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군이 설립한 일심중고등학교
책방마을에 남아있는 특별한 교육공동체 기록
해군이 설립, 운영한 배움의 터, 참 군인정신의 역사
졸업생_박00(61세), 박00(58세)
해군이 세운 학교를 아시나요? 동해시에 가면 일심학교터를 만날 수 있다. 그곳에 가면 ‘참 군인’정신을 볼 수 있다.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며 자신의 능력을 진정하게 국민을 위해 희생했던 참 군인 말이다. 일심학교로 같이 출발해 보자.
동해시 발한동에는 해군산(海軍山)이라는 산이 있다. 해군산이라는 좀 독특한 지명을 갖게 된 사연은 이곳에 해군1함대사령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가 보이는 작은 산을 중심으로 해군기지가 있어서 해군 관련 시설 및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묵호항을 끼고 있는 산이라 해군이 정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아울러 동해선 철도가 있어서 오래 전부터 철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관사가 있었고, 이어서 해군1해역사령부에 근무하는 군인들의 관사까지 있어서 동해시에서는 부자촌으로 알려진 곳이다. 바로 이 해군산 군부대 울타리 안에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일심학교였다.
해군산에 오르면 ‘해군1함대 부속 일심학교 터’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면 학교터를 볼 수 있다. 학교터에는 예전부터 있던 학교 주변의 나무가 그대로 울창하게 있다. 그리고 학교의 역사를 알리는 안내문이 있고, 졸업생들이 선생님들께 고마움을 표한 표석도 있다. 학교 건물은 헐렸지만,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오르던 계단은 아직도 그대로이다.
이곳에서 일심학교 출신 자매를 만났다. 박00와 박00 자매는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강했다. 부모님이 아들 낳으려고 이름을 남자처럼 지었다고 했다. 다행히 남동생이 태어나서 사랑을 많이 받았다며 웃었다. 자매는 졸업앨범을 꺼내 보였다. 그 중 하나의 사진은 극장에서 애국가가 나올 때의 한 장면이라고 했다. 예전엔 극장에서 애국가가 나오면 관객 모두 일어나 같이 불렀다. 그 얘기를 듣자 정부 홍보물인 ‘대한뉘우스’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자매는 서로 일심학교 자랑을 했다.
일심학교는 교장이 해군사령관(제독)이었고, 교감은 군목이었고, 선생님들은 해군병사였다. 대학을 다니다 온 젊은 병사들이 각자 전공을 살려 일심학교의 선생이 되었다. 자매는 병사 선생님들이 모두 훌륭한 분이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졸업식장에서는 학생과 선생님 모두 눈물을 흘렸단다. 엉엉 소리 내어 울던 병사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모습이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얼마나 정성으로 가르치고 공부했으면 그렇게 사제(師弟)가 모두 울었을까?
선생님들은 윤리도덕을 강조했고, 훈육도 강하게 했다. 사랑의 매였다.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말썽을 피우면 손바닥을 맞기도 하고, 책상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벌을 받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일심학교 출신들은 사회에 나와서도 모두 모범적인 생활을 한다.
해군에서 운영하는 학교였기에 해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여학생들 교복은 해군복과 같은 세라복을 입었다. 수업시간에는 군가도 불렀다. 자매는 유창하게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하면서 <진짜 사나이>를 불렀다. 아직도 그때 불렀던 군가를 많이 알고 있었다. 소풍을 가거나 할 때는 군용차를 타고 갔다고 했다. 비록 운동장은 좁았지만 매년 운동회도 했고, 규율부가 있어 교문을 들어설 때면 복장 검사도 했다.
일심중고등학교 교기의 그림은 배를 정박시키는 닻이다. 일심학교는 야간학교였다. 주경야독의 표본이었다. 집안이 어렵거나 사정이 있어 상급학교로 진학을 못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1964년 11월에 권세춘 중사가 자신의 집에서 6명을 모아 가르친 것이 학교가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본 해군 제1함대사령부는 당시 묵호경비부 식당에서 1967년 2월 25일 중학교 과정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묵호경비부는 해군 1함대사령부의 옛 이름이다. 입학생은 40명이었다.
고등학교는 1975년 3월 3일에 설립하였다. 해군 병사들과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이 합동으로 학교건물을 지었다. 동해시민이 후원을 했고, 선생들이 모금을 했으며, 대통령 하사금도 받았다. 학생들은 참 열심히 공부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 공부를 하면서 피곤해도 학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중학교는 1969년에 1회 졸업식이 있었고, 1983년 2월 제14회가 마지막 졸업식이 되었다. 고등학교는 1986년 2월 11일 9회가 마지막 졸업식이었다. 졸업생 수는 중학교 554명, 고등학교 305명이었다.
학교수업은 일반 인문계학교와는 달랐다. 실업계 맞춤식 교육을 했다. 여학생은 부기, 주산, 타자 등을 익혔고, 남학생은 항해사와 기술 중심의 교육을 실시해서 곧바로 취업을 할 수 있게 했다. 실습실이 잘 갖춰져 있어서 실습도 충실히 이뤄졌다. 맞춤식으로 공부를 했기에 현장에서는 일심학교 출신을 선호했다.
일심학교가 좋은 평가를 받고 학생들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원인은 모두 해군 선생님들의 열의 때문이었다. 그 중 1973년 7월 20일 제1해역사 군목(군부대에 딸린 목사)으로 부임하여 일심학교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온 힘을 쓴 김수남 소령이 있었다. 김수남 군목은 일심학교에서 성경과 음악을 가르쳤다. 학교를 위해 사방으로 다니면서 기금을 조성하여 건물을 짓고,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서 동분서주 했다. 모든 졸업생이 각각의
재능에 맞춰 취업을 할 수 있도록 힘썼다. 정말 사랑과 정성으로 학생들을 대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김수남 소령은 그렇게 학생들을 위해 뛰어다니다 과로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졸업생들은 그를 기리는 표석을 학교터에 건립하였다.
두 자매는 일심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이야기 하는 내내 선생님 칭찬이 이어졌고, 주경야독 열심히 공부하던 옛 시절을 거듭 강조했다. 학교가 없어진 것은 의무교육으로 인해 더 이상 존속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지만, 이곳에 해군이 세워 운영한 특별한 학교가 있었고, 그곳에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자매는 그 당시 열성으로 가르쳤던 병사 선생님들이 많이 보고 싶다고 했다.
일심학교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당시 국민을 위한 ‘참 군인’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민국의 국민 한 사람으로서 참 뿌듯했다. 군대는 국민에게 군림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며 남은 능력을 국민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참 군인이 아닐까? 책방마을에 이렇게 소중하고 특별한 교육공동체의 기억이 남아 있다는 것은 마을의 큰 자산이다.
1964년 11월 해군 중사의 집에서 시작
1967년 2월 25일 중학교 과정 설립
1975년 3월 3일 고등학교 과정 설립
1986년 2월 11일 고등학교 마지막 졸업식
일심중고등학교 역사 안내판 제막
2018.10.18. 일심학교 옛터
대한민국 해군이 건립한 특별한 학교, 일심중고등학교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았다. 2018년 10월 18일 해군 1함대는 천정수 함대사령관과 장병, 일심학교 동창회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일심학교 옛터에서 일심학교 역사 안내판 제막식을 가졌다. 제막식은 일심학교의 운영과 교사 건립을 위해 힘을 쏟다가 과로로 유명을 달리 한 故김수남 군종목사를 추모하고 잊혀진 학교의 소중한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마련됐다.
1967년 2월25일 해군 1함대의 모태인 해군 묵호경비부에서는 일심 중학교를 설립하고 묵호경비부 식당을 교실로 삼아 수업을 시작했다. 1969년 일심 중학교 건물을 지은데 이어 1975년 고등학교 과정을 신설하고 1976년 교사를 신축했다. 일심학교는 1967년부터 1986년까지 중학교 554명, 고등학교 305명 등 총 859명의 학생을 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