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2006-09-30 16:11:11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고 수확의 계절입니다.
들녘의 황금빛 물결이 춤을 추고 빨간 감들이 주렁주렁 여린 가지를
금방이라도 부러트릴 듯 제 무게를 주체하지 못하며
여름내 접근조차 불허하던
밤들도 스스로 몸을 열어 알토란같은 밤알을 쏟아 내는 풍요의 계절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풍요를 허락한 하늘의 은총에 고마움을 전하는 감사의 계절입니다.
하지만 풍요와 결실 그리고 감사의 계절인 이 가을,
마음 한 자락을 스치듯 지나가는 허전함이 있습니다.
마치 추수가 끝난 빈 들녘처럼...
모진 비바람에도 떨어질 줄 모르던 나뭇잎이 비상이 아닌
추락의 운명을 받아드리는 것처럼 풍요로움 뒤에
소멸의 과정이 있음을 직감하기 때문일 겁니다.
삶이란 잠시 잠깐 풍요로움을 꿈꾸지만 그 풍요로움 속에 영원히
자리할 수 없음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지 옛 어른들은 ‘가엽다’‘불쌍하다’는 표현들을 자주 쓰셨는지 모릅니다.
어린 시절 그런 표현들이 참 듣기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불쌍한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애틋함이 자리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너무 좋기는 하지만 사라질 운명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삶의 근본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자리한 표현 말입니다.
어쩌면 삶이란 허전함 속에 자리하지만 그 허전함을 채워주는 것은
물질의 풍요로움이 아니라 따뜻한 시선들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모든 것이 풍요롭지만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마음 한 구석 빈 자락을
서로의 따뜻한 시선으로 채웠던 조상들의 지혜가
바로 추석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따뜻함이 나누어지지 않는 풍요로움은
더 한 허기를 느끼게 할 뿐임을 조상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