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몸치의 댄스일기20 (무대뽀 전법) 추억의 연습
(2003. 7. 24. 목. 장맛비 )
(영월 주천 골방에서....)
장마로 현장공사를 중단해야 했다. 환경보존과 개발을 위한 대학연구소의 연구용역 기간 관청과 인허가문제 보류.
이런저런 핑계 삼아 내 생업인 일을 잠시 지연시키고 최근에는 지방 출장을 게을리 했다.
그동안 난 왈츠강습과 개인 연습에 몰두할 수 있어 신났다.
장마 기간이라고 내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생업까지 제쳐두고 댄스에 미쳤다는 소릴 들을까봐서, 타인에게 듣는 핀잔보다 나 자신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려는 목적으로. 핑계와 변명만 늘어서 탈이지만.
지방 볼일이 생기더라도 어지간하면 당일 날 대충 끝내고 부랴부랴 상경하고. 고객들과 혹은 내 일과 관련된 분들의 요청도 미루거나 핑계대고 지방 출장을 꺼려오다가 오랜만에 영월 주천 숙소에 하루 묵게 됐다.
사실은 오늘도 당일 날 일을 끝내고 상경하고픈 심정이었지만, 다음날 오전에 측량 스케줄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주천의 내 숙소는 지난번 동호회 게시판에 올린 댄스 연습 시리즈에서 발가벗고 연습한 장면이 나오는 바로 그 시골 구옥의 구석 골방.
매달 방세만 꼬박꼬박 송금시키고 한동안 비워둔 방에 들어서니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주인 없던 방안의 탁한 공기를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 시켰다. 여장을 풀고 나니 불과 몇 달 전 이 방안에서 왈츠의 기본 스퀘어박스를 연습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다.
그때 매번 이곳에 묵을 때마다 연습하던 그 작은 공간은 아직도 잠자리 보료 위쪽에 여분의 공간으로 그대로 있었다.
스퀘어박스 연습을 하던 그 공간의 길이가 얼마나 되나 새삼 궁금했다.
길이를 재어볼 줄자 같은 것도 없어 난 그 공간에 엎드려 보았다. 내 신장으로 그 길이를 가늠해보기 위함이었다. 대략 160cm 정도의 가로 세로 길이인 듯 했다. 내 키 보다 발목정도 모자라는 길이였다. 내 신장이 178cm이니까 약 20cm 모자라더라도 그 정도일거라고 추정됐다.
참으로 감회스러웠다.
그때만 해도 어떻게 내 자신이 그 스퀘어박스 베이직 연습에 그렇게 몰두할 수 있었는지.... 그저 미친 듯이 그 연습만 죽어라고 했으니까.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하고 또 어느 정도까지라도 남들한테 뒤지기는 싫고... 생소한 왈츠를 시작하고 보니 너무 뒤처져서 내 뜻대로 되지는 않고.
오기 반 승부욕 자존심 그리고 왈츠를 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 그것이 나를 스퀘어박스 베이직 연습에 몰입시킨 힘이었을 게다.
내가 동호회 게시판에 골방에서 발가벗고 그 연습을 한 내용을 처음 올렸을 때, 여러 사람들이 재미있어 했고. 나의 연습 열의에 찬사를 보내준 기억이 아스라이 떠올라서 입가에 미소가 나도 모르게 번졌다.
그때를 생각하며 오늘 다시 그 당시 상황 그대로 연습을 해보기로 마음먹고 그때와 동일한 모습으로 무료한 시골 골방에서의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어차피 갈아입을 옷도 준비해오지 못한 상태라서 내 몸에 걸쳤던 모든 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의 상태로 양말만 신고 그때를 생각하며 스퀘어박스 베이직을 시작했다.
연습 시간을 측정키 위해 옆에 놓여진 TV를 켜두고.
벽을 향해 [완, 투우... , 쓰리, 앤..] 불과 석 달 전 [무대뽀 전법]으로 했던 그 스퀘어박스 스텝이 이제는 나름대로 요령이 생겨 있었다.
그때는 [투우...}에서 사이드 보폭이 어거지로 벌려도 채 1m도 못 뻗쳤는데, 지금은 다리를 옆으로 뻗고 살짝만 밀어도 나 자신이 놀랄 만큼 엄청나게 멀리 밀려났다. 지금은 골방의 내 연습 공간의 범위를 넘을 정도로 옆으로 발이 뻗쳐졌다.
멀리 뻗쳐진다고 좋은 건 아니지만 연습의 효과를 위해 가능하면 난 사이드 스텝을 최대로 밀어 뻗는 습관이 배어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문제로 지도 선생님께서 중심도 못 잡으면서 무조건 길게 멀리만 뻗으려고 한다고 주의를 주셨지만 이제는 내 능력껏 멀리 밀어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어 그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석 달 전 아무것도 모르면서 박스 베이직 연습을 왜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면서 엉덩이는 뒤로 쑥 빼고 체중이동도 안 되는 상태로 무식하게만 무대뽀로 무조건 밀어붙였던 그때의 생각이 났다.
얼마나 무모하고 엉터리 연습이었을까.
그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 하는 왈츠의 가장 기본 학습인 스퀘어박스 베이직 연습만 하더라도 내 자신의 연습이 너무 세련되었다. 동작과 자세가 정확히 하려고 노력하고 그 연습을 왜 해야 하는지 의미도 음미하며 하니까 불과 몇 달의 세월이 나의 왈츠 인생을 이렇게 많이 변화를 시켰구나 싶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고 엉터리 동작으로 했던 연습이었지만 발목과 다리의 힘이 길러졌고 자세도 잡혀갔고 차츰차츰 연습 요령도 터득할 수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에 도달했으니...
그 무식한 [무대뽀 전법] 연습이야말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 셈이다.
한여름 밤의 무더위 속에 내 열기가 골방을 가득 채워져 후끈 거렸다. 온몸은 땀범벅이 된 건 말할 나위없었다. 머리에는 땀이 증발하여 모락모락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 했다.
내 몸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은 장판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고이고 양말은 어느새 흔건히 젖어 물걸레가 되어 있었다.
바깥에는 장대비가 쏟아지고...
방안의 내 몸을 타고 땀방울도 비 오듯 하고...
그래도 난 즐겁고 스퀘어박스 베이직 연습이 상큼하고 새로운 맛으로 내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이 방안에서 몇 달 전 할 때는 몰랐던 의미를...
[원]에서 뒤로 오리 궁뎅이처럼 내밀고 앞발만 쑥 내밀었던 엉터리가 이제는 [원]에서 살며시 다운하며, 앞으로 발을 예쁘게 밀고 스윙으로 휙 밀어서 체중이동을 가볍게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이제는 엉덩이를 뒤로 뺄래야 빠지지도 않았다. 어느새 체중과 함께 곡선을 그리며 이동되어지는 내 몸의 반사적인 동작. 그저 자신이 대견하고 만족스럽고 흐뭇하기만 하다.
[투우]의 사이드 스텝은 적당한 간격으로 옆으로 발을 내뻗어 중심 이동할 준비를 순식간에 한 후, 힙과 몸을 날려 슬며시 부드럽게 끌어올리는 쾌감. 위로 위로 반대편의 상체를 끌어 펴서 늘려 올리고 목도 늘려 치솟을 수 있는 끝까지 뽑아 올리고. 천장을 뚫고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느낌. 내 목을 기린 혹은 타조의 목이라도 만들려는 기분으로....
[쓰리] 상태의 최대의 UP에 대한 만족감을 맛보려고 의식하며 온몸을 늘리고 뽑아 올리고 펴고 치솟아 보며 나만의 희열감 환희 쾌감을 맛보기도 했다.
부드러운 상체 스웨이가 이루어지고 홀딩 자세를 취한 팔과 어깨가 기울거나 올라가거나 움직이지 않도록 애쓰는 게 요즘의 연습의 핵심임을 의식했다.
나의 기본 스퀘어박스 베이직 연습은 몇 달 전에 비하면 많은 발전과 향상된 나의 모습에 스스로가 놀라기도 했다. 오늘 새삼 깨닫고 만족스러운 점은 [원]에서 전진 혹은 후진 체중 이동이 정확해졌다.
의도한 만큼의 충분한 다운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내 발끝에 힘이 붙었다는 의미일 게다.
나의 발가락과 발바닥 앞 즉, 볼이 이제 내 자신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강한 힘이 생겨 있었다. 그래서 [원] 동작은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근원이 되었고. 무엇보다 [쓰리]로 도달하는 라이징 라이징. 그리고 최대의 UP동작에서 동요 없이 내 몸을 지탱하고 뻗어 올릴 수 있다는 사실. 이 얼마나 대견스럽고 놀라운 일인가!
흐뭇 만족, 정말 무대뽀로 스퀘어박스 베이직에 전념한 연습의 결과치고는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단지, 아직까지 불만스럽고 미흡한 점은 [투우] 시작 사이드 스윙 시 힙을 날릴 때 혼자서는 잘못하면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거나 비틀거리는 경우가 있어 불안하고 불만족스럽다.
그래서 요즘은 단체 강습장에서 나와 신장이 비슷한 사람이 있으면 마주 붙잡고 이 연습을 하는데 그럴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중심이 약간 기우뚱할 것 같으면 아주 미세하게 살짝만 앞에 선 사람이 잡아주면 되니까. 그래서 누군가 맞잡고 박스베이직을 할 때는 내 맘껏 기량을 펼 수 있어 좋았다. 그럴 때는 선생님이 스퀘어박스 베이직 연습의 요령을 가르쳐주신 이론 그대로 내 몸으로 옮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동작을 내 기대 이상으로 내 몸이 이루어줄 때 그 기분은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리라.
난 기본박스 베이직 연습을 나름대로 이런 걸 깨닫고 터득하며 몸으로 느껴오는 덕분에 아직까지 단순반복의 그 연습에 싫증을 내거나 부담이나 거부감 없이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 나갈 것이다.
남들이 볼 때는 별것 아닌 것 같은 단순한 동작 하나하나에도 나는 깊은 의미와 음미를 통해 안 되던 것이 어느 날 되어가는 그 묘미로 인해 왈츠 본래의 홀딩하고서 우아하게 즐기는 과정 이전에도 깊은 맛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지난 몇 개월간의 내가 해온 연습과정을 생각해보며 골방에서 발가벗고 해괴한 모습으로 연습을 하니까 땀이 너무 많이 나서 30분 정도 연습을 하고 중단했다. 이제 예전보다 시간적인 양보다 질적인 연습으로 방법을 전환했다. 이제 예전처럼 무모하게 한두 시간씩 연습하기보다 짧은 시간이라도 정확하고 세련된 동작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요즘 나의 왈츠 연습 프로그램은 몇 달 전과는 달라졌다. 아무것도 모르던 초기의 무식하고 무모한 스퀘어박스 베이직 연습만 하던 걸 이제는 그것을 약간 줄인 대신 각 동작과 자세의 세련화 및 기술적인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조금 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요령과 꾀가 생긴 탓도 사실이다.
이것도 되는군 저것도 되어 가는데 하는 마음이 들어서 스퀘어박스 베이직의 양이 줄어드는 게 불안하기는 하다. 예전 같았으면 되는지 안 되는지도 몰랐고 무조건 잘 안되니까 연습시간이라도 길게 해야 마음이 편했는데...
아직 여성과 홀딩하고는 스텝도 못 밟으면서 벌써부터 요령을 피우다니 한편으론 태만해진 자신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스퀘어박스 연습을 끝내고 요즘에 신경 쓰는 무릎 위 허벅지 뒤 근육 강화를 위해 내가 개발한 [눌러눌러] 운동을 발 바꿔가며 몇 번 하고는 찬물을 끼얹고 운동을 끝냈다.
바깥에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장대비가 한없이 쏟아 붓고 천둥과 번개는 요란하고. 난 객지의 골방에서 청승맞은 마음이 갑자기 들었다.
내 인생은 언제나 왜 이리도 외롭고 고독하기만 할까.
왈츠를 시작하지 않고 색소폰이라도 접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곳에 나 혼자 이렇게 버티지 못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고독과 외로움에 익숙해진 것 같은데도 아직도 그것이 두렵고 무섭다.
왈츠에 대한 환상과 즐거움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이런 분위기를 못 견디고 어느 지방 도시의 유흥가에서 환락에 빠졌을 게다.
왈츠를 접하고부터 나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은 더욱 좋아졌다. 지금처럼 객지의 골방에서조차 나 홀로 연습을 끝내고 이 글을 쓰는 여유로움까지 즐기니.
왈츠보다 나를 더 행복하고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게 지금은 없을 것 같다.
cbmp
왈츠에 흠뻑 취한 강변마을님 팟팅입니다......... 03.07.27 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