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
시그널/큐
안녕하세요. <박선영의 라디오 시간여행> 박선영입니다.
8월의 한가운데, 무더위와 선선한 바람이 교차하는 요즈음인데요.
여러분은 '우리 집' 혹은 '내가 사는 동네'를 생각하면 어떤 느낌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따스하고 아늑한 기운인가요, 아니면 왠지 모를 서늘함인가요?
그동안 음양에 대하여 3차례에 걸쳐 방송을 했는데 잠깐 분위기를
바꿔서 풍수지리에 대하여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풍수지리는 누구나 호기심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옛날 우리 조상들은 집터나 마을터를 잡을 때 아주 중요한 원리
하나를 마음에 품었습니다. 바로 '풍수지리(風水地理)'입니다.
'풍수'라는 단어, 들어보면 참 어렵고 먼 이야기 같죠? 하지만 한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람 풍(風), 물 수(水), 땅 지(地), 이치 리(理)로
아주 쉬운 글자들입니다. 말 그대로 '바람과 물로 땅의 이치를
아는 것'이 풍수지리의 본뜻이죠.
그렇다면 조상들이 찾았던 살기 좋은 땅, 즉 '명당'은 과응 어떤
곳이었을까요? 거창한 공식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햇볕이 잘 드는
남향에, 겨울 바람을 막아줄 작은 동산이 뒤를 안아주고, 앞에는
시원한 물이 흐르는 아늑한 곳.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공간입니다. 결국 풍수지리란, 오랜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람이 살기 가장 좋은 장소'를 찾아가는 자연스러운 지혜였던 셈입니다.
첫 곡 듣고 오시죠. 바람과 물처럼 자연의 편안함을 전해주는
노래입니다.
조용필 – [바람의 노래]/큐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 듣고 오셨습니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살기 좋은 곳, '명당'이나 '혈자리'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생기(生氣)', 즉 살아있는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다는 점인데요. 반대로 나쁜 기운은 죽은 기운인
'사기(死氣)'라고 부르죠.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생기'를 조상들은 어떻게 찾았을까요?
사람의 팔에 불끈 솟아오른 핏줄에서 힘찬 기운을 느끼듯, 땅에서는 힘차게 솟아오른 '산'을 통해 생기를 읽었습니다. 피가 심장에서
출발해 핏줄을 타고 온몸으로 흐르듯이, 좋은 기운도 산줄기를 타고 흘러온다고 믿었던 것이죠.
재미있는 점은, 우리 조상들은 우리나라의 모든 좋은 생기가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에서부터 시작해 산줄기를 타고 전국의 명당으로 퍼져나간다고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백두산을 단순한 산이 아닌
신성한 영산으로 여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 산줄기를 타고 흐르는 기운을 용의 맥박에 비유해 '용맥'이라
부르고, 땅속으로 숨어 흐르는 기운을 '지맥'이라고 불렀습니다.
산줄기가 잘리면 이 좋은 기운도 끊어진다고 믿었기에, 우리 민족에게 산은 곧 생명이자 정기 그 자체였습니다.
세종대왕의 영릉(英陵)과 '백년연속 명당'에 대하여 알아볼까요?
세종대왕이 돌아가셨을 때, 원래 묘자리는 현재의 서울
내곡동 헌릉옆 이었습니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풍수사였던 최양선은 이 자리를 보고 "손자가 할아버지를 해칠 흉지(광중가수가, 夎中加水家)"라며 반대했습니다.
당시 수양대군(훗날 세조)은 이를 무시하고 묘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후 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이 일찍 죽고, 단종이 삼촌(세조)에게
죽임을 당하며, 세조의 큰아들 의경세자마저 요절하는 등 왕실에
비극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예종 때 세종대왕의 묘를 현재의 경기도 여주 영릉(英陵)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때 여주의 묘자리를 본 풍수사들은
"조선 왕조의 국운이 100년은 더 연장될 천하제일의 명당이라고 극찬했습니다. 실제로 조선 왕실은 여주 이장 이후 성종 시대를 거치며
장기적인 안정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자, 이번에는 산과 자연의 정취가 느껴지는 노래 한 곡 들어볼까요?
송창식 – [가나다라]/큐
송창식의 '가나다라' 듣고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산을 타고 내려온 이 좋은 기운 '생기'를 어떻게 해야
우리 집으로, 우리 마을로 모을 수 있을까요? 여기엔 생기가 가진
아주 재미있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생기는 바람을 만나면 흩어집니다. 이를 한자로 '풍즉산(風則散)'이라고 합니다. 둘째, 생기는 물을 만나면 멈춥니다. 이를 '계수즉지(界水則止)' 또는 '수즉지'라고 하죠.
그래서 명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바람을 가두어 생기가 흩어지지
않게 하고, 물길을 만나게 해서 생기가 엉뚱한 곳으로 가지 않고
멈추게 해야 합니다. 바람을 가두는 '장풍(藏風)'과 물을 얻는 '득수(得水)'. 이 두 단어가 합쳐져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풍수(風水)'라는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좌청룡, 우백호처럼 좌우의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싸서 강한 바람을 막아주고, 집 앞에는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며 생기를 멈추게 해주는 곳. 들을수록 너무나 과학적이고 직관적인 삶의 터전이지 않나요?
물과 바람의 조화를 떠올리며, 다음 노래 들어보겠습니다.
이적 – [빨래]/큐
이적의 '빨래' 함께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에 배산임수가 완벽하고 장풍득수가 제대로
갖춰진 명당이 그리 흔할까요? 그리고 설령 그런 명당이 있다 한들, 우리 모두가 그 땅에 살 수는 없는 노릇이죠.
조상들은 여기서 참 지혜로운 해답을 냈습니다. 땅의 조건이 조금
부족하면, 사람이 정성을 들여 그 부족함을 채우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을 풍수용어로 '비보(裨補)'라고 합니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오는 길목이 있다면 나무를 심어 숲(비보림)을 조성해 바람을 막았고, 물길이 부족하거나 기운이 새어나가는 곳에는 연못을 파거나 탑을 세워 기운을 모았습니다. 완전한 명당을 찾아
헤매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터전을 스스로 살기 좋게
가꿔나간 것이죠.
완벽하지 않아도 서로 채워가며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마음. 어쩌면 풍수지리가 우리에게 전하는 진짜 메시지는 바로 이 '비보'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노래 한 곡 듣겠습니다.
성시경 – [너의 모든 순간]/큐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 들으셨습니다.
오늘 <박선영의 라디오 시간여행>에서는 풍수지리에 담긴 조상들의 지혜와 삶의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풍수지리라는게 알고 보면 그리 어렵거나 거창한 미신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사람이 살기에 가장 아늑한 곳, 바람을 피하고
맑은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찾고, 부족한 부분은 서로 채워가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 했던 삶의 지혜였죠.
결국 가장 좋은 명당은 거창한 산줄기 아래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겁니다. 우리가 머무는 공간을 사랑하고, 아늑하고 따뜻한 기운으로 채워나갈 때 그곳이 바로 나만의 '명당'이 되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풍수지리와 관련하여 에피소드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리 말에 골로 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이고, 이러다 골로 가겠다", "진짜 골로 갔네" 하고 쓰는 표현은 '죽다' 또는 '매우 큰 화나 곤경을 입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골'은 산골짜기를 뜻합니다.
풍수지리에서의 산골짜기 즉 골은 배산임수와 장풍득수를 으뜸으로 칩니다. 반대로 골은 바람이 사납게 불어 지나가는 통로이자,
습기가 차고 물이 안 좋게 드나드는 대표적인 흉지(凶地)로 봅니다.
옛날에는 살기 좋은 명당이나 들판에는 집을 짓거나 농사를 지어야 했으므로, 사람이 죽으면 땅값이 싸고 사람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깊은 산골짜기에 무덤을 쓰거나 시신을 묻었습니다.
따라서 "골로 간다"는 말은 상여를 타고 "무덤이 있는 산골짜기로
간다 즉 죽어서 묻히러 간다"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또 다른 유래로는 6·25 전쟁설이 있는데 현대 역사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함께 언급됩니다.
6·25 한국전쟁당시, 부역자나 정적들을 처형할 때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깊은 골로 끌고 가서 처형했던 비극적인 역사에서
"골로 갔다 즉 골짜기로 끌려가 죽었다"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설입니다.
결국 풍수지리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골'은 생기가 뭉치는 명당과
반대되는 죽음과 소멸의 공간이었기에, 오늘날 '골로 가다'라는
관용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이 머무시는 모든 공간이 생기발랄하고 따뜻한
명당이 되기를 바라며, <박선영의 라디오 시간여행> 오늘 방송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곡으로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띄워드리면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박선영이었습니다.
음악시작 / 김광석 – [바람이 불어오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