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탓 / 봄바다
요 며칠 눈과 비가 교대로 내리며 한동안 혼란스런 날씨가 이어지더니 진통을 치른 봄이 살짝 얼굴을 내밀기라도 한 듯, 따스한 기운이 온몸을 스친다. 아침 출근길, 산자락 끝에 점묘화 기법으로 찍어 모은 것 같은 몽글몽글한 노랑 산수유꽃이 피어나 어두운 구석이 환해졌다. 작년에도 저 자리에 같은 자태로 있었을 텐데 기억에 없다. 이제야 눈에 띄는 게 올해는 작년과 달리 여유가 생겼나? 나를 가만 살핀다. 지난 해, 내내 능력의 한계를 느끼며 우울했다. 관리자로서 10여 년을 넘겼으니, 처음은 오해가 있을지라도 시일이 지나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생각의 차이가 너무 다른 그녀를 설득할 수 없어서 힘들었다.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을 지닌 그녀를 날마다 대하는 게 버거웠으며, 사람이 변한다는 건 참 어렵다는 걸 실감했다.
삼 십여 명에 이르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미세한 감정을 읽어야 하는 직업인지라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며 지치기도 했으려니와, 육십에 접어들면서 어떤 일에도 별 감흥이 일지 않았다. 그전에는 해가 바뀌는 날이면 최소한 보신각 종소리 들으며 새해를 맞으려 눈을 비비며 잠을 쫓고는 했다. 수첩을 펼쳐 들고 작심삼일 될 게 뻔한 계획을 세우고, 집안의 대소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예전 노인네들 환갑잔치할 만큼 살았으니 새로울 게 없어서일까? 호기심이 사라지면 노인이 된다는 데 맞는 말인 듯싶다. 작년 내내 스트레스를 받아, 고혈압과 고지혈증 약을 먹기 시작했다. 내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기 싫어 애꿎은 나이 탓을 하며 모든 일에 심드렁해졌다.
벌써 십수 년 전이 되었다. 아버님 살아계실 제, 조부모님 제사를 지내려 한데 모이던 아버님 형제들로 북적이던 시댁에서 그분들의 수발을 들어드리느라 힘들었던 시절.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던 그들의 과장된 몸짓과 말투, 쾌활한 웃음소리가 어제인 듯 선명하다. 큰방에서 두루 식사를 마치고 작은방으로 옮기며 후식도 먹고 싶다던 첫째, 둘째 고모님들의 두런거리던 소리도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그녀들이 아마 70대 초중반이었으리라. 사람을 앞에 두고도 이름이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기억도 깜박깜박하니 큰일이라며 나를 힐끗 보며 “어쩌냐. 이 나이를?” 하셨다. 그때에도 강의를 업으로 하는 유명 강사들보다 더 재미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던 분들이었지만 늙어 생기는 어려움을 토로하며 좋은 방법 있으면 말해달라 하셨다. 뭐라 답변을 해 드렸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쾌활한 그녀들의 끊임없는 달변과 식성이 부러웠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그 시절 그녀들에 훨씬 못 미치는 육십 대인데도 아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요즘 잘 지내지?”라는 말로 얼버무리기 일쑤다.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거 있냐? 거시기.”라며 스스로 답답해 가슴을 친다. 이런 날이 자주 이어지니 이러다 말을 잃어버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그분들은 70이 넘어서도 그렇게 유려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거기에 비하면 나는 너무 빠른 속도로 노화하고 있다. 자신을 잘 다스리지 못한 데서 오는 후유증인가 싶기도 하다.
신문에서 어느 생명과학부 교수의 칼럼을 읽었다. 현재는 노화를 질병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노화를 표적으로 하는 임상시험 자체가 가능하지 않지만,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생명과학과 의학은 노화의 메커니즘을 이해해 가면서 이를 지연하거나 역전시킬 방안들을 쏟아 내고 있다고 한다. 과학기술이 지금처럼 빠르게 발전한다면 인류의 수명이 어디까지 늘어날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120살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사는 시대를 긴 안목으로 조망해야 한다는 글이었다.
60대에도 이러는데 120살이라니! 더구나 그 교수는 그런 미래가 우리 안에 이미 와 있다고도 했다. 으음, 그렇다면 이제 겨우 반 도착한 셈이다. 이리 보면 지금 얼마나 젊은 날인가! 그런데 그까짓 감정의 응어리를 풀지 못해 힘들게 산 지난 날이 안타깝고도 아깝다. ‘내가 너를 위해 이만큼 했으니, 너도 눈곱만큼이라도 바뀌어야 하는 게 도리 아니야?’라는 속 좁은 소견머리 때문에 일 년을 그리 힘들게 살았으니 어리석기 한량없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옛 말을 다시 새기며 나이 이 까짓것, 무게를 벗어 던지고 다시금 배우고 읽고 쓰며 수양해 나가리라.
첫댓글 봄바다님이 느끼는 기억력과 감정, 심드렁해지기 쉬운 일상을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어렸을 적 바람이 적은 날 연을 날라면 자꾸 가라앉을려고 하는데 느슨해진 연줄을 잡아채면 다시 높이 떠오르거든요. 글쓰는 시점이 느슨해진 생활의 연줄을 잡아채는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곧 바람을 탄 봄바다연이 훨훨 날겠네요.
우와 댓글도 이렇게 문학적으로 쓰시나요. 감탄하고 갑니다.
봄바다 선배님이 계셔서 저는 참 좋아요.
저보다 살짝 늦게 글을 올리는 것도 맘에 들고(하하), 저와 비슷한 고민이라 내용도 공감하며 읽거든요.
머문 곳에서 올해도 행복하게 지내시길 빕니다.
저도 너무너무 공감되는 건 왜인가요? 저랑 똑같은데요. 엉엉.
저도 교장샘이 장난스럽게 정곡을 찌르는 질문하실 때 넘 좋아요. 글 고맙습니다.
저도 같은 고민입니다. 공감합니다.
톡톡 터지는 산수유꽃처럼 올 한 해 예쁘게 터지기를 바랍니다.
교장선생님! 대추차만큼이나 찐한 감정이 담겨 있는 글이네요. 아침부터 좋을 글 읽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주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힘내세요!
저도 그렇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헤쳐 나가시는 것을 보고, 그 뒤를 따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