만 체격이 좋은 석회구이장이, 그리고 반쯤 겁에 질려 부친의 그늘 뒤에 숨으려는 어린아이의 모습들이 밝고 불그스레한 한 폭의 그림으로 부각되어 보이게 했다. 그러다가 가마의 문이 닫히면 이웃한 산들의 희미한 윤곽을
가려내려고 애쓰는 반달의 부드러운 달빛이 다시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늘 높이에는 아직도 분홍빛의 낙조를 반영하는 구름 조각들이 바람에 쫓기고 있었다. 이 깊은 계곡으로부터 햇볕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되었건만.
산허리를 올라오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사람의 모습이 나무 밑에 무성한 수풀을 헤치고 나타났을 때에 소년은 더욱더 바싹 부친 곁으로 다가섰다.
아들의 겁먹은 행동을 난처하게 생각하면서도 반쯤 그 겁에 전염된 석회구이장이는 "이봐! 누구시오?" 하고 소리쳤다. "남자답게 썩 나서지오. 안 그러면 이 대리석 덩어리로 머리를 까버릴 테니까."
"환영의 인사가 너무 거칠구료." 하고 이 미지의 사나이는 다가오면서 침울한 음성으로 말했다.
"허나 바로 내 옛날 가마 곁이면서도 나는 친절한 대접을 받아야겠다고 주장하지도 않고 또 원하지도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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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확실히 보기 위해서 바아트램은 가마의 화덕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내 거기로부터 무섭게 밝은 불빛이 쏟아져 나와 나그네의 얼굴과 모습을 정면으로 비춰 주었다. 시골에서 만든 투박한 갈색 옷을 입고, 여위고 키가 큰 데다가 단장을 짚고 여행자가 신는 투박한 신을 신은 이 나그네의 모습은 주의 깊지 않은 관찰자의 눈에는 별로 유별날 것도 없어 보였을 것이다. 앞으로 다가오면서 나그네는 그의 시선을- 그의 눈은 유난히도 빛나는 눈이었다- 그 노(爐) 속의 환한 불빛에 고정시켰다. 마치 구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그 속에서 발견하거나 아니면 발견하기를 기대하기나 하는 것처럼.
"안녕하시오. 이렇게 밤 늦게 어디서 오시는 길이오?" 하고 석회구이장이가 물었다.
"탐구 여행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이오. 드디어 끝이 났기 때문에-" 라고 나그네가 대답했다.
"주정꾼이군! 아니면 미친 놈이든가!" 하고 바아트램은 혼자 중얼거렸다.
"이 사람 말썽깨나 일으키겠군. 빨리 보내 버릴 수 있으면 그게 상책이겠어."
어린애는 오들오들 떨면서 너무 불빛이 환하지 않도록 어서 가마의 화덕 문을 닫아 달라고 부친에게 귀엣말로 간청했다. 왜냐하면 나그네의 얼굴에는 이 소년이 보기에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눈을 뗄 수 없는 그 뭔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희끗희끗한 머리칼이 아무렇게나 휘날리는 그 여위고 거칠면서도 생각이 깊어 보이는 얼굴, 무슨 신비스러운 동굴 속의 불처럼 빛나는 움푹 패인 눈을 가진 그 얼굴 속에 담긴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에 이 석회구이장이의 무디고 굼뜬 감각도 어떤 동요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아트램이 화덕 문을 닫았을 때 나그네는 그를 향해서 조용조용 다정하게 말을 건넸으며, 그 어조는 바아트램으로 하여금 결국 이 나그네의 정신이 올바르고 이성적인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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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거의 끝나 가시는구료." 하고 그 나그네가 말을 꺼낸 것이다.
"이 대리석은 벌써 사흘째 구워졌군. 앞으로 몇 시간만 더 있으면 이 돌이 석회로 변하겠는걸."
"아니, 당신은 뉘시오? 나 못지 않게 내 생업에 관해서 알고 계신 것 같으니 말이외다." 하고 석회구이장이가 외쳤다.
"의당 그래야 옳을지도 모르지요." 하고 나그네가 대답했다.
"왜냐하면 나 역시 여러 해 동안 꼭같은 일에 종사했었으니까. 그것도 바로 이 자리에서. 허나
당신은 이 고장엔 새로 온 양반이지. 이산 브랜드란 사람 이름 들어 본 일이 없소?"
"'용서받지 못할 죄'인가 뭣인가를 찾으러 나갔다는 작자 말인가요?" 하고 바아트램은 웃으면서 말했다.
"맞소이다." 하고 나그네가 조용히 말했다.
"자기가 찾던 해답을 구했기 때문에 이제 되돌아온 거요."
"뭐요? 그럼 당신이 바로 이산 브랜드요?" 하고 석회구이장이는 놀라움에 소리쳤다.
"당신 말대로 나는 이 고장엔 처음 온 사람이오. 그런데 여기 사람들이 당신이 이 그레일락 산기슭을 떠난 지 십팔 년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저편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이산 브랜드 얘기들을 가끔 하며, 이 석회 가마를 떠나게 만든 그의 이상한 용무 얘기를 아직도 한답니다. 헌데 '용서받지 못한 죄'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셨단 말이죠?"
"아무렴!" 하고 나그네는 태연하게 말했다.
"물어도 괜찮다면 알고 싶어 그러는 건데, 그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바아트램이 추궁했다.
이산 브랜드는 자기 스스로의 심장을 손가락질했다.
"여기에!" 하고 그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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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그의 얼굴에는 아무 유쾌한 표정도 없이,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도 가까운 곳에 두고서도 온 세상을 찾아다니고, 자기 가슴 속을 빼놓고서는 아무데에도 없는 것을 애꿎게 남의 가슴 속을 엿보고 다녔던 일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던지 그는 경멸의 웃음을 웃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 나그네가 다가옴을 알리던 그 웃음, 그리고 석회구이장이를 거의 질색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느리고 둔탁한 웃음이었다.
적적한 산판을 그 웃음은 더욱 음산하게 만들었다. 웃음이란 격에 맞지 않을 때나, 시간이 맞지 않거나, 착란된 정신상태에서 우러나올 때에는 인간의 음성 중에서 가장 무서운 발성이 될 수도 있다. 잠자는 사람의 웃음, 그것이 어린아이의 웃음일지라도- 미친 사람의 웃음- 또는 배냇병신의 미친 듯이 날카로운 웃음- 이런 웃음 소리는 이따금 우리를 떨게 만들고 이런 웃음 소리는 언제나 잊고 싶게 만드는 법이다. 시인들은 악마나 귀신의 음성 치고 웃음 소리처럼 무섭게도 제격인 것을 상상해내지 못했었다. 그리하여 이 괴상한 사람이 스스로의 가슴을 들여다보며 밤 속으로 울려퍼지며 산중에 희미하게 메아리치는 웃음을 터뜨렸을 때에 이 신경이 둔한 석회구이장이조차도 오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조우야." 하고 그는 어린애에게 말했다.
"얼른 마을에 있는 주막으로 뛰어가서 거기 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산 브랜드가 돌아왔으며 '용서받지 못한 죄'를 찾았댄다고 말해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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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심부름차 달려갔으나 이산 브랜드는 이에 대해서 반대도 하지 않았고 눈치를 챈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만 통나무에 걸터앉아 가마의 쇠문을 꾸준히 주시하고 있었다. 소년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그의 발자국 소리가 먼저 가랑잎을 밟는 소리, 그리고 나중에는 돌이 많은 산길을 밟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자 석회구이장이는 아들을 떠나게 한 것이 후회가 됐다. 그는 소년의 존재가 그와 이 나그네 사이의 장벽 구실을 해주었음을 느꼈다. 이제 그는 하늘마저도 아무런 자비심을 베풀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한 사나이와 일 대 일로 접해야 하는구나, 하고 느꼈다. 분명치 않은 암흑에 싸인 그 죄악이 그에게 암영을 던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석회구이장이 자신의 죄악들이 그의 마음속에서 용솟음쳤다. 그리하여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인간성이 생각해내고 간직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근원적 죄악과의 관계를 주장하며 나서는 사악한 모양의 무리가 되어 그의 기억을 산란케 했다. 그 죄악들은 모두 한집안속이었다. 그들은 그의 가슴과 이산 브랜드의 가슴을 왕래하며 넘나들었다. 그리고 암흑의 인사말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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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바아트램은 이 괴상한 사람에 관해서 전설같이 자라고 쌓인 얘기들이 생각났다. 마치 밤의 그늘이 찾아들 듯이 느닷없이 나타나 그보다는 오래오래 전에 죽어서 묻힌 지 오랜 사람이 오히려 더 권리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만큼 오랜 동안 집을 비웠다가 이제 옛 집으로 되돌아온 그 사람 말이다. 이산 브랜드는 바로 이 가마의 휘황한 불길 속에서 마왕과 대화를 나눴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 전설은 이제까지는 우스갯소리였지만 지금은 무시무시하게 들렸다. 이 전설에 의할 것 같으면 이산 브랜드는 탐구여행을 떠나기 전에 밤마다 '용서받지 못할 죄'에 관해 상의하기 위하여 이 가마의 불속으로부터 악마를 불러냈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과 악마는 회개도 못하고 용서도 못 받을 그런 양상의 죄란 어떤 것일까를 찾아내기 위하여 머리를 쥐어짰다. 그래서 산정에 첫햇빛이 비칠 때가 되면 악마는 철문 속으로 기어들며, 무궁무진한 하늘의 자비심도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인간의 죄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일에 협력하도록 다시 부름을 받을 때까지 하루 종일 강렬한 불길의 힘을 참고 견뎠다는 것이다.
석회구이장이가 이런 생각을 하고 그 무서움과 싸우는 동안 이산 브랜드는 걸터앉았던 통나무로부터 일어서서 가마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 행동은 바아트램이 생각하고 있던 바와 너무나도 공교롭게 일치하였으므로 그는 금시라도 광란하는 불길에 시뻘겋게 단 마왕이 그 속으로부터 꼭 나타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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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잠깐 참으시오!" 하고 그는 억지로 웃으려 애쓰면서 외쳤다.
왜냐하면 그는 공포에 사로잡혔으면서도 그러한 두려움을 수치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제발 빌 테니 악마를 지금 불러내지는 마오."
"여보시오." 하고 이산 브랜드가 엄숙하게 말을 이었다.
"악마가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나는 그를 뒤에 남겨 놓은 지 오래요. 악마란 당신 같은 얼치기 죄인들을 쫓아다니기에 바쁜 법이오. 내가 문을 연다고 두려워 마시오. 나는 오로지 옛 습관으로 문을 연 것이고 내가 예전에 했듯이 석회구이장이답게 불길을 조절하려는 것뿐이오."
그는 이글이글한 불등걸을 쑤시고 나무를 더 던져 넣고 나서 불빛이 무섭게 그의 얼굴을 붉히는데도 불구하고 허리를 굽히고서 공허한 감옥 같은 불길의 복판을 주시했다. 그러는 그를 지켜보고 앉았던 석회구이장이는 이 객의 의도가 악마를 불러내려는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불길 속으로 몸소 뛰어들어 인간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이산 브랜드는 조용히 물러서며 가마의 문을 닫았다.
"저기 저 가마가 숯불로 단 것보다도 일곱 갑절이나 더 뜨겁게 죄에 찬 욕심으로 불타는 인간의 가슴을 수많이 들여다보았소." 하고 그가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속에서 내가 찾던 것을 발견하지 못했소. '용서받지 못할 죄'는 거기에 없었소!"
"'용서받지 못할 죄'가 뭣이오?" 하고 석회구이장이가 물었다. 그리고 이내 그는 이에 대한 대답이 나올까봐 두려워서 더 멀찌감치로 물러앉았다.
"그것은 내 가슴 속에 움터 자라난 죄요." 하고 이산 브랜드는 그와 동류인 광인들 특유의 자부심을 가지고 꼿꼿이 선 채로 대답했다.
"다른 아무 곳에서 자라난 죄도 아니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우애와 유대감과 하나님에 대한 존경심을 능가하고 만사를 그 주장 앞에 희생시킨 이지(理智)라는 죄악이오! 영원한 고통의 보상을 받아 마땅한 유일한 죄요! 처음부터 다시 하래도 나는 기꺼이 이 죄를 다시 범하겠소. 나는 서슴지 않고 이에 대한 응보를 받겠소!"
"이 사람은 머리가 돌았군." 하고 석회구이장이는 혼자 중얼거렸다.
"저 이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죄를 진 사람일 거야- 거의 확실하지. 그러나 저 이는 동시에 미친 사람이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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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이 호젓한 산 중턱에 이산 브랜드와 단 둘이서만 있다는 상황이 매우 거북하게 느껴졌으며 따라서 상당한 수효로 보이는 집단의 웅성대는 말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돌부리를 차며 수풀을 헤치고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는 적이 마음이 놓였다. 이윽고 늘 마을 주막에 도사리고 앉았는 게으름뱅이 떼가 나타났으며 그 중에는 이산 브랜드가 이 고장을 떠난 이래로 겨울이면 언제나 주막의 난로가에서 만취하도록 훌립 주를 마시며 여름철에는 언제나 층계 밑에서 골통대 피우기로 소일하는 사람들도 서너 명 끼어 있었다. 이제 껄껄대고 웃으면서 시시한 얘기를 왁자지껄하면서 달빛과 몇 가닥의 불빛을 받으며 석회 가마 앞의 공터에 그들이 나타난 것이다. 바아트램은 다시 가마의 화덕 문을 열어젖혀 쏟아져 나오는 화염의 불빛이 비쳐 모든 사람들이 이산 브랜드를 더 잘 볼 수 있게 하고 그도 그네들을 더 잘 볼 수 있게 했다.
안면이 있는 옛 지기들 중에 이제는 다 죽어가는 늙은이지만 왕년에는 이 지방의 어느 부촌(富村)의 호텔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던 감초 같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역마차 매표원이었다. 이 사람의 지금의 행색은 삐쩍 마르고 얼굴은 주름투성이이고 코끝이 빨갛고, 옷자락이 짧고 날씬하게 재단한 갈색 옷을 입고 있는데, 요새도 주막 한 구석에 책상을 차려 놓고 그 자리를 지켰으며 20년 전에 불을 붙인 바로 그것 같은 여송연을 아직도 빨아대는 사람이었다. 그는 씁쓰름한 농담을 잘 하는 사람으로 이름이 나 있었지만 그것은 그의 말 자체에 어떤 해학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의 몸은 물론이고 그의 생각이나 표정에까지 배어 있는 독한 술, 담배의 향기 덕분이었다. 또 하나 낯익으면서도 많이 변한 사람은 사람들이 아직도 예의상 변호사 자일스라고 불러 주는 사람이었다. 소매를 걷어붙인 더러운 셔츠를 입고 마대 양복바지를 입은 늙은 부랑자가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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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쌍한 사람은 변호사였는데 소시 적에는 매우 날카로운 법률가로 마을의 소송자들 사이에서 퍽이나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훌립 주, 슬링 주, 타디 주, 칵테일 따위를 아침, 낮, 밤 가리지 않고 무시로 마시게 되면서부터 두뇌를 쓰는 일로부터 각종의 육체 노동을 하는 일로 전락했으며 급기야는 자기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비누통 속으로 전락한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자일스는 지금 영세한 비누 제조업자인 것이다. 한쪽 발이 도끼에 잘려 나가고 한쪽 손 전부가 무서운 증기기관에 찍혀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그는 육신이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단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육신의 손은 없어졌지만 정신적인 손은 여전히 건재하다. 왜냐하면 손이 없는 팔의 그루터기를 내뻗으면서 자일스는 진짜 손이 절단되기 이전에 못지 않게 생생한 감각을 가진 손가락들을 느낄 수 있다고 늘상 공언하기 때문이다. 불구가 된 비참한 사람이었으나 그래도 현재나 과거를 막론하고 그의 불행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소홀히 대하거나 경멸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도 남자다운 용기와 투지를 잃지 않았고, 남의 동정을 구하지도 않고, 남은 한쪽 손으로- 그것도 왼쪽 손인데- 궁핍이나 불리한 환경과 싸우는 엄숙한 투쟁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이 무리 속에는 자일스 변호사와 비슷한 점이 많으면서도 다른 점도 많은 또 하나의 인물이 섞여 있었다. 그는 이 마을의 의사였다. 그는 나이가 50여 세가 되는 사람인데 예전에 이산 브랜드가 실성했다고 말이 났을 시절에 왕진을 와준 의사로서 이미 소개된 바 있는 사람이다. 그의 얼굴은 이제 푸르둥둥하고, 무례하고 난폭하면서도 신사다운 구석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의 언동 구석구석에는 뭣인가 난폭하고 파멸되고 필사적인 것이 풍기는 사람이었다. 브랜디 술이 무슨 악령같이 사로잡아 이 사람을 야수같이 퉁명스럽고 야만스럽게 만들었고, 망령같이 불행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뛰어난 재주가 있고, 의학이 가르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넘는 생득의 치유술이 있었기 때문에 사회는 그를 붙잡고 늘어져 타락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 사람은 말등에 타고 끄덕거리고 병상 곁에서 꼬부라진 혀로 지껄이면서 수마일 사방 산중의 촌락들로 환자 있는 집을 순방했고, 이따금 기적처럼 죽어가던 사람을 살려 놓기도 하고 때로는 애매하게도 제 명보다도 수년씩 앞당겨 환자들을 무덤 속에 묻어 버리기도 했다. 의사는 언제나 입에 골통대를 물고 있었고, 또 누군가가 그의 험구와 욕설의 버릇에 대해서 말했듯이 그것은 언제나 지옥의 업화로 불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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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분의 저명인사들이 다투어 앞으로 나서서 각기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산 브랜드에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그에게 어떤 검은 병의 내용물을 함께 마시자고 권하면서 그 속에는 '용서받지 못할 죄'보다도 더 탐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 있다고 주장했다. 강렬하고 고독한 명상에 의하여 열띤 상태로 고양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현재 이산 브랜드가 직면하는 바와 같은 저열하고 천한 생각이나 느낌과 접하는 것을 참아내지 못하는 법이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과연 자기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찾아냈으며 그것도 자신 속에서 찾았던가를 회의케 했다- 기이하게도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회의였다. 그가 온 생애를, 아니 생애 이상의 것을 탕진한 그 문제 전체가 하나의 환상같이만 보이는 것이었다.
"가시오." 하고 그는 원망스럽게 말했다.
"짐승 같은 사람들, 술로 영혼을 망쳐 스스로를 짐승으로 만든 사람들! 난 당신네들관 상관 없소. 여러 해 전에 난 당신들 가슴 속에 파고들어 내가 뜻하는 것을 찾지 못했어. 썩 물러가시오!"
"아니, 버릇없는 사기꾼 같으니라구." 하고 사납게 의사가 말했다.
"그게 가장 다정한 친구들에게 대꾸하는 태도야? 그렇다면 내가 진실을 말해 주지. 넌 저기 있는 조우 소년이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용서받지 못할 죄'가 뭣인지를 알아내지 못했어. 자넨 단순히 미친 사람이야- 내가 이십 년 전에 그렇다고 말했지- 자넨 미친 사람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고, 여기 있는 이 늙은 험프리와 짝이 맞는 사람이란 말야."
그는 초라한 옷차림에 긴 백발을 하고 여읜 얼굴에 시선이 안정되어 있지 않은 노인 한 명을
손가락질했다. 지난 수년 동안 이 노인은 산중을 방황하고 다니면서 여행자를 만날 때마다 자기 딸의 소식을 물었다. 딸은 서커스단과 함께 떠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따금 그녀에 관한 소식이 이 마을까지 들려와 그녀가 링 속에서 말등에 타거나 공중에서 줄을 타는 묘기를 보여 줄 때의 황홀한 모습에 관한 얘기들이 오갔다.
백발의 이 노부가 이산 브랜드에게로 다가서면서 자신없는 시선으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모두들 당신이 온 세계를 돌아다녔다고들 하는데." 하고 그는 열심히 두 손을 쥐어짜면서 말을 꺼냈다.
"그럼 내 딸년도 보셨겠구료. 모든 사람들이 구경하러 갈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니까. 헌데 이
애비에게 무슨 전할 말이 있다든가 언제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말이라도 있습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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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브랜드의 시선은 노인의 시선 밑에서 움츠러졌다. 이 노인이 이렇게도 인사말 한 마디라도 듣고 싶어하는 그 딸이란 다름 아니라 이 얘기에 에스터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여자다. 이 여자는 바로 이산 브랜드가 냉정하고도 무자비한 목적으로 어떤 심리적 실험의 재료로 사용했으며 그 과정에서 그녀의 영혼은 낭비되고 빼앗기고 아마도 멸망했을 사람이다.
"네" 하고 그는 백발의 방랑객을 외면하며 말을 이었다.
"그건 망상이 아닙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란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 샘터 곁, 그러니까 오두막의 문 앞 불빛이 환한 곳에서는 명랑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소년시절에 친숙한 각종 전설의 주인공인 이산 브랜드를 구경하고 싶은 호기심에 충동되어 마을의 젊은이들, 청춘 남녀들이 헐레벌떡 산을 기어올라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서 하등 특이한 것을 발견하지 못한- 평범한 옷차림에 먼지투성이 신을 신고, 마치 불타는 숯덩어리 속에서 무엇을 찾아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불을 주시하고 있는 햇볕에 그을은 나그네일 뿐 하등의 특이한 점도 없는 사람이니까- 이 젊은이들은 이내 구경에 진력을 내고 말았다. 때마침 여기에는 다른 오락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디오라마 상자를 등에 지고 여행하는 독일계 유태인 한 사람이 마을로 향하는 산길을 내려오고 있을 때에 그 마을 사람들 떼가 그 길을 버리고 산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하루의 밥벌이를 할 속셈으로 그들 뒤를 따라 이 석회 가마 있는 곳으로 쫓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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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독일 양반." 하고 젊은이 중의 한 사람이 말했다.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자신이 있거든 그림 구경 좀 시켜 주시구료."
"네, 알겠습니다, 대위님." 하고 유태인이 대답했다. 예의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상술로 그러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는 모든 사람을 대위님이라고 불렀다.
"특급의 그림들을 보여 드리고 말고요."
그리하여 그는 그림 상자를 마땅한 자리에 세워 놓고 이 기계의 유리창문을 통해서 그림 구경을 하라고 젊은 남녀들에게 청했다. 이윽고 그는 미술 작품의 훌륭한 표본이랍시고 여지껏 떠돌이 쇼맨이 관중들에게 보여 준 중에서도 가장 엉터리의 말도 안 되는 망측스러운 그림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그 그림들은 다 낡고 게다가 너덜너덜해지고 구겨진 것으로 담배 연기에 찌들어 희미한 그림들로 대체로 한심한 상태의 물건들이었다. 개중에 어떤 것은 큰 도회지와 공공건물들이나 또는 유럽의 폐허화한 성곽이라는 것이었고, 또 다른 것들은 나폴레옹의 전투와 넬슨 제독의 해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사이에 거대한 갈색의 털이 많이 난 손이 보이기도 했는데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숙명의 손'으로 오인당하기 쉬운 것이었으나 사실은 이 손의 주인이 역사적 해설을 주워섬기는 동안 각종의 전투 장면을 손가락질하는 실물의 손이었던 것이다. 하도 엉터리이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이 웃으며 즐기는 사이에 쇼가 끝났을 때에 이 독일인은 어린 조우에게 그 상자 속에 머리를 들이밀어 보라고 일렀다. 확대경을 통해서 보이는 소년의 혈색 좋고 둥근 얼굴- 크게 웃는 입이라든가 이 장난에 신명이 나게 즐거운 표정이 눈을 위시한 얼굴 구석구석에 넘쳐 흐르는 그 얼굴-은 기상천외의 거대한 어린이의 얼굴로 확대되어 보였다. 그러나 그 즐거운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지고 그 표정은 겁에 질렸다. 왜냐하면 겁이 많고 흥분하기 쉬운 이 소년은 이산 브랜드의 시선이 유리를 통해서 자기 얼굴에 고정되었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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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님 때문에 이 어린 양반이 겁에 질립니다." 하고 이 독일계 유태인은 굽혔던 허리를 펴고 윤곽이 우람한 검은 얼굴을 쳐들면서 말했다.
"허지만 다시 한 번 보세요. 어쩌면 정말로 좋은 구경을 하시도록 만들어 올릴 테니까요."
이산 브랜드는 잠시 그림 상자로 시선을 주었다가 다음 순간 깜짝 놀라 눈길을 돌려 그 독일인을 주시했다. 그가 뭣을 보았을까?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호기심 많은 청년 한 사람이 거의 같은 순간에 그 화면에 시선을 주었지만 화면은 텅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 이제 당신이 누군지 생각나오." 하고 이산 브랜드는 이 쇼맨을 향해 중얼거렸다.
"아, 대위님." 하고 이 뉘른베르크의 유태인은 음흉하게 미소지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이 상자 속의 짐, 이 '용서받지 못할 죄'가 퍽 무거운 짐이군요! 이렇게 먼 길을 산 너머까지
짊어지고 오느라고 어깨에 힘이 다 빠지는군요, 대위님."
"닥치시오. 안 그러면 저기 저 노(爐) 속에 집어 처넣고 말 테니!"
하고 이산 브랜드는 엄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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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의 쇼가 끝나자마자 몹시 늙은 개 한 마리가 관객들을 즐겁게 해 주기로 작정한 듯했다. 이 군중들 중의 아무도 그 개가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개는 주인 없는 개같이 보였다. 여태까지는 매우 조용하고 성질도 착한 개같이 행동했고 이 사람 저 사람 앞으로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어 줄 만큼 친절한 사람에게 자기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거칠은 머리를 내미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이 늙고 근엄한 네 발 짐승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물로 자기 꼬리를 물려고 뺑뺑 맴을 돌기 시작했는데 일이 더 우습게 되느라고 개의 꼬리는 보통 길이보다도 매우 짧은 것이었다.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것을 이렇게 맹목적으로 쫓는 광경도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또 마치 이 어처구니없는 짐승의 몸 한쪽 부분이 다른쪽 부분과 불구대천지 원수가 되기나 한 것처럼 이를 갈고 으르렁대고 짖어대고 물어뜯으려는 광란이 있어 본 일도 없었다. 개는 점점 빨리 맴을 돌았다. 그리고 잡히지 않게 짧은 꼬리는 그보다도 더 빨리 도망쳤다. 그리고 개의 분노와 증오심의 부르짖음도 점점 더 크고 지독해졌다. 그러다가 드디어 영영 목적도 달성 못한 채 지칠 대로 지친 개는 이 행동을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느닷없이 중단하고 말았다. 다음 순간 그 개는 이 모임이 있는 곳에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순하고 조용하고 점잖게 처신했다.
그러리라고 짐작이 가는 일이지만 개의 이런 행동을 본 사람들은 박장대소하며 더 계속하라고 법석을 피웠고, 이에 대하여 개는 비록 짧긴 하지만 그 꼬리를 흔들어 응답할 뿐 잠시 전에 그렇게도 성공적으로 사람들에게 오락을 제공했었던 그 행동은 도저히 재연할 수 없는 듯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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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산 브랜드는 다시 통나무 토막에 자리잡고 앉았으며 아마도 자기가 자기를 쫓는 이 개의 처지와 자기 자신의 처지 사이에 존재하는 한 가닥 유사성을 발견한 때문인지 무서운 웃음을 터뜨렸는데 다른 어떤 징표보다도 이 웃음은 그의 내면의 사람됨을 잘 표현해 주었다. 이 시각부터 이 모임의 흥은 깨어지고 말았다. 그들은 이 불길한 웃음 소리가 지평선에 메아리치고 산으로부터 다른 산으로 산울림하여 오래오래 그 무서운 소리가 연장되어 들려 오지 않도록 간절히 바라면서 겁에 질려 서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이제 밤이 늦었다느니, 달이 거의 지게 되었다느니, 8월의 야기(夜氣)가 점점 썰렁해진다느니 하는 말을 서로 속삭이면서 뿔뿔이 귀가하고 석회구이장이와 어린 조우만을 남겨 이 반갑지 않은 손님을 접대토록 한 것이다. 칠흑같이 어둡고 광막한 숲속 산 중턱의 공터는 이 세 사람의 인간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적막뿐이었다. 빛과 어둠의 경계 너머에는 화염의 빛이 듬직한 나무의 줄기라든가 또는 참나무, 단풍나무, 포플라 나무 등 묘목의 엷은 초록과 어울린 거의 검게 보이는 소나무 숲을 비치고 있었고, 여기저기에는 흩어진 낙엽 사이에 거대한 고목이 쓰러져 썩고 있었다. 그리고 겁 많고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 조우 소년에게는 이 말없는 숲은 무언가 무서운 일이 일어날 때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이산 브랜드는 불 속에 장작을 더 넣고 가마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어깨 너머로 석회구이장이와 그의 아들을 향해 이젠 물러가 자라고 권고하는 투가 아니라 사뭇 명령조로 말했다.
"난 잠을 잘 수 없소." 하고 그는 말했다.
"좀 생각해야 할 일이 있어 그렇소. 옛날에 하던 식으로 불을 내가 지키겠소."
"그리고 노(爐) 속으로부터 악마를 불러내어 벗하려는 것이겠지."
위에서 말한 바 있는 그 검은 병과 단짝 친구가 된 바아트램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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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만 불을 지키고 싶으면 지키고, 악마를 불러내려거든 몇 놈이건 불러내시오. 난 이제 잠이나 자야겠소. 조우야, 가자!"
소년이 부친의 뒤를 따라 오두막집으로 들어가며 뒤돌아서 나그네를 보았을 때에 그의 눈에는 눈물이 괴었다. 왜냐하면 소년의 고운 마음씨는 이 어른이 스스로 택한 고독이긴 하지만 그 고독의 황량함과 무서움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돌아간 뒤에 이산 브랜드는 장작의 불타는 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화덕 문 갈라진 틈바구니로 이따금 남실거리는 작은 화염을 구경하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예전엔 퍽이나 몸에 배었던 이런 사소한 일들이 지금은 전혀 그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는 그가 온 정력을 바쳤던 그의 탐구가 서서히 그에게 가져다 준 놀라운 변화를 회고하며 되새겼다. 단순하고 정이 많았던 그가 그 옛날에 타는 불을 보고 명상에 잠기며 지켜보았을 때 밤 이슬에 홈빡 옷이 젖던 일, 검은 숲이 그에게 속삭여 말을 걸던 일, 별들이 그를 향하여 빤짝이던 일 따위가 회상되었다. 그는 뒤에 그의 삶의 목적처럼 되어 버린 그 사상에 관해 처음 사색을 하기 시작했을 당시엔 자기가 얼마나 부드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또 인간에 대한 사랑과 동정심이 얼마나 많았으며, 인간의 죄와 고뇌에 대하여 얼마나 측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가 하는 것이 회상되었다.
그 당시에는 인간의 마음이란 원래가 신성한 것으로 보여졌었기에 제아무리 더럽혀진다 하더라도 동포들은 서로 이를 신성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얼마나 외경의 눈으로 인간의 마음을 보았었던가도 생각났으며, 또 그의 탐구가 성공할까 봐 얼마나 두려워하고 '용서받지 못할 죄'가 무엇인지 영영 발견되지 않기를 얼마나 빌었던가도 회상되었다. 그 뒤에 그의 어마어마한 지적 발전이 뒤따랐고, 그 발전은 그 과정에서 그의 두뇌와 마음 사이의 균형을 깨뜨렸던 것이다.
그의 일생을 지배한 그의 '사상'은 그에게 교육의 구실을 했다. 이 사상은 그의 능력을 그 극한까지 개발시켰고, 무학의 노동자인 그로 하여금 대학의 화려한 경력으로 찬 지상의 철학자도 감히 도달하기 어려운 찬란한 경지에까지 오르게 만들었던 것이다. 지성에 관해서는 그렇다 치자! 그러나 가슴은 어찌 되었나? 사실상 그의 마음은 시들고, 위축되고, 경화하고, 병들어 죽은 것이다! 그의 마음은 우주의 맥박과 어울려 참여하기를 중단한 것이다. 그는 인류를 연결하는 자력의 사슬을 놓친 것이다. 서로의 비밀을 나눠 가질 권리를 우리에게 주는 신성한 동정심이라는 열쇠로 만인 공통의 인간성의 밀실을 여는 동포적 인간이 되기를 중단한 것이다. 이제 그는 인간을 자기 실험의 재료로 생각하고, 남녀를 꼭둑각시로 만들어 자기의 연구가 요구하는 정도의 범죄를 저지르도록 만들 수 있는 끈을 조종하는 차가운 관찰자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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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이산 브랜드는 악마가 된 것이다. 그는 그의 도덕성이 그의 두뇌의 발달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 그 순간부터 그렇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는 그의 노력의 최고봉이고 필연적인 발전으로서- 그의 필생의 노동의 찬란하고 화려한 꽃이며 풍부하고 맛있는 과실과도 같이- 그 '용서받지 못할 죄'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이상 더 뭣을 찾고 뭣을 이룩할 것인가?" 하고 이산 브랜드는 혼잣말을 했다.
"나는 내 과업을 완수했고 그것도 잘 수행한 것이다!"
그는 앉았던 통나무로부터 벌떡 일어나 석회 가마의 돌벽 주위에 쌓아올린 흙더미를 민첩한 걸음걸이로 걸어 올라 꼭대기에 도달했다. 그 장소는 이 석회 가마를 가득 채운 대리석 파편의 윗표면이 보이는 지름 10피트 정도의 공간이었다. 거기에 있는 무수한 대리석 덩어리나 파편들은 모두 시뻘겋게 달아 이글거리고 있었다. 크고 시퍼런 화염을 뿜어내었고, 하늘 높이 치솟은 화염은 마치 마법의 원 속에서처럼 미친 듯이 그리고 계속적으로 또 분주하게 춤추다가는 사그러졌다가 다시 일어났다. 이 외로운 사나이가 이 무서운 화염 덩어리를 구경하느라고 몸의 상체를 굽혀 기웃거렸을 때 그의 육신을 단숨에 불태워 오그라들게 만들 것이라고 여겨지는 화끈하는 열기가 그의 온몸을 엄습했다.
이산 브랜드는 꼿꼿하게 서서 그의 팔을 높이 쳐들었다.
시퍼런 불꽃의 그림자가 그의 얼굴에서 아른거렸으며, 그 얼굴 표정에 달리 알맞을 것이 없을 기괴하고 무서운 빛을 발했다. 그 표정은 가장 극심한 가책의 심연 속으로 몸을 던지기 직전의 악마의 표정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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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나의 어머니도 아니고 그 품속으로 이 육신이 되돌아가지도 않을 만물의 어머니인 대지여!" 하고 그는 외쳤다.
"오, 내가 우애를 끊고 그 위대한 정리를 내 발로 짓밟은 인류여! 오, 옛날엔 내 앞길과 머리 위를 밟혀 주듯 비춰 준 하늘의 별들이여! 이젠 모두들 영영 이별이다. 오라, 필살(必殺)의 화신이여- 앞으로 다정한 친구가 될 그대! 내가 그녀를 포옹하듯 그대 나를 포옹하라!"
그날 밤, 무서운 웃음 소리가 그 석회구이장이와 그의 어린 아들의 꿈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공포와 고뇌의 희미한 형상이 자꾸 꿈에 나타났고 그들이 새벽에 눈을 떴을 때 아직도 그 오두막 속 어디엔가 숨어 있는 듯이 느껴졌다.
"얘야, 어서 일어나거라!" 하고 석회구이장이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외쳤다.
"드디어 밤이 끝나 사라졌다니 고맙기도 하지. 지난 밤과 같은 밤을 다시 한 번 겪느니보다 차라리 석회 가마를 1년 동안 뜬눈으로 지키는 쪽이 낫겠다. 그 엉터리 같은 '용서받지 못할 죄' 운운하는 이산 브랜드가 내 대신 불을 봐준다고 그랬지만 크게 신세를 진 것도 아니야!"
그는 오두막으로부터 나왔다. 아버지의 손을 꽉 잡은 어린 조우도 뒤따랐다. 이른 햇살이 벌써 산마루에 황금색의 햇빛을 쏟고 있었다. 그리고 계곡은 아직도 그늘져 있었지만 재빨리 다가오는 맑고 밝은 날의 약속 속에 상쾌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부드럽게 굽이치며 기복하는 산들로 겹겹이 둘러싸인 마을은 마치 하나님의 위대한 손바닥의 오목한 속에서 평화롭게 휴식이나 한 듯이 보였다. 집 하나하나가 역력히 보였다. 두 개 있는 교회당의 첨탑이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그 끝에 달린 도금한 풍향기의 닭들이 햇빛으로 물든 하늘로부터 반사된 환한 빛을 받고 있었다. 주막에도 인기척이 있어 보였고, 늙고 훈제된 고기 같은 역마차 매표원이 여송연을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이 층계 밑에 보였다. 그레일락 산은 그 산정이 한 조각의 황금빛 구름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다른 산들의 가슴 위에도 짙은 안개가 흩어져 있었다. 가지각색의 형상의 안개가 어떤 것은 계곡 저 아래까지 내리뻗었고 어떤 것은 높은 정상 근처에 떠 있는 것도 있는가 하면 또 다른 것들은 안개나 구름과 동일한 계열이 것이겠지만 대기권 저 위에 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것도 보였다. 산 위에 머물러 있는 구름장을 하나하나 밟고 올라간 다음 더 높은 허공을 흘러다니는 그들의 동족인 구름으로 올라간다면 우리와 같은 인간도 하늘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을 것같이도 보였다. 땅이 어찌나 하늘과 잘 융합되어 있는지 그것을 구경만 해도 꿈인 듯이 황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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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광경 속에 대자연이 흔히 끌어들이기 일쑤인 눈에 익고 흐뭇한 매력을 첨가하기나 하려는 듯이 역마차가 산길을 덜컹거리고 내려오는데, 마부가 호각을 불었다. 그 소리는 산울림의 메아리와 합쳐져 풍부하고 다양하고 정교한 화음을 이루었다. 그 아름다운 소리에 대해서 원래의 연주자는 아무 주장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원음과는 판이했다. 위대한 산들은 제각기 감미로운 선율을 서로 보태어 음악회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어린 조우의 얼굴은 이내 밝아졌다.
"아빠, 아빠."
소년은 즐겁게 외발로 이리저리 뛰놀면서 외쳤다.
"그 이상한 사람이 없어졌네요. 하늘도 산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옳아." 하고 석회구이장이는 욕을 하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러나 불을 꺼트린 모양이니 오색 부셸의 석회를 망쳐 놓지 않았대도 감사할 것 없지. 그놈을 이 근방에서 다시 잡기만 하면 놈을 노(爐) 속에다 던져 넣고 싶어질 거야!"
그는 긴 장대를 들고 가마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잠시 후에 그는 아들을 불렀다.
"조우야, 이리 올라와 봐!"
그래서 어린 조우가 흙더미 위로 뛰어올라 아버지 곁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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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석은 모두 완벽하고 눈같이 흰 석회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그 표면의 원의 한복판쯤에 역시 눈같이 희고 완전히 석회로 변한 사람의 골격이 누워 있는데 그 자체는 마치 오랜 노동 끝에 오랜 휴식을 취하려는 듯한 자세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갈비뼈 속에 사람의 심장 모양을 한 것이 있었다.
"그 사람의 심장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었나?" 하고 그 기이한 현상을 이해하지 못한 바아트램이 외쳤다.
"여하간에 이건 특별히 훌륭한 석회로 구워진 것 같군. 이 뼈를 모두 합치면 이 친구 덕분에 석회가 반 부셸은 실히 늘어나겠군." 하고 말하며 이 무례한 석회구이장이는 장대를 쳐들어 해골 위에 떨어뜨렸고, 이산 브랜드의 유해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