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석동애향비 >
□ 위치 : 대전시 유성구 반석동 636 번지 (반석 환승주차장 및 반석역 4번 출구 앞)
□ 설립시기 : 2004년 12월 20일
□ 설립주체 : 반석동 이주민 일동
□ 내용 : 반석동애향비
여기 빗돌을 세운 이곳이 본디 어디인가. 반석동이 지금의 아파트 단지로 변하기 전 대평리와 유성을 잇는 국도에서 반석동으로 꺾이는 길목 부근이다. 1995∼2005년까지 이루어지는 노은지구 2차택지개발 사업의 추진은 반석동 일대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낮은 산자락을 따라 이리 저리 굽어 돌던 국도는 곧은 대로로 바뀌었고 그 아래에는 지하철까지 달리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한적한 산골 정취를 간직했던 곳곳의 야산과 능선들이 깎여 없어져 이제는 그 위치조차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거기에다 산자dfkr과 골짝마다 둥지를 틀고 앉았던 마을과 전답들은 모두 메워지고 다져져 대규모의 택지로 변모되었다. 이제 이곳에서 바라보면 남쪽으로 구불거리며 흐르던 개울 대신 판판대로가 환히 바라보이게 되었고 그길 좌우에는 고층 아파트가 마치 울창한 숲처럼 다투어 치솟아 있다. 아, 고산심곡(高山深谷)아래 외진 산골이던 반석동이 몇 년 사이에 최신의 아파트 도시로 바뀌었으니 참으로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을 실감케 되었다.
반석동은 계룡산맥에 하늘 높이 솟은 우산봉(574m)과 그 남동쪽에 왕재산이 있다. 이들 산 골골마다 흘러내린 물이 반석천을 이루어 그것이 동남쪽 지족동으로 흐르면서 곳곳에 고래들 오야마루들 상어들 회병골 등의 터를 잡아 오랜 역사를 이루어 왔다. 우산처럼 생겼다는 유래담이 있는 우산봉은 그 우람한 자태만큼 든든하고 아늑한 산으로 심한 가뭄에 이곳에 비를 빌면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왔고 그 아래 터를 잡은 회병골은 왕을 보호하는 군병이 모인 곳으로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반석동 지역은 백제 때에는 노사지현(奴斯只縣소) 신라 때에는 유성현 고려 때는 공주부에 속했고 조선시대 초기 들어 공주군 탄동면에 소속되었으며 1895년에는 회덕군에 그리고 1914년에는 대전군 탄동면에 속했다가 1935년에는 다시 대덕군으로 소속되고 1983년 이후 대전시 유성구 반석동으로 편입되었다. 그 후 이곳에 군사시설과 정부기관이 들어오면서 인구유입이 크게 늘어 1999년 에는 184세대에 주민이 546명에 달하게 되었다. 앞으로 이곳의 택지개발 사업이 끝나면 인구는 무려 삼만오천여명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반석동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한국토지공사 주관 노은지구 제2차 택지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이제 이곳 주민의 많은 수는 정든 터전과 이웃과 헤어져 생업을 찾아 저마다 마을을 등져야만 했다. 그러나 고향 떠나기를 아쉬워하는 일부 주민들은 새로 지은 아파트 입주를 택했고 또 일부는 택지로 보상을 받아 옛 터전에 새로 집을 지어 오래도록고향을 지키기로 하였으니 바로 이 공원 앞쪽 주택지역이 그곳이다.
이제 우리 반석동 이주민 일동은 변하기 전의 고향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변한 고향이 더욱 발전할 것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토지공사의 후원을 얻어 이 비를 세우기로 한다. 노은지구 개발이 대전발전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듯이 이제 이곳의 개발이 계룡천도(鷄龍遷都)의 동력으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우리의 소망을 여기에 함께 담아 기록해두고자 한다.
2004년 12월 20일
반석동 이주민 일동
□ 사진
□ 지도에서 찾기 https://place.map.kakao.com/1778075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