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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양현은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그것조차 알 수가 없었다. 자기 집 문을 밟아 서자 그는 이 때까지의 상념과 결심을 총결산해서 짤막하게 결심하였다. 주인이라는 의식이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는 어찌 되었든 아들을 안심시키고 살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왕씨는 여전히 아들의 옆에 앉아 인자한 어머니로서 병자를 간호하고 위로해 주고 있었다. 그 여자는 벌써 며칠 동안 아들을 위해서 한잠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피로가 말이 아니었다. 건강은 상해서 옆에서 보기에도 가엾도록 쇠약해 있었다. 그러나 왕씨는 이 금덩이 같은 아들의 회복을 위해서는 자신의 건강 같은 것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남편이 들어오자 왕씨는 그의 눈을 거기에서 무엇이라도 찾으려는 듯이 빤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눈을 다시 불행한 아들에게로 돌리며 아무 말도 없었다. 그것으로 충분한 듯하였다. 남편은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아들은 이때 눈을 감고 잠깐 잠들은 듯하였다. 이러한 혼수상태가 어제오늘로 부쩍 심하였다. 잠을 자는가 생각하면 별안간 소스라쳐 깨어나 헛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이유 없이 눈물을 쏟는 수도 있었다. 그래서 더구나 부인은 아들의 옆을 떠날 수가 없었다. 양현은 아내의 옆으로 걸어가 앉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아들의 병세가 어떠냐고 물었다.
왕씨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보일 뿐이었다. 그 이상 묻지도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양현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러자 조용히 눈을 뜬 아들이 힘없는 눈빛으로 아버지를 지켜보며,
“이번 행로에 회보나 있삽나이까?”
하고 역시 힘없는 음성으로 말하였다. 양현은 거짓말을 해서 아들을 달래 보려고 하였으나 그 가엾은 눈에 부딪치자 솔직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너는 내 말을 단단히 들어라. 사람은 모름지기 결심 여하에 달려 있는 법이로다. 네가 결심하면 너를 구할 것이로되, 그렇지 못하면 어찌 부모의 마음이 슬프지 아니하리요. 그 낭자는 이미 혼사를 타처에 행례하였은즉 무가내하라. 부질없이 생각하지 말고 다른 곳에 통혼함이 무방하니 매파를 놓아 숙녀를 구하면 어디 간들 추 낭자만한 배필이 없으리요. 너는 부모의 간장을 이 이상 태우지 말고 병세를 관억하여 수이 회복하면 문호를 위하여 만분다행이니 너는 깊이 생각하라.”
“추씨 아니오면 월궁의 항아라도 불관이옵나니, 아버님은 다시 혼인지사를 의논하지 마소서.”
하고 양산백은 다시 눈을 감으며 얼굴을 저쪽으로 돌려 버렸다.
왕씨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만 있었다. 양현은 더 달래며 결심을 시켜 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들은 그 이상 죽은 듯이 말이 없었다.
이날 밤 양산백은 몇 번이나 혼수상태에 빠져 의식을 잃고 하였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헛소리를 지르며 추양대를 찾고, 추양대가 거기에 와 있다고 손을 들어 까불고, 두 눈을 무섭도록 하얗게 까뭉개곤 하였다. 이 때문에 양현 내외는 거의 절망할 지경이었다.
이튿날도 이러한 상태는 계속되었으나 오후가 되어 약간 조용해진 듯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좋아진 것이 아니라 악화되고 최후를 예고하는 저 폭풍 전야와도 같은 극히 위험한 순간이었다. 아니나 다르랴, 그는 지극히 냉정해져서 거의 정상적인 인간처럼 말하였다.
“3년을 이슥토록 공부하옵기는 입신양명하와 이현과모하고 문호를 빛내고자 하였더니 괴이한 병을 얻어 집에 돌아와 부모께 불효를 끼치오매 이제 구천지하에 죄인이 되올지와 인력으로 하올 바 아니오니, 다만 엎디어 바라건대 양친은 소자를 생각하지 마시고 만수무강하옵소서. 추 낭자를 다시 보지 못하고 죽기를 당하오니 진실로 눈을 감지 못할지라. 봉서 하나를 닦아 두옵나니 소자 죽거든 서간을 갔다가 추 낭자에게 전하여 함원치사함을 알게 하시고, 소자의 시신을 추낭자 왕래하는 길가에 묻어 주사 죽은 혼백이라도 낭자 얼굴을 다시 보게 하소서.”
이것이 그의 부모에게 하직하는 마지막의 말이었다.
아! 얼마나 불행한 양산백이었던가. 그는 그렇게도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만나지 못하고 감기지 않는 눈을 억지로 감아 버렸다. 왕씨와 양현이 손을 잡고 늘어지며 천지가 진동하도록 울어댔으나 이 엄연한 현실에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는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양현과 왕씨의 비애는 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들을 따라 죽겠다고 몸부림을 치며 몇 번인가 실신 졸도하였다. 그래서 더구나 이 양 상서의 집은 슬픔이 몇 배로 늘어났다. 충실한 비복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겨우 수습은 되었으나 이 다시없는 불행을 씻을 길은 없었다.
양현은 아들의 소원대로 추양대가 신부 되어 머지않아 신행할 길가에 묻어 주기로 하였다.
한편 추양대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녀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그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회라는 것은 효도와 사랑의 양 갈래 길에 끼어서 고통하고 있는 이러한 단순한 여자에게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최후의 순간을 말하였다. 효도를 완성하고 사랑을 완성하려는 두 가지 욕심에 불과한 것이다. 그때를 찾아 죽으려고 그녀는 굳게 각오하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매우 어리석은 소녀의 단순한 꿈 같기도 하나 추양대 같은 순진한 마음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부명을 존중하고 혼례를 올리는 데 서슴없이 응하였다. 신랑이 그 여자를 비로소 보고 그 아름다움에 황홀하여 어찌할 줄 모르게 될 만큼 이날의 단장을 멋있게 꾸미기로 하였다. 추상서와 그의 아내가 보고 딸의 변심에 놀라 무한히 기뻐하였을 정도였다.
첫날밤의 어려운 곤란도 추양대는 재치 있게 넘겨 버렸다. 열다섯 살의 나이 어린 신랑을 적당히 금을 그어 놓는 것쯤은 그녀의 슬기로서는 문제가 아니었다. 추양대는 양산백을 남편으로 알고 그를 위하여 절개를 지키겠다는 굳은 결의가 있었다. 그래서 신랑이 접근해 오는 순간에도 그녀의 마음과 눈앞에는 언제나 양산백의 환영이 아른거리며, 그녀의 마음과 몸을 지켜주었다. 다행히 그녀는 이러한 과정을 아무런 부끄럼 없이 보낼 수 있었다. 이 명예를 그녀는 양산백에게 돌려주었다. 그가 이미 죽은 것을 모르고 있는 추양대는 지금이라도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가서 자기의 명예로 정조를 바치고 싶을 정도였다.
삼일잔치가 지나고 신행하게 되었을 때에도 추양대는 자기가 먼저 자진해서 어머니에게 재촉하였을 정도였다. 이때 그녀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다시는 만나 뵙지 못할 것이라고 이상한 말을 남겨 놓았으나 추 상서 내외는 그것을 다만 딸의 하직하는 인사라고 간단하게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여자에게 있어서는 그 말은 최대의 의미와 결의를 두고 있었다.
그것이 사실로 증명되었다. 추양대가 신랑의 후행을 받으며 구가로 행하는 신행의 행렬은 매우 화려하였다. 양가의 부귀와 영화가 이 행렬에 과시되어 누가 보아도 신랑 신부를 부러워할 정도였다.
추양대는 신부의 예복을 화려하게 차려입고 칠보금덩에 높직이 앉아 시녀들이 앞뒤를 옹위하며 갔다. 이들 시녀들은 저마다 녹의홍상에 아름답게 단장하고 쌍쌍으로 벌려 서서 앞을 인도하고 뒤에는 금안백마에 높직이 앉은 신랑이 자기의 행운을 과시하면서 서서히 따르고 있었다.
운남산 황령이라는 고개에 올라섰을 때 그곳에서 아까부터 기다리고 앉아 있던 한 젊은 남자가 이 화려한 신행의 행렬에 접근해 왔다. 그는 행렬의 선두에 선 하인들의 제지를 받고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그에게 악의가 없는 것을 그의 언동을 보면 이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남양 땅 양 상서 댁 노복이러니 우리 댁 부인께서 분부하시되, 이 서간을 추소저께 드리면 자연 아실 일이 있다 하시기로 바치려 하나이다.”
이런 말에 놀란 것은 다름아닌 신부 추양대였다. 그 여자는 칠보금덩 안에서 졸음이 와 눈을 감을 듯 말 듯하다가 남양 땅 양상서라는 말에 벌떡 놀라 눈을 뜨고 밖을 내다본 것이었다.
신부는 이내 그 젊은이의 목적을 묻고 가지고 온 봉서를 바치라고 하인들에게 분부하였다. 봉서를 받아본 추양대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그것은 그렇게 그리고 사랑하던 양산백의 필적이 아닌가. 필적만 보고도 양산백을 알아보며 반가운 눈물이 솟아오를 정도였다.
추양대는 아이들처럼 기뻐하고 가슴이 두근두근하면서 그것을 뜯어 펼쳐 들었다. 처음 순간에는 앞이 캄캄하여 보이지 않기도 하였다. 이윽고 그녀는 읽기 시작하였다.
‘박명 죄생 양산백은 삼가 글월을 추 소저 좌하에 부치나니, 우리 양인이 인연이 지중하기로 3년을 동거처하여 피차에 심중 맹약을 가져 불전에 도축하니 천지로 증참이 되온고로 백년을 잊지 말자 하올 때에는 피차에 남자로되 맹약함이 금석 같거늘 하물며 여화위남을 안 연후에 다시 범연하리요. 생이 내심에 숙녀를 만나 평생을 쾌락하리라 하고 창천께 예하였더니 조물이 시기하여 소저가 본댁으로 가온 후 주야로 생각이 간절하기로 낭자를 찾아 꿈같이 만나 기쁜 말을 듣지 못하고 놀라운 말씀이 청천백일에 벽력이 일신을 분쇄하매 어이 살기를 바라리요. 죽기는 슬프지 아니하되 학발쌍친을 사절하니 불효막심이라. 구천 타일에 무슨 면목으로 조상을 뵈오며, 후세의 꾸지람을 어찌 면하며, 낭자를 차생전에 다시 만나 뵙지 못하고 황천으로 돌아가니 이 유한을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리요. 죽기를 임하여 두어 자로 생의 뜻을 고하며, 생이 부모께 고하여 낭자의 신행길에 묻어 주시면 낭자 왕래지시에 성음이나 들어 원혼이라도 위로하여 주시기를 바라오니 원컨대 낭자는 왕래지시에 한 잔 술로 무주고혼을 위하여 주시면 사무여한입니다. 죽기를 임함에 정신이 혼미하여 대강 기록합니다.’
추양대의 눈에서는 벌써부터 눈물이 주룩주룩 쏟아져 편지의 검은 먹 글씨를 번져 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잠시 동안 그것을 치울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무릎 위에 놓은 채 울고만 있었다.
그 편지는 죽기 전 임박하여 쓴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또 어떻게 되어 이런 곳에서 이 편지를 받게 되었을까? 얼른 편지의 마지막 글귀를 생각하고 편지를 가져온 창두를 불러 양산백의 무덤을 물어보았다.
창두는 바로 그 옆길 위로 산언덕에 있는 이제 며칠도 안 된듯싶은 새 무덤을 가리켰다. 추양대는 금덩에서 내려 신부의 예의도 잊은 채 그 무덤으로 달려갔고, 그리고 무덤 앞에 쓰러져서 목놓아 울기 시작하였다.
아까부터 백마를 세우고 그대로 마상에 앉은 채 이 전후 광경을 십분 적의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던 젊은 신랑은, 이때 더 이상 견딜 수 없는지 말에서 내려 통곡하고 있는 신부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아내의 팔을 잡아 힘주어 앞세웠다.
여기서 신랑·신부 사이에 잠시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러나 제아무리 소년등과한 명문대가의 천재라 하더라도 추양대의 굳은 의지와 재치 있는 설교에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수년 신랑은 이러한 아내를 원망하며 이 신행에 참가하고도 잠자코 구경만 하고 있는 신부집 남녀 노복들을 비난과 적의의 시선으로 훑어보면서 길로 나와 지키고 있었다. 전부가 한통속이 된 것 같아 분하고 미워서 그는 견디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이것을 기회로 추양대는 이제는 식을 갖추어 본격적인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노복들이 사방으로 달음질을 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칠보금덩을 옹위하며 따르던 시녀들은 집사가 되어 상주를 도왔다.
즉석에서 꾸민 감동에 찬 축문을 읽고 났을 때 실로 기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이 세상의 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현상이었다.
이 공전절후의 기적으로 해서 질겁하고 이른바 혼비백산한 시녀라든가 노복이라든가 하인 등속의 양산백의 무덤 앞에 모여 서 있던 하례배들은 죄다 엎어지고 자빠지고 하면서 정신없이 도망쳐 달아났으나, 그중 맨 나중까지 대담하게 지켜보고 있던 양 상서 집 창두의 보고에 의한다면 그것은 이러하였다.
불행한 신부가 눈물을 뿌리며 축문을 읽고 났을 때 그때 거기에 모여 있던 모든 남녀는 예의 분개한 신랑만을 제외하고 죄다 감동해서 역시 눈물을 뿌리고 있었다. 그러자 난데없는 오색구름이 무덤에서 뭉게뭉게 돌기 시작하였다. 창두는 웬 구름인가 하고 놀라서 눈을 비비며 그것을 똑바로 지켜보았노라고 다짐하기까지 하였다.
그러자 다음 순간 봉분의 꼭대기에서 한 가닥 찬란한 무지개가 비쳐 올랐다. 그런가 해서 놀라서 보고 있을 때, 별안간 쾅하고 천지가 뒤흔들리며 그 무덤이 쫙 갈라졌다. 이 무서운 벽력같은 소리에 모여 서 있던 남녀들은 죄다 뿔뿔이 도망쳐 버렸다. 창두도 겁에 질려 땅에 엎드리고 기어서 겨우 늙은 소나무 뒤로 몸을 피하여 그 소나무 줄기를 부여잡고 지켜보았다.
이때는 무덤 앞에서 축문을 읽던 신부는 보이지 않고, 언제 어떻게 되었는지 그 여자는 그 갈라진 무덤 속으로 뛰어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아까부터 분개하여 신부의 뒤에 서서 지키고 있던 신랑이 그 갈라진 구멍으로 달려들어 그 여자의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땀을 뻘뻘 흘리며 무서운 형상으로 그것을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치마는 발기발기 찢겨져 그 여자의 하얀 다리가 힐끔 보였으나 그것마저 이내 없어지고야 말았다.
신랑은 흙과 땀으로 전신이 새까맣게 되어 할 수 없이 물러섰다. 그리고 날이 저물어 저녁이 어둑어둑할 때까지 무덤 옆에 멍청히 주저앉아 두 다리를 여덟 팔 자로 펴고 앉아 땅을 치고 통곡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도망쳤고 무덤도 소리 없이 정적을 지키고 있었다.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고 죽음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그제야 창두는 소나무 뒤에서 걸아 나와 젊은 주인의 가엾은 무덤을 만져 놓고 여전히 땅을 치며 울고만 앉아 있는 신랑을 달래 말에 태워 보냈다. 신부가 타고 있던 칠보금덩과 다른 가지가지 신행의 예물들은 근처의 촌락에 부탁해 놓고 달려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창두의 보고를 양현 내외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좀처럼 믿으려고 하지 않아서 그는 확신을 보이고 증거를 세우는 데 진땀을 뺄 정도였다. 어떤 젊은 노복 하나가 자기 눈으로 보지 않는 한 결코 믿을 수 없다고 해서 창두는 그 길로 그를 데리고 현장을 확인시키기까지 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노복과 내기를 해서 술을 한턱 기쁘게 얻어먹었다.
이런 말이 있는 이후 황령 고개를 지나던 사람들은 멀리 돌아서 지나고 혼자서는 더구나 얼씬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깊은 감명이 아니고서는 이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고, 될 대로 되어 갔다고 공명을 표시하였다. 그 한 젊은 애인들의 사후에 기대를 가져 보기도 하였다.
그것은 실로 막연한 기대였으나, 그들의 감정에 깊이 뿌리를 박은 열렬한 축원임에는 틀림없었다. 신부를 이와 같이 허무하게 잃어버리고 본가로 돌아간 심 상서의 젊은 재사는 사흘 동안 이불 속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추 상서의 집안은 물론이고, 심 상서의 집안에서도 이 신기한 사건의 뒤처리를 하느라고 야단법석들이었다. 초상을 만난 추 상서의 집에서는 묻으려야 묻을 시체가 없었다. 신부를 감쪽같이 잃어버린 심 상서 집에서는 문책하려야 문책할 대상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양가는 며칠 동안 똑같이 허공만 쳐다보며 한숨을 지었으나 현실 파악에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는 심 상서는 조야에 이름난 귀여운 아들에게 잃어버린 추 소저 대신 그녀에 못지않은 요조숙녀를 얻어서 안기려고 사방에 매파를 출동시키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꼭 필요하다고 결심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들의 상처받은 감정은 이런 정도로 아물지 않았다. 그는 모욕을 느끼고 분격하여 복수의 무서운 정열에까지 솟아올랐다. 며칠 동안 절망해서 누워 있는 동안 이러한 감정으로 적당히 만져 키워 놓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몇몇 용감한 창두를 불러 일장의 훈계를 내리고 삽과 괭이를 주어서 자기를 따르도록 명령하였다.
첫 새벽에 담을 뛰어넘어 황령으로 달려온 젊은 열다섯 살의 심의랑은 연적의 무덤을 앞에 대하였다. 전에는 없었던 반죽과 칡덩굴이 나 있었다. 그것이 묘하게 엉겨 붙어 있어서 이 복수심에 불붙어 있는 젊은 소년은 별안간 발작적인 강한 증오의 정을 느끼며, 그것을 발로 짓밟고 뭉개고 뜯어서 동댕이쳤다. 더구나 반죽에서는 무서운 분노를 느끼며 마디마디 꺾고 조각조각 깨물어 버렸다. 그리고 창두들에게 무덤을 파헤치라고 명령하였다.
시체는 두 개가 묘하게 서로 끌어안고 있었다. 아직도 산 사람처럼 생생하니 그대로 있는 듯하였다. 이러한 광경은 소년의 증오심을 무서운 질투와 복수의 감정으로 화해 놓았다. 그는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무덤을 파헤친다는 것도 결코 정상적이 아니려니와 시체에 대한 증오감은 죽은 자를 관장하며 잔인한 폭력을 가하는 염라대왕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때의 소년의 얼굴을 본 자가 있다면 그것이 저 절간의 벽에 많이 그려져 있는 염부의 무서운 맹장들의 하나가 아니라고 누가 감히 부인하고 나설 것인가.
그에게 노예의 맹세를 하고 염부의 졸개가 되어 염라대왕의 폭력과 악을 돕고 있는 창두들조차도 그의 파렴치한 행동에 한동안 아연실색하고 있을 정도였다. 심의랑은 다정하게 말도 없는 두 시체를 떼어서 따로따로 저주하고 오욕을 가하자 그것을 나란히 두 개의 무덤을 만들어 묻으라고 그의 졸개들에게 명령하였다.
졸개들은 가까이 무덤을 팠으나 대왕의 시정 명령이 내려서 두 개의 무덤 사이에 또 하나의 무덤이 들어갈 만한 거리를 두고 파기 시작하였다. 그 중간에 자기가 들고 더구나 추양대와는 자기가 한층 가까이 묻혀져야 할 권리가 있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이후에 자기가 죽게 되면 그곳에 묻어 달라고 이르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복수의 쾌감을 만족하며 심의랑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날 밤 그는 한잠도 이루지 못하였다. 그의 머리가 놓여졌던 베개와 요 끝머리에는 이튿날 아침에 보았을 때 물을 부은 것처럼 눈물이 흥건하게 괴어 있었다. 그는 여전히 며칠 동안 흥분한 감정을 식히지 못하였다.
심의랑은 또다시 분연히 일어서서 창두들을 데리고 무덤으로 향하였다. 그러자 어찌된 일인가. 뗏장도 입히지 않았던 무덤에 하나에는 반죽이 자랐고, 또 하나에는 칡덩굴이 뻗어서 그 칡덩굴이 반죽을 향하여 가 이제 조금만 있으면 엉겨 붙으려 하고 있다. 이것은 소년의 질투와 증오감을 또다시 맹렬하게 폭발시켜 놓았다.
그는 칡은 자르고 반죽을 뽑아 던지면서 무섭게 흥분하여 자기 아내의 무덤을 고개를 넘어 반대편 산비탈에 묻으라고 창두들에게 명령하였다. 그는 그 시체를 묻기 전에 꼭 품에 안고 눈물을 한없이 뿌리기까지 하였다. 이 때문에 창두들의 작업은 의외로 시간이 걸려서 날이 저물기까지 계속되었다.
심의랑은 얼마가 지난 뒤에 와 보았다. 역시 없던 반죽과 칡덩굴이 돋아나서 칡덩굴은 고개를 넘어 이쪽 무덤으로 오려 하였다. 아!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집착인가. 그들의 사랑이 진정이라면 자기의 사랑도 진정이었다. 적어도 심의랑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살아서 받지 못한 아내의 애정을 죽어서는 받아보려고 발버둥쳤다. 그래서 더구나 그의 증오와 질투심은 맹렬히 솟구쳤다.
“아! 끝까지 나를 배신하려는 이 악녀!”
격분한 그는 칡덩굴을 뿌리째 뽑아 갈기갈기 찢고 이쪽의 반죽도 그렇게 해서 함께 불을 질러 버렸다. 삭장이 나무에 불을 붙여 그 위에 올려놓은 칡과 반죽이 타는 것을 지켜 서서 내려다보던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어린아이처럼 어떻게나 처량한 많은 눈물이었는지 그것도 마침내 다 타서 남은 불을 꺼 버릴 정도였다.
이 짓궂은 정열의 소모자는 이번에는 그대로 무덤을 내버려둔 채 말에 올라 돌아섰다. 날은 저물어 컴컴하게 어두워 왔다. 이날 혼자서 왔던 그는 어둠을 타고 돌아갔다.
가깝게 달린다는 것이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버렸다. 불빛 하나가 울창한 수목 사이로 반짝반짝 비쳤다. 그는 그 초옥을 찾아갔다. 절벽을 등진 조촐한 산간초옥이었다.
동자 하나가 갈건야복에 백우선을 손에 쥐고 앉아 있는 백발의 노인 앞으로 그를 인도해 갔다. 심의랑은 경건한 존경심이 앞서서 그 노인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내 들으니 그대는 추 낭자와 결혼하였다가 필경은 허사되었으매 가장 무료하리라.”
덤덤한 표정으로 자세히 보지도 않으며 이렇게 입을 떼는 노인의 말에 심의랑은 완전히 압도당해 버렸다. 남을 지배하고, 그런 반면 보다 높은 권세에 무조건 노예가 되는 벼슬아치의 가정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아온 그로서는 이러한 천신과 같은 예지의 권위 앞에 털끝만큼도 고개를 쳐들 수 없었다.
그는 천자 앞에 무릎을 꿇고 감동하듯이 노인에게 몸과 마음을 죄다 굴복시켜 내심 노예를 다짐하였다. 천자가 내린 사약을 일종 감격의 눈물을 머금으며 들이키는 위대한 충신처럼 그도 이런 경우 노인이 죽으라고 하면 오히려 감사의 염을 품으며 감연히 죽어 갔을 것이다.
다행히 노인은 속세를 떠난 고상한 인물인 듯해서 그에게 죽으라는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무위자연의 운명론을 믿고, 권세와 지배를 싫어하며 정열과 투쟁을 타개하는 듯 하였다.
“그렇거니와 이미 하늘에서 정한 바이거늘 그대 무단히 헛수고를 하니 가장 애달프도다.”
하고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위대한 예언자는 그렇게 말을 맺으며 한 손으로 백발 삼천 장의 긴 수염을 끄트머리만 깔죽깔죽 도토리 까듯 비비고, 또 한 소능로는 예의 백우선을 펼쳤다 접었다 하였다.
그는 통 정면으로 보지 않기에 심의랑은 뒤에 누가 그 노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더냐고 물어도 전혀 대답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노예의 복종심은 종교적이라고 할 만큼 투철해서 상대방의 그러한 둔갑장신의 술법에 조금도 영향을 받을 까닭이 없었다. 전장에 나가서 그를 위하여 생명을 내던지는 군사가 임금을 본 일이 없고 순교자가 그 교주의 참된 얼굴을 볼 필요가 없듯이 심의랑도 그런 것에는 아랑곳없었다. 심의랑은 노인의 교훈에 감격하여 이렇게 맹세해 보였다.
“산야 우맹이 천의를 모르고 추씨의 일이 심히 괴이하기로 심력을 썼삽더니 이제 존경하온 노선의 말씀을 듣사오니 황연 대각하와 마음에 다시는 거리낌이 없나이다.”
과연 총명한 소년이었다. 명문대가에 태어나 일찍부터 소년등과하여 그 이름이 조야에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심 상서 댁의 천재 선동은 여기서 황연 대각하여 노인에게 하직하고 내 집의 따뜻한 품안으로, 아버지가 얼마 후면 천하의 요조숙녀를 골라서 안겨 줄 한없이 아늑한 내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닌게아니라 심의랑 같은 약삭빠르고 재치 있고 권세와 재산의 뒤에 숨어서 천재 신동의 이름을 자랑하는 자는 정열의 무서운 바람에 휘말려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자기와 자기 이름을 최후의 비극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은 대단히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그는 아버지와 그 조상들의 이름 있는 피를 이어받아 역시 벼슬에 능하고 처세에 능한 자였다.
그러면 여기서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황당한 기적을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설은 제쳐놓고 본론에 들어가 현명한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 제아무리 증명과 고증이 명석하다 하더라도 황당한 것은 어디까지나 황당하고 기적인 것은 어디까지나 기적이기 때문이다.
부골생육이라든가 환생인간이란 따위의 묘한 말이 있다. 이 말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나 아득한 옛날부터 약하고 무지한 인간들에게 믿음을 주고 교리를 닦아 온 위대한 인물들이 선전하고 믿어 온 말이니 그대로 믿어 두는 것이 좋으리라. 말하자면 이미 저승으로 가 버린 열렬한 한 쌍의 애인은 이 부골 생육의 방법에 의하여 아직도 이루지 못한 인연과 소원을 완성하기 위해 또다시 이생으로 나온 것이다.
방장산의 태을선인과 옥제와 태상노군과 지장왕과 황건역사의 순위로 저마다 맡은 바 기능과 친절을 다하여 그들조차 감동한 불행한 연인들의 옛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 지상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조물의 신비와 천지조화를 장악하고 이럭저럭하는 참된 권위가 있는 그들인지라, 그들의 공동 노력을 한다면 이만한 일쯤 하지 못할 리가 없다.
인간의 지혜가 거기에 미치지 못하니 그들의 하는 일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상상에 맡길 수밖에는 없는 일이다. 인간이 제아무리 지력을 자랑한다고 하더라도 우주의 본질과 천지조화의 깊고도 깊은 진리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고작해야 내 인식에 그쳐 버린다. 그런지라 이 위대한 우주의 신비는 옛사람들의 믿음대로 그대로 내버려두자. 박가가 죽어서 박가가 되건 이가가 죽어서 박가가 되건 죽은 김가가 이가로 돌아오건 제 자신으로 환생하건 그것은 우주의 커다란 조화에 속한다.
아무러나 이러한 조화에 의하여 양산백과 추양대는 그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부골생육하고 환생 인간해서 관대한 독자들 앞에 또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거의 똑같은 시간에 시신이 묻혀 있는 제각기의 무덤에서 똑같이 솟아 나오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기절초풍하여 죽어버렸으리라는 것은 묻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다행히 두 사람이 무덤에서 솟아 나오는 것을 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두 남녀는 서로 손을 맞잡고 환생의 기쁨을 마음껏 즐기면서 우선 추양대의 본가로 향하여 갔다. 평강 땅 그녀의 고향으로 들어섰을 때 동네 사람들이 신기하게 바라보던 광경이나, 그녀의 집의 놀라움이나, 딸을 맞이하는 추상서 내외의 당황하는 모습이나, 반가운 눈물이나 하는 것은 아무리 능한 표현이라도 당할 도리가 없었다. 죽은 사람이 버젓이 살아서 돌아오더라는 사실 그것을 상상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사실에 육박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감격이 아니라 난동이었다. 광란의 도깨비굿이었다. 이러한 경악과 공포와 환희가 엇갈린 도깨비굿이었다. 이러한 경악과 공포와 환희가 엇갈린 도깨비굿이 있은 뒤에 이제는 그칠 줄 모르는 경험으로 들어갔다. 양산백에 대한 추상서 내외의 찬미와 회한이 있었고 이런 다음 길일을 정하여 예법에 좇아 혼례를 행하기로 하였다. 너무 급하게 하는 것이어서 양산백의 본가에 알릴 수는 없었다.
삼일 잔치는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이 때 모인 사람들은 모두 신랑 신부를 부러워하고 찬미하며 천생연분이란 말로 메웠다. 그들은 이 두 남녀 사이의 신기한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전하며 순식간에 그것은 사방으로 번져 갔다. 그 얘기를 들은 자는 누구나 그럴 것이라고 감동하여 머리를 끄덕였다. 하늘이 정한 연분이라면 사생을 넘어서서 존재하여야만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의 감명은 바로 이런 점에 있는 듯하였다.
첫날밤을 맞이한 열렬한 한 쌍의 원앙들의 정은 그 어디다 비할 도리도 없을 정도였다. 양산백은 운향사에서의 옛일을 회상하며 생명의 희열을 십분 맛보았다. 그는 이날 밤보다도 이 나라를 위하여 그토록 몸부림치며 기다려 온 그때가 더욱 좋았구나 하고도 생각하였다. 그러나 무한히 행복하고 기뻤다. 온 세상이 자기를 위하여 기뻐해 주는 것 같고 자기는 태양이 되어 이 세상의 중심이 된 것만 같았다.
추양대의 아름다움도 새롭게 보였다. 양산백은 그 여자를 위하여 무엇인가 기쁘게 해주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이 행복을 어서 빨리 부모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자기가 살아왔다는 것과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얻었다는 이중의 기쁨을 선사한다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얼마나 놀라실 것인가. 그는 벌써 그것이 겁이 날 정도였다. 결혼 전에 양친을 모셨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을 하고도 생각하였다.
아닌게아니라 아내를 재촉하여 본가로 돌아갔을 때 처음 추상서의 집에서 있었던 것과 꼭 같은 경악과 감격의 소동이 폭발하였다. 아들의 손을 잡고 놀란 양현 내외는 꿈이냐 생시냐 하면서 몇 번이고 실신해 쓰러졌다. 아들의 돌연한 병사로 갑자기 늙어 버린 듯한 그들은 몸을 지탱할 기력조차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왕씨의 쇠약을 푹 곯아 버렸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말이 아니었다.
예의 창두의 이야기를 듣고 언제까지라도 그 이야기에 감동하여 무덤의 기적을 잊지 않고 있던 두 내외는 조물의 신비가 놀랍고, 하늘이 감사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은 자기 아들을 인식하고 확인하는 데 며칠을 걸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서도 이것이 내 피를 받은 진짜의 아들인가 그렇지 않으면 무엇인가가 장난질 치는 환영뿐인가 하고 의심해 마지않았다. 남들이 그렇다고 하고 더욱 좋아하니 그런가보다라는 등으로 일종 허망한 생각도 없지가 않았다.
아름다운 신부를 보았을 때 그들은 이중 삼중의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였다. 그 생김생김이나 아름다움이나 건강한 것이나 태도가 우아하고 말씨가 고운 것, 그 어디나 값비싼 비단을 대하는 것 같고 얻기 어려운 보물을 얻은 것 같아, 아들의 고민이 얼마나 컸던가를 새삼스럽게 상기하기도 하였다. 실로 내 귀여운 아들에게 다시없는 배필이라고 생각하였다.
양현 내외는 이들의 새로운 행복을 같이 즐기기 위해서 성대한 삼일잔치를 베풀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보기 드문 신기한 신랑 신부를 보기 위하여 원근 촌락에서 다투어 모여들던 남녀노소는 잔치에 저마다 운집하여 조정의 태평연과도 같은 감격과 환희의 물결을 이루었다.
그들은 추 상서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천생연분이니 기적이니 연분은 인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느니 이런 식의 축사로 찬미와 탄복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저마다 옳게 된 일이라고 기적 그 자체보다도 거기에 맥맥이 흐르는 듯한, 일종의 정의를 확신하였다. 도덕이나 법률 이상의 본질적인 감격을 그들은 거기에서 음미하려고 애쓰는 듯하였다.
이렇게 해서 양산백의 이야기는 동네에서 동네로 번져 온 세상으로 퍼져 갔다. 젊은 사람들은 더구나 양산백처럼 사랑하고 추양대처럼 진실하였으면 저마다 이들을 닮아 보려고 다투어 경쟁하기도 하였다.
양산백과 추양대의 신혼 생활은 다시없이 행복하였다. 먹은 것은 문제가 없고 가문은 높아서 온 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고 그들의 기적은 그들의 불빛이 되어 앞을 밝혀 주고 학문과 교양은 서로의 이해를 깊이 해주고 아름다움과 건강은 생활의 커다란 매력이었다. 게다가 시부모에 대한 추양대의 효성은 오히려 남편을 가르쳐 줄 정도였으니 양산백의 가정은 그야말로 명랑과 행복의 꽃밭을 이룬 듯하였다.
이쯤 되고 보니 양현 내외의 만족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제는 이들도 완전히 건강을 회복해서 아들 내외의 행복을 위로로 삼아 여생의 도락으로 학문과 도덕을 높이려고 힘쓸 뿐이었다. 그러다가도 이따금 아들의 장래를 생각해서 약간의 허영심을 일삼는 수도 있었다. 아들이 용문에 올라 높은 벼슬을 하게 된다면 금상첨화가 되어 가문을 더욱 빛낼 것이고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 아닌가 이러한 평범한 허영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