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입멸 후.
그러나 위대한 스승 붓다의 입멸 후 방편을 사용하려는 일부 수행 체계와 재가 신자들에게 있어
숭배와 신앙의 대상이 된 붓다의 모습이나 사리의 탑을 세워 기리며 신앙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붓다 가르침의 내용보다는 붓다에 대한 동경이 신앙으로의 원천이 되었다.
그로인하여 신앙적 기도란 형태와 그에 수반되는 여러 논리들을 상생하며 그들은 붓다 사리탑과
불상을 조성 안치할 사원을 건립하며 그 방편이 신앙 집단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는 보살집단이
성립하는 모체가 된다.
이후 통일국가 인도는 이미 굽타 왕조 때부터 전폭적으로 붓다의 제자 중에서 기도의례 신앙적
힌두이즘을 받아들였는데, 이 시대 불법(佛法)에 큰 영양을 미친 힌두파의 약진은 힌두적 신들의
수용과 주술적인 의례의 도입뿐만 아니라, 불법(佛法)교단에 힌두적 제사법도 받아들이게 되였다.
즉, 현세적인 의례와 주술적인 요소가 성불을 위한 방법으로 승화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것은 붓다의 예언하신 그 대로 수행불법의 약화 내지는 일부 수행비구들을 산속으로 가게 만든
것도 사실 이였다. 그러나 그 당시는 이렇게 불법이 세속화 되었다고 해서 불법(佛法)의 본질이
상실되는 것에서는 최소화 하려는 자정능력 방법으로 산속 아란야에서 수행하는 청정한 비구
수행자의 안거나 생활적 경제를 뒷받침을 지속적 하는 것으로 승화 되였다.
신앙불법(佛法)의 활성화로 근본불법(佛法)은 비록 대중들의 염원으로 세속화의 길을 밟고
있었지만 근본 계와 율 수행과 홍법은 엄연히 존재하였으며, 일부 승단에서는 붓다의 가르침을
정석으로 준수하는 지킴도 여전히 엄격하였으며 바른 계승으로 이여가 상부상조의 화합비구
사부중으로 긴 여정 토착과 융합 정착을 이루게 되였다.
원시불법(原始佛法)의 범위와 성전
원시(초기)불법은 통상 석가모니 부처님의 성도로부터 입멸 후 100년까지의 사이의 불법을
가리킨다. 이것은 인도 불법사의 시대적 구분에서 볼 때, 상좌부와 대중부 두 개의 부파로
분열하기까지의 불법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원시불법(原始佛法)는 고타마 붓다가 도(道)를 깨닫고 전도를 시작한 때로부터
그의 입적(入寂) 후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정리하여 성립된 불법을 일반적으로 의미한다.
고타마 붓다의 제자들 사이에 견해의 차이가 생겨 불멸후 100년경에 상좌부와 대중부로 분열되고
이어서 여러 갈래의 분열이 일어나 부파 불법이 시작될 때까지의 약 200~300년간을 말하는데
북방 불법과 남방불법의 자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원시불법은 초기불법(初期佛法) 또는 근본불법(根本佛法)라 하기도 한다. 고타마 붓다 및 그의
직제자(直弟子) 시대의 불법을 근본불법(根本佛法)라 하고 그 후의 것을 협의의 원시불법이라
하는 설도 있다. 근본불법이라는 용어는 고타마 붓다의 진면목 또는 근본사상이 무엇인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이를 지칭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된다.
원시불법의 특색은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이 직접화법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 점에 있으나 실은
제자들에 의하여 구전(口傳)된 것이 고타마 붓다의 입적 후 정리된 것으로 그 확실성의 한계점을
긋기는 어렵다.
원시불법을 가리키는 용어로는 “부파 이전 불법(프리스 컵디션 부디즘pre-sectarian Buddhism)”
“가장 초기의 불법(더 얼리스트 부디즘the earliest Buddhism)” “근본 불법(오리지널 부디즘
original Buddhism)” “붓다의 불법(더 붓이즘 오브 더 붓다 핸서프the Buddhism of the Buddha
himself )” 등이 있다. 학자들은 원시불법 시대를 가리키는 용어로 “초기 불법(얼레이 부디즘Early
Buddhism)”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 이후의 부파 적 전개를 “부파 불법(셥터리안 부디즘
sectarian Buddhism)”라고 부르고 있다.
원시불법의 사상
원시불법 또는 근본불법에서 초점이 되는 것은 고타마 붓다의 근본사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다음은 이러한 관점에서의 원시불법의 사상에 대한 서술이다. 고타마 붓다는 당시의 인도
사상계에 있어서 논의되고 있던 갖가지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한 논쟁, 예컨대
“세계는 영원(永遠)한가? 세계는 영원하지 않은가? 세계는 유한(有限)한가? 세계는 무한(無限)
한가? 영혼과 육체는 같은가? 영혼과 육체는 다른가? 여래(如來)는 사후(死後)에 존재하는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와 같은 물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답도 주지 않았다. 그것은 이러한 문제는 아무리 따져보아도 결코 해결을 얻을 수 없는 무익한
의론(議論)으로 끝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고타마 붓다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얽매이기 보다는 내심(內心)의
적정(寂靜)의 경지(“열반” 또는 “평화“)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고타마 붓다가 당면하여 해결하고자
했던 것은 인생고(人生苦)의 문제였다. 고타마 붓다는 깨달음을 성취하여 내심(內心)의
적정(寂靜)의 경지(“열반” 또는 “평화“)에 도달한 후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교의를 가르쳤다.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무상“) 거기에는 고정적인 실체라는 것이
없는데(“무아“), 거기에 무엇인가 상주불변(常住不變)의 실체(“我·아”)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에
집착하기 때문에 번뇌(煩惱)가 생겨서 고통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그리고 그 번뇌
(煩惱)는 무명(無明: 진리에 대한 무지)과 갈애(渴愛: 집착)에 입각한 것이므로(“십이연기설“),
바른 수행(“팔정도“)에 의해 지혜를 완성하여 진리에 눈을 뜨게 되면 마침내 갈애를 끊고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해탈“) 이상의 경지(“열반” 또는 “평화“)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고타마 붓다는 이와 같은 것을 항상 제자나 신자들에게 설교하였으며 이것을 정리한 것이
사성제(四聖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