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장三十五章
(이른바, 다스리는 데 있어서, 아주 먼 옛날의 제후와 천자天子는 무위無爲의 수준이 높고 정도가) 큰 형상(象; 道·德·自然·性·命)을 붙잡았고, (따라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은 (저절로 그러하게 이롭게 되는 바로) 나아갔다. (이른바, 다스리는 데 있어서, 아주 먼 옛날의 제후와 천자는 무위無爲의 수준이 높고 정도가 큰 형상으로) 나아갔고, 따라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은 일부러 일삼아) 해롭게 되지 않았다. (따라서 송宋나라 시대) 여길보呂吉甫는 일컬었다. “(다스리는 데 있어서, 아주 먼 옛날의 제후와 천자는) 이른바 (일부러 일삼은) 이치와 방법을 잊어버리는 바와 더불어 했고, 따라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은 이른바 저절로 그러하게 이롭게 되는 바를) 떠나가는 바와 더불어 했던 사람이 일찍이 (한 명도) 없었다.” (따라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아주 먼 옛날의 세상 사람들은) 평안했고, 평화롭고, 태평했다. (이른바, 제후와 천자의 마음이 무위無爲의 수준이 높고 정도가 큰 형상을) 즐기고 더불어 하고 (마시고) 먹게 되면, (유위有爲의 수준이 높고 정도가 큰 형상을 즐기고 더불어 하고 마시고 먹는 데 재빠르게) 나아가던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저절로 그러하게) 손님으로 찾아들게 되고, (따라서 유위有爲의 수준이 높고 정도가 큰 형상을 즐기고 더불어 하고 마시고 먹는 데 재빠르게 나아가던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저절로 그러하게) 멈춰지게 된다. (이른바) 도道가 입으로 내뱉는 바는 (유위有爲가) 담백하다! (이른바, 도道) 그것은 (일부러 일삼은) 맛을 가지는 바가 없다. (따라서 도道의 형상) 그것을 보지만, (그것을 또렷하게) 보는 바를 충족하지 못하게 되고, (도道의 음성) 그것을 듣지만, (그것을 뚜렷하게) 듣는 바를 충족하지 못하게 되며, (도道의 이치) 그것을 쓰지만, (그것의) 끝점을 다(하는 바를 충족)하지 못하게 된다.
執大象, 天下往. 往, 而不害. 呂吉甫曰: 雖相忘於道術, 而未嘗相離. 安平泰. 樂與餌, 過客止. 道之出口, 淡乎. 其, 無味.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可既.
(이른바) 뱀이 짓는 바(인 독毒의 뿌리)는 (그) 목(의 가운데인 독샘)에 자리한다. 사람이 짓는 바(인 일삼음의 뿌리)는 (그 몸의) 가운데(인 마음)에 자리한다. (따라서) 그 (뱀의) 목을 잡아매는 일은 이른바 그 (저절로 그러하게 독毒을) 쏘는 (뱀의) 일을 (일부러 일삼아) 멈추게 하는 일이다. (따라서 『주역周易』 간괘艮卦 구삼九三에 따르면) “그 (사람의 몸) 가운데를 (위아래로) 어긋나게 하는 일”은 이른바 “그 (저절로 그러하게 위아래로 연결된 사람의) 몸을 (일부러 일삼아) 나뉘게 하는 일”이다.
蛇之製, 在項. 人之製, 在限. 係其項, 則廢其蜇. “艮其限”, 則“列其夤”矣.
(이른바, 제후와 천자로서) 그 (마음의) 형상이 (유위有爲의 수준이 아주 높고) 아주 작게 되면, (그) 다스림(의 형상)이 (무위無爲의 수준이 아주 높고) 아주 크게 된다. 따라서 (제후와 천자로서, 그 마음이 유위有爲를) 맑게 하고 텅 비우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저절로 그러하게 유위有爲를 맑아지게 하고 텅 비우는 바를) 불러들이게 된다. 따라서 (제후와 천자로서, 그 마음이 유위有爲를) 거듭하고 (무위無爲를) 흐려지게 하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일부러 일삼아 유위有爲를 거듭하고 무위無爲를 흐려지게 하는 바를) 살피게 된다. (따라서 제후와 천자로서, 그 마음이) 그 (무위無爲를) 살피는 바를 내버리지 않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저절로 그러하게) 그 (유위有爲를) 불러들이는 바로 달려가지 않게 된다. 따라서 (제후와 천자로서, 그 마음이 유위有爲를) 텅 비우고 (무위無爲를) 가득 채우는 바를 얻게 되면, 이른바 (세상 사람들이 저절로 그러하게 무위無爲를) 가득 채우고 (유위有爲를) 텅 비우는 바를 얻게 된다. (따라서 제후와 천자로서, 그 마음이) 그 (유위有爲를) 거듭하고 (무위無爲를) 흐려지게 하는 바를 내리누르게 되면, 이른바 (세상 사람들이 저절로 그러하게) 그 (무위無爲를) 맑게 하고 (유위有爲를) 텅 비우는 바에 이르게 된다.
其像, 甚微. 制之, 甚大. 故清虛者, 物之湊. 而重濁者, 物之司也. 不棄其司, 不奔其湊. 於空得實, 於實得空. 扼其重濁, 以致其清虛.
(이른바, 제후와 천자는 그 마음이 무위無爲의 수준이 높고 큰 형상) 그것을 생각하고 (생각하며) 시도하고 시도해야 한다. (이른바, 제후와 천자는 그 마음이 무위無爲의 수준이 높고 정도가 큰 형상을) 즐기고 일으키고 (마시고) 먹고 삶아서 익혀야 하는데, 따라서 이른바 (유위有爲의 수준이 높고 정도가 큰 형상을 즐기고 일으키고 마시고 먹고 삶아서 익히는 바를) 일삼는 바에 재빠른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저절로 그러하게) 손님으로 모여드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된다. 이른바, (제후와 천자는 무위無爲의 수준이 높고 정도가 큰 형상에) 노닐고 마음을 써야 하는데, 따라서 (이른바 세상 사람들이 유위有爲의 수준이 높고 정도가 큰 형상에 노닐고 마음을 쓰는 바를) 멈추게 된다. 이른바, (제후와 천자의 마음) 그것이 (무위無爲의 수준이 높고 정도가 큰 형상으로) 돌아가는데, 이른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어찌 무위無爲의 수준이 높고 정도가 큰 형상으로 돌아가는 바에) 마음을 쓰지 않겠는가?
試試念之. 樂作餌熟, 則雖有遄行之客. 而遊情, 以止. 非以其歸, 於情耶?
이른바, (1장은) 일컬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늘 그러하게 (일부러 일삼아 지어 부를 이름을 가지는 바가 없는 바無名·大象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되고, 그 (일부러 일삼아 일컬을 바를 가지는 바가 있는 바有名·有爲가) 어슴푸레한 끄트머리(徼; 常名·無名)를 살피고 일삼고자 하게 된다.” 따라서 (뱀의) 목은 (저절로 그러하게 세상 사람들의) 가운데를 더불어 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뱀의 목은 일부러 일삼아 세상 사람들에게 독毒을 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바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所謂, 「常有, 欲以觀其徼」也. 然項之, 與限, 非有情者也.
(이른바, 유위有爲에) 마음을 쓰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바(인 도道)는 (유위有爲에) 마음을 쓰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는 바를 품어 안음으로써 (입으로 내뱉는 바를) 일삼거나 주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도道가 입으로 내뱉는 바는 유위有爲가) 텅 비어 있고, 담백하고, 어슴푸레하고, 조용하다. 따라서 (도道는) 일삼지만, (유위有爲한) 방향을 가지는 바가 없다. (도道) 이것은 이른바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바가 지극하다.
無情者, 不可強納有情以為之主. 則沖淡晦寂. 而用, 無方. 斯, 亦無欲之, 至矣.
(이른바, 제후와 천자의 마음은 무위無爲를) 거듭하고, (유위有爲를) 흐려지게 하는 바를 비롯해야 한다. (유위有爲를) 맑게 하고, (유위有爲를) 텅 비우는 바로 돌아가야 한다. (유위有爲를) 맑게 하고, (유위有爲를) 텅 비우는 바를 얻어야 한다. (무위無爲를) 거듭하고, (유위有爲를) 흐려지게 하는 바를 따라야 한다. (이른바, 제후와 천자의 마음이 무위無爲를) 일삼고자 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되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유위有爲를) 일삼고자 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된다. 이른바, (제후와 천자의 마음이 무위無爲가) 늘 그러한 바이게 되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무위無爲한 바에서 무위한 바로) 바뀌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된다. (이른바, 제후와 천자의 마음) 이것이 (무위無爲의 수준이 높고 정도가) 큰 형상을 붙잡는 바이게 되면, (세상 사람들의 마음) 그것이 이른바 (무위無爲의 수준이 높고 정도가 큰 형상에) 홀로 서게 되고, (무위無爲의 수준이 높고 정도가 큰 형상을) 얻게 되며, (무위無爲의 수준이 높고 정도가 큰 형상과) 더불어 하게 된다!
始乎重濁. 反乎清虛. 得乎清虛. 順乎重濁. 有欲, 無欲. 而常者, 未有變焉. 斯, 執大象者, 之, 所獨得與!
첫댓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모두 저의 부족함 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