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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神話, myth) 신화는 대부분 인간에게 문자가 만들어져 구체적 역사기 기록되기 이전의 사실을 서술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우주창조를 설명하거나 나라와 민족의 시조에 대한 정당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어떤 신화도 이런 규율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그 신화에서 서술하는 이야기가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신화가 이야기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자가 발견되고 기록되기 이전에는 거의 구전 즉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인데 구전되는 과정에서 조금씩 첨삭되므로 신화는 아직도 살아움직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자는 문명 발달의 기본 조건이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쐐기 문자 로제타석 갑골문자 현재 세계는 3000여 개의 언어와 100여 개의 문자가 존재한다. 우리에게 최초의 문자로 알려져 있는 글자는 ‘수메르 문자’ 이다. 수메르 문자는 기원전 3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됐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사회를 이루며 생활하다 보니, 서로 지켜야 할 약속이나 기억해둬야 할 것들이 있었다. 지켜야 할 약속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머릿속으로만 기억해 두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수메르인들은 서로의 약속이나 중요한 사항을 그림의 형태로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그림문자는 점차 표현하기 쉬운 선의 형태로 변화했습니다. 수메르인들은 갈대 끝부분을 잘라 내 그것으로 진흙 판에 글자를 새겨 넣었는데, 그 모양이 쇄기꼴을 하고 있어서 쇄기문자 또는 설형문자라고 불린다. 그들은 물건의 매매뿐만 아니라 법률 문서, 시,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을 진흙판에 기록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전해 오는 이야기를 보존하기 위해서 문자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문자를 만든 배경을 보면 많은 사람들의 협동노동이 필요했고, 이를 지휘할 통제체계가 생겨나면서 엄격한 위계질서를 가진 국가체제가 형성된 것이다. 문자를 만든 것도 위계질서 속에서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고안됐다. 문자를 알고 쓸 줄 아는사람들은 강력한 힘을 얻었고, 자기 생각을 널리 퍼뜨리려는 사람은 바로 문자의 힘을 이용해서 목적을 이루기도 하고, 반대로 문자라는 증거물로 인해 제약을 받기도 했다. 또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에서도 그림문자가 사용됐다. 이집트 문자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된 글자였다. 이집트 상형문자는 사물의 모습을 본뜬 그림문자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추상적인 의미까지도 다 표현할 수 있었다. 하나의 글자가 대상을 직접 가리키는 경우도 있었지만 비유를 통해 암시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사자 모양 문자는 ‘사자’도 가리켰지만 ‘용기’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이처럼 이집트 문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생각을 표현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알파벳의 시초로 알려지는 글자가 ‘페니키아 알파벳’ 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이었던 페니키아인들은 자음으로만 이뤄진 22글자의 알파벳을 사용했다. 그들은 여러 나라에 상품을 팔며 그들의 문명과 문자도 함께 전파했다. 이렇게 페니키아인들이 사용하던 알파벳은 그리스인들이 사용하는 문자에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페니키아 문자와는 달리 그리스 문자에는 모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페니키아 문자 중 자신들에게 없는 글자를 가져와 모음을 표기했다. 그 후 그리스 알파벳은 찬란한 고대 문명을 이루며 에트루리아 문자에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에트루리아 문명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아서, 현재로서는 그들의 문자가 로마인들의 라틴 알파벳에 큰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추측되고 있다. 동양의 여러 나라에 큰 영향을 주었던 대표적인 문자로는 한자가 있다. 중국은 일찍부터 문명이 발달했기 때문에 주변국에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문자, 베트남 문자 등도 한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일본은 5~6 세기에 백제나 중국에서 전해진 한자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북쪽으로 중국과 맞닿아 있는 베트남도 중국의 한자를 받아들였다. 한자는 기원전 2000년경 쯤 중국 은나라 시대에 만들어졌는데, 은나라 사람들은 신의 뜻을 점치기 위해 거북 등딱지나 소뼈에 그림문자를 새겨 넣은 것이 한자의 가장 오래된 형태인 ‘갑골 문자’이다. 그 후 한자는 여러 시대를 거치며 체계를 정비했고 근대화를 이루기 시작하면서 한자의 복잡한 획을 간략화하는 정책을 시행한 결과 현재는 간체자가 많이 쓰이고 있다. 한자는 문자 하나가 한 음절의 소리를 내며 하나의 의미를 나타내는데문자 하나가 한 가지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에 표현해야 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문자의 개수도 점점 많아졌다. 그래서 현재 중국에는 약 5만 개의 한자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에서 인정받은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문자가 바로 우리 한글이다. 우리나라도 과거 한글을 창제하기 전까진 한자를 사용했습니다.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 우리 조상들은 한자로 우리말을 적었다. 그런데 한자는 일반 백성들이 배우기엔 너무 어려운 문자였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낸 것이 한글이다. 현재 한글은 뛰어난 효율성과 독창성, 과학성으로 세계 언어학자들에게 훌륭한 문자로 인정받고 있다. 결국 인간의 문자의 발명과 사용으로 인류는 기록을 통한 정보의 공유 시대를 열게 되었다.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됐고, 이 기록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인간은 그보다 앞선 시대의 문명을 이어받을 수 있게 됐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문명도 창조해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문자의 사용으로 인간은 언어적 사고에서 기억의 부담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게 됐다. 음성언어의 세계에서는 언어 그 자체를 기억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많은 내용을 깊고 넓게 사고할 수가 없다. 하지만 문자언어의 사용에서는 언어 그 자체를 기억할 필요 없이 기록을 해 두면 되기 때문에 고차적인 사고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사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책 가운데에는 10년 전, 100년 전, 혹은 1000년 전에 쓰인 것도 있다.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상식 중에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것들은 문자가 없었다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또 문자가 발명되지 않아서 모든 것을 머릿속에 기억하고 살아야한다면 우리가 깊은 사고를 할 수 있었을까? 결국 인류는 문자혁명으로 변화되어 왔다. 문자가 없었다면 인간은 현재만을 사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문자가 발명되어 기록이 남겨진 이후를 역사라고 부르고 문자가 발견되기 이전이나 문자가 발견된 이후라도 그 이전의 사실들을 기록한 것을 신화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신화는 역사 이전의 이약야기 뿐만이 아니라 문자가 발견된 이후에도 여전히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성경은 쓰여진 연대와 시대적 폭이 넓어 그 기간이 (B.C) 1300년경부터 (A.D) 100년경까지 약 1400년에 걸쳐 기록되었다. 즉 1400년에 걸쳐 수정된 이야기 이다. 성경의 기록은 사실을 기록한 경우와 신화를 기록한 경우가 혼합된 기록이다. 또한 단군신화는 김부식이 기록한 삼국사기보다 140여년 후에 기록된 일연의 삼국유사에 처음 기록되었는데 일연은 1206년(희종 2)∼1289년(충렬왕 15). 고려 후기의 승려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고려하면 창세신화는 예수 탄생이후 혹은 이전에 유대인들의 결속력을 정당화 하기 위해 과거의 구전된 설화를 기록한 신화라고 볼 수 있고 단군신화는 고려 시대에 그 이전의 고려인의 결속력을 정당화 하기 위해 고려 이전의 구전된 설화를 기록한 신화라고 볼 수있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점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개국 신화보다 단군신화의 기록 연대가 더 후대라는 점이다. 즉 삼국시대에는 각 나라의 결속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각 나라의 개국신화와 시조에 대한 신화를 기록하였고 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이 각각 다른 나라가 아니라 원래 한 나라였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삼국이전에 모두 단군 한조상의 자손임을 강조하여 고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을 개연성이 많다. 이처럼 신화는 역사적 사실이라기 보다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정당화 하기 위한 이야기 체계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문자가 발견되어 역사적 사실이 기록된 이후에도 계속 신화는 쓰여지고 덧붓여 진다고 할 수 있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라기 보다는 사건의 기록이고 그 사건은 다시 해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화가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도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목적이나 정권에 따라 그 사건들은 다시 재해석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 신화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신화가 주는 메세지이고 신화의 가치이다. 신화는 믿음과 의미의 체계이지 역사와 사실의 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소설인 삼국지나 춘향전을 놓고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과 같기 때문다. 1. 신화의 유래 신화는 어떤 관행·신앙·제도·자연현상 등을 설명하기 위한 실제적 사건으로 구성되며 종교의식 및 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신화는 때로 이 땅의 문화적 영웅들이나 지상적 삶으로부터의 구원을 가능하게 해준 위대한 존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악과 죽음이 어떻게 인간사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근원적인 지식이 어떻게 '잊혀지고' 다시 '기억되는'지를 말해준다. 신화의 해석 작업은 일찍이 시작되어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신화를 풍자적 이야기로 받아들였고, 19세기, 20세기에 민속학적 발견이 더해져 신화학의 기본 윤곽이 갖추어졌다. 신화는 진리와 지식의 보고로 여겨지며 인간의 활동을 유효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외견상으로는 어떤 관행·신앙·제도·자연현상 등을 설명하기 위해 실제적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특히 종교의식 및 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신화학(mythology)이라는 말은 신화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특정의 문화적·종교적 전통을 지닌 신화들의 집대성을 의미한다. 신화의 전거는 확실히 진술되기보다는 함축적으로 제시된다. 신화들은 일상적인 인간생활과 거리가 멀지만 그 기반이 되는 신이나 초인들의 특정한 사건·조건·행위 들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특수한 사건들은 역사시대와는 전혀 다른 시점의 상황을 다루며, 주로 우주창조나 선사시대 초기를 그 배경으로 삼는다. 신화는 인간의 행동이나 제도, 우주적 상황에 관한 원형들을 제시해준다. 신화의 특성은 다른 종류의 문학에서도 발견된다. 원인론적인 이야기는 자연·인간·사회·삶에 관한 여러 측면의 기원과 원인들을 설명해준다. 옛날이야기는 초자연적인 존재·사건 들을 다루지만 신화에서와 같은 권위는 없다. 중세의 무용담과 서사시는권위와 사실성을 주장하기는 하지만, 특정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신화에 대한 현대적 연구는 19세기초 낭만주의 운동과 함께 일어났으나, 신화의 해석작업은 이보다 일찍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철학의 영향을 받아 신화를 풍자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였고, 에우헤메로스(BC 300경 활동)와 같은 역사가는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이 원래는 단순한 영웅이었다고 믿었다(그리스 신화). 19세기에 비교언어학이 발달하고 20세기에 민속학적 발견이 더해져 신화학, 즉 신화에 대한 학문의 기본 윤곽이 갖추어졌다. 낭만주의 시대 이래로 모든 신화연구는 비교연구방법론을 이용했다. 빌헬름 만하르트, 제임스 프레이저 경, 그리고 스티스 톰프슨 등은 민담과 신화의 주제들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데 있어 비교연구의 접근방법을 썼다. 브로니수아프 말리노프스키는 신화가 일상적인 사회적 기능들을 완수하는 측면을 강조했다.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를 비롯한 구조주의자들은 전세계에 퍼져 있는 신화들의 형식적인 관계와 유형을 비교했다. 지크문트 프로이드는상징적 의사소통이란 문화의 역사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심리작용에도 기반을 둔다는 생각을 제시했다. 그리하여 초역사적이고 생물학적인 인간관과 함께 신화를 억압된 관념의 표현으로 보는 견해를 제기했던 것이다. 칼 은이러한 초역사적·심리학적 접근을 보다 확장시켜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 이론을 주장했고 신화에 암시되어 있는 집단무의식과 원형들을 연구했다.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오토와종교사가인 미르케아 엘리아데와 같은 학자들은 종교는 종교적인 현상으로만 이해해야 하며 비종교적인 범주로 환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소위 '신화 및 의식(儀式) 학파'(Myth and Ritual School) 학자들은 모든 신화가 그에 상응하는 의식(儀式)에 대한 '해명'으로 작용하거나 이미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신화와 의식 사이에 흔히 어떤 연관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그 중 어느 것이 우선이었는지는 결코 단언할 수 없다. 신화를 수반하지 않는 의식은 있을 수 없지만,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부차적인 의식조차 없는 신화는 있다. 신화는 진리와 지식의 보고(寶庫)로 여겨지므로 우주를 지배하고 인간의 활동을 유효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우주창조에 관한 신화는 여러 문화권에서 왕의 정통성 또는 세계의 안녕이 보장되는 사건들과 관련하여 이야기된다 (우주생성신화). 우주 기원을 설명하는 신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인간과 사회제도의 기원에 관한 신화가 있다. 종말론적인 신화는 다른 신화들이 영원과 지상에서의 시간관계를 설명하는 데 반해 세계의 종말을 다룬다. 신화는 때로 이 땅에 인간이 살 수 있도록 해준 문화적 영웅들이나 지상적 삶으로부터의 구원을 가능하게 해준 위대한 존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악과 죽음이 어떻게 인간사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근원적인 지식이 어떻게 '잊혀지고' 다시 '기억되는'지를 말해준다. 신화적인 요소는 현대의 일상생활에서도 발견된다. 역사적 변증법이 그 궁극에 도달할 때의 국가의 소멸 및 이상적인 생활방식에 대한 마르크스의 예언은 종종 종말론적 신화의 예로 언급되어왔다. 또한 현대 물리학·생물학·의학과 기타 학문들의 패러다임과 모델에서도 신화와 유사한 요소들을 엿볼 수 있다. 신화는 우주의 기원, 초자연의 존재의 계보, 민족의 시원 등과 관련된 신에 대한 서사적 이야기를 말한다. 신화는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적 교리 및 의례의 언어적 진술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이 정의가 대체로 적용될 수 있는 한국의 신화로는 흔히 고조선·신라·고구려·백제 및 가락의 이른바 건국신화 또는 시조신화를 으뜸으로 꼽아 왔다. 그러나 오늘날에까지 전해지는 것으로는 각 성씨의 시조신화인 씨족신화와 여러 마을의 수호신에 관한 마을신화, 그리고 무당사회에 전승된 무속신화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네 묶음이 될 한국의 신화는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의 공통성은 이들이 다같이 창시자 내지 창업주에 관한 이야기, 곧 본풀이 내지 본향풀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고, 둘째의 공통성은 이들 신화가 실제에 있어 전설적인 속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말하자면 한국의 네 가닥 신화들은 창시자의 본풀이인 신화·전설의 복합체라는 공통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본풀이란 근본 내력에 관한 이야기풀이라는 뜻이다. 어떤 신격(神格)이 어떤 내력을 지니고 어떤 과정을 밟아서 신격을 향유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사설이 본풀이이다. 그것은 이야기로 진술된 신 또는 신령의 이력서이다. 따라서, 당연히 신 또는 신령의 전기(傳記) 내지 생애 이야기라는 성격을 가지게 된다. 이 때 전기의 길이, 세부적인 부분의 취사 선택에는 신화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태어나서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신격에 오르는 과정을 포함하는 근본 골격에는 변함이 없는 일군의 신화와, 애초부터 신격을 타고난 인물이 범상을 넘어선 과업을 성취하는 근본 골격에 변함이 없는 또 다른 일군의 신화와를 갈라서 생각할 수 있다. 전자의 전형은 무속신화이고, 후자의 전형은 이른바 건국신화이다. 고려왕조의 시조전승들도 이 후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근본 골격 가운데 전자만을 두고 본풀이라는 말을 사용해 왔던 것이다. 이 말은 무속사회, 특히 제주도의 무속사회에 적용된다. 무속신화가 무당시조에 관한 본풀이라면, 건국신화는 건국시조에 관한 본풀이이다. 마찬가지로 씨족신화는 씨족의 시조에 관한 본풀이이다. 여기서 한국 신화에서 시조 혹은 창시자가 지닌 비중이 떠오르게 된다. 한국 신화가 시조 혹은 조상령에 바치는 신앙과 맺어져 있음을 여기서 확인하게 된다. 한국 신화는 조상 숭배의 신화라는 일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조상 숭배의 실현으로서 한국 신화는 조상의 역대기(歷代記)라는 형식을 취하게 된다. 예컨대 단군신화(檀君神話)와 동명왕신화(東明王神話)가 각기 그 왕국 창업주들의 삼대기라면, 고려왕조 전승은 왕건(王建)의 조상들의 사대기이다. <용비어천가>가 이 선례를 답습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특히 조선왕조의 소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삼대기의 연원을 이들 신화 삼대기에서 구할 수 있음은 흥미롭다. 한국 신화들의 또 다른 속성인 ‘신화·전설의 복합성’은 한국 신화가 역사화된 신화 내지 역사 속에 편입된 것이라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무조, 곧 무당의 시조에 관한 신화는 이 사례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고조선·삼국 및 가락의 건국신화는 실존한 왕국, 역사적인 왕국의 시조에 관한 이야기인만큼 그 신화성이 역사성과 공존하고 있다. 분명히 여러 가지 신비징후 내지 신성징후(예컨대 천마, 자줏빛, 신령의 공수 등) 들을 수반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임에도(또는 그와 같은 존재의 아들이나 손자임에도) 인간 세계에서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 신화에 등장하는 건국 시조들이다. 신이면서 동시에 왕인 이들은 신이자 인간이기도 하다는 면모를 지니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신화적 존재가 ‘탈신화화’하여 역사적인 왕국의 창업주로 변모하는 것이다. ‘탈신화성’은 다름 아닌 ‘역사성’이거니와 그런 뜻에서 한국신화는 피안의 원리, 초월적인 어떤 원리가 인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단군신화에서 유명해진 ‘홍익인간’, ‘재세이화’ 등의 이념은 바로 이와 같은 사실과 관련지어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탈신화화하여 역사화된 신화가 곧 한국신화, 특히 건국신화이거니와 전설이 역사적 믿음을 그 이념으로 삼고 있음을 전제로 하여 한국신화가 ‘신화·전설의 복합’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복합성은 고려왕조의 조상전승의 경우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2. 신격의 표상 부분적으로 보아 탈신화화한 신화가 건국신화이거니와 이들 건국신화는 한 왕조의 시조신화라는 점에서 씨족의 시조신화와 상당한 정도의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신라의 왕조신화는 박씨·석씨·김씨의 시조인 박혁거세(朴赫居世)·석탈해(昔脫解)·김알지(金閼智)에 관한 신화로서 씨족신화의 면모를 분명하게 지니고 있다. 혁거세도 알지라고 불려진 사실을 고려한다면 세 신화의 동질성은 그만큼 깊어질 것이다. 혁거세신화와 알지신화를 통하여 하늘에서 내린 시조라는 관념을 찾아내기는 힘들지 않다. 그런 관념은 수로신화와 단군신화에서도 쉽게 추출될 수 있다. 한편, 신라의 육촌장에 관한 ≪삼국유사≫의 기록에서도 같은 관념의 추출이 가능하다면 우리들은 이들 육촌장과 왕조의 시조들의 신화가 그 기본적 성격에 있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관념에 천상에서 세계의 중심 혹은 세계의 정상에 내리는 최초의 신 또는 최초의 왕이라는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관념을 겹쳐보기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하늘에서 내린 최초의 왕이 이른바 ‘거룩한 왕’ 또는 ‘신성 왕’이었다면 씨족의 시조 또한 거룩한 존재였던 셈이다. 양천허씨(陽川許氏)·하음봉씨(河陰奉氏) 그리고 창녕조씨(昌寧曺氏) 등의 시조신화에서도 비슷한 관념이 발견되는 것은 말할 나위 없거니와 이와 같은 시조신화의 특성은 역사시대 인물의 전기 혹은 조선조 소설 및 비범한 인물전설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일부 지방에 전해지는 마을굿 및 탈춤의 기원에 관한 신화 및 전설에서도 하늘에서 내린 존재로 숭앙되는 대상들을 찾을 수 있다. 마을굿에서 숭앙하고 있는 신체(神體) 또는 신격의 표상인 서낭대에 매달린 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대표적인 것이다. 마한의 소도에 매달린 방울 및 무당의 신대에 매달린 신방울들이 신령의 표상임을 생각한다면 하늘에서 떨어진 신방울의 관념에 하늘에서 하강한 신령의 이미지를 겹칠 수 있게 될 것이다. 씨족의 시조신화와 왕조의 시조신화 사이에 단순한 병행관계만이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혁거세신화의 성립과정으로 미루어보면 혁거세신화는 기왕에 씨족장으로서 세력을 확보하고 있는 씨족시조 위에 군림하는 통합적인 세력을 지닌 한 씨족의 시조가 나머지 씨족의 시조들을 그 예하에 신종(臣從)시켜가는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웃한 씨족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통합적 힘을 지닌 씨족의 시조신화가 왕조의 시조신화이자 건국신화인 것이다. 그것은 달리는, 이미 하늘에서 내린 씨족의 시조들이 새로이 하늘에서 군림하는 씨족의 시조를 그들의 통치자로 추대한 과정에서 생겨난 신화가 건국신화임을 뜻하고 있다. 연합씨족사회의 통치세력인 씨족의 시조신화가 다름아닌 혁거세신화인 것이다. 가락의 수로신화(首露神話)도 이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하늘에서 내리는 씨족과 왕조의 최초의 시조라는 관념은 한국 신화의 신격을 규정지을 때 매우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한 편의 신화가 만일 ‘신들의 서사적 이야기’라고 간결하게 정의될 수 있다면 그 정의에서 신이 무엇인가 하는 개념이 중요한 것임은 말할 나위 없다. 그 정의를 다시 ‘신들이 무엇인가에 관한 이야기’라고 고쳐본다면 여기서 신들이 누구인가, 그리고 그 신이 한 행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들은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왕족의 시조이고, 그들이 한 행위는 하늘에서 내려와 지상에다 하늘의 뜻을 펼 왕국을 건설한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게 된다. 이 요약 속에 한국 신화, 그 가운데서도 이른바 건국신화의 윤곽 또는 그 단순구조가 잡힐 것이다. 이 단순구조 속에 따르는 신격 또는 신상(神像)은 시베리아 샤머니즘 신화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시베리아 샤머니즘 신화가 말해주는 바에 의하면, 그들의 최초의 샤먼은 하늘에서 최고의 신의 뜻을 받들어 지상에 내려와 하늘의 뜻을 지상에 편 존재이다. 이리하여 이들 샤먼은 하늘과 지상의 매체 또는 영매(靈媒)가 된다. 그리고 이들 영매가 영매로서의 구실을 수행하기 위하여 천상과 지상을 내왕하면서 의지하는 것이 높은 산, 높은 나무(또는 기둥), 그리고 독수리·곰·오리·사슴 등의 동물이다. 이와 같은 샤먼(영혼)의 ‘천계여행’ 또는 ‘우주여행’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우주구성론’을 보여주게 된다. 3. 한국의 신화 한국의 신화는 건국신화·성씨시조신화·마을신화·무속신화로 나눌 수 있다. 건국신화는 나라를 세운 시조에 대한 신화이다. 고조선은 〈단군신화〉가 있고, 고구려는 〈동명왕신화〉, 신라는 〈혁거세신화〉·〈석탈해신화〉·〈김알지신화〉가 있으며, 가야는 〈김수로왕신화〉가 있다. 북부여 및 동부여와 관련된 〈금와신화〉의 내용도 일부 남아 있다. 삼국유사에는 이들 내용이 모두 기록되어 있지만, 상국사기 등에는 주몽·혁거세·석탈해 등의 신화만 전하고 다른 자료에 일부 신화 내용이 전한다. 동명왕신화에 나타나는 유화부인과 딸 〈탐라지〉 등에 전하는 제주도의 삼성신화는 지금은 고·양·부 3성의 시조신화로 남아 있으나 건국신화의 흔적이 엿보인다. 고려의 건국신화는 〈고려사〉에, 조선의 건국신화는 〈용비어천가〉에 전하나, 이들 신화는 신화시대 이후의 것이어서 인위적인 성격이 강하다. 태봉의 궁예와 후백제의 견훤에 대한 신화는 두 인물이 세운 나라가 일찍 망하면서 곧 전설화되었다. 건국신화는 대개 국가시조신에 대한 제의에서 불렸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신화의 주인공이 실존했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건국신화는 3대기(三代記)적 서술(〈단군신화〉·〈동명왕신화〉), 천부지모(天父地母:〈단군신화〉) 또는 천부수모(天父水母:〈동명왕신화〉·〈혁거세신화〉·〈김수로왕신화〉)적 사상, 그리고 난생신화(〈동명왕신화〉·〈혁거세신화〉·〈수로왕신화〉)적인 특징이 있다. 성씨시조신화는 각 성의 시조에 대한 신화이다. 이들은 족보나 구전으로 전승되고 있다. 알려진 것으로는 남평문씨·창령조씨·파평윤씨·배씨·서씨·고령나씨·단양장씨 등의 자료가 있다. 건국신화의 일부도 신화의 주인공이 왕가의 시조적 성격을 가지므로 넓은 의미에서 성씨시조신화로 볼 수 있다. 조상신에 대한 신화인 제주도의 조상본풀이들도 넓은 의미에서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마을신화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에 대한 신화이다. 〈죽령산신 다자구할머니〉·〈일월산 황씨부인〉·〈연평도 임경업장군〉 등의 신화가 알려져 있는데, 제주도의 본향당신본풀이들을 여기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 당신본풀이들은 주로 무당이 본향신에 대한 굿을 할 때 구송하는 것이므로 무속신화 속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 무속신화는 무당이 굿을 하면서 구송하는 신화이다. 무당은 신과 인간 사이를 중개하여, 신에게 인간의 수복장수를 빌어주는 제의인 굿을 행하면서 신들의 내력담인 신화를 구송한다. 학술용어로는 서사무가라고 하며, 제주도에서는 본풀이라고 한다. 신화의 발생을 종교적 의례와 상관이 있는 것으로 본다면 무속신화는 한국신화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이다. 이들은 문헌에 정착하기보다는 무당들의 입을 통해 구전되어왔다. 본토의 무속신화도 중요하지만, 제주도의 큰굿에서 불리는 신화들은 신화의 본질적인 속성을 보다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신화의 본질은 신의 일에 기원하여 인간이 몸담아 살고 있는 이 세계 및 인간사회의 여러 의식이 어떻게 마련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데 있다. 제주도 큰굿 내의 신화에는 이런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2. 한국신화의 기본 성격 1)시베리아 무속과 한국신화 예컨대, 사슴뿔과 나무와 새(독수리)의 깃털 등의 도형을 갖춘 신과 왕관의 원형이 시베리아의 무관(巫冠)에서 찾아진다는 것은 학계에 이미 잘 알려져 있으나, 신라왕관과 시베리아 샤머니즘과의 연관은 이보다 훨씬 깊고 본질적이다. 신라왕관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우주구성론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나무 도형은 마한의 소도나 단군신화의 신단수, 그리고 오늘날까지 전해져오는 수살대나 솟대와 함께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세계나무(우주목)’ 또는 ‘샤먼의 나무’ 혹은 ‘오브’에 견주어질 만하다. 세계의 한가운데 솟아서 세계의 기둥이 될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 위와 땅 밑 세계를 이어주고, 그럼으로써 샤먼의 영혼이 그에 의지하여 우주여행을 하게 되는 매체가 다름 아닌 이들 나무들이다. 그런가 하면, 동명왕신화에서 하늘에 대한 호소력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어 있는 사슴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에서 ‘우주사슴’으로 불린다. 특히 사슴은 무당영혼의 지하세계 여행에 임하여 큰 구실을 하게 되는 짐승이다. 이 짐승의 뿔은 그것이 지닌 나무와 같은 속성 때문에 영원한 생명력의 표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날카롭고 뾰족한 모양 때문에 샤먼의 무기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이에 비하여 독수리는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이른바 ‘우주새’로서 샤먼의 영혼이 우주여행을 하는 동안 천계여행을 도맡아 안내한다. 심지어 최초의 무당이 깃들인 알을 천상에서 품었다가 지상의 나무 위에서 부화시킨 새가 곧 독수리이다. 이 경우, 독수리가 품고 온 알에서 최초의 무당이 탄생된다는 모티프는 우리들의 건국시조가 알에서 태어난다는 모티프와 상관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결국, 나무와 사슴과 독수리를 종합하게 되면 샤먼의 영혼이 우주여행을 하게 되는 도정과 그에 대응된 우주의 구성이 드러나게 된다. 세계수가 이음자리 구실을 하고 있는 하늘 위와 땅 밑을 각각 분담한 짐승이 곧 독수리이고 사슴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추정이 옳다면 신라의 금관은 하늘과 지상과 지하의 삼계로 이루어지는 우주를 나무와 사슴뿔과 독수리깃을 수평선상에 배열함으로써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러한 왕관을 쓴 왕권이 어떠한 것이었던가를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신라왕관은 샤머니즘적인 우주구성론이 바탕에 깔려 형성된 왕권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교신화론에서 차지하는 우주발생론과 우주구성론의 비중이 큰 만큼 신라왕관의 구도와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우주구성론이 지닌 공통성은 매우 뜻깊은 것이 되고, 따라서 우리 문화와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유대가 지닌 뜻도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신라왕관의 형상은 특정한 신화적 발상법을 조형예술적 언어로 기술한 표현 체계로 포착되어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2) 원초성과 풀이 오늘날 남겨진 건국신화나 씨족신화, 그리고 마을신화에서는 우주발생론을 찾을 수가 없고 아울러 우주구성론의 뚜렷한 윤곽도 잡을 수 없다. 이들 신화들은 다같이 인간 문화 및 제도의 기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원초적’이다. 단군신화가 그 전형으로, 이들 신화의 원초성은 ‘문화적 원초성’이다. 따라서, 단군 일가가 그렇듯이 이들 범주에 속하는 신화의 주인공들, 특히 건국신화의 주인공들은 ‘문화적 영웅’들이다. 하늘 또는 타계에서 지상 또는 이 세상에 나타나 인간세상에 문화와 제도의 기틀을 베푼 존재들인 것이다. 제주도에 전해지는 무속신화는 이 점에서 아주 특이한 성격을 드러낸다. 그것들은 우주의 창생과 우주의 구성에 대하여 말하면서 문화나 인간적 제도가 있기 이전의 자연에 관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인간들이 살 만하지 않았던 자연 또는 우주가 어떻게 해서 한 신령에 의해 인간들이 살 수 있도록 길들여지고 질서화되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제주도 무속신화는 지니고 있다. 제주도 무속신화의 원초성은 ‘우주적 원초성’이라는 점에서 건국신화의 원초성과는 사뭇 다르다. 제주도 무속신화에서는 이 로고스가 있기 이전의 공간이 큰 몫을 차지하고, 낮·밤의 가름이 있기 이전의 시간이 아울러 중요한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건국신화의 공간은 마을이거나 인간공동체이고 시간은 역서(曆書)상의 시간이다. 제주도 무속신화와 건국신화의 이와 같은 차이는 결정적인 것이다. 무속신화에서는 자연과 문화 사이에 빚어질 갈등의 조화가 곧 신화의 기능이라는 명제를 확인해도 좋을 것이다. 이와 같은 두 신화의 차이는 무속신화가 본질적으로 더 원초적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무속신화의 그것에서 유추될 수 있으리라는 추정을 해볼 수 있다. 제주도 무속에서는 신화를 ‘본풀이’ 또는 ‘본향풀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 두 용어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무당 조상의 전기(傳記)’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면서 아울러 ‘개벽신화’ 또는 ‘창생신화’라고 불러도 좋을 이야기를 지칭하고 있다. 예컨대, 제주도 무속의 대표적 신화인 <천지왕본풀이>는 신들의 내력과 천지창조의 과정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토의 무당들은 본풀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본토 무속의 대표적 신화인 <바리공주>만 해도 서울지방의 무당들은 이를 ‘말미’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 <바리공주>는 그 성격상 본토 무당의 유일한 본풀이 또는 본향풀이이다. ‘말미’란 ‘말미암음’의 말미와 관계가 있을 듯하다. 인연·동기·사유 등을 나타내는 말이 곧 말미일 것이라 본다면 ‘말미’라는 용어가 본풀이라는 용어와 그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 있어 별로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이음동의어라고 보아도 큰 잘못은 없을 듯하다. 실제로 <바리공주>는 한 여성과 그 일족이 무신(巫神)이 되어가는 사유와 유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보면 말미가 본풀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뜻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점에서 우리들은 본풀이라는 개념을 제주도 바깥으로 넓혀서 쓸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 뿐만 아니라 비록 본토에서 무당들이 그들의 신화를 본풀이라고 부르고 있지는 않아도 그들의 신화나 노래 속에 본(本)이라는 말은 많이 쓰고 있다. “누구의 본을 볼작시면…….", “무엇의 본을 받아…….” 등과 같은 사례들이 보이고 있다. 이것은 본토의 무당들이 부르는 신화 역시 본에 관한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고조선과 삼국 및 가락의 시조신화는 각기 신화적 인물들의 원향(原鄕)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어 출생과 성장, 그리고 혼인과 즉위를 거쳐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음을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다. 이것이 한국 상고대신화의 전기적(傳記的) 유형이다. 한 인물의 출생과 성장 및 행적을 더듬고 그 죽음은 어떠하였는지를 한국 신화는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사후에 신격화된 모티프를 지닌 것도 있다. 이런 줄거리가 한국 상고대의 왕권을 신성화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천신의 아들로 ‘홍익인간’을 위하여 신단수에 의지하여 지상에 내려온 환웅은 시베리아 원주민의 무조신화(巫祖神話)를 반영하고 있다. 혁거세와 수로, 그리고 알지의 신화적 성격도 환웅(桓雄)과 멀지 않다. 이와 같이 볼 때 한국 상고대신화는 상고대왕조의 왕권이 무속원리에 의하여 신성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상고대신화들은 오늘날 굿판에서 구연되는 무속신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그것은 무속신화의 중요한 속성 중의 하나가 ‘본풀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듯이 상고대신화도 역시 ‘본풀이’의 신화로 간주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3) 풀이와 공수 한국 신화의 기본적 성격은 이와 같은 ‘본풀이’에 ‘공수’라는 개념을 삽입시킴으로써 포착할 수 있게 된다. 신화는 기본적으로 신들이 주체가 된 신들의 이야기라는 성격을 가진다. 그러나 그같은 신화의 속성에서 신들이 가지는 주체성은 신들이 신화 속에서 전개되는 행동의 주체라는 정도에 머무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신화에서 나타나는 신들의 주체성은 신화라는 이야기마저 신들 자신이 서술하고 있다는 데서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신화는 신들 자신이 이야기한 신들의 이야기이다. 신화에서 신들이 가지는 이와 같은 ‘이야기하는 자’로서의 주체성은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에 아주 잘 드러나 있다. 신들이 일러준 대로 인간들이 받아 적거나 인간들의 입으로 다시 이야기한 것이 신화라는 점에서 신화에는 디크타트(받아쓰기) 의식이 작용하고 있다고 말하여도 좋거니와, <가락국기>는 무엇보다도 신들이 일러준 대로 인간의 입으로 옮겨서 서술한 이야기이다. 한국 무속에서는 신이 직접 불러주거나 일러주는 것을 ‘공수’라고 한다. 신에 접한 무당이 신의 말을 옮겨 놓은 것이 공수이다. 공수 속에 신 스스로가 자신의 내력에 관하여 진술하는 이야기, 곧 본풀이가 포함됨은 말할 나위 없다. 이리하여 공수는 본풀이와 겹쳐지고 여기서 한국 신화의 기본적 성격이 결정된다. 무속현장에서는 이야기 서술로서의 풀이와 제액(除厄)이나 축마(逐魔)하는 제의적 행위로서의 풀이가 한데 엉겨 공존하고 있다. 이 것은 이야기풀이로서의 신화가 지닌 제의적 기능에 대하여 말해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본향풀이는 굿에 수반되어 가창된다. 단순히 수반되는 것이 아니라 무당굿의 핵심을 이룬다. 이 때 무당은 굿을 하면서 신화를 노래와 춤으로써 이야기풀이하는 복합성을 띤 연행자(演行者)가 된다. 무속신화는 노래와 더불어 춤추어지는 것이다. 그것도 굿 속에서 굿과 더불어 춤추어진다. 무당은 몇 가지의 배역(act role)을 혼자 도맡아 연행하는 일인무극(一人舞劇)으로 그의 굿을 치러가는 것이다. 그런 면을 강조한다면 무속신화는 몸짓과 노래로써 이야기되는 신화라 하여도 좋을 것이다. 무속신화의 이와 같은 속성은 사실상 상고대, 예컨대 신라·가락 등의 왕조신화에서도 발견되는 것이어서 한국신화의 보편적 속성의 하나로 여겨진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락의 수로신화는 집단으로 노래와 춤을 곁들여 연행된 현장을 구체적으로 문헌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가락국기>의 신화가 신이 일러준 공수를 기반으로 삼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공수와 풀이의 이중성이 떠오르게 된다. 신에 의하여 인간에게 주어지는 신의 풀이가 공수일 때 공수와 풀이는 한짝이 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공수와 굿거리로서의 풀이와 이야기로서의 풀이가 서로 맺어져 있는 맥락 속에 신과 제의와 신화의 상관성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 맥락의 구체적인 모습은 앞서 말한 대로 한국 샤머니즘의 현장에서 드러난다. 이 맥락은 상고대의 <가락국기> 서두의 영신의(迎神儀)와도 접맥되어 있다. 천신의 공수에 따라 신맞이를 하고 그 굿의 줄거리가 신화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가락국기>의 영신 부분은 한국 상고대신화가 간직한 가장 오래된 한국의 신화적 원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