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보첼리는 살아있는 팝페라의 거장으로 작년 내한공연도 하였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성악가 입니다.
엔리카!! -"저 역시 사랑때문에 눈 먼 장님이었는걸요"
그의 첫 연인은 엔리카 센자티 입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 없었던 23살의 보첼리는 1987년 당대 최고의 테너 브랑코 코넬리를 찾아갔고,레슨비를 벌기 위해 피아노바에서 연주를 하며 새로운 음악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이 파아노바에 청년 안드레아 보첼리의 첫번째 사랑 엔리카가 있었습니다.
둘은 사랑에 빠졌고, 엔리카는 안드레아 보첼리의 눈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음악과 함께 새 삶을 살기 시작한 안드레이 보첼리를 변함 없이 응원했고,
외부 공연이 있을 때마다 항상 함께 있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안드레아 보첼리가 이탈리안 록스타 주체로(Zucchero)를 통해 데뷔를 한 1992년, 이들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음악적 인생을 엔리카와 시작한 것 이었습니다.
이 둘이 자신들이 누리는 사랑에 만족하고 감사했기에 안드레아 보첼리가 맹인이란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엔리카는 이를 두고 "저 역시 사랑 때문에 눈 먼 장님이 되었는걸요" 라고 말하며 언제나 그의 힘이 됐습니다.
이들 부부는 1995년 2월 첫째 아모스와 1997년 9월 둘째 마테오를 얻으며 영원히 함께 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게다가 1997년 앨범 '로만자'가 유럽과 미국에서 450만장이 팔리면서 안드레아 보첼리의 인생은 성공과 사랑으로 가득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보첼리 부부는 2002년 서로에게 이별을 고하게 됩니다.
삶의 심연에서 찾은 사랑, 베로니카..
음악과 가정의 삶이 전부였던 안드레아 보첼리는 엔리카와 이혼을 한 후 심한 우울증에 빠집니다. 이때 그에게 나타난 여인이 베로니카 베르티 입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바리토너인 이바노 베르티의 딸이며 가수였던 베로니카는
안드레아 보첼리가 오랜 침체기를 벗어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2002년 발표함 앨범 'Sentmento' 에서 안드레아 보첼리는 베로니카를 향한 연정을 담아 더 깊어진 사랑의 감성을 노래할 수 있었고, 이 후 앨범에서는 베로니카가 그의 앨범에 직접 참여해 그의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었습니다.
안드레아 보첼리가 베로니카와 함께 부른 노래는 총 2곡입니다.
이 둘의 목소리가 함께 담긴 첫번째 곡은 200년 'Amore' 앨범에 수록된 'Les Feuilles Mortes'('고엽' 의 리메이크곡)입니다.
서정적인 멜로디가 돋보인 이 앨범은, 'Amore' (사랑)란 앨범 명이 말해주듯, 베로니카와의 사랑을시작하면서 한층 풍부해진 감성을 담고 있습니다.
두번째 노래는 2009년 발표한 앨범 'Incanto'의 1번 트랙인 'Uh Amore cosi Grande' 입니다.
일전에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불러 유명했던 이 나폴리 민요를, 보첼리 커플은 둘의 사랑만큼 서정적으로 표현해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1958년 9월 22일 안드레아 보첼리는 이탈리아 농촌지역인 투스카니에서 포토와 올리브를 경작하는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다.
농촌이라는 환경대문에 음악 교육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첼리의 부모는 그를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게 했으면
이후 플루트와 색소폰을 가르쳤는데 그러는 중에 보첼리는 어린 시절을 유독 오페라 아리아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저 역시도 친척들의 모임에서 항상 어른들이 노래를 시켰던 그런 아이중 하나였죠.
누구든 스스로 가수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은 없죠.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반응을 통해 그 결심을 만들어 내는 거죠"
불행히도 보첼리가 두 눈을 잃게 되는 것은 12세때 일이었다.
"사람들이 이 점에 너무 감상적으로 느끼는 것을 원치 않아요. 그것은 단순한 사고였죠.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머리를 부딪혔어요.
그리곤 뇌가 상처를 입었는데 며칠뒤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했죠."
그는 이러한 비극이 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줬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한다.
보첼리는 피사 대학에 진학하여 법률을 전공했다.
그리고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다시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 몇 해 동안 법정 선임 변호사로 활약한 경력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남다른 것이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전설적인 테너 프롱코 코렐리를 찾아가 그의 문하생이 된다.
그는 교습비를 마련하기 위해 클럽과 식당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는데 미래 그의 부인이 될 엔리카를 만나게 된 것도 당시의 일이었다.
1992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록스타 주개로는 자신과 U2의 멤버 보노가 공동 작곡한 작품 "Miserere"의 데모 테입을 만들기 위한 오디션을 열었다.
이 노래에는 주게로와 듀엣으로 노래를 부를 테너가 필요했던 것이다.
주개로는 이미 마음 속에 자신의 친구인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결정하고 있었고 단지 데모 테입 제작을 위해 테너 가수를 물색 중이었다. 그때 주개로는 안드레아 보첼리를 선택했고 그렇게 제작된 데모 테입은 파바로티에게 들려지게 되었다.
"주개로, 이 친구 누구야?" 파바로티는 깜짝 놀랐다. "나를 위해 이 곡을 써준 것은 고마우나 이 곡은 그 누구에게도 부탁할 필요가 없네.
이 데모 테입을 부른 안드레아를 능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주개로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 믿을 수 없을 정도였죠. 그는 다른 테너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뭔가를 갖고 있어요. 그것은 바로 목소리에 영혼을 불어넣은 능력이죠."
결국 "Miserere"는 주개로의 원래계획대로 파바로티와 함께 녹음되었다.
이 곡이 유럽 전역에 히트가 되자 청중들은 그의 공연에서 이곡을 라이브로 듣길 희망하였다.
그때 주개로의 공연 스케줄에 맞출 수 없는 파바로티를 대신하여 주개로는 보첼리를 초대하였다.
당시 보첼리는 무명의 가수였지만 주개로는 내심 관중의 반응을 확신하고 있었고 그것은 적중하였다.
보첼리는 주게로와의 공연을 통해 일약 그 이름을 유럽에 알리기 시작한다. 보첼리와 파바로티와의 관계는 이렇게 주개로를 통해 이뤄졌다. 그의 목소리에 감탄한 파바로티는 연말 자선 콘서트에 보첼리를 초청했는데 여기에는 브라이언 아담스와 같은 팝스타도 대거 참석하였다.
96년 전 유럽 투어인 "Night of Proms"에는 거물급 팝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였는데
여기 초대된 보첼리는 도합 50만명의 청중과 천만명의 시청자 앞에서 그의 매혹적인 소리를 들여주게 된다.
95년도에 그는 Time to sya goodbye의 원곡 "Con Te Partiro 그대와 함께 떠나리"를 불렀고
이에 감동을 받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프로듀서 마우리오 말라바시는 두 번째 앨범 "Bocelli"를 제작하여 이탈리아에서만 100만장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다.
이제는 전 세계를 무대로 1997년 7월 우리나라에 상륙한 보첼리의 첫 인터내셔널 앨범 "Romanza"는 발매되자마자 현재까지 클래식차트 상위권을 기록하며 지칠줄 모르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미 보첼리는 95년 블라디미르 페소세예프가 지휘하는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러시아 아카데미 합창단과 함께 이탈리아인의 여행을 녹음한 바 있는데 이 앨범에는 19세기말, 20세기초 이탈리안들의 대규모 미국이민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여자의 마음" "생명의 양식"등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와 민요등을수록하고 있다.
이는 판매만큼이난 자사의 레이블 이미지를 중시하는 폴리그램 그룹으로서는 보첼리의 클래식 아티스트로서의 자질을 신뢰하고 있다
파바로티의 전폭적인 지원과 이미 증명된 그의 탁월한 역량이 여실히 증명된 본 앨범은
현 테너 기근의 성악계에 "위대한 테너의 탄생"과 "확실한 쓰리 테너의 대안"이라는 모범 답안을 제시한 것으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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