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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문 시작 – 관자재보살 등장
3. 의미
법 문 | 안필섭 교수님
<<안필섭 교수님 약력>>.
교수님께서는 동국대 불교대학 인도 철학과를 졸업하시고 // 동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하셨습니다. //
전공은 중세 인도 철학을 전공하셨고요.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불교 사회문화연구원 동국대 불교 학술원에서 전임 연구원을
역임하셨습니다.//그리고 동국대 불교대학 연구 교수 역임 현재는 문광디지털대학교 요가 명성학과 교수이시고 // 청주에 있는 학
교의 교장 선생님으로도 계십니다.
<< 법 문 : "반야심경과 중관사상" - 공사상의 이해 >>
안녕하십니까 소개받은 안필섭이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조계사는 지나가다가 많이 오지만 강의를 하러 지금 온 것은 제가15년 만에 온 것 같습니다. 15년 전에 제가 조계사불
교대학에 강의를 했었거든요. 그러다가 아까 사회자께서 소개해 주신 것처럼 제가 이제 동국대 경주캠퍼스로 발령을 받아서 내려
가는 바람에 이제 조계사 강의를 좀 그 이후로는 안 하게 됐었는데 제가 이번에 자료를 이렇게 정리하다 보니까 15년 전에 제가
강의를 했더라고요.
2010년도에 강의를 했었고 지금 오늘 나눠드린 자료가 있는데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반야심경이고요. 또 하나는 용수 중관사상을 담은 중송인데요
그리고 총동문회 회원님들 자리 앞에 하고 있으니까 제가 감개무량하고 많이 떨립니다.
제 소개를 간단하게 좀 해 보면 계속 불교 인도 철학 이런 공부를 지금까지 계속 해오고 있고요.
이제 저희 집에서는 저 보고 저를 학자라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근데 저는 이제 항상 내가 그런 이제 자격이 될까 그런 얘기를 들어도 부끄럽지 않을까 이런 이제 생각을 항상 많이 하고 있는데
제가 차림이 남다르지요. 그러니까 이제 이렇게 다니면 이제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이렇게 한복을 이렇게 입고 있으면, 오늘 뭐 행사 있나요? 공연이 있습니까? 제가 이렇게 입고 한 번은 제가 문화재 조사를 제가
좀 알바처럼 한 적이 있었어요.
한 3년 전에 그러니까 지역에 있는 문화재 이런 걸 제가 조사해서 급해가지고 제가 이렇게 이제 이 차림으로 가니까 오늘 무슨 굿
이 있냐고 그런 건 아니고 저는 한 5년 정도 전부터 우리 국궁, 활쏘기 그걸 좀 하다 보니까 이제 활 쏘기 할 때 이제 한복이 제일
편해요. 원래부터 옛날에도 이렇게 입고 활 쏘고 그러고 나서부터 제가 좀 한복을 입고 다니기 시작을 해서 어떻게 잘 어울리나
요? 감사합니다.
제가 청주에 살고 있어서 이렇게 제가 맨날 다니는 동선에만 다니니까 그런데 가끔씩 이제 이렇게 서울에 강의가 있어서 올라오
면 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지하철을 타면 이제 꼭 또 물어보십니다.괜히 말을 거시더라고요.
양해해 주시기 바라겠고 오늘 제가 강의 주제로 이렇게 삼은 것은 이제 “공사상” 이런 건데 이걸 뭐 고리타분하게 말씀드려봐야
이게 너무나도 매일매일 독송도 하시고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말씀을 들으셨겠습니까 근데 제가 또 해드릴 수 있는 이 관련돼서
말씀을 제가 한번 해 드려보고 또 그게 이제 어떻게 와닿으실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데까지 한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이 자료는 제가 “반야심경”은 길지 않으니까 이 자료 전체를 다 이렇게 해서 드린 거고요.
이제 중송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보면 이제 데바나가리 글자가 있습니다.
그렇죠 그게 이제 인도 글자 이지요. 제가 범어 학교 교장이라고 아까 소개를 해 주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산스크리트어 선생님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걸 가르치고 사람들한테 그걸 가지고 경전 같은 것들 같이 읽고 또 책으로도 내고 이렇게 하고 있어요.
그래서 한번 적어봤어요. 진짜 보시라고 적어봤고 이건 하나 말씀드리고 넘어가죠.
이게 산스크리트어를 보면 인도 지금 현재 그러니까 이 글자 이름이 보이시나요? 데바나가리(Devanagari)라 합니다. 발음이 나가
리라서 조금 항상 이 얘기를 해 드리면 항상 많이 웃으시더라고요. “데바”라는 것은 신이라는 뜻입니다. “나가리”라는 것은 도시입
니다. 그러면 무슨 뜻인가요? “데바나가리” 하면 신의 도시 그러니까 신이 깃들어 있다는 거예요.
이 글자에 왜냐하면 이 데바나가리 글자 이 산스크리트 범어는 신의 말씀 또 우리 절에서 얘기해 보면 부처님의 말씀 이런 거니까
이 글자에 그런 신이나 부처님 진리의 어떤 말씀이 여기에 들어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이름이 “데바나가리라는” 글자 이
름이에요.
이름은 그렇고 그리고 이 글자 모양 때문에 이제 또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왜 이 글자는 위에 빨랫줄이 있느냐 그렇죠 그런 말씀
을 또 많이 하세요. 이 글자는 지금도 인도에서 쓰고 있습니다. 북인도 하고요.
요즘에 또 큰 난리가 난 것 같아서 좀 걱정이 되던데 네팔에서는 이 데바나가리 글자를 사용하고 있어요. 지금도 이걸 사용하고 있
는데 이 글자가 왜 빨랫줄 같으냐라고 말씀드려보면 우리 말에 보면 이렇게 하면 뭐예요 “가” 그렇죠 그러니까 이 자음을 한번 지
워보면 우리 한글에서는 이게 “ㅏ:”“아”잖아요.
“ㅏ”를 나타내는 기호잖아요. 그렇죠 산스크리트어에서는 “아”를 나타내는 기호가 “T”이거예요. 좀 비슷한 느낌이 있죠 그렇죠 아
예 동떨어지지 않고 그렇죠 산스크리트어 글자에서는 이게 ”T” 우리나라에서는 “아” 이어요. 그러니까 이 글자들이 이게 계속 이
렇게 연결되니까 이런 게 계속 연결되니까 위에 이렇게 빨랫줄처럼 보이는데 아시겠죠?
상식적으로 그냥 한번 말씀드려 봤습니다. 하여튼 그렇고 그러면 요거를 한번 그래서 보시면 밑에 제가 이 알파벳으로 뭔가 글자
가 있죠 요것은 이 지금 데바나가리 글자 지금은 제가 이렇게 인쇄를 해서 드렸잖아요.
근데 인쇄가 어렵던 시절에는 이 로마 글자를 사용을 해서 이걸 표기를 했어요.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표기를 하고 있고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거의 모든 책에는 산스크리트어
를 표기할 때는 이런 알파벳 문자를 가져와서 1 대 1로 대응을 시켜서 이렇게 적고 있어요.
우리 한글은요 산스크리트어하고 한글하고 뭐가 차이냐 하면 산스크리트어는 쓰는 대로 읽어요.
읽는 대로 씁니다. 그 쓰는 거랑 읽는 게 같아요. 근데 우리 말은 사실 쓰는 거랑 읽는 거랑 달라요. 요거 읽으면 어떻게 되나요? 신
라를 “실라”라고 읽으셨잖아요.
이 받침을 지금 “ㄹ”로 해서 읽으셨잖아요. 그렇죠 요즘 뭐 조계사 오랜만에 와서 그러는데 외국인이 요즘 많죠. 이걸 외국 사람들
한테 읽어보라고 하면 아마 “신라”라고 발음을 할 거예요. 그래서 별로 어색하지도 않을 거예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근데 이제
우리는 다 그렇게 읽으라고 하면 “실라”라고 발음을 하죠. 왜냐하면 여기에서 뭔가 일어나죠 현상이 그러니까 받침이 “ㄴ”이
“ㄹ”로 바뀌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 말은 쓴 거랑 읽는 게 달라요.
우리 말은 근데 산스크리트어는 반대로 쓰는 대로 읽어요.
그래서 그게 좀 차이고 그래서 카르마라고 썼지만 “까르마”라고 읽어도 문제가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 말은 원래 쓰는 대로 읽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고 그래서 로마 글자로 여기 나와 있는 게 있고요. 그 밑에 보면 이제 한글로 제가 발음을 한번 적어봤어요.
그래서 이제 읽기가 배운 적이 없으시니까 읽을 수가 잘 없으실 것 같아서 제가 밑에 한글로 최대한 우리 발음에 비슷하게 적어봤
어요. 이거 똑같지는 않겠지만 좀 적어봤고요. 줄이 있죠 중간 중간에 줄(āyā )이 있는 것은 이 길게 읽으라는 얘기예요.
산스크리트어는 장음이라는 게 있습니다. 단음도 있고 장음도 있어요.
우리 말에도 있죠 우리 말에도 밤하고 “밤~”이 뭐고 밤은 뭔가요 여러분 밤이 뭐예요 “밤~” 먹는 밥이죠 하지만 표기를 할 때는 밤
이나 밤~이나 똑같죠 그렇죠 차이가 없죠 근데 산스크리느어는 그 차이도 있는 거예요.
짧게 발음하는 발음도 있고 길게 발음하는 발음은 또 따로 표시를 해줘요.
어떻게 표시를 해 주냐면 아까 어떻게 하냐면 아까 이게 뭐라고 그랬죠 “ㅏ”라 했죠 이렇게 하면 뭐가 될까요? 이렇게 하면 “ㅏ-
“길게 발음을 하는 거예요. “ㅏ” 한 개 더 있는 거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ㅏ”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 지금 줄로 이렇게 표시해 놓은 것은 길게 발음 하면 되는 거예요.그래서
이 첫 줄만 한번 같이 읽어볼게요. 제가 한번 먼저 읽어볼게요.
[หลเจลโมสเสศจนเ Prajñaparamitaihrdayasūtram 쁘라갸-빠-라미따-흐르다야쑤-뜨람 / 반야바라밀다심경]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쁘라갸-“라는 게 반야예요. 이 반야라는 말은”쁘라갸-“라고 하는 산스크리트어 말을 한자로 그대로 음을 따서 쓴 거예
요. 반야가 “쁘라갸-입니다. 지혜 이런 얘기예요.
뜻을 다 아시다시피 “빠-라미따”는 바라밀다 그것도 발음으로 똑같이 쓴 거예요.
“빠-라미따”를 한자로 바라밀다 이렇게 쓴 거예요. “흐르다야”는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흐르다야”는 마음 그러니까 심경 할 때 심 자죠. 그 다음에 “쑤-뜨람”은 경이라는 뜻이에요.
쑤-뜨람도 제가 상식적인 것을 한번 말씀드려보면 쑤-뜨람(수트라)도 원래 뭐냐 하면요.
“딴뜨라”라는 말도 들어봤죠 들어보셨어요?
딴뜨라(탄트라)라는 것도 있고 “쑤-뜨람”라는 것도 있어요.
“쑤- 뜨람”는 경전 보통 경이라고 하는 그건데 원래 “쑤-뜨람”과. “딴뜨람”라는 뭐냐 하면요 들실 날실이라는 뜻이에요.
“쑤-뜨람”은 들실 “딴뜨라”는 날실,
(★수뜨람은 이론의 요약본 / 딴뜨라는 실천 수행 지침서)
그런 뜻이에요. 원래는 들실, 실 한 올은 아무 힘도 없고 의미가 없어요.
그렇죠 그런데 그 실들이 서로 서로 이렇게 들실 날실이 돼 가지고 서로 서로 서로 연결되면 뭐가 돼요? 천이 되죠 천 그렇죠 천이
되면 어떤 힘도 있고 면적이 생기고 모양이 생기게 되죠 그 어떤 힘이 생기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들실과 날실이 모여서 옷감이 되듯이 이 경전의 말씀 쑤-뜨람와 딴뜨라 이것이 서로 연결되어 가지고 하나의 우주가 되
는 거예요. 그 가르침이 옷이 되듯이 들실과 날실이 옷이 돼서 이렇게 새로운 가치가 되듯이 그런 경전의 말씀들 쑤-뜨라 딴뜨라가
모여서 어떤 하나의 우주를 이루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경전이라고 하는 거예요. 경 자를 잘 보시면 나중에 한자를 보시면 실사변이 있을 겁니다.
실사 변. 왜 실사변이 있느냐 들실 날실 원래는 들실 날실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래서 그것도 그냥 상식적으로 한번 알아주셨으면 좋겠고 그래서 [Prajñaparamitaihrdayasūtram 쁘라갸-빠-라미따 흐르다야쑤-
뜨람] 이란 경전의 제목이죠 그래서 (มส์สเข " namah sarvajñaya 나마하 싸르와갸-야)
이거는 이제 귀경계라고 해서 누구한테 귀의합니다.
이렇게 됐는데 “싸르와갸-야” 하면 싸르와갸-야는 모든 이라는 뜻입니다.
“갸-야”는 알다 이런 뜻이에요. 알다. 그러면 싸르와갸-야 하면 모두 아는 것이 모든 것인 “ 나”를 “싸르와갸-야”라 합니다.
그래요. 한자로 하면 “일체 자” 들어보셨죠 그런 말 “일체 지 자”는 누굴까요?
부처님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반야심경은 부처님께 귀의를 하고 시작을 하는 경전이에요.
그렇게 돼 있고 오늘은 제가 이걸 다 드렸지만 이 한 줄을 가지고 얘기할 거예요.
사실은 이 한 줄만 알면 반야심경은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이 한 줄에 모든 이제 반야 심경의 핵심이 들어가 있어요.
그러면 이제 이렇게 제가 질문을 해볼게요. 반야바라밀다심경이라고 했는데 그렇죠
“바라밀다”가 뭘까요? 바라밀다. 아까 처음에 그 한글 반야심경 봉독을 하실 때 그게 뭘까요?
뭐라고 생각하고 봉독을 하시는 걸까요? 그게 뭘까요?
어떤 행동일까요? 아니면 뭐 어떤 상태일까요? 뭘까요?
뭔가 이제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이렇게 좀 말로 막상 하라고 그러니까 말로 하기에도 좀 그렇고 맞아요. 말로 하기에 굉장히 미묘
한 세계이니까 제가 물어봐도 이거 머릿속에 맴도는 거 같은데 뭐라고 딱히 이렇게 말은 못하겠다.
이런 생각도 드실 수 있어요. 그러면 이 반야바라밀다가 뭔지를 한번 저가 알아볼게요.
이 경전의 시작은 “아-랴-왈로끼떼슈와라보디쌋뜨보.”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랴-“라는 말은 성스러운 이런 뜻입니다.
성스러운 그러니까 이제 큰 의미는 없어요. “아-랴-왈로끼떼슈와라” 일단 한번 생각해 볼 만 한 말이에요. 이 산스크리트어는 인
도 유럽어족이에요. 언어 계통으로 얘기해 보면 우리 한국말은 우리가 어릴 때 배우기로 우랄알타이어 계통이라고 했죠 우랄이
(북유럽,중앙아시아) 어디고 알타이(터키어,몽골어,퉁구스어)는 어딘지 아세요?
우랄 알타이. 그러니까 원래 우리 민족은 여기에 깃들어 살던 민족이 아니라 훨씬 더 서쪽에 원래 살던 사람들이에요. 그게 이제
이쪽으로 자꾸 온 거죠 동쪽으로. 그래서 그런 거고 사실은 인도 사람들도 이제 마찬가지예요.
이 시기가 달라 출발 시기가 달라 우리가 더 먼저 출발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더 멀리까지 여기까지 왔죠 이 인도에서는 기원전 3500년에 인도에 도착했다고 얘기해요. 이 산스크리트어를 쓰는 사
람들이 우리도 당군 할아버지 언제부터예요?
기원전 3천300년 경 이렇게 얘기하죠. 비슷한 시기인데 훨씬 더 멀리 왔잖아요.
인도보다 우리나라가 위치상 훨씬 더 멀잖아요. 그러니까 그 거리만큼 이동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인도에 이 산스크리트
어를 들고 들어간 사람들보다 서쪽에서 훨씬 더 빨리 출발한 사람들이 거요.
물론 그 사람들로만 다 이루어진 건 아니지만 한국인의 피는 또 다른 여러 가지 있지만 하여튼 그래요. 그래서 이 산스크리트어는
인도 유로피안 어족입니다. 그래서 유럽어들 그러니까 영어나 이런 언어들하고도 같은 씨족이고 그래서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어
요. 이 글자는 “아와”라는 접두사 그러니까 단어 앞에다가 붙이는 글자 그다음에 요거는 루트(root) 수학에서 루트 표시예요.
그러니까 어근을 얘기할 때 쓰는 표시인데 lok라는 동사입니다.
그다음에 ita(여기 이쪽으로)라는 말 있다.
그것은 영어를 공부하다 보면 과거 수동 분사라는 게 있어요.
이런 얘기를 법회인데 어쨌든 그런 걸 나타낸 그러니까 과거 수동 분사라는 건 뭐냐 하면요 우리 말로 해보면 “뭐 한~” 그러니까
이미 행동이 이루어지고 나서 그 이후를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 말로 하면 “뭐 한~” 이런 거예요. 그다음에 이제 “끼떼슈와라” 여기서 이제 “이슈와라”라는 게 있어요.
“이슈와라”라고 하는 단어 그러니까 아와( Ava)라는 말 그다음에 Lokita라는 말 그다음에 isvara라는 말(Ava-lokita-isvara,아래로
(세상을 내려다 본다/주인) 이런 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거예요. 아발로키테슈와라 그러면 제일 중심 되는 말은 룩(look : 보다)입
니다. 룩는 무슨 뜻일까요 짐작해 보세요. 제가 이거 무슨 언어라고 그랬죠 산스크리트어는 어느 계통이라고 그랬죠 가까운 언어
가 유럽 언어라고 했어요. 유럽 언어 맞습니다.
맞아요. 이게 룩는 영어의 look 하면 뭐죠 무슨 뜻이죠 보다라는 뜻이에요.
보다 비슷하게 생겼죠 look 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왈로끼따는 그러면 ita가 뭐라고 했죠 제가 “뭐 된~, 뭐 한~” 이런 거니까 lokita””록끼따 있다 하면 뭐예요 “본” 우리 말
로 하면 이미 본 거죠 그렇죠 봤다라는 것이 이미 이루어진 일인 거예요.
본 이라는 뜻입니다. Ava- 뭐냐 하면 ava-는 영어로 하면 다운 아래쪽이라는 얘기에요.
그러면 아왈로끼따 하면 뭐예요 우리 말로 하면 합쳐서 얘기해 보면 그렇죠 “아래로 내려다 본” 이런 뜻이죠
아왈로끼따는 아래로 내려다 봤다는 얘기입니다.
아래로 내려다 본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우러러 보는 거 하고 내려다 보는 거 하고 반대 말이죠 그렇죠 우러로 보는 것은 내가 그
보는 대상보다 아래에 있다라는 거잖아요. 그렇죠 내가 내려다 본다는 건 뭐예요 상대방하고 나하고 관계에서 내가 더 우위에 있
는 거죠 맞죠. 그러니까 아왈로끼따는 내려다 본다는 얘기입니다.
내려다 본다. 뭘 내려다 보느냐, 내려다 보는 대상이 이슈와라 입니다.
이슈와라는 뭐냐 하면요 인도에서 이야기하는 창조신을 “이슈와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한자로 하면 이슈와라를 한자로 쓰면, 스스로 자 자에 존재할 있을 재 자 해서 자재신이라고 합니다.
왜 자재신이 스스로 존재하는 그러니까 다른 모든 것을 창조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은 누가 만들어낸 게 아니야. 스스로 존
재해요. 나머지 모든 것들은 내가 다 만들었어 이런 거예요. 그래서 그것을 자재신 이라고 합니다.
이슈와라 한자로 하면 뭐죠? 스스로가 자기가 만들었다라고 하는 신을 어떻게 본다?
내려다 본다. 그러면 누가 더 높은 거예요 자재신보다 지금 내려다 보는 내가 더 높은 거죠.
그렇죠 그 내가 누구죠? 자 그다음 뭐라고 써 있죠?
한글로 이슈와라 한글로 뭐라고 써 있죠? 보디사띠봐 이렇게 됐죠 “보디사뜨봐”인데 보디는 깨달음 이라는 뜻입니다.
오늘은 이것만 얘기하다가 끝날 것 같은데 이제 내가 하고 있는 게 무슨 말인지 알고 해야 되니까 이게 중요하다고 저는 좀 생각
이 들어서 말씀을 드릴게요. "보디"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디Bodhi는 이거 아까 동사라고 그랬죠 부뜨 budh(. 알다. 깨닫다 .깨어
나다)라는 동사입니다. 부뜨라는 동사에서 만들어진 단어예요. 보디는 부트는 무슨 뜻이냐 하면 부트는 불을 밝히다 불을 켜다 이
런 뜻이에요. 불을 켜다.그 보디는 이 명사가 된 거예요. 그러면 뭐죠? “불킨” 이런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보디는 불을 켰다. 불을 끄면 뭐예요 불을 끄면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켜면 깜깜한 데서 불을 탁 켜면 싹 다 보이죠 그렇죠 깨달음이란 그런 거예요.
깜깜했는데 불을 탁 켜니까 다 보여 이런 게 깨달음 거예요.
그래서 이 보디는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깨달음 사뜨와(참 상태)는 뭐냐 하면 추상 접미사라고 합니다.
추상 접미사는 뭐냐 하면 뭐 우리 말로 하면 뭐~뭐~ 인 것, 이렇게 뭔가 개념을 만들어주는 말이에요. 사뜨는 존재하다 이런 뜻이
에요. 그러면 사뜨바 말은 무슨 뜻이에요? 존재하는 것, 그래서 사뜨와는 중생을 얘기합니다.
중생 존재하는 거 이렇게 있는 거 살아 있는 것들을 다 싸잡아서 얘기하는 게 사뜨와 입니다.
또 보디 사뜨와 하면 뭐예요
깨달음 중생을 보디사뜨와 보살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슈와라를 내려다 보는 건 누가 내려다 보는 거죠?
보디싸뜨와 보살이 내려다보고 있는 거예요. 보살이 그래서 그 보살의 이름이 뭐라고요?
아왈로끼때슈아라 입니다 그러니까 관자재보살보살입니다.
관자재보살, 관은 보다, 자재는 자재신, 보살 그래서 반야심경의 처음 시작이 어떻게 되죠?
한문 반야심경할 때 관자재 보살 이렇게 시작하는 거잖아요.
그 관자재보살이 뭔지 알겠죠 어떤 보살인지 아시겠죠 그러면 이제 관자재보살하고 관세음보살은 무슨 차이냐 무슨 관계냐 그런
거 들어본 적 있으세요?
관자재보살 관세음보살, 관자재보살이라고 하는 거 반야심경 이외에 들어본 적 있으세요?
잘 없을걸요. 거의 반야심경 제외하면 관세음보살 또는 관음 보살 이렇게 얘기하죠.
그럼 관세음보살이랑 관자재보살은 뭐냐 무슨 차이냐라고 하면 사실은 같은 거예요. 같은 건데 잘못 읽어가지고 관세음보살이 됐
어요. 무슨 말이냐면 아발로끼떼이슈아라(äryavalokitesvara ) 이렇게 했잖아요. 여기서 끊어 읽었잖아요. 그런데 이걸 잘못 끊어
읽어서 아발로끼떼 하고 끊고 이슈와라 해서 이렇게 해서 잘못 끊어서 읽은 거예요.
이렇게 잘못 끊으면 보통은 뒤에 이게 단어가 뜻이 없어야 되는데 우연히 뜻이 있는 거예요.
이 무슨 “슈아라”라고 하면 무슨 뜻이냐면 소리라는 뜻이에요.
산스크리트어에서 슈아라가 그래서 아발로끼떼 끊고 슈와라 이렇게 해서 소리를 어떻게 한다는 거예요? 본다는 얘기가 되는 거
예요. 관세음. 근데 이상하지 않아요 소리는 듣는 거지 보는 게 아니잖아요.
이상하죠 그래서 중국에서 이런 걸 그런 걸 격의 불교라고 하는데 잘못 끊어 읽어서 관세음이라고 이렇게 번역을 했지만 그래도
이제 그걸 말을 만들어야 되니까 이제 거기에 오히려 꿈보다 해몽이라고 훌륭하게 또 만들어낸 거지. 아 세상 사람들의 모든 그런
괴로움 근심 고통을 다 굽어 살펴봐 주시는 거구나.
이래 가지고 관세음보살 이렇게 이제 생각을 하게 되고 오히려 관자재보살보다 관세음보살이 더 유명해졌어요.
그리고 아예 다른 보살로 취급을 해버렸어요. 중국 불교에서 이제 그런 관계예요. 관세음보살하고 관자재보살은 아시겠죠? 그래
서 이제 이거는 지금 이후에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지금 제가 다 앞에 먼저 얘기를 한 거예요.
그다음 보면 “감비-라-얌-“은 깊다라는 뜻이에요.
그다음에 “쁘라갸-빠-라미따-얌.” 그렇죠 여기죠 반야 바라야 밀다를 그다음에 “짜럄-“ 있죠. 행하셨을 때 이런 뜻이에요.
행하셨을 때 “짜럄-“이 “짜라마-노” 행하면서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여기까지 보시면 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 그렇죠 심은 깊다(감비라얌).
행은 “짜럄-“ 그렇죠 행심
그다음에 “쁘라갸-빠-라미따-얌”그렇죠 행심 관자재보살 행심 바라밀다시 그렇죠 거기까지죠 “시” 이게 “짜라마-노” 입니다.
그러니까 행하시면서 여기에요 요 부분이에요.
여기가 그다음에 “위아왈로 까야띠” 요 말을 이제 잘 보셔야 돼요.
아까 “아왈로 끼떼 슈와라”는 말이 있었어요.
“아왈로 끼따”(내려다본/ 이미 본:과거분사) 그러니까 아래로 내려다 이라는 말이 있었죠 자 여기 이제 보면 위 “아왈로 까야 띠”(그
가 내려다본다:현재 진행동사) 이렇게 됐죠 “위아왈로 까야띠”왠지 비슷하게 생겼죠 위(vi:접두사)라는 말이 있고 이 말 자체는 동
사입니다. 그러니까 뭐 하다 보다 이런 동사예요.
아까 “아왈로 끼따” 요것은 형용사입니다. 형용사 뭐뭐 한~, 뭐뭐 된, 이런 거니까 형용사인데 “위 아왈로 까야 띠”(그는 아래를 분
명히 바라본다/자세히 관찰한다는) 이제 동사인데 모양을 보면 좀 비슷한 게 있어요.
그렇죠 먼저 위라는 게 있고요. 또 “아.와” 있었죠 “아.와” 뭐였죠?
“아.와” 뭐라고 그랬죠? 뜻이 “다운” 그죠 아래로 맞죠? 그다음에 로그 있죠 lok는 뭐죠?
보다 그렇죠 그다음 보시면 “야”가 있고 “띠”가 있어요 “띠”는 나, 너,그, 그거 봤다는 거예요. “야”는 생각하지 말고 “lok는 보다 아
는 아래로 위가 이제 중요한 거예요.
“위(vi)”는 뭐냐면 위는 영어에 세퍼레잇(separate) 그런뜻이죠 “떨어뜨리다 불리하다 자르다.” 이런 말이에요. “위”는 그런 뜻이에
요. 그러니까 이제 “위아왈로 까야 띠” 하면 뭐예요 뜻이 떨어뜨려서 아래로 내려다 본다라는 뜻이에요.
누가 보살이 관자재보살이 봤다는 거예요.
어떻게? 떨어뜨려서 아래로 내려 봤다는 거예요.
이게 중요한 말인 겁니다. 이게요. 얼마나 제가 이제 또 얘기하려 하니까 저 소름이 또 돋는데 얼마나 잘 된 번역이냐 하면 동아시
아에서 산스크리트어를 한문 부문으로 번역을 엄청나게 많은 경전들이 다 그렇게 번역이 된 거잖아요.
그중에서 최고의 번역이에요. 아까는 뭐라고 번역했어요 “관”이라고 번역했죠 아왈로끼따.
이것을 관이라고 그랬잖아요. 한자로요
관이라고 번역했어요. 그렇죠 근데 지금 “위아왈로까야띠” 이거 뭐라고 번역했어요 한자로 따져보세요.
이렇게 요렇게 뭐라고 표현했을까요 한자로 하면 반야심경을 읽어보세요.
빨리 생각해 보세요. 뭐라고 했어요 이것은 “조견”, 조견이 “위아왈로까야띠” 입니다.
그러니까 조견은 뭐예요 동사입니다. 관은 형용사 근데 비슷하게 생겼죠 “아왈로 끼따” 하고 “위 아왈로까야 띠” 하고 거의 비슷하
게 생겼잖아요.
느낌이 이제 요게 하나 더 들어갔다는 거고 동사다 형용사다 이 차이인데 번역을 앞에 것은 관이라고 번역을 했고요. 이것은 조견
이라고 봐야 겠어요. 달라요. 그러니까 요거 하나의 차이를 가지고 번역에 반영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 반야심경은 굉장한 번역
이에요. 이 차이까지 다 생각해서 만든 번역이거든요. 그러면 여기가 왜 중요하냐 이게 “조견”을 해서 바라본 게 뭔 거예요 “오
온”을 본 거예요.
그러니까 그다음 내면 “빤짜 스깐 다하” 있죠. 요게 오온이에요.
“빤짜”가 오라는 뜻이고 “스깐다하”가 온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조견을 해서 떨어뜨려서 내려다 본 게 뭐냐 하면 오온을 그렇게 바라봤다는 거예요.
이거 누구의 오온이에요
관자재보살 본인의 오온이에요.
관자재보살이 자기를 바라 본 거예요. 어떻게 떨어뜨려서 내가 아닌 것처럼 내가 나를 보는데 내가 이렇게 떨어뜨려서 내가 나를
내려다 보듯이 떨어뜨려서 봤다는 얘기예요.
누가? 관자재보살이 그래서 조견이라고 번역한 거예요.
조 자가 너무나 소름을 끼칠 정도로 번역을 한 거예요. 조 자가 무슨 조 자예요 비출 조 자잖아요. 비추려면 어떻게 해야 돼. 내가
나를 비추려고 그러면 내가 나한테서 분리돼야지 내가 나를 비추는 거예요.
내가 있는데 내가 어떻게 비추겠어요 그래서 조 자를 쓴 거예요.
떨어뜨려서 본다라는 게 조견이라고 번역한 거예요.
엄청난 거예요. 이게 뭐냐 이거의 정체가 바라밀다예요.
바라밀다, 그니까 아까 제가 여쭤봤잖아요. 바라밀다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뭡니까 여쭤봤죠 그러니까 아는 것 같지만 뭐라고 얘
기하기도 좀 그렇네 이런 생각이 드셨다고 한다면 “바라밀다”는 뭐라고요 그러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거예요.”
바라밀다는 자기 자신을 비춰 보는 거 거기에 바라밀다가 있는 거예요.
이게 핵심입니다. 이게 반야심경의 핵심이에요.
내가 나를 바라봐야 해요. 그래야지 오온이 개공 공인 것도 알고 색수상이 없는 것도 알고 하는 건 거예요. 그걸 알라 그러면 그냥
알아지는 게 아니에요. 내가 나를 깊이 관찰해야 돼.
그래야지만 알 수 있는 거예요. 이거 한번 내가 얘기를 해볼게요.
보다” 하고 “관찰”하고 무슨 차이예요
어떻게 생각해 봤어요
이렇게 말씀드려볼게요. 시작은 관찰을 할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얘기해 볼게요. 제가 활쏘기 한다 했잖아요.
청주에 있는 협회에서 문화유산청 사업 예산을 받아서 그래서 이제 활쏘기 교육을 초등학생들한테 하고 있어요.
초등학생들한테 활쏘기를 가르쳐 보니까 이게 어른은 한 5년은 해도 될까 말까 한 자세가 애들 시키면 바로바로 돼.
조금만 시켜도 왜 될까요? 어른은 왜 안 되는데 애들은 왜 될까요?
고정관념 습이 있으니까 그렇죠 어른들은 몸에 습이 걸려 있어.
그러니까 시키는 대로 해도 안 되는 거야. 구현이 안 돼요.
애들은 그 습이 없어. 그 시키니까 바로바로 돼요.
사실은 보는 것을 해야 돼요. 봐야 돼. 본다라는 것에는 어떠한 선입견이나 관념도 없는 거예요.
그냥 보는 거예요. 그런데 어른들은 관찰을 하죠 관찰은 뭐예요
어떤 의도나 목적이 여기 개입돼 있는 거예요. 관찰은 그런데 어떻게 해요. 이미 너무 굳어져 있어요 그럼 뭐부터 해야 되는 거야
관찰부터 하긴 해야 되는 거예요.
하지만 관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고 그래서 자꾸 볼려고 노력을 해야 돼요.
그걸 한마디로 하면 뭐다 자꾸 볼려고 하는 노력이 뭐다
수행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것이 그것을 수행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수행은 반야심경을 보면 뭐 해야 돼요 그러면 수행은 뭐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시작과 끝이 뭘까요?
“자기 자신을 떨어뜨려서 마치 내가 아닌 것처럼 떨어뜨려서 내가 나를 관찰하는 거야.”
내가 오늘 남편한테 아내한테 싫은 소리 막 했어.
떨어뜨려서 봐야 돼.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했을까 하는 당시에 볼 수 있으면 더 좋죠.
내가 이거 왜 또 이렇게 얘기하고 있네 하면서 그만 그칠 수도 있죠.
그것을 하고 나서 후회하면서 얘기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거까지만 해도 좋지. 근데 그것도 안 되고 지나가버리면 이제 그냥 지나가버린 거예요.
그럼 그게 업이 되는 거예요 쌓여서 업이 되는 거예요.
기억으로 남거든요. 그 감정이 저장이 돼요. 제가 생각할 때는 온몸 구석구석에 저장이 돼요.
그래서 수행을 하게 되면 그런 것들이 막 튀어나오게 돼요.
자기도 모르게 생각이 막 나요. 그랬을 때 또 다시 그걸 바라봐야 되는데 그걸 또 관찰을 하고 있네. 기억돼 있던 그 업을 그럼 또
어떻게 돼요? 그것이 발생하던 당시의 감정이 또 살아나는 거예요. 그래서 플러스 원이 되는 거야.
기존에 있던 것도 그대로 또 있고 새로 또 생기는 거야.
감정이. 그러면 업의 총량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면 윤회 전생을 끝도 없이 반목을 해야 되는 일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이 관찰을 일단 관찰을 시작해야 돼요.
관찰을 시작하면서 자꾸 내려놓는 연습을 자꾸 해야 돼야 됩니다..
어떤 절에 가면 여러 가지 형태의 신앙 생활을 하시는 그 신도분들이 한 절에 한꺼번에 다 계세요. 어떤 분은 스님 법문을 듣는데
목숨을 걸고 이렇게 듣는 분도 계시고, 또 어떤 분은 막 봉사 활동을 엄청나게 하시는 분도 계세요.
또 어떤 분은 법당에서 절을 엄청 열심히 해요. 그러니까 다 뭔가 이렇게 다 이렇게 뭔가 다른 형태의 신행 활동을 열심히들 하시
는 분들이 한 이 울타리에 한꺼번에 다 존재하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뭐냐 이 종교에 자력이라는 게 있고, 타력이라는 게 있어요.
타력 뭔지 아시죠? 자력은 자기 스스로가 행복을 찾는 거예요.
타력은 그것을 남에게 다른 나와 다른 존재에게 좀 구하는 거죠.
그러니까 자력이 무조건 좋고 타력은 좀 별로 의존하는 것 같으니까 좀 안 좋은 느낌도 있는데 그런데 이걸 잘 생각하셔야 돼요.
물론 불교는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자력이 우선되는 게 맞아요.
하지만 그것을 자력으로만 돌파하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짓이에요.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스스로의 어떤 독선이나 이런 것에 빠져들 수가 있어요.
내가 다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고요.
스님이고 뭐 다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내가 다 해서 내가 내 살 길은 내가 찾아낼 거야.
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자칫 잘못하면 나라는 생각을 만들어내고 이게 관찰 대상이 어마어마하게
생기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러니까 자력이 중심이 되야 되는데 자력 만능 중에 빠져서는 안 돼요. 타력도 좀 있어야 됩니다. 예를 들면 스님을
생각하신다든지 아니면 부처님을 좀 이렇게 우러러 보고 존경하신다든지 그럼 보세요.
자력이라고 하면 부처님이고 뭐고 아무 필요도 없잖아요.
나 혼자 알아서 내가 하면 되는데 왜 부처님이 뭐가 필요하세요?
맞죠? 근데 이제 자기가 노력해서 하되 부처님이 나를 도와주시니까 내가 부처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고 나를 이끌어 주시겠지
하는 믿음도 필요한 거예요. 그렇게 원만하게 가야 되는 겁니다.
어느 한쪽에 이렇게 치우쳐서는 안 된다. 또 너무 타력에만 의존해서 다 해주겠지 뭐 이렇게 해서는 그것도 좀 곤란하지만 너무 자
력에만 또 이렇게 치중해서는 안 된다.
해서 이 반야심경의 이 내용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매일매일 거의 이걸 뭐 봉독을 하고 있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계셔야지.
근데 말은 이렇게 쉽지 이게 쉽지가 않아요. 자기 자신을 관찰하고 한다라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매 순간 이런 것들을 연습을 해야 돼요.
이게 쉽게 되는 게 아니고 애써 노력을 해야 돼요. 그러니까 수행이라고 하는 거예요.
저절로 되면 수행이 아니죠. 그건 그냥 뭐 저절로 되는 거니까.
근데 우리는 저절로 되지가 않아요. 그래서 이것을 애써서 좀 노력을 해야 돼요.
그래서 그게 이제 수행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그런 내용이에요.
그래서 그러면 우리가 극복해야 될 대상이 뭐냐 이렇게 바라봐서 나를 떨어뜨려서 내가 관찰을 해서 보다 관찰부터 얘기를 하고
봐서 또 뭘 해야 되느냐 라는 것은 이거는 한 번에는 안 나와야요. 한문에는 안 나오는데 자 여기 보시면 “빤짜 스깐다”를 다 보는
데 두 번째 줄 “스와바-와”라고 있나요? 요놈을 찾아내서 좀 막말로 하면 좀 조져야 돼.
“스와바-와”가 뭐냐 “스와”는 자기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바-와”는 존재라는 뜻이에요. 존재 “스와바-와”하면 자기 자신의 어떤 존
재 자기 자신의 성질 그래서 이거 자성 본성 뭐 이런 거예요.
흔히 자성이라고 많이 번역을 해요. 한문에서는.
그래서 자성 공 뭐 이런 거 많이 들어보셨죠 그게 이거예요.
그러니까 관찰에서 뭘 해야 되느냐 자성이라는 걸 찾아내야 돼요.
보살님께서 “습”이라는 말씀하셨는데 그런 “습”같은 것들로 이 자성으로 구성돼 있어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쌓아놓은 것들이 있어요.
구축해 놓은 성 같은 거예요. 그래서 그 성 안에 나라는 게 도사리고 있는 거예요. 이건 나다 그래서 그걸 자꾸 바라봐야 돼요. 내
자성이 뭔지를 봐야 돼요. 그래서 이게 내 자성이겠구나 하면서 그것을 허물어 뜨려야 돼요.
그래야지. 지금 여기서 어떻게 허물어뜨렸어요 이 관자재보살은 비운 것은 그 결과물인 거고 방법론은 떨어뜨리는 것도 맞지만
그래서 “빤짜 스깐다하”가 “오온”이잖아요.
그러니까 자성을 5개로 쪼개 놓은 거야. 이게 내 자성이 아니고 그냥 이게 다섯 가지로 뭐죠?
색수상 행식으로 이루어진 나의 색, 나의 수, 나의 상 이런 게 있는 거예요. 각자 고유의 수상행식이 있으신 거예요. 내 색은 이거
고, 내 수는 이거고, 내 상은 저거였구나 라는 방식으로 지금 쪼개 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자성이라는 게 없는 거구나 이렇게 깨닫는 거예요.
굉장히 구체적이죠. 방법이 확실한 거예요.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다 없는 거구나 이런 내용인 거고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첫째 한 줄에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조견 오온
개공까지인 거예요. 거기까지가 반야바라밀다심경 핵심이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뭘 조져야한다. 자성 내가 지금까지 쌓아둔 나라는 게 뭔지 이것을 바라보고 알아내서 이거를 자꾸 해체를 해야 돼요.
그럼 각자 다 다르신 거예요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각자 다 다른 얼굴을 가지고 계시듯이 다 각자 다른 생명을 가지고 계신 거고
그 생명을 바라보셔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지만 이런 깊은 바라밀다에 세계에 들어가실 수가 있는 이해 되시나요?
이게 말로 하면 이렇다는 거고요. 실제로 이것을 실천하고 수행하는 것은 각자 여러분들의 몫이지만 쉬운 일이 아니에요.
굉장히 어렵습니다. 저도 항상 노력하는데 잘 안 돼요.
잘 안 되는데 그래도 생각하고 노력하는 거 하고 다른 거죠.
그래서 그런 말씀인 거고요. 더 해도 되나요 아니면 여기까지만 할까요?
여기까지 하면 되죠 그러면 요거 하나만 더 보면 이제 보고 마칠게요.
이제 중송 그것도 이제 드렸으니까 거기서 보시면 이걸 드린 이유는 왜?
제일 마지막 페이지를 보시면 뭐라고 돼 있죠?
제일 뒤 페이지 1 - 2를 한 읽어볼게요.
용수 중송이라고 써 있는 거 같이 한번 읽어볼게요. .
“제법의 자성이 연 가운데 있지 않듯이 자성이 없기에 타성도 없다.”
이렇게 돼 있죠 이제 한문을 번역하니까 이렇게 된다는 거고 밑에 범이라고 돼 있는 것은 요 같은 해당되는 내용의 산스크리트어
를 번역한 내용이에요.
같이 한번 또 읽어볼게요.
“실로 사물들의 자성은 연 따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자성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내용들이 다 지금 방금 제가 말씀드렸던 그 설명 안에서 생각을 해보면 아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거구나. 이 자성이라는 게
없으면 타성도 없는 거예요. 내가 나를 규정하는 것들이 있고 그게 있으니까 또 내가 남을 규정하는 것도 있는 거예요.
남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말씀을 하나 맞춰볼게요.
이 세상 모든 사물들 나를 제외한
나를 제외한 이 모든 사물 존재들은 인간 사람들까지 다 포함해서 다 목적성이 있어요.
목적이 있는 거예요. 목적 무슨 목적이냐 마이크는 소리를 내게 크게 해 주는 목적이 있는 거예요. 방석은 오랫동안 앉을 수 있게 해주는 목적이 있는 거예요.
부모님은 나의 입장에서 나를 키워주기 위해서 있는 존재예요.
내 친구들은 내가 심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있는 존재들인 거예요.
다 목적성이 있어요. 사물이건 사람이건 근데 단 한 가지 목적성이 없는 게 있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에는 목적성이 없어야 돼요.
그래서 허투로 내가 왜 태어났을까 내가 뭘 하려고 태어났을까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왜냐 나는 뭘 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러면 그럼 뭐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아야 되느냐 그게 아니죠.
그렇게 태어난 게 조건으로 그렇게 태어난 거고 대신에 나는 무엇을 하면서 나의 생명을 어디다가 써야 되겠다라는 것을 스스로
가 찾아내야지 되는 거예요.
나의 목적성은 내가 만드는 거다. 남이 만들어주는 게 아니고 내가 스스로가 만드는 거다.
스스로가 찾아야 되는 거예요. 그러려면 스스로가 스스로를 자꾸 바라봐야 되는 거다.
남의 얘기만 듣고 거기에 따라가서는 안 돼요. 부모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거 듣고 거기에만 따라가서는 안 된다.
참고는 해야 되겠죠 나의 인생의 선배니까 나를 길러주시는 부모니까 참고는 해야 되겠지만 거기 말대로 따라갔다가는 나중에 후
회만 남게 돼요. 잘못되면 내가 책임지면 되는 건데 내가 선택했으면 부모라도 남의 얘기를 듣고 해서 실패하면 어떻게 돼 계속 원
망해야 되잖아요. 안 되는 거예요. 역으로 얘기해 보면 내 손가락 같고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지만 내가 자식한테 얘기해줄 수
는 있지요.
그런데 이래라 저래라 너하고 얘기해서는 안 되는 거야.
이렇게 손가락 해보세요. 되요? 하나씩 떨어졌다 뺐다 잘 안 되죠 내 손가락이 내가 내 손가락도 잘 못 움직이는데 어떻게 내 자식
을 내 마음대로 만들겠어요 뭐 그런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여기까지 얘기하고 자성이라는 거 그것을 하려고 그러면 해야 되는 거 오늘은 여기까지 얘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제공 : 홍보부장 월광지 김은수 님)
말이란 사람들에게 이롭지 않으면 차리리 말하지 말고....
생각은 사람들에게 이롭지 않으면 차리리 일으키지 말고...
행동은 사람들에게 이롭지 않으면 차라리 행하지 않는 지혜를 발휘해 봅시다. - <삼계를 제자들에게 전하며>
<글 정리 : 자문위원 법연 이동엽 합장>
첫댓글 처음 듣는 산스크리트어이지만 낯설지가 않았어요. 안필섭 교수님의 자상한 말씀에 50분이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반야바라밀 강의 좋았어요
법연 자문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원문을 그대로 옮겨 놔 기억이 새록합니다.
보현행 자문위원장님께서 수정할 부분을 빨리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