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2 주일설교
목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디모데전서 5:17~25
음식을 골고루 먹지 않고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먹는 것을 편식(偏食)이라고 하죠. 설교자도 약간 불편한 주제는 회피하고 편한 내용만 설교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하면 청중이 말씀을 편식하게 되죠. 이런 “편식 유발 설교”를 방지하는 방법은 본문을 순서대로 설교하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디모데전서를 본문 따라 설교를 하다보니 평소에 회피하던 주제도 부득이 설교하게 됩니다.
이렇게 서론이 장황한 이유는 오늘 설교가 목사에게 잘하라는 내용이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제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목사가 어떻게 자기에게 잘하라는 내용을 설교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약간 민망하거든요. 하지만 이것도 성도에게 필요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은혜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목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내용입니다. 목사는 성도의 신앙을 말씀 위에 세우라고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직분입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교회를 잘 섬겨야 합니다. 목사가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하는 말씀은 베드로전서 5장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목양을 자원함으로 하고 더러운 이득을 추구하지 말고 주장하기보다 본이 되라고 합니다.
손바닥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목사는 베드로전서 5장에서 명하는 말씀대로 목양해야 하고 성도는 디모데전서 5장에서 명하는 말씀대로 목사를 대하면 우리 교회가 이름처럼 행복한교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해 보세요. “목사는 베드로전서 5장 같이, 성도는 디모데전서 5장 같이”
그러면 성도는 목사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본문을 통해 세 가지의 교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잘 가르치는 목사를 존경하라.
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이 말을 현대인의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존경하고 특히 말씀과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분들을 더욱더 존경하기 바랍니다.”
여기서 장로(프레스뷔테로스 πρεσβύτερος)는 1절의 노인과 같은 단어인데 여기는 단순히 나이가 많은 분이 아니라 장로 직분을 말합니다. 장로교회가 영어로 Presbyterian Church인데 Presbyterian이 헬라어 πρεσβύτερος에서 나왔습니다.
초대교회에서 πρεσβύτερος는 어른, 지도자와 같은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장로와 목사로 완전히 구분되었습니다. 요한이서 1:1을 보면 사도 요한이 자신을 장로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에서 장로는 목사와 구분된 장로 직분이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를 뜻했습니다.
다시 디모데전서 5:17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하면, 여기서 잘 다스리는 장로는 훌륭한 당회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잘 이끄는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당시의 교회 지도자 중에 가르치지 않는 분도 있었을까요? 그렇습니다. 당시의 교회는 주로 가정 형태였으니까 가정의 어른들이 교회에서도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나 순회 전도자처럼 가정 교회를 방문해서 설교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분을 17절에서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장로 혼자 교회를 이끄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100년 전에는 목사가 없는 교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순회하는 목사가 올 때만 성례식을 했고 그래서 지금도 성례는 1년에 4번만 하는 관습이 굳어졌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장로는 없고 목사 혼자서 교회를 이끄는 교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회 지도자들은 모두 말씀과 가르치는 일에 헌신한 목사들입니다. 목사는 신학을 공부하고 강도사로 인허받은 후 목사로 안수 받았습니다.
저는 20살에 신학을 공부했고 목사가 된 지도 30년이 넘었는데 감사하게도 10년 전에 설교학을 전공해서 신학박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못하는 것도 많지만)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17절에서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존경하고, 특히 말씀과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분들을 더욱더 ‘그리하라’라는 말은 더욱더 ‘존경하라’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간단히 줄이면 “잘 가르치는 목사를 존경하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존경하라는 말은 마음으로 귀하게 여기고 예를 다하라는 뜻만이 아닙니다. 헬라어에서 존경흔 티메(τιμή)인데 명예/존중과 함께 대가/사례금의 뜻도 있습니다. 즉 존경과 예를 포함해서 물질로 보상하라는 뜻입니다.
그 증거는 18절입니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한 율법을 인용하여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는 이유는 말씀 사역자도 그것이 그 사람의 전업이므로 가르치는 사람에게 물질로 보상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제5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마음으로 존경과 예를 표하는 것만이 아니라 물질로 섬기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모 공경과 마찬가지로 목사 존경 역시 물질로 보상하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각각 사정이 다릅니다. 교인 수가 많지 않거나 교인들이 가난하면 목사에게 물질을 충분히 보상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교회가 약해서 목사 사례비를 주지 못하면 하나님이 직접 주십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종이기에 하나님이 다 먹이십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까마귀를 통해서 빵과 고기를 가져다주어 먹었고 나중에는 사르밧의 과부 집에서 먹게 하셨습니다. 목사는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이 먹이시지만 교회와 성도는 목사를 존경하고 물질로 섬기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이렇게 명하는데도 어떤 교인은 목사는 가난하게 살아야 은혜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가난하지 않은 목사 중에도 은혜가 되는 분이 많고 가난한데도 은혜가 안되는 분도 많습니다. 가난한 것과 은혜는 관계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잘 가르치는 목사를 더욱더 존경하세요.
2. 목사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교회의 지도자도 사람인지라 실수할 수도 있고 자격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범죄한 사실이 확인되면 그를 꾸짖고 처벌해야 합니다. 20절을 보면 그렇게 해서 장로도 처벌받는 것을 보면서 일반 성도가 두려워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탄은 얼마나 교활한지 교회의 지도자를 무너뜨리면 교회 하나가 무너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목사 하나 쓰러뜨리면 교회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사탄이 써먹는 수법이 크게 두 종류입니다. 첫째는 목사가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다윗도 죄를 지었는데 목사들이 뭐라고 죄를 안 짓겠습니까? 문제는 목사가 죄를 지으면 교회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목사가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많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목사가 예뻐서가 아니라 교회가 보존되고 성도의 믿음이 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의 믿음 생활을 평온하게 하기 위해 목사를 위해 기도하셔야 합니다.
사탄이 써먹는 두 번째 수법은 목사에게 누명을 씌워 문제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해도 교회가 깨지고 성도가 시험 드는 효과는 비슷하거든요. 제가 재작년에 총회 재판국에서 1년간 일했습니다. 서울의 어떤 교회에서 목사가 무슨 불법을 했다고 고발이 있고 목사는 모함이라면서 각종 서류를 가지고 변호하고 또 재차 고발이 있고 이렇게 반복되는데 누가 언제 무슨 말을 했고... 이것을 따지는데 너무 복잡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일 못하겠다고 빠져 나와서 작년부터 총회 정책연구위원회 일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훨씬 건설적이고 보람이 있습니다.
세상 법정에서도 한 번 재판이 걸리면 끝이 없습니다. 송사는 쌍방이 다 망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교회도 재판이 걸리면 우선 교인들이 쫙 빠져나갑니다. 빠져나가지 않은 교인들은 서로를 향해 마귀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의 송사, 특히 목사와 관련된 재판은 진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19절은 장로에 관한 고발은 쉽게 받지 말라고 합니다. 두세 증인이란 숫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해 당사자의 증언이 있을 때만 고발을 받으라는 말입니다. 목사를 아주 미워하는 교인이 고발을 했을 때 소위 중립에 서 있는 사람들의 증언도 들어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도는 목사를 사랑하고 신뢰해야 하고 목사가 고발당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고등학생 때에 은혜받으러 기도원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어느날 기도원에 강사로 오신 분이 한 말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강사님 왈, 목사가 연예를 하면 “전도하시겠지” 하고, 목사가 막걸리를 마시면 “우유를 마시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다 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으로 신뢰하라는 뜻입니다.
하여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목사를 존경하고 신뢰하고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3. 목사의 건강을 챙기는 성도가 되라.
23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합니다. 디모데는 성격이 소심해서 위장병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목사들은 설교 준비에 매진하면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신경 쓰다가 속병이 잘 생깁니다.
오늘날은 다양한 약이 있고 실력 있는 의사도 많지만 1세기에는 다만 포도주를 약처럼 사용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프랑스에서는 포도주에 오렌지, 사과, 레몬 등의 과일과 계피 혹은 약재를 넣어 끓여서 만든 뱅쇼(Vin chaud)를 마십니다. 우리나라 쌍화탕과 비슷합니다. 여러분도 겨울에 뱅쇼를 마셔보세요. 건강에 좋습니다. 카페 메뉴판에 뱅쇼가 있으면 좀 세련된 카페입니다.
하여간 바울은 후배 목사 디모데에게 건강을 챙기라고 합니다. 이 말은 바울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왜나하면 목사가 죄를 짓거나 누명을 써서 구설수에 올라도 교회가 흔들리고 성도가 시험 들지만, 목사가 아파도 교회가 흔들리고 성도가 시험듭니다. 그리심교회 박목사님도 몸이 아파서 결국에는 목회를 접었습니다.
목사가 건강해야 결국 성도가 건강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건강은 자신이 챙겨야 하는데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도 해주고 좋은 음식이나 약도 제공해 드리고 때로는 쉬게도 해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에게 산삼을 캐오라는 말은 아닙니다. 포곡제일교회 김종원목사님은 어느 날 성도가 산삼을 캐서 가져왔더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산삼 캐러 가지 마세요. 저나 여러분이나 산삼을 봐도 구분도 안 됩니다. 잘못해서 독초를 캐오면 큰일 납니다.
요약과 결론
서두에서 장황하게 말했습니다만, 목사에게 잘 하라는 설교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은 목사가 편하게 잘 먹고 잘 살자는 소리가 아닙니다. 목사를 물질로 잘 섬기고 목사를 신뢰하고 목사의 건강까지 챙기라는 말은 결국 교회가 건강하고 성도가 건강하게 되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줄 믿습니다.
목베오, 성디오, 기억하지죠? “목사는 베드로전서 5장 같이, 성도는 디모데전서 5장 같이” 서로를 헌신적으로 세움으로 온 우리교회가 이름처럼 행복한 교회가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