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풍경..2015.1.31.토요일 오전
부산여행
2015.1.31.토.~2.2.월 (2박3일)
1편-금정산 범어사ㆍ국제시장ㆍ보수동헌책방ㆍ깡통ㆍ자갈치시장
2편-영도다리ㆍ태종대 유람선관광ㆍ해운대ㆍ동백섬
3편-해운대 미포마을ㆍ달맞이 길ㆍ자갈치시장 전망대ㆍ용두산공원과 공원내 부산타워
기차를 이용한 부산 자유여행1
금정산 범어사ㆍ국제시장ㆍ보수동헌책방ㆍ깡통ㆍ자갈치시장
2015년 1월 31일 06시 20분 영등포역발
새마을 1061호 열차에 몸믈 싣고 부산으로 향하다.
지난 년말에 본 영화 '국제시장'의 꽃분이네 가게를 찾아서 떠나다.
금정구 범어사, 금정산성, 동래온천(1박), 국제시장 꽃분이네 가게,
보수동 헌책방거리,깡통시장, 자갈치시장, 태종대, 해운대(2박), 동백섬,
달맞이 길, 다시 지하철로 자갈치시장, 용두산공원전망대를 구경하고
걸어서 남포동, 광복동, 중앙동을 거쳐 부산역에서 20시30분 KTX 358 열차로
23시 44분에 영등포에 도착하여 다시 지하철 막차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둠속에서 출발했지만 여명이 밝아오면서 차창밖 풍경들이 시야에 든다.
한적한 시골길이 보이기 시작했고,
굴뚝에선 아침을 여는 하얀연기가 하늘로 피어 오르고 있었다. 새 아침이
차창밖에 펼쳐지고 있었지만, 우린 달리는 기차에 의지해 창밖만 바라보았다.
새마을호 1061호가 영등포에서 06시 20분에 출발하여 부산역에 10시54분에 도착했다
부산역과 역앞 아리랑호텔, 바로 앞에서 부산시티투어가 출발하는데,
이용요금은 15,000원이다.
그러나 우린 자유롭게 지하철 이용으로 다니기로 하였다.
부산 메트로 1호선 지하철을 부산역 앞에서 타고
서면을 거쳐 동래 온천장역을 지나 범어사역에 도착하여
범어사입구 마을버스를 타고 범어사에 도착했다.
부산지하철도 경로우대로 각 역마다 주민등록증으로 우대권 출력해서
무료탑승이다. 하여 어르신은 주민등록증을 필히 지참해서 우대를 받으면 된다.
지하철역 내에서 만난 안내지도이다.
여행 첫날 첫코스가 금정산인데 정상인 고당봉은 802m이다.
정상까진 무리일것 같아 돌바다를 지나서 북문까지만 가기로 했다.
우리가 지하철 범어사역에서 사찰 범어사입구까지 타고 온 90번 버스이다.
화창한 날씨가 기분을 더욱 상승시킨다.
범어사 오르는 입구가 계단길이다.
안내해설을 들여다 보며..
지질공원은 지구과학적 중요성 및 우수한 경관을 가지는 지역을 보전하고
활용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보존을 주된 목적으로 과도한 행위제한을 하는
세계유산, 생물관 보전지역 및 국립공원제도와는 달리, 지질공원은 지질명소의
보호와 동시에 이들을 교육 및 관광사업 등에 활용하여 지역주민의 소득향상과
지역의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대안적 공원제도입니다.
지질유산은 현재가지의 변화과정을 내포하고 있는 개개의 지질기록으로서
지구의 환경을 이해하고, 미래의 환경변화에 대한 과학적인 대비책을 마련하는데
필요한 인류의 귀중한 자료이자 자산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지질유산들이 모여있는 장소를 지질명소라 지칭하여, 지질명소들로
조성된 지질공원은 규제로 인한 각종 행위 제한을 최소화하고, 주민참여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촉진해서 지역주민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과 혜택을 이끌어 냅니다.
부산지질공원에는 낙동강 하구 몰운대. 두도, 두송반도, 송도반도, 태종대, 오륙도,
이기대, 장산, 금정산, 구상반려암, 백양산의 총 12개의 지질명소가 있습니다.
범어사 입구 계곡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 아이들이 놀고 있다. 따스한 봄날씨 같다.
금정총림(金井叢林)과 범어사(梵魚寺) 설명문
*총림(叢林)이란 대웅전만 있는 절이 아니라 講院(스님들의 전문 승가대학),
禪院(참선을 주로 하는 선방), 律院(부처님의 계율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을
종합적으로 갖춘 사찰을 이름이다.
범어사 당간지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5호(1972.6.26)
옛날에는 사찰의 입구에 도량의 경계를 표시하는 깃발이 있었다.
당(幢)이라고 불리는 이 깃발은 나무, 철 등으로 만들어진 기둥을 뜻하는 당간(幢竿)은
한쌍의 돌기둥 즉 당간지주(幢竿支柱)에 의해 고정되었다.
고려시대 말기 또는 조선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금정산범어사(金井山梵魚寺)
임오(壬午) 소춘(小春), 칠십팔옹해로당(七十八翁海로堂)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
임오소춘하완(壬午小春下浣), 칠십팔옹해로당(七十八翁海로堂)
범어사 조계문(釜山 梵魚寺 曹溪門)은 보물 제1461호로 지정되었다.
범어사 일주문인 조계문의 중앙 어칸에는‘曹溪門’이라 편액하고
좌우 협칸에는'金井山梵魚寺'와 '禪刹大本山'이라 편액하였으며
조계문이라는 이름은 1718년에 기록한 (梵魚寺曺溪門 重樑門錄)과 1720년에
기록한 《梵魚寺大雄殿佛像毘盧殿佛像香積殿石井曺溪門石柱四 階石梯盖石桶記》및
1841년에 기록한 《梵魚寺曹溪門重修上樑文》등에 그 이름이 나타난다.
두 편액의 글씨는
한말 의정부참정과 탁지부대신을 지낸 海士 金聲根(1835~1919)의 필적인데
편액의 款識를 살펴보면 "임자소춘하완(壬子小春下浣)"은
1912년 10월하순을 "칠십팔옹해로당(七十八翁海로堂)" 78세 해로당은
해사 김성근을 말하며 로(鹵+土)는 鹽田(소금밭), 즉 척박한 땅을 말한다.
천왕문 주련
帝釋天王慧鑑明 - 제석천왕의 지혜는 거울처럼 맑고
四洲人事一念知 - 온 세상의 인간사는 오직 염불로서 알며
哀愍衆生如赤子 - 중생을 애민하기를 간난아기처럼 여겼으며
是故我今恭敬禮 -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공경의 예를 다 하자
불이문의 주련
神光不昧萬古輝猷
- 신비롭고 환한 빛이 만고에 광채를 발하며
入此門內莫存知解
- 이 문 안에 들어서면 가지고 있는 모든 지혜를 내려 놓아라
보제루(普濟樓)
보제란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으로
보제루는 많은 대중을 위한 법회용 건물로 사용된다. 흔히 이러한 중정 누각은
대웅전 앞마당 입구의 축대에 걸쳐서 벽체가 없는 2층 별서식으로 짓지만,
이후로는 법회를 여는 강당으로 사용하면서 벽체를 친 경우가 많다.
이 건물도 숙종 26년(1700) 자수 장로가 별서식 누각으로 창건했으나
순조 12년(1812) 중건때 단층으로 바뀌었고, 일제강점기에는 벽체가 쳐지고
일본식으로 일부 변경되었다. 2012년에 전통 법식으로 복구하기 위해서
대대적인 중창공사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대웅전 주련
摩訶大法王 - 마하대법왕
無短亦無長 - 단점도 없고 또한 장점도 없는
本來非皁白 - 본래 검지도 희지도 아니하며
隨處現靑黃 - 계시는 곳에 따라 청색으로 황색으로도 나타내신다
대웅전앞 금강계단, 범종각, 삼층석탑, 석등과 괘불걸이석 등
넓은 안마당에 많은 중생들과 함께 조화를 이룬다.
범어사 돌바다
범어사 등나무 군락지에서 범어천을 따라 올라가면 금강암을 지나 금정산성
북문으로 가는 길까지 지천으로 널려있는 엄청난 바위 천지를 만날 수 있다.
돌바다(암괴류)의 폭이 70m정도 되고 산사면 방향으로 길이 2,500m 족히 넘어
보이는 바위들이 많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돌바다는 주로 바위가 물리적 화학작용에 의해 절리(바위에 갈라진 틈)를 따라
물이 스며들면 얼고 녹고 하는 과정을 통하여 깨어지고 오랜 시간에 걸쳐 중력에
의해 주저앉으면서 만들어진다. 돌바다 밑으로 물이 흘러 대성암 각해선림 구들장
아래로 숨어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신의 경지에 불심을 듣는다 해서
(금정 8경) 중 하나인 '대성은수(大聖隱水)' 라 하였다.
범어사 입구에서 좀 무리가 있는 돌바다를 걸어서 800m 올라왔다.
느티나무 해설도 읽으면서 숨고르며 쉬어간다.
이번엔 은행나무 해설이다.
드디어 금정산 북문에 이른다.
금정산성 북문은
범어사에서 서편으로 1.6km. 고당봉에서 흘러내린 주능선이 원효봉을 향해
다시치켜 오르는 자리에 있다. 금정산성의 4문 가운데 북문이 가장 투박하고
거칠다. 북문에는 아치형의 장식도 없고 규모도 다른 성문보다 작다.
육축 상부에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익공계 팔작지붕 단층문루이며,
성문의 폭은 정면 250cm이고, 측면은 350cm이다.
"초봄(1808년)에 오한원 부사의 지휘로 기둥과 들보를 100리 밖에서 옮겨오고,
벼랑끝에서 험준한 바위를 깍아내어 메고 끌어 당기는 사람이 구름같이 많이 모여
들어서 만(萬)사람이 일제히 힘을 쓰니 149일 만에 북문이 초루가 완성 되었다.
성문 광장 세심정 일대는 원효대사께서 화엄경을 설파한 곳이라 "화엄벌"이라
하였으며 이곳은 금정산성 방어를 위한 범어사. 국청사. 해월사 등의 스님을
훈련시켜 승병 양성을 한 승병 훈련장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3월 만세 운동(1919년)거사를 위해 기미독립 선원서와
독립운동관계 서류를 가지고 경부선 물금역에내려 금정산 고당봉을 넘어
청련암으로 온 통로도 북문이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금정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1703년(숙종 29)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바다를 지킬목적으로 돌로 쌓은 산성으로 성벽의 길이는 18.845m,
성벽높이 1.5~3m, 총면적은 약8.2km에 이르는 국내 산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산성이다.
금정산
부산광역시 금정구와 경남 양산시 동면의 경계를 둘러싸고 남으로 길게 뻗은
금정산은 낙동정맥의 끝자락에 속해 있는 산으로,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우거져 경관이 뛰어날뿐 아니라 문화유적도 풍부한 부산의 명산이다.
서울의 진산(鎭山)이 북한산(北漢山)이라면 부산의 진산은 금정산(金井山)이라
할 수 있다. 도심과 바로 이웃하여 있으므로 교통편이 좋고 대찰(大刹)
범어사(梵魚寺)를 비롯하여 약 17km에 이르는 산성(山城)과 많은 고적명소가
산재해 있는 곳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금정산은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고 그 산꼭대기에는
세길 정도의 높이가 되는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금빛 물이 항상 가득차 있어 이곳을 금샘돌이라 하며 금정산(金井山)이라 하였다.
금샘설화는 부산의 진산 금정산이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영산(靈山)임을 알려주는
것과 함께 '금정산'이란 산 이름과 '범어사'의 절 이름. 그리고 이 사찰의 창건 내력을
알려 주는 것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산행을 겸하여 인근의 동래온천과 금강공원, 산성유원지까지도 함께 돌아 볼 수 있어
부산시민의 사랑을 한껏 받고 있는 곳이다.
고당봉의 원경..
바라만 보고 발길 되돌리며 다음기회에 오르기로 한다.
해설을 보는 것으로 마치고 다시 하산이다.
세심정까지만 둘러보고 왔던 길을 다시 발길 돌려 하산이다.
하산 길에 아직 피지 않은 동백꽃 꽃봉오리를 만난다.
온천장역에 내려 하루밤 묵은 둥지다.
방이 따끈따끈 온천까지 원없이 즐긴 좋은 숙소로 찜해 두었다.
100% 온천수라고 한다.
2015년 아시안컵 대한민국과 호주와의 결승전 한 장면,
숙소에서 본 티비사진이다.
아깝게 졌지반 잘 싸웠다. 태극전사들아 고맙다.
2015년 2월1일
동래온천장 숙소에서 부산메트로 1호선 온천장역에서 타고
서면, 부산역을 거쳐 자갈치역에 내렸다.
7번출구로 나와 곧 바로 국제시장을 찾아갔다.
국제시장의 유래
1945년 8월 해방과 더불어 귀환 동포들이 생활 근거지로 노점을 형성,
일명 "도떼기 시장"(1948년 단층 목조 건립)으로 불리웠다.
1950년 5월 "국제시장"으로 개칭, 그해 6.25동란으로 수많은 피난민들의
생활터전이 되었다. 현재 부평시장 등 인접시장과 함께 중구의 중심 상권으로
일상 생활용품에서 먹거리까지 상품구색이 다양한 중구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다.
일요일 10시경에 도착하니 점포를 열지 않았다. 여러사람들이 머뭇거리며
아쉬며 했다. 우린 다음날에 다시 찾기로 하고 발길 돌린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날 오후에 오픈했다고 한다.
국제시장을 한바퀴 돌면서 인근에 있는 보수동 헌책방골목으로 향한다.
국제시장은 엄청난 규모로 없는게 없이 다 모여 있어 풍성한 볼걸이에 눈이 즐거웠다.
큰 시장은 다 그렇긴 하지만..
그때까지 오픈안된 점포도 눈에 많이 띄었다.
50년 명맥 이어온 헌책방 골목, 부산 보수동
한국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내려 온 피란민들이 국제시장 인근 거리에서
사과 궤짝에 책을 놓고 팔았다. 이것이 보수동 책방골목의 시작이다.
한국전쟁 때 부산은 피란지였다.
전국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좁은 땅에서 부대끼며 살았다.
사람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됐다.
처음 시장의 시작은 일본인들이 떠난 자리에 사람들이 모이면서 부터다.
이후 전쟁이 일어나면서 피란민들이 장사를 하기 시작했고 미군의 군용물자,
부산항으로 들어온 물건들이 주로 거래됐다.
당시 국제시장 한편에서는 피란길에 짊어지고 온 책을 사과궤짝에 올려놓고
파는 거리가 생겨났다.
아이들의 교과서도 있었고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영어책도 있었다.
사과궤짝 위에서 시작된 중고책 시장은 담벼락에 책장을 놓고 팔던 시절을
거쳐 지금의 작은 서점들이 모인 헌책방 거리로 발전했다.
*네이버 캐스트에서
보수동 책방 골목을 빠져나와 도로건너에 위치한 부평 깡통시장으로 향한다.
부평시장(깡통시장)의 유래
1910년 개설된 부평시장은 조선 최대의 공설시장이었으며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1950. 6.25 한국전쟁 직후 미군 부대에서 나온
통조림 제품을 주로 취급하여 '깡통시장' 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여
'도떼기 시장' 으로도 불리웠다. 지금은 양주, 의류, 장식품, 소형 가전제품 등
온갖 종류의 볼거리, 먹거리를 제공하는 그야말로 쇼핑 천국이다.
아침요기를 해서 속은 든든하지만 혀가 우릴 보챈다. "냠"
요건 나의 먹거리
부산은 어묵시장이 유명하고 맛도 좋다.
부평,깡통시장인 도떼기시장안에는 한 블록 전체가 어묵시장이다.
유명한 부산국제어묵앞에는 소비자가 장사진을 이루어져서 우리는
그 옆의 미도어묵에서 여러 종류의 어묵을 사서 택배로 서울집으로 보냈다.
국제시장 건너편에 위치한 깡통시장을 빠져 나와 자갈치시장으로 향한다.
시장시리즈다. 국제시장, 강통시장, 그리고 자갈치시장이다.
자갈치시장의 풍경
자갈치시장을 끼고 있는 남포항과 그 풍경들..
부산 남항에 원양어선단이 서로 안전하게 묶어서 정박하고 있다.
나란히 정박중인 어선과 어선사이를 어찌 건너갈까? 했더니
파란색 밧줄다리가 있었다.
따사로운 햇빛에 가오리는 잘 말려지고 있었다.
낙시꾼과 구경꾼
부산의 명물 자갈치시장 주출입구를 빠져 나온다.
영도다리가 보인다.
부산갈매기의 재롱을 즐긴다.
滿船을 안고 입항하는 어선을 정박시키고 있다.
영도다리 아래서 찰칵!
이렇게 해서 1편을 마치고
2편은 영도다리 이야기부터 펼쳐지겠습니다.
사진편집및글: 찬란한 빛/ 김영희(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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