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朴第二十八
제28장, (비유컨대,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이 아주 소박한) 후박나무로 되돌아감에 대해 논한다.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그 (일부러 일삼는) 수컷의 모습을 (스스로) 알아차리면, 그 (저절로 그러한) 암컷의 모습을 (저절로 그러하게) 지키게 되고, (비유컨대) 천하가 (저절로 그러하게) 되돌아오는 시내의 모습을 일삼게 된다.
雄以喩尊, 雌以喩卑. 人雖自知其尊顯, 當復守之以卑微, 去雄之强梁, 就雌之柔和, 如是則天下歸之, 如水流入深谿也.
“수컷雄”은 (일부러 일삼아 ‘위’로) 높아지는 모습을 비유하고, “암컷雌”은 (저절로 그러하게) “아래”로 낮아지는 모습을 비유한다. 사람이 이른바 스스로 그 (자신이 일부러 일삼아 ‘위’로) 높아지고, (‘앞’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따라서) 마땅히 (“아래”로 낮아지는 모습) 그것을 (저절로 그러하게) 되돌이키고 “지키게 되며”, (따라서 마땅히 그 자신이 일부러 일삼아 ‘위’로 높아진 모습을 스스로) “아래”로 낮추게 되고, (드러난 모습을 스스로 ‘뒤’로) 숨기게 되며, (따라서 마땅히 그) “수컷”의 (일부러 일삼아) 굳세고 분별하는 모습(梁; 分·別)을 (스스로) 떠나보내게 되고, (그) “암컷”의 (저절로 그러하게) 부드럽고 조화되는 모습을 (스스로) 취하게 되는데, (이른바 일부러 일삼아 높아진 사람이 스스로 “아래”로 낮아지는 모습) 그것과 (더불어) 같이 하면, (따라서 마땅히) “천하”가 (저절로 그러하게) 그에게 되돌아오게 되는데, (비유컨대 작은) 물줄기가 (저절로 그러하게) 깊은 “시내”로 흘러드는 모습과 (더불어) 같이 하게 되는 것이다.
爲天下谿, 常德不離,
(이른바) 천하가 (스스로) 되돌아오는 시내의 모습을 일삼게 되는 것은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는) 덕스러움德이 (저절로 그러하게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떠나가지 않는 바가 늘 그러하고,
人能謙下如深谿, 則德常在, 不復離於己.
(이른바) 사람이 (스스로) 다른 사람을 존중하여 (자신을) “아래”로 낮추는 모습, (비유컨대 작은 물줄기가 저절로 그러하게 되돌아오는) 깊은 “시내”의 모습과 (더불어) 같이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따라서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는) “덕스러움(德; 自然)”이 (저절로 그러하게) “늘 그러하게” (자신의 마음에) 자리하게 되고, (따라서)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떠나가는 바”를 “되돌이키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復歸於嬰兒.
(자신의 마음을 일부러 일삼아 알아차리는 바가 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되돌이키고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當復歸志於嬰兒, 惷然而無所知也.
(이른바,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는 “덕스러움德”이 저절로 그러하게 “늘 그러하게” 자신의 마음에 자리하게 되면, 따라서) 마땅히 (자신의) 마음(志; 心)을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되돌이키고 되돌아가게 되며”, (따라서 마땅히 자신의 마음이 “어린아이”의 모습과 더불어 같이 하게 되고, 따라서 마땅히 자신의 마음이 “어린아이”와 같이) 어리석어지게 되며, 따라서 (마땅히 자신의 마음이 일부러 일삼아) 알아차리는 바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知其白守其黑, 爲天下式.
그 (자신이 일부러 일삼아) 밝아진 바를 (스스로) 알아차리면, 그 어렴풋한 바를 (저절로 그러하게) 지키게 되고, 천하의 법령을 (저절로 그러하게) 일삼게 된다.
白以喩昭昭, 黑以喩黙黙. 人雖自知昭昭, 明白當復守之以黙黙, 如闇昧無所見, 如是則可爲天下法式, 則德常在.
“백白”은 (일부러 일삼아) 밝은 바와 밝게 하는 바를 비유하고, “흑黑”은 (저절로 그러하게) 어렴풋한 바와 어슴푸레하게 하는 바를 비유한다. 사람이 이른바 스스로 (그 자신이 일부러 일삼아) 밝고 밝게 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따라서 마땅히 저절로 그러하게) “밝고 밝게 하는 바”를 (스스로) 알아차리게 되고, (따라서) 마땅히 (저절로 그러하게 “어렴풋하고 어슴푸레하게 하는 바”) 그것을 (스스로) 되돌이키고 “지키게 되며”, (따라서 마땅히 저절로 그러하게) “어렴풋하고 어슴푸레하게 되고”, (따라서 마땅히 저절로 그러하게) 어렴풋하고(闇; 黙) 어슴푸레한(昧; 黙) 채, (일부러 일삼아) 살핌이 없는 바와 (더불어) 같이 하게 되는데, (이른바 일부러 일삼아 “밝고 밝게 하는” 사람이 스스로 저절로 그러하게 “어렴풋하고 어슴푸레하게 하는 바”) 그것과 (더불어) 같이 하면, 따라서 (마땅히) “천하의 법령(法令; 法式·式)”을 (저절로 그러하게) “일삼을” 수 있게 되는데, 왜냐하면 (스스로 저절로 그러하게 “어렴풋하고 어슴푸레하게 하는 바” 그것과 더불어 같이 함으로써,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는) “덕스러움(德; 自然)”이 (저절로 그러하게) “늘 그러하게” (그에게) 자리하게 되기 때문이다.
爲天下式, 常德不忒,
(이른바) 천하의 법령을 일삼게 되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저절로 그러하게 자리하는) 덕스러움德이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으로부터) 어긋나지 않는 바가 늘 그러하고,
人能爲天下法式, 則德常在於己, 不復差忒.
(이른바) 사람이 “천하의 법령”을 “일삼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는) “덕스러움(德; 自然)”이 (저절로 그러하게) “늘 그러하게” 자신의 마음에 자리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마음에 저절로 그러하게 자리하는 “덕스러움德”이 “늘 그러하게”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爲으로부터) 벗어나거나 “어긋나는 바”를 “되돌이키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復歸於無極.
(몸이 일부러 일삼아) 끝점을 다함이 없는 바를 되돌이키고, (그러한 몸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德不差忒, 則常生久壽, 歸身於無窮極也.
(이른바, 자신의 마음에 저절로 그러하게 자리하는) “덕스러움(德; 性·命)”이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爲으로부터) 벗어나거나 “어긋나지 않으면”, (그러한 성性 대로 저절로 그러하게) “늘 그러하게” 살게 되고, (그러한 명命 대로) 목숨이 (저절로 그러하게) 오래 가게 되는데, (이른바 자신의) 몸(身; 性·命)이 (일부러 일삼아) “끝점”을 다함이 “없는 바로” (저절로 그러하게)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그 (자신이 일부러 일삼아) 영화로워진 바를 (스스로) 알아차리면, 그 욕된 바를 (저절로 그러하게) 지키게 되고, (비유컨대) 천하의 계곡이 되는 바를 (저절로 그러하게) 일삼게 된다.
榮以喩尊貴, 辱以喩汚濁. 人能知己之有榮貴, 當復守之以汚濁, 如是則天下歸之, 如水流入深谷也.
“영화로움榮”은 (일부러 일삼아) 높아지고 귀해진 바를 비유하고, “욕됨辱”은 (저절로 그러하게) 더러워지고 흐려진 바를 비유한다. 사람이 (이른바 그) 자신이 (일부러 일삼아) “영화로워지고” 귀해진 바를 가졌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면, (따라서) 마땅히 (저절로 그러하게 “욕된 바”) 그것을 (스스로) “되돌이키고” “지키게 되며”, 따라서 (저절로 그러하게) 더러워지고 흐려지게 되는데, (이른바 일부러 일삼아 높아지고 귀해진 바를 가진 사람이 스스로 저절로 그러하게 “욕된 바”) 그것과 (더불어) 같이 하면, 따라서 (마땅히) “천하”가 (저절로 그러하게) 그에게 “되돌아오게 되는데”, (비유컨대 작은) 물줄기가 (저절로 그러하게) 깊은 “계곡”으로 흘러드는 것과 (더불어) 같이 하게 되는 것이다.
爲天下谷, 常德乃足,
(이른바, 비유컨대) 천하의 계곡이 되는 바를 일삼게 되는 것은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는) 덕스러움德이 이내 (그러한 사람에게) 이르게 되는 바가 늘 그러하고,
足, 止也. 人能爲天下谷, 則德乃常止於己.
“족足”은 이른다는 말이다. (이른바) 사람이 (비유컨대) “천하의 계곡이 되는 바를 일삼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이른바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는) “덕스러움(德; 自然)”이 “이내” “늘 그러하게” 그러한 사람(己; 性·命)에게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復歸於樸.
(비유컨대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이 투박한) 통나무를 되돌이키고, (그러한 통나무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復當歸身於質樸, 不復爲文飾.
(마땅히 저절로 그러한) 몸(身; 性·命)을 “되돌이키면”, 마땅히 (비유컨대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爲이 아주) 투박한 “통나무(樸; 自然)”로 “되돌아가게 되는데”, (이른바 마땅히 비유컨대 일부러 일삼은) 겉무늬(文; 有爲)를 “되돌이키지” 않으면, (마땅히) 겉치레(飾; 有爲)를 일부러 일삼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樸散則爲器,
(비유컨대,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이 아주 투박한) 통나무는 (저절로 그러하게) 흩어짐으로써 (그) 공능功能을 일삼는데,
器, 用也. 萬物之樸散則爲器用也. 若道散則爲神明, 流爲日月, 分爲五行也.
“기器”는 (작용의 과정적 모습이자 결과적 모습으로서의 저절로 그러한) 공능功能을 뜻한다. (이른바, 비유컨대) 만물은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爲이 아주 투박한) “통나무(樸; 道·自然)”가 (저절로 그러하게) “흩어짐”“으로써” (저절로 그러하게) “일삼아진” “기器”로서의 (저절로 그러한) 공능功能이다. 이른바, 도(道; 自然)는 (저절로 그러하게) “흩어짐”“으로써”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爲이) 신령스러운 바(神; 自然·性)와 밝은 바(明; 自然·命)를 “일삼고”, (저절로 그러하게) ‘흐름’으로써 해와 달을 “일삼으며”, (저절로 그러하게) ‘나누어짐’으로써 오행五行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聖人用之則爲官長.
성인의 공능功能은 이른바 (천하를 다스릴 온갖) 벼슬아치를 일삼고, (그들이 따라야 할 다스림의) 원칙을 일삼는 것이다.
聖人升用則爲百官之元長也.
(이른바) “성인”은 (비유컨대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이 아주 소박한 “통나무”의) 공능(功能; 自然)에 올라탐“으로써”, (“천하”의 임금을 도와서 “천하”의 백성을 다스릴) 온갖 “벼슬아치”를 “일삼고”, (그들이 이루어야 할 다스림의) 목적과 (그들이 따라야 할 다스림의) “원칙”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故大制不割.
따라서 (성인은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이 아주) 큰 바(大; 道)로써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는 천하를) 억누르는데, (따라서 천하를 일부러 일삼아) 나뉘게 하지 않는 것이다.
聖人用之則以大道制御天下, 無所傷割, 治身則以大道制御情欲, 不害精神也.
“성인”의 공능功能은 이른바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爲이 아주) 큰 도(道; 自然)로써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는) “천하”를 “억누르고” 마름질하는 것인데, (따라서 “천하”를 일부러 일삼아) 다치게 하거나 “나뉘게 하는” 바가 없고, (“성인”이) 몸을 다스리는 모습은 이른바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爲이 아주) 큰 도(道; 自然)로써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는) 마음(情; 心)과 (마음이)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欲를 “억누르고” 마름질하는 것인데, (따라서 본래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음無爲이 아주) 면밀한 바(精; 自然·性)와 신령스러운 바(神; 自然·命)를 (일부러 일삼아) 다치게 하지 않는 것이다.
첫댓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모두 저의 부족함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