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모님 추모사
약력 ㅡ
성명: 서동댁 李古亭
출생: 음1897. 1. 4.
소천: 음1968.12.19.
혼인: 1984년 결혼(18세)
남편: 윤숙 吳璿泳
자녀: 3남1녀(준식,차식,삼식,옥금)
장손: 正鎬
친정(親庭)계보 : 장선리 이진사댁
부친-참봉 이종순
조부-도사 이희충
증조-부사 이용구
성품: 인자, 총명, 근면 성실
덕목: 효부, 현모양처, 애족,
구제와 구휼로 섬김
시대: 일제 강점기, 대동아전쟁, 해방, 대한민국 건국, 6.25전쟁, 보리고개, 기근과 전염병
종교: 불교 ㅡ유교ㅡ예수 믿음
오늘은 나의 조모님 55주년 추모일이다.
조모님이 세상을 떠나신 날도 엄동설한으로 매우 추웠는데 오늘도 강추위가 휘몰아친다.
그 한 많은 모진 세월
감내하시기에 얼마나 추었으면 이날만 되면 고추알바람이 불까!
아!
할머님이 그립고 보고싶고
품안에 포근히 안기고 싶다.
손주 기르시길 살이라도 떼어 주실 듯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이라 하시더니 어이 눈을 감으셨을지 불효자는 눈물만 앞을 가린다.
일제 강점기 말 17세의 나이에 두 살 어린 신랑과 결혼 3남1녀를 둔 다복한 가정을 이루었 것만 어둠이 몰려 깜깜한 밤이 찾아 왔다.
자손이 귀한 가정에 나의 어머님이 11살에 장남 민며느리로 들어오자 아버지는 대동아 전쟁터에 징용으로 끌려가셨다가 해방되어 돌아와 나의 위 아래 년년생 삼형제를 둔다.
해방과 함께 찾아 온 경사로다 행복이라 춤도 추고픈데 6.25동란이 터진다.
이로인해
국토는 폐허가되고 기근과 질병이 창궐한다.
나의 중숙부는 공산당의 죽창에 찔려 순직하시고 아버지는 지리산 공비 토벌에 투입되었다가 이후 경찰공무원이 되셨다.
어머님이 병환을 얻어 내 일곱살에 돌아가시고 형과 아우까지 죽고 나만 남는다.
가산까지 날아가 풍전등화 앞에 행여나 나까지 잃을까바 안고 업고 빨면서 실낱 같은 소망의 끈을 쥐시고 날 바라며 기르셨다.
낮에는 논밭에 나가 김을매시고 밤새도록 길삼을 하셨다.
희미한 호롱불 밑에서 양말을 꿔매시고
다딤이질로 방망이 소리는 동구밖까지 울려퍼지고 다리미질로 조부님 명주 바지저고리는 늘 새하얗게 빛이났다.
베틀에 앉아 밤새도록 베를 짜서 팔아 가사를 꾸렸다.
겉보리 절구에 찧어 맷돌에 갈아 찰보리 만들어 삼시세끼 따순밥 지어 남편과 손주는 겸상하고 할머니는 표주박에 누룽지 슝늉부어 마루 아니면 부엌에서 잡수시기 일수다.
땔나무 머리에 이고 나르시고
500여평 대지에 6칸 접집 안채와 행랑채를 쓸고 닦으랴 걸레질과 빗자루를 들고 사셨다.
500여 미터 비탈길 아래 공동 우물에서 추우나 더우나 물동이 이어 물항아리에 채우셨다.
생선장수며 아낙네 박물장수 찾아들면 거절 한번 않고 안방에서 하룻밤 재워주고 먹여서 보냈다.
큰 대문 열두 달 열어 놓고 거지 들면 그냥 보낸일 없고 가난한 이 구휼에 없는가운데서 반드시 나누시고 사셨다.
아!
성녀로소이다.
나의 할머님,
지금도 저 천국
아브라함의 품에서도
날 사랑하시어
기도하시리라
늘 그사랑 기억하고
세상 사랑하며 살리이다
편히 영생복락 누리소서
2024.1.22. 不孝孫 정호 근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