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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수목원
설립자인 신 세 철(호: 청 산)씨는 원래 조경 사업을 하시던 분이었는데 태안지역의 식생, 환경, 해양에 대한 폭 넓은 이해와 식견을 가지신 지역발전에 큰 역할을 하신 분이다.
전국 최초로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옛 물건과 향토 사료를 소재로 마을회관에 신월향토유물박물관을 설립하고 그 과정과 연구를 통해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는 성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태안문화원의 임원으로 있을 때는 전국 최초로 우리나라의 전통소금인 자염을 복원하여 학계와 교육계에 큰 이슈를 불러 일으켰으며 우리나라의 소금문화를 정립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신 세 철 원장은 문학적 소양도 뛰어나 지역문예지로 명성이 높은 흙빛 문학을 통해 수준 높은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지역자원조사를 통해서 태안지역의 식생과 야생화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서 야생화 보존과 번식 그리고 보급에도 힘썼다.
또한 불교의 사상에 심취하여 연꽃을 사랑하면서 다양한 수생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1990년부터 전국의 연꽃과 세계의 연꽃을 수집하면서 청산수목원에 예연원이라는 연꽃전시장을 만들게 되었다.
당시 연꽃 및 수련이 200여종, 각종 수생식물 100여종, 야생화 300여종을 식재해서 가꾸다가 2003년 연꽃축제를 시작으로 청산수목원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게 되었다.
현재는 우리나라 최다 연꽃 종을 보유하고 있다.
밀레와 고흐를 사랑하고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수목원을 꾸몄으며 다양한 문화예술에 대한 열망을 청산수목원에서 표출하고 싶어 했던 분이다.
서양의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문양에 크게 주목했으며 동양의 명리학과 민화에 심취했던 그는 항상 겸손하고 수줍은 미소로 청산수목원을 소개했다. 3만평의 부지에 식물을 조성 하다가 만 오천 평의 토지를 더 매입하여 현재 45.000평의 정원에 그가 추구하던 태마정원과 편의 시설을 갖추어 관람객을 맞고 있다.
그는 해양생물, 야생화, 조경, 문학, 민화, 향토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반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분으로 항상 뒤에서만 큰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그의 능력과 열정을 필요로 해서 향토문화연구소장직을 맡아 전면에서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추대하였는데, 그 열정에 불이 붙어 열심히 활동하던 중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안타까운 사고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의 죽음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비전에 큰 손실이었고 태안에 큰 별이 하나 졌다고 할 정도로 충격적 이었다.
그가 이런 철학적 이념을 가지고 조성해 놓은 테마 정원을 소개한다.
홍가시원
홍가시 나무는 봄에 새잎이 나올 때 단풍처럼 고운 붉은 빛을 띠므로 홍가시 나무라고 합니다.
속명 포티니아(Photinia)는 그리스어로 빛난다는 뜻의 포테이노스(photeinos)에서 유래된 말로 새로 나온 잎이 빨간색이며 광택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종명 그라브라(glabra)는 ‘털이 없는’이라는 뜻입니다. 참나무과에 속하는 가시나무류와는 이름만 비슷하지 전혀 다른 나무입니다.
원산지가 일본이며 남부 지방에서 조경수로 많이 심었지만 근래에는 중부 지방에서도 식재되고 있습니다.
잎은 자라면서 녹색으로 변하는데 가지치기를 해주면 항상 붉은 색의 새순을 즐길 수 있습니다.
홍가시나무는 목재가 단단하기로 유명하다.
목재는 수레바퀴나 낫과 같은 농기구의 자루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예연원
다양한 종류의 연과 수생식물이 있는 곳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다른 꽃들보다 더 아름다우며 청초한 연꽃은 물도 필요 한 만큼만 취하고 욕심 없이 버리는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절 입구에서 만나는 일주문과 수목원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그러나 청산수목원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만(卍)의 길과 맞닿아 있는 연꽃무리 언저리를 거닐다보면 일주문과 마주친다.
본래 일주문(一柱門)은 한 줄로 늘어선 두 기둥만으로 세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건축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지어졌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꽤나 불안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의 건축양식은 그 구조적 균형미가 절묘하기 이를 데 없어 수백년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한다.
일주문에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이 녹아있다.
세속의 온갖 번뇌(속진俗塵)로 인한 어지러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귀의(歸依)하고자 하는 오직 한가지 마음(一心)만을 지니고 이 문을 넘어오라는 상징적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일주문은 두 개의 기둥만으로 세속과 탈속을 매개하고 구분하는 상징이다. 그래서 일주문은 상징적 회랑이자 열주와 같다. 생과 사. 정토와 예토 일 여혹은 그 차이마져 초월하는 힘이다.
일주문을 통과 하면서 범속한 생활의 악습과 경 박을 반성하고 세속을 지워 나가며 정신적인 재무장을 하게 된다.
일주문을 넘어 ‘만(卍)의 길’을 따라 우주만물의 섭리를 묵상하며 걸어 보자.
사방의 끝이 종횡으로 늘어나고 펼쳐지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연 국(蓮國)의 길을 걸으며 사랑하는 이들의 길상만복(吉祥萬福)을 축원해 보심은 어떨까요?
팜파스원
서양 억새로도 불리는 팜파스 글라스는 청명한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으되, 바람결에 온몸을 맡긴 채 그려내는 춤사위는 알 수 없는 ‘기품’까지 느껴지지요.
은백색의 아름다운 꽃무리가 넘실대는 모습이 장관인 팜파스그래스는 그 높이가 2~3미터에 이르며, 억새와 비슷한 모양새의 여러해살이풀이랍니다.
남아메리카가 고향인데, 특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반지름 600~700km에 걸쳐 펼쳐진 대초원 지대 ‘팜파스’의 초지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식물이 바로 이 팜파스글라스랍니다.
밀레정원
(이삭 줍는 여인들, 만종)
1960~1970년대 한국의 거의 모든 이발소에는 밀레의 그림 한 점씩이 걸려 있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개업이나 집들이 선물 목록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고,
심지어 쟁반이나 작은 찻상에도 프린트돼 있을 정도였다.
화가의 이름이나 제목은 몰랐을지언정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이 그림은 고된 노동을 마친 부부가 해질 무렵의 들녘에 서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무심코 이 그림을 접한 이들은 종교적 정감과 서정성으로 빚어낸 풍경 앞에서 어느덧, 숙연해지곤 한다.
그 그림은 바로,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 의 작품 〈만종(The Angelus, 晩鐘)〉.19세기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화가 밀레는 농촌에서 노동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림의 주제로 삼아 평생을 달렸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씨 뿌리는 사람들. 이삭 줍는 여인들. 낮 잠등이 대표작이다.
청산수목원에는 밀레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가꾼 정원이 있는데
너른 잔디밭과 울창한 수목을 배경으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조각상으로 재현해 마치 관람자가 그림 안으로 들어온 느낌을 안겨주는 밀레 정원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추수 후 밭에 떨어진 이삭을 함께 주우며 사진을 찍으며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한다.
기도하는 부부와 함께 손 모아 기도를 하며 소원을 빌어 보기도 한다.
삼 족 오 미로공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 섬의 미궁(迷宮) 라비린토스(Labyrinthos)를 알고 있나요?.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다이달로스에게 명하여 지었다는 이 건물은 아주 복잡하게 설계돼 있어 한번 들어가면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곳은 미노스 왕이 파시파에 왕비가 낳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감금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빠져나온 유일한 사람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뿐이라고 한다.
출입문에 실을 묶은 뒤 실타래를 풀면서 안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고 다시 실을 당기며 나와 무사히 미궁을 탈출할 수 있었다고 전 해진다.
10년의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어쩌면 테세우스의 긴 실타래가 필요할지도 모를 일다.
삼족어 미로 공원은 고구려시대 고분군중 평양시 역포 구역의진파리 7호 고분에서 출토된 해 뚫음무늬 금동장식을 그대로 본떠 조성하였다.
무덤 주인의 베개 마구리 장식품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해뚫음무늬 금동장식’은 봉황과 용, 그리고 태양 속에 산다는 세발까마귀[삼족오(三足烏)] 등의 동물문양과 불꽃무늬 등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 문양은 매우 유려하면서도 고구려인의 기상이 넘쳐흐르는 듯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은 바로 이 금동장식의 유려함을 고스란히 재현해 조성했다.
향나무와 화살나무로 둘레를 두르고 안쪽으로는 가이스카향나무, 홍가시나무, 황금측백나무 등을 심어 라비린토스에 버금가는 미로(迷路)를 조성했다.
2007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했으니, 현재 모습을 갖추기까지 꼬박 1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고구려인의기상을 엿볼 수 있는 광개토대왕의 현무도를 비롯한 고구려 고분벽화도 곳곳에 숨어있어 찾는 이들의 흥미를 한껏 북돋아준다.
메타세콰이어길
중국 쓰촨 지방에서 채집된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메타쒜콰이어이다.
청산 수목원에서 바로 그 메타쎄콰이어를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잎이 황금색을 띠어 조금은 더 특별한 ‘황금메타세쿼이어길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초식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2억년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처음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그 멋진 자태를 뽑 내고 있는 메타세쿼이아는 화석으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때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북 포항에서 이 나무의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고 전해진다.다.
메타세쿼이아는 일본의 고 식물학자 미키 시게루(三木茂) 박사가 일본 혼슈 중부지방에서 세쿼이아와 비슷한 나무 화석을 발견해 이를 비교 연구하던 중 낙우송이나 미국 서부지역에 자생하는 상록수 세쿼이아(미국 삼나무)와는 다른 속(屬)임을 밝혀낸 뒤 이를 ‘새로운 세쿼이아’라는 뜻으로, 그리스어 접두어 ‘메타(meta)’를 붙여 1941년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중국 쓰촨 지방에서 이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1943년에 채집된다.
쓰촨 지방 주민들이 ‘슈이샨(水杉)’이라고 부르던 나무였다.
이어 식물분류학자 후시안수(胡先驌) 박사는 이 나무가 미키 박사가 발견한 화석과 같은 속임을 확인하고 1948년에 이를 신종으로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놀라운 소식을 접한 미국 하버드 대학 아널드 식물원이 자생지 조사와 표본 수집 등의 연구에 나서면서 마침내 대량 복제번식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이 나무는 전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1956년 식물 육종가 현신규 박사가 들여와 산림청이 번식시킨 뒤 1970년대부터 가로수로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처럼 널리 퍼질 수 있었다.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유명하다.
메타세쿼이아는 키가 30~60미터에 이르고 직경만 해도 2~3미터에 까지 자랍니다.
잎은 마주나고 생장속도도 빠르고 물을 좋아해 습지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아직 그 역사가 짧아 담양 가로수길의 정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억 년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설립자인 신 세 철(호: 청 산)씨는 원래 조경 사업을 하시던 분이었는데 태안지역의 식생, 환경, 해양에 대한 폭 넓은 이해와 식견을 가지신 지역발전에 큰 역할을 하신 분이다.
전국 최초로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옛 물건과 향토 사료를 소재로 마을회관에 신월향토유물박물관을 설립하고 그 과정과 연구를 통해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는 성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태안문화원의 임원으로 있을 때는 전국 최초로 우리나라의 전통소금인 자염을 복원하여 학계와 교육계에 큰 이슈를 불러 일으켰으며 우리나라의 소금문화를 정립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신 세 철 원장은 문학적 소양도 뛰어나 지역문예지로 명성이 높은 흙빛 문학을 통해 수준 높은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지역자원조사를 통해서 태안지역의 식생과 야생화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서 야생화 보존과 번식 그리고 보급에도 힘썼다.
또한 불교의 사상에 심취하여 연꽃을 사랑하면서 다양한 수생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1990년부터 전국의 연꽃과 세계의 연꽃을 수집하면서 청산수목원에 예연원이라는 연꽃전시장을 만들게 되었다.
당시 연꽃 및 수련이 200여종, 각종 수생식물 100여종, 야생화 300여종을 식재해서 가꾸다가 2003년 연꽃축제를 시작으로 청산수목원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게 되었다.
현재는 우리나라 최다 연꽃 종을 보유하고 있다.
밀레와 고흐를 사랑하고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수목원을 꾸몄으며 다양한 문화예술에 대한 열망을 청산수목원에서 표출하고 싶어 했던 분이다.
서양의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문양에 크게 주목했으며 동양의 명리학과 민화에 심취했던 그는 항상 겸손하고 수줍은 미소로 청산수목원을 소개했다. 3만평의 부지에 식물을 조성 하다가 만 오천 평의 토지를 더 매입하여 현재 45.000평의 정원에 그가 추구하던 태마정원과 편의 시설을 갖추어 관람객을 맞고 있다.
그는 해양생물, 야생화, 조경, 문학, 민화, 향토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반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분으로 항상 뒤에서만 큰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그의 능력과 열정을 필요로 해서 향토문화연구소장직을 맡아 전면에서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추대하였는데, 그 열정에 불이 붙어 열심히 활동하던 중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안타까운 사고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의 죽음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비전에 큰 손실이었고 태안에 큰 별이 하나 졌다고 할 정도로 충격적 이었다.
그가 이런 철학적 이념을 가지고 조성해 놓은 테마 정원을 소개한다.
홍가시원
홍가시 나무는 봄에 새잎이 나올 때 단풍처럼 고운 붉은 빛을 띠므로 홍가시 나무라고 합니다.
속명 포티니아(Photinia)는 그리스어로 빛난다는 뜻의 포테이노스(photeinos)에서 유래된 말로 새로 나온 잎이 빨간색이며 광택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종명 그라브라(glabra)는 ‘털이 없는’이라는 뜻입니다. 참나무과에 속하는 가시나무류와는 이름만 비슷하지 전혀 다른 나무입니다.
원산지가 일본이며 남부 지방에서 조경수로 많이 심었지만 근래에는 중부 지방에서도 식재되고 있습니다.
잎은 자라면서 녹색으로 변하는데 가지치기를 해주면 항상 붉은 색의 새순을 즐길 수 있습니다.
홍가시나무는 목재가 단단하기로 유명하다.
목재는 수레바퀴나 낫과 같은 농기구의 자루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예연원
다양한 종류의 연과 수생식물이 있는 곳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다른 꽃들보다 더 아름다우며 청초한 연꽃은 물도 필요 한 만큼만 취하고 욕심 없이 버리는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절 입구에서 만나는 일주문과 수목원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그러나 청산수목원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만(卍)의 길과 맞닿아 있는 연꽃무리 언저리를 거닐다보면 일주문과 마주친다.
본래 일주문(一柱門)은 한 줄로 늘어선 두 기둥만으로 세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건축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지어졌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꽤나 불안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의 건축양식은 그 구조적 균형미가 절묘하기 이를 데 없어 수백년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한다.
일주문에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이 녹아있다.
세속의 온갖 번뇌(속진俗塵)로 인한 어지러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귀의(歸依)하고자 하는 오직 한가지 마음(一心)만을 지니고 이 문을 넘어오라는 상징적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일주문은 두 개의 기둥만으로 세속과 탈속을 매개하고 구분하는 상징이다. 그래서 일주문은 상징적 회랑이자 열주와 같다. 생과 사. 정토와 예토 일 여혹은 그 차이마져 초월하는 힘이다.
일주문을 통과 하면서 범속한 생활의 악습과 경 박을 반성하고 세속을 지워 나가며 정신적인 재무장을 하게 된다.
일주문을 넘어 ‘만(卍)의 길’을 따라 우주만물의 섭리를 묵상하며 걸어 보자.
사방의 끝이 종횡으로 늘어나고 펼쳐지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연 국(蓮國)의 길을 걸으며 사랑하는 이들의 길상만복(吉祥萬福)을 축원해 보심은 어떨까요?
팜파스원
서양 억새로도 불리는 팜파스 글라스는 청명한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으되, 바람결에 온몸을 맡긴 채 그려내는 춤사위는 알 수 없는 ‘기품’까지 느껴지지요.
은백색의 아름다운 꽃무리가 넘실대는 모습이 장관인 팜파스그래스는 그 높이가 2~3미터에 이르며, 억새와 비슷한 모양새의 여러해살이풀이랍니다.
남아메리카가 고향인데, 특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반지름 600~700km에 걸쳐 펼쳐진 대초원 지대 ‘팜파스’의 초지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식물이 바로 이 팜파스글라스랍니다.
밀레정원
(이삭 줍는 여인들, 만종)
1960~1970년대 한국의 거의 모든 이발소에는 밀레의 그림 한 점씩이 걸려 있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개업이나 집들이 선물 목록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고,
심지어 쟁반이나 작은 찻상에도 프린트돼 있을 정도였다.
화가의 이름이나 제목은 몰랐을지언정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이 그림은 고된 노동을 마친 부부가 해질 무렵의 들녘에 서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무심코 이 그림을 접한 이들은 종교적 정감과 서정성으로 빚어낸 풍경 앞에서 어느덧, 숙연해지곤 한다.
그 그림은 바로,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 의 작품 〈만종(The Angelus, 晩鐘)〉.19세기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화가 밀레는 농촌에서 노동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림의 주제로 삼아 평생을 달렸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씨 뿌리는 사람들. 이삭 줍는 여인들. 낮 잠등이 대표작이다.
청산수목원에는 밀레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가꾼 정원이 있는데
너른 잔디밭과 울창한 수목을 배경으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조각상으로 재현해 마치 관람자가 그림 안으로 들어온 느낌을 안겨주는 밀레 정원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추수 후 밭에 떨어진 이삭을 함께 주우며 사진을 찍으며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한다.
기도하는 부부와 함께 손 모아 기도를 하며 소원을 빌어 보기도 한다.
삼 족 오 미로공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 섬의 미궁(迷宮) 라비린토스(Labyrinthos)를 알고 있나요?.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다이달로스에게 명하여 지었다는 이 건물은 아주 복잡하게 설계돼 있어 한번 들어가면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곳은 미노스 왕이 파시파에 왕비가 낳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감금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빠져나온 유일한 사람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뿐이라고 한다.
출입문에 실을 묶은 뒤 실타래를 풀면서 안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고 다시 실을 당기며 나와 무사히 미궁을 탈출할 수 있었다고 전 해진다.
10년의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어쩌면 테세우스의 긴 실타래가 필요할지도 모를 일다.
삼족어 미로 공원은 고구려시대 고분군중 평양시 역포 구역의진파리 7호 고분에서 출토된 해 뚫음무늬 금동장식을 그대로 본떠 조성하였다.
무덤 주인의 베개 마구리 장식품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해뚫음무늬 금동장식’은 봉황과 용, 그리고 태양 속에 산다는 세발까마귀[삼족오(三足烏)] 등의 동물문양과 불꽃무늬 등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 문양은 매우 유려하면서도 고구려인의 기상이 넘쳐흐르는 듯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은 바로 이 금동장식의 유려함을 고스란히 재현해 조성했다.
향나무와 화살나무로 둘레를 두르고 안쪽으로는 가이스카향나무, 홍가시나무, 황금측백나무 등을 심어 라비린토스에 버금가는 미로(迷路)를 조성했다.
2007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했으니, 현재 모습을 갖추기까지 꼬박 1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고구려인의기상을 엿볼 수 있는 광개토대왕의 현무도를 비롯한 고구려 고분벽화도 곳곳에 숨어있어 찾는 이들의 흥미를 한껏 북돋아준다.
메타세콰이어길
중국 쓰촨 지방에서 채집된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메타쒜콰이어이다.
청산 수목원에서 바로 그 메타쎄콰이어를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잎이 황금색을 띠어 조금은 더 특별한 ‘황금메타세쿼이어길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초식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2억년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처음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그 멋진 자태를 뽑 내고 있는 메타세쿼이아는 화석으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때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북 포항에서 이 나무의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고 전해진다.다.
메타세쿼이아는 일본의 고 식물학자 미키 시게루(三木茂) 박사가 일본 혼슈 중부지방에서 세쿼이아와 비슷한 나무 화석을 발견해 이를 비교 연구하던 중 낙우송이나 미국 서부지역에 자생하는 상록수 세쿼이아(미국 삼나무)와는 다른 속(屬)임을 밝혀낸 뒤 이를 ‘새로운 세쿼이아’라는 뜻으로, 그리스어 접두어 ‘메타(meta)’를 붙여 1941년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중국 쓰촨 지방에서 이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1943년에 채집된다.
쓰촨 지방 주민들이 ‘슈이샨(水杉)’이라고 부르던 나무였다.
이어 식물분류학자 후시안수(胡先驌) 박사는 이 나무가 미키 박사가 발견한 화석과 같은 속임을 확인하고 1948년에 이를 신종으로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놀라운 소식을 접한 미국 하버드 대학 아널드 식물원이 자생지 조사와 표본 수집 등의 연구에 나서면서 마침내 대량 복제번식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이 나무는 전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1956년 식물 육종가 현신규 박사가 들여와 산림청이 번식시킨 뒤 1970년대부터 가로수로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처럼 널리 퍼질 수 있었다.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유명하다.
메타세쿼이아는 키가 30~60미터에 이르고 직경만 해도 2~3미터에 까지 자랍니다.
잎은 마주나고 생장속도도 빠르고 물을 좋아해 습지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아직 그 역사가 짧아 담양 가로수길의 정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억 년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설립자인 신 세 철(호: 청 산)씨는 원래 조경 사업을 하시던 분이었는데 태안지역의 식생, 환경, 해양에 대한 폭 넓은 이해와 식견을 가지신 지역발전에 큰 역할을 하신 분이다.
전국 최초로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옛 물건과 향토 사료를 소재로 마을회관에 신월향토유물박물관을 설립하고 그 과정과 연구를 통해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는 성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태안문화원의 임원으로 있을 때는 전국 최초로 우리나라의 전통소금인 자염을 복원하여 학계와 교육계에 큰 이슈를 불러 일으켰으며 우리나라의 소금문화를 정립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신 세 철 원장은 문학적 소양도 뛰어나 지역문예지로 명성이 높은 흙빛 문학을 통해 수준 높은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지역자원조사를 통해서 태안지역의 식생과 야생화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서 야생화 보존과 번식 그리고 보급에도 힘썼다.
또한 불교의 사상에 심취하여 연꽃을 사랑하면서 다양한 수생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1990년부터 전국의 연꽃과 세계의 연꽃을 수집하면서 청산수목원에 예연원이라는 연꽃전시장을 만들게 되었다.
당시 연꽃 및 수련이 200여종, 각종 수생식물 100여종, 야생화 300여종을 식재해서 가꾸다가 2003년 연꽃축제를 시작으로 청산수목원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게 되었다.
현재는 우리나라 최다 연꽃 종을 보유하고 있다.
밀레와 고흐를 사랑하고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수목원을 꾸몄으며 다양한 문화예술에 대한 열망을 청산수목원에서 표출하고 싶어 했던 분이다.
서양의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문양에 크게 주목했으며 동양의 명리학과 민화에 심취했던 그는 항상 겸손하고 수줍은 미소로 청산수목원을 소개했다. 3만평의 부지에 식물을 조성 하다가 만 오천 평의 토지를 더 매입하여 현재 45.000평의 정원에 그가 추구하던 태마정원과 편의 시설을 갖추어 관람객을 맞고 있다.
그는 해양생물, 야생화, 조경, 문학, 민화, 향토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반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분으로 항상 뒤에서만 큰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그의 능력과 열정을 필요로 해서 향토문화연구소장직을 맡아 전면에서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추대하였는데, 그 열정에 불이 붙어 열심히 활동하던 중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안타까운 사고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의 죽음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비전에 큰 손실이었고 태안에 큰 별이 하나 졌다고 할 정도로 충격적 이었다.
그가 이런 철학적 이념을 가지고 조성해 놓은 테마 정원을 소개한다.
홍가시원
홍가시 나무는 봄에 새잎이 나올 때 단풍처럼 고운 붉은 빛을 띠므로 홍가시 나무라고 합니다.
속명 포티니아(Photinia)는 그리스어로 빛난다는 뜻의 포테이노스(photeinos)에서 유래된 말로 새로 나온 잎이 빨간색이며 광택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종명 그라브라(glabra)는 ‘털이 없는’이라는 뜻입니다. 참나무과에 속하는 가시나무류와는 이름만 비슷하지 전혀 다른 나무입니다.
원산지가 일본이며 남부 지방에서 조경수로 많이 심었지만 근래에는 중부 지방에서도 식재되고 있습니다.
잎은 자라면서 녹색으로 변하는데 가지치기를 해주면 항상 붉은 색의 새순을 즐길 수 있습니다.
홍가시나무는 목재가 단단하기로 유명하다.
목재는 수레바퀴나 낫과 같은 농기구의 자루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예연원
다양한 종류의 연과 수생식물이 있는 곳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다른 꽃들보다 더 아름다우며 청초한 연꽃은 물도 필요 한 만큼만 취하고 욕심 없이 버리는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절 입구에서 만나는 일주문과 수목원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그러나 청산수목원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만(卍)의 길과 맞닿아 있는 연꽃무리 언저리를 거닐다보면 일주문과 마주친다.
본래 일주문(一柱門)은 한 줄로 늘어선 두 기둥만으로 세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건축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지어졌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꽤나 불안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의 건축양식은 그 구조적 균형미가 절묘하기 이를 데 없어 수백년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한다.
일주문에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이 녹아있다.
세속의 온갖 번뇌(속진俗塵)로 인한 어지러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귀의(歸依)하고자 하는 오직 한가지 마음(一心)만을 지니고 이 문을 넘어오라는 상징적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일주문은 두 개의 기둥만으로 세속과 탈속을 매개하고 구분하는 상징이다. 그래서 일주문은 상징적 회랑이자 열주와 같다. 생과 사. 정토와 예토 일 여혹은 그 차이마져 초월하는 힘이다.
일주문을 통과 하면서 범속한 생활의 악습과 경 박을 반성하고 세속을 지워 나가며 정신적인 재무장을 하게 된다.
일주문을 넘어 ‘만(卍)의 길’을 따라 우주만물의 섭리를 묵상하며 걸어 보자.
사방의 끝이 종횡으로 늘어나고 펼쳐지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연 국(蓮國)의 길을 걸으며 사랑하는 이들의 길상만복(吉祥萬福)을 축원해 보심은 어떨까요?
팜파스원
서양 억새로도 불리는 팜파스 글라스는 청명한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으되, 바람결에 온몸을 맡긴 채 그려내는 춤사위는 알 수 없는 ‘기품’까지 느껴지지요.
은백색의 아름다운 꽃무리가 넘실대는 모습이 장관인 팜파스그래스는 그 높이가 2~3미터에 이르며, 억새와 비슷한 모양새의 여러해살이풀이랍니다.
남아메리카가 고향인데, 특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반지름 600~700km에 걸쳐 펼쳐진 대초원 지대 ‘팜파스’의 초지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식물이 바로 이 팜파스글라스랍니다.
밀레정원
(이삭 줍는 여인들, 만종)
1960~1970년대 한국의 거의 모든 이발소에는 밀레의 그림 한 점씩이 걸려 있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개업이나 집들이 선물 목록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고,
심지어 쟁반이나 작은 찻상에도 프린트돼 있을 정도였다.
화가의 이름이나 제목은 몰랐을지언정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이 그림은 고된 노동을 마친 부부가 해질 무렵의 들녘에 서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무심코 이 그림을 접한 이들은 종교적 정감과 서정성으로 빚어낸 풍경 앞에서 어느덧, 숙연해지곤 한다.
그 그림은 바로,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 의 작품 〈만종(The Angelus, 晩鐘)〉.19세기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화가 밀레는 농촌에서 노동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림의 주제로 삼아 평생을 달렸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씨 뿌리는 사람들. 이삭 줍는 여인들. 낮 잠등이 대표작이다.
청산수목원에는 밀레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가꾼 정원이 있는데
너른 잔디밭과 울창한 수목을 배경으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조각상으로 재현해 마치 관람자가 그림 안으로 들어온 느낌을 안겨주는 밀레 정원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추수 후 밭에 떨어진 이삭을 함께 주우며 사진을 찍으며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한다.
기도하는 부부와 함께 손 모아 기도를 하며 소원을 빌어 보기도 한다.
삼 족 오 미로공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 섬의 미궁(迷宮) 라비린토스(Labyrinthos)를 알고 있나요?.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다이달로스에게 명하여 지었다는 이 건물은 아주 복잡하게 설계돼 있어 한번 들어가면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곳은 미노스 왕이 파시파에 왕비가 낳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감금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빠져나온 유일한 사람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뿐이라고 한다.
출입문에 실을 묶은 뒤 실타래를 풀면서 안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고 다시 실을 당기며 나와 무사히 미궁을 탈출할 수 있었다고 전 해진다.
10년의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어쩌면 테세우스의 긴 실타래가 필요할지도 모를 일다.
삼족어 미로 공원은 고구려시대 고분군중 평양시 역포 구역의진파리 7호 고분에서 출토된 해 뚫음무늬 금동장식을 그대로 본떠 조성하였다.
무덤 주인의 베개 마구리 장식품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해뚫음무늬 금동장식’은 봉황과 용, 그리고 태양 속에 산다는 세발까마귀[삼족오(三足烏)] 등의 동물문양과 불꽃무늬 등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 문양은 매우 유려하면서도 고구려인의 기상이 넘쳐흐르는 듯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은 바로 이 금동장식의 유려함을 고스란히 재현해 조성했다.
향나무와 화살나무로 둘레를 두르고 안쪽으로는 가이스카향나무, 홍가시나무, 황금측백나무 등을 심어 라비린토스에 버금가는 미로(迷路)를 조성했다.
2007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했으니, 현재 모습을 갖추기까지 꼬박 1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고구려인의기상을 엿볼 수 있는 광개토대왕의 현무도를 비롯한 고구려 고분벽화도 곳곳에 숨어있어 찾는 이들의 흥미를 한껏 북돋아준다.
메타세콰이어길
중국 쓰촨 지방에서 채집된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메타쒜콰이어이다.
청산 수목원에서 바로 그 메타쎄콰이어를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잎이 황금색을 띠어 조금은 더 특별한 ‘황금메타세쿼이어길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초식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2억년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처음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그 멋진 자태를 뽑 내고 있는 메타세쿼이아는 화석으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때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북 포항에서 이 나무의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고 전해진다.다.
메타세쿼이아는 일본의 고 식물학자 미키 시게루(三木茂) 박사가 일본 혼슈 중부지방에서 세쿼이아와 비슷한 나무 화석을 발견해 이를 비교 연구하던 중 낙우송이나 미국 서부지역에 자생하는 상록수 세쿼이아(미국 삼나무)와는 다른 속(屬)임을 밝혀낸 뒤 이를 ‘새로운 세쿼이아’라는 뜻으로, 그리스어 접두어 ‘메타(meta)’를 붙여 1941년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중국 쓰촨 지방에서 이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1943년에 채집된다.
쓰촨 지방 주민들이 ‘슈이샨(水杉)’이라고 부르던 나무였다.
이어 식물분류학자 후시안수(胡先驌) 박사는 이 나무가 미키 박사가 발견한 화석과 같은 속임을 확인하고 1948년에 이를 신종으로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놀라운 소식을 접한 미국 하버드 대학 아널드 식물원이 자생지 조사와 표본 수집 등의 연구에 나서면서 마침내 대량 복제번식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이 나무는 전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1956년 식물 육종가 현신규 박사가 들여와 산림청이 번식시킨 뒤 1970년대부터 가로수로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처럼 널리 퍼질 수 있었다.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유명하다.
메타세쿼이아는 키가 30~60미터에 이르고 직경만 해도 2~3미터에 까지 자랍니다.
잎은 마주나고 생장속도도 빠르고 물을 좋아해 습지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아직 그 역사가 짧아 담양 가로수길의 정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억 년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전국 최초로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옛 물건과 향토 사료를 소재로 마을회관에 신월향토유물박물관을 설립하고 그 과정과 연구를 통해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는 성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태안문화원의 임원으로 있을 때는 전국 최초로 우리나라의 전통소금인 자염을 복원하여 학계와 교육계에 큰 이슈를 불러 일으켰으며 우리나라의 소금문화를 정립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신 세 철 원장은 문학적 소양도 뛰어나 지역문예지로 명성이 높은 흙빛 문학을 통해 수준 높은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지역자원조사를 통해서 태안지역의 식생과 야생화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서 야생화 보존과 번식 그리고 보급에도 힘썼다.
또한 불교의 사상에 심취하여 연꽃을 사랑하면서 다양한 수생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1990년부터 전국의 연꽃과 세계의 연꽃을 수집하면서 청산수목원에 예연원이라는 연꽃전시장을 만들게 되었다.
당시 연꽃 및 수련이 200여종, 각종 수생식물 100여종, 야생화 300여종을 식재해서 가꾸다가 2003년 연꽃축제를 시작으로 청산수목원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게 되었다.
현재는 우리나라 최다 연꽃 종을 보유하고 있다.
밀레와 고흐를 사랑하고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수목원을 꾸몄으며 다양한 문화예술에 대한 열망을 청산수목원에서 표출하고 싶어 했던 분이다.
서양의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문양에 크게 주목했으며 동양의 명리학과 민화에 심취했던 그는 항상 겸손하고 수줍은 미소로 청산수목원을 소개했다. 3만평의 부지에 식물을 조성 하다가 만 오천 평의 토지를 더 매입하여 현재 45.000평의 정원에 그가 추구하던 태마정원과 편의 시설을 갖추어 관람객을 맞고 있다.
그는 해양생물, 야생화, 조경, 문학, 민화, 향토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반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분으로 항상 뒤에서만 큰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그의 능력과 열정을 필요로 해서 향토문화연구소장직을 맡아 전면에서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추대하였는데, 그 열정에 불이 붙어 열심히 활동하던 중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안타까운 사고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의 죽음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비전에 큰 손실이었고 태안에 큰 별이 하나 졌다고 할 정도로 충격적 이었다.
그가 이런 철학적 이념을 가지고 조성해 놓은 테마 정원을 소개한다.
홍가시원
홍가시 나무는 봄에 새잎이 나올 때 단풍처럼 고운 붉은 빛을 띠므로 홍가시 나무라고 합니다.
속명 포티니아(Photinia)는 그리스어로 빛난다는 뜻의 포테이노스(photeinos)에서 유래된 말로 새로 나온 잎이 빨간색이며 광택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종명 그라브라(glabra)는 ‘털이 없는’이라는 뜻입니다. 참나무과에 속하는 가시나무류와는 이름만 비슷하지 전혀 다른 나무입니다.
원산지가 일본이며 남부 지방에서 조경수로 많이 심었지만 근래에는 중부 지방에서도 식재되고 있습니다.
잎은 자라면서 녹색으로 변하는데 가지치기를 해주면 항상 붉은 색의 새순을 즐길 수 있습니다.
홍가시나무는 목재가 단단하기로 유명하다.
목재는 수레바퀴나 낫과 같은 농기구의 자루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예연원
다양한 종류의 연과 수생식물이 있는 곳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다른 꽃들보다 더 아름다우며 청초한 연꽃은 물도 필요 한 만큼만 취하고 욕심 없이 버리는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절 입구에서 만나는 일주문과 수목원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그러나 청산수목원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만(卍)의 길과 맞닿아 있는 연꽃무리 언저리를 거닐다보면 일주문과 마주친다.
본래 일주문(一柱門)은 한 줄로 늘어선 두 기둥만으로 세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건축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지어졌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꽤나 불안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의 건축양식은 그 구조적 균형미가 절묘하기 이를 데 없어 수백년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한다.
일주문에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이 녹아있다.
세속의 온갖 번뇌(속진俗塵)로 인한 어지러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귀의(歸依)하고자 하는 오직 한가지 마음(一心)만을 지니고 이 문을 넘어오라는 상징적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일주문은 두 개의 기둥만으로 세속과 탈속을 매개하고 구분하는 상징이다. 그래서 일주문은 상징적 회랑이자 열주와 같다. 생과 사. 정토와 예토 일 여혹은 그 차이마져 초월하는 힘이다.
일주문을 통과 하면서 범속한 생활의 악습과 경 박을 반성하고 세속을 지워 나가며 정신적인 재무장을 하게 된다.
일주문을 넘어 ‘만(卍)의 길’을 따라 우주만물의 섭리를 묵상하며 걸어 보자.
사방의 끝이 종횡으로 늘어나고 펼쳐지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연 국(蓮國)의 길을 걸으며 사랑하는 이들의 길상만복(吉祥萬福)을 축원해 보심은 어떨까요?
팜파스원
서양 억새로도 불리는 팜파스 글라스는 청명한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으되, 바람결에 온몸을 맡긴 채 그려내는 춤사위는 알 수 없는 ‘기품’까지 느껴지지요.
은백색의 아름다운 꽃무리가 넘실대는 모습이 장관인 팜파스그래스는 그 높이가 2~3미터에 이르며, 억새와 비슷한 모양새의 여러해살이풀이랍니다.
남아메리카가 고향인데, 특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반지름 600~700km에 걸쳐 펼쳐진 대초원 지대 ‘팜파스’의 초지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식물이 바로 이 팜파스글라스랍니다.
밀레정원
(이삭 줍는 여인들, 만종)
1960~1970년대 한국의 거의 모든 이발소에는 밀레의 그림 한 점씩이 걸려 있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개업이나 집들이 선물 목록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고,
심지어 쟁반이나 작은 찻상에도 프린트돼 있을 정도였다.
화가의 이름이나 제목은 몰랐을지언정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이 그림은 고된 노동을 마친 부부가 해질 무렵의 들녘에 서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무심코 이 그림을 접한 이들은 종교적 정감과 서정성으로 빚어낸 풍경 앞에서 어느덧, 숙연해지곤 한다.
그 그림은 바로,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 의 작품 〈만종(The Angelus, 晩鐘)〉.19세기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화가 밀레는 농촌에서 노동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림의 주제로 삼아 평생을 달렸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씨 뿌리는 사람들. 이삭 줍는 여인들. 낮 잠등이 대표작이다.
청산수목원에는 밀레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가꾼 정원이 있는데
너른 잔디밭과 울창한 수목을 배경으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조각상으로 재현해 마치 관람자가 그림 안으로 들어온 느낌을 안겨주는 밀레 정원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추수 후 밭에 떨어진 이삭을 함께 주우며 사진을 찍으며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한다.
기도하는 부부와 함께 손 모아 기도를 하며 소원을 빌어 보기도 한다.
삼 족 오 미로공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 섬의 미궁(迷宮) 라비린토스(Labyrinthos)를 알고 있나요?.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다이달로스에게 명하여 지었다는 이 건물은 아주 복잡하게 설계돼 있어 한번 들어가면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곳은 미노스 왕이 파시파에 왕비가 낳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감금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빠져나온 유일한 사람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뿐이라고 한다.
출입문에 실을 묶은 뒤 실타래를 풀면서 안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고 다시 실을 당기며 나와 무사히 미궁을 탈출할 수 있었다고 전 해진다.
10년의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어쩌면 테세우스의 긴 실타래가 필요할지도 모를 일다.
삼족어 미로 공원은 고구려시대 고분군중 평양시 역포 구역의진파리 7호 고분에서 출토된 해 뚫음무늬 금동장식을 그대로 본떠 조성하였다.
무덤 주인의 베개 마구리 장식품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해뚫음무늬 금동장식’은 봉황과 용, 그리고 태양 속에 산다는 세발까마귀[삼족오(三足烏)] 등의 동물문양과 불꽃무늬 등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 문양은 매우 유려하면서도 고구려인의 기상이 넘쳐흐르는 듯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은 바로 이 금동장식의 유려함을 고스란히 재현해 조성했다.
향나무와 화살나무로 둘레를 두르고 안쪽으로는 가이스카향나무, 홍가시나무, 황금측백나무 등을 심어 라비린토스에 버금가는 미로(迷路)를 조성했다.
2007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했으니, 현재 모습을 갖추기까지 꼬박 1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고구려인의기상을 엿볼 수 있는 광개토대왕의 현무도를 비롯한 고구려 고분벽화도 곳곳에 숨어있어 찾는 이들의 흥미를 한껏 북돋아준다.
메타세콰이어길
중국 쓰촨 지방에서 채집된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메타쒜콰이어이다.
청산 수목원에서 바로 그 메타쎄콰이어를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잎이 황금색을 띠어 조금은 더 특별한 ‘황금메타세쿼이어길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초식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2억년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처음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그 멋진 자태를 뽑 내고 있는 메타세쿼이아는 화석으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때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북 포항에서 이 나무의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고 전해진다.다.
메타세쿼이아는 일본의 고 식물학자 미키 시게루(三木茂) 박사가 일본 혼슈 중부지방에서 세쿼이아와 비슷한 나무 화석을 발견해 이를 비교 연구하던 중 낙우송이나 미국 서부지역에 자생하는 상록수 세쿼이아(미국 삼나무)와는 다른 속(屬)임을 밝혀낸 뒤 이를 ‘새로운 세쿼이아’라는 뜻으로, 그리스어 접두어 ‘메타(meta)’를 붙여 1941년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중국 쓰촨 지방에서 이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1943년에 채집된다.
쓰촨 지방 주민들이 ‘슈이샨(水杉)’이라고 부르던 나무였다.
이어 식물분류학자 후시안수(胡先驌) 박사는 이 나무가 미키 박사가 발견한 화석과 같은 속임을 확인하고 1948년에 이를 신종으로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놀라운 소식을 접한 미국 하버드 대학 아널드 식물원이 자생지 조사와 표본 수집 등의 연구에 나서면서 마침내 대량 복제번식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이 나무는 전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1956년 식물 육종가 현신규 박사가 들여와 산림청이 번식시킨 뒤 1970년대부터 가로수로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처럼 널리 퍼질 수 있었다.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유명하다.
메타세쿼이아는 키가 30~60미터에 이르고 직경만 해도 2~3미터에 까지 자랍니다.
잎은 마주나고 생장속도도 빠르고 물을 좋아해 습지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아직 그 역사가 짧아 담양 가로수길의 정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억 년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태안문화원의 임원으로 있을 때는 전국 최초로 우리나라의 전통소금인 자염을 복원하여 학계와 교육계에 큰 이슈를 불러 일으켰으며 우리나라의 소금문화를 정립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신 세 철 원장은 문학적 소양도 뛰어나 지역문예지로 명성이 높은 흙빛 문학을 통해 수준 높은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지역자원조사를 통해서 태안지역의 식생과 야생화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서 야생화 보존과 번식 그리고 보급에도 힘썼다.
또한 불교의 사상에 심취하여 연꽃을 사랑하면서 다양한 수생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1990년부터 전국의 연꽃과 세계의 연꽃을 수집하면서 청산수목원에 예연원이라는 연꽃전시장을 만들게 되었다.
당시 연꽃 및 수련이 200여종, 각종 수생식물 100여종, 야생화 300여종을 식재해서 가꾸다가 2003년 연꽃축제를 시작으로 청산수목원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게 되었다.
현재는 우리나라 최다 연꽃 종을 보유하고 있다.
밀레와 고흐를 사랑하고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수목원을 꾸몄으며 다양한 문화예술에 대한 열망을 청산수목원에서 표출하고 싶어 했던 분이다.
서양의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문양에 크게 주목했으며 동양의 명리학과 민화에 심취했던 그는 항상 겸손하고 수줍은 미소로 청산수목원을 소개했다. 3만평의 부지에 식물을 조성 하다가 만 오천 평의 토지를 더 매입하여 현재 45.000평의 정원에 그가 추구하던 태마정원과 편의 시설을 갖추어 관람객을 맞고 있다.
그는 해양생물, 야생화, 조경, 문학, 민화, 향토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반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분으로 항상 뒤에서만 큰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그의 능력과 열정을 필요로 해서 향토문화연구소장직을 맡아 전면에서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추대하였는데, 그 열정에 불이 붙어 열심히 활동하던 중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안타까운 사고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의 죽음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비전에 큰 손실이었고 태안에 큰 별이 하나 졌다고 할 정도로 충격적 이었다.
그가 이런 철학적 이념을 가지고 조성해 놓은 테마 정원을 소개한다.
홍가시원
홍가시 나무는 봄에 새잎이 나올 때 단풍처럼 고운 붉은 빛을 띠므로 홍가시 나무라고 합니다.
속명 포티니아(Photinia)는 그리스어로 빛난다는 뜻의 포테이노스(photeinos)에서 유래된 말로 새로 나온 잎이 빨간색이며 광택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종명 그라브라(glabra)는 ‘털이 없는’이라는 뜻입니다. 참나무과에 속하는 가시나무류와는 이름만 비슷하지 전혀 다른 나무입니다.
원산지가 일본이며 남부 지방에서 조경수로 많이 심었지만 근래에는 중부 지방에서도 식재되고 있습니다.
잎은 자라면서 녹색으로 변하는데 가지치기를 해주면 항상 붉은 색의 새순을 즐길 수 있습니다.
홍가시나무는 목재가 단단하기로 유명하다.
목재는 수레바퀴나 낫과 같은 농기구의 자루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예연원
다양한 종류의 연과 수생식물이 있는 곳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다른 꽃들보다 더 아름다우며 청초한 연꽃은 물도 필요 한 만큼만 취하고 욕심 없이 버리는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절 입구에서 만나는 일주문과 수목원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그러나 청산수목원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만(卍)의 길과 맞닿아 있는 연꽃무리 언저리를 거닐다보면 일주문과 마주친다.
본래 일주문(一柱門)은 한 줄로 늘어선 두 기둥만으로 세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건축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지어졌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꽤나 불안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의 건축양식은 그 구조적 균형미가 절묘하기 이를 데 없어 수백년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한다.
일주문에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이 녹아있다.
세속의 온갖 번뇌(속진俗塵)로 인한 어지러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귀의(歸依)하고자 하는 오직 한가지 마음(一心)만을 지니고 이 문을 넘어오라는 상징적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일주문은 두 개의 기둥만으로 세속과 탈속을 매개하고 구분하는 상징이다. 그래서 일주문은 상징적 회랑이자 열주와 같다. 생과 사. 정토와 예토 일 여혹은 그 차이마져 초월하는 힘이다.
일주문을 통과 하면서 범속한 생활의 악습과 경 박을 반성하고 세속을 지워 나가며 정신적인 재무장을 하게 된다.
일주문을 넘어 ‘만(卍)의 길’을 따라 우주만물의 섭리를 묵상하며 걸어 보자.
사방의 끝이 종횡으로 늘어나고 펼쳐지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연 국(蓮國)의 길을 걸으며 사랑하는 이들의 길상만복(吉祥萬福)을 축원해 보심은 어떨까요?
팜파스원
서양 억새로도 불리는 팜파스 글라스는 청명한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으되, 바람결에 온몸을 맡긴 채 그려내는 춤사위는 알 수 없는 ‘기품’까지 느껴지지요.
은백색의 아름다운 꽃무리가 넘실대는 모습이 장관인 팜파스그래스는 그 높이가 2~3미터에 이르며, 억새와 비슷한 모양새의 여러해살이풀이랍니다.
남아메리카가 고향인데, 특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반지름 600~700km에 걸쳐 펼쳐진 대초원 지대 ‘팜파스’의 초지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식물이 바로 이 팜파스글라스랍니다.
밀레정원
(이삭 줍는 여인들, 만종)
1960~1970년대 한국의 거의 모든 이발소에는 밀레의 그림 한 점씩이 걸려 있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개업이나 집들이 선물 목록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고,
심지어 쟁반이나 작은 찻상에도 프린트돼 있을 정도였다.
화가의 이름이나 제목은 몰랐을지언정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이 그림은 고된 노동을 마친 부부가 해질 무렵의 들녘에 서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무심코 이 그림을 접한 이들은 종교적 정감과 서정성으로 빚어낸 풍경 앞에서 어느덧, 숙연해지곤 한다.
그 그림은 바로,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 의 작품 〈만종(The Angelus, 晩鐘)〉.19세기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화가 밀레는 농촌에서 노동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림의 주제로 삼아 평생을 달렸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씨 뿌리는 사람들. 이삭 줍는 여인들. 낮 잠등이 대표작이다.
청산수목원에는 밀레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가꾼 정원이 있는데
너른 잔디밭과 울창한 수목을 배경으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조각상으로 재현해 마치 관람자가 그림 안으로 들어온 느낌을 안겨주는 밀레 정원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추수 후 밭에 떨어진 이삭을 함께 주우며 사진을 찍으며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한다.
기도하는 부부와 함께 손 모아 기도를 하며 소원을 빌어 보기도 한다.
삼 족 오 미로공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 섬의 미궁(迷宮) 라비린토스(Labyrinthos)를 알고 있나요?.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다이달로스에게 명하여 지었다는 이 건물은 아주 복잡하게 설계돼 있어 한번 들어가면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곳은 미노스 왕이 파시파에 왕비가 낳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감금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빠져나온 유일한 사람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뿐이라고 한다.
출입문에 실을 묶은 뒤 실타래를 풀면서 안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고 다시 실을 당기며 나와 무사히 미궁을 탈출할 수 있었다고 전 해진다.
10년의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어쩌면 테세우스의 긴 실타래가 필요할지도 모를 일다.
삼족어 미로 공원은 고구려시대 고분군중 평양시 역포 구역의진파리 7호 고분에서 출토된 해 뚫음무늬 금동장식을 그대로 본떠 조성하였다.
무덤 주인의 베개 마구리 장식품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해뚫음무늬 금동장식’은 봉황과 용, 그리고 태양 속에 산다는 세발까마귀[삼족오(三足烏)] 등의 동물문양과 불꽃무늬 등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 문양은 매우 유려하면서도 고구려인의 기상이 넘쳐흐르는 듯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은 바로 이 금동장식의 유려함을 고스란히 재현해 조성했다.
향나무와 화살나무로 둘레를 두르고 안쪽으로는 가이스카향나무, 홍가시나무, 황금측백나무 등을 심어 라비린토스에 버금가는 미로(迷路)를 조성했다.
2007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했으니, 현재 모습을 갖추기까지 꼬박 1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고구려인의기상을 엿볼 수 있는 광개토대왕의 현무도를 비롯한 고구려 고분벽화도 곳곳에 숨어있어 찾는 이들의 흥미를 한껏 북돋아준다.
메타세콰이어길
중국 쓰촨 지방에서 채집된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메타쒜콰이어이다.
청산 수목원에서 바로 그 메타쎄콰이어를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잎이 황금색을 띠어 조금은 더 특별한 ‘황금메타세쿼이어길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초식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2억년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처음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그 멋진 자태를 뽑 내고 있는 메타세쿼이아는 화석으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때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북 포항에서 이 나무의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고 전해진다.다.
메타세쿼이아는 일본의 고 식물학자 미키 시게루(三木茂) 박사가 일본 혼슈 중부지방에서 세쿼이아와 비슷한 나무 화석을 발견해 이를 비교 연구하던 중 낙우송이나 미국 서부지역에 자생하는 상록수 세쿼이아(미국 삼나무)와는 다른 속(屬)임을 밝혀낸 뒤 이를 ‘새로운 세쿼이아’라는 뜻으로, 그리스어 접두어 ‘메타(meta)’를 붙여 1941년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중국 쓰촨 지방에서 이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1943년에 채집된다.
쓰촨 지방 주민들이 ‘슈이샨(水杉)’이라고 부르던 나무였다.
이어 식물분류학자 후시안수(胡先驌) 박사는 이 나무가 미키 박사가 발견한 화석과 같은 속임을 확인하고 1948년에 이를 신종으로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놀라운 소식을 접한 미국 하버드 대학 아널드 식물원이 자생지 조사와 표본 수집 등의 연구에 나서면서 마침내 대량 복제번식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이 나무는 전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1956년 식물 육종가 현신규 박사가 들여와 산림청이 번식시킨 뒤 1970년대부터 가로수로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처럼 널리 퍼질 수 있었다.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유명하다.
메타세쿼이아는 키가 30~60미터에 이르고 직경만 해도 2~3미터에 까지 자랍니다.
잎은 마주나고 생장속도도 빠르고 물을 좋아해 습지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아직 그 역사가 짧아 담양 가로수길의 정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억 년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태안문화원의 임원으로 있을 때는 전국 최초로 우리나라의 전통소금인 자염을 복원하여 학계와 교육계에 큰 이슈를 불러 일으켰으며 우리나라의 소금문화를 정립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신 세 철 원장은 문학적 소양도 뛰어나 지역문예지로 명성이 높은 흙빛 문학을 통해 수준 높은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지역자원조사를 통해서 태안지역의 식생과 야생화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서 야생화 보존과 번식 그리고 보급에도 힘썼다.
또한 불교의 사상에 심취하여 연꽃을 사랑하면서 다양한 수생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1990년부터 전국의 연꽃과 세계의 연꽃을 수집하면서 청산수목원에 예연원이라는 연꽃전시장을 만들게 되었다.
당시 연꽃 및 수련이 200여종, 각종 수생식물 100여종, 야생화 300여종을 식재해서 가꾸다가 2003년 연꽃축제를 시작으로 청산수목원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게 되었다.
현재는 우리나라 최다 연꽃 종을 보유하고 있다.
밀레와 고흐를 사랑하고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수목원을 꾸몄으며 다양한 문화예술에 대한 열망을 청산수목원에서 표출하고 싶어 했던 분이다.
서양의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문양에 크게 주목했으며 동양의 명리학과 민화에 심취했던 그는 항상 겸손하고 수줍은 미소로 청산수목원을 소개했다. 3만평의 부지에 식물을 조성 하다가 만 오천 평의 토지를 더 매입하여 현재 45.000평의 정원에 그가 추구하던 태마정원과 편의 시설을 갖추어 관람객을 맞고 있다.
그는 해양생물, 야생화, 조경, 문학, 민화, 향토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반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분으로 항상 뒤에서만 큰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그의 능력과 열정을 필요로 해서 향토문화연구소장직을 맡아 전면에서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추대하였는데, 그 열정에 불이 붙어 열심히 활동하던 중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안타까운 사고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의 죽음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비전에 큰 손실이었고 태안에 큰 별이 하나 졌다고 할 정도로 충격적 이었다.
그가 이런 철학적 이념을 가지고 조성해 놓은 테마 정원을 소개한다.
홍가시원
홍가시 나무는 봄에 새잎이 나올 때 단풍처럼 고운 붉은 빛을 띠므로 홍가시 나무라고 합니다.
속명 포티니아(Photinia)는 그리스어로 빛난다는 뜻의 포테이노스(photeinos)에서 유래된 말로 새로 나온 잎이 빨간색이며 광택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종명 그라브라(glabra)는 ‘털이 없는’이라는 뜻입니다. 참나무과에 속하는 가시나무류와는 이름만 비슷하지 전혀 다른 나무입니다.
원산지가 일본이며 남부 지방에서 조경수로 많이 심었지만 근래에는 중부 지방에서도 식재되고 있습니다.
잎은 자라면서 녹색으로 변하는데 가지치기를 해주면 항상 붉은 색의 새순을 즐길 수 있습니다.
홍가시나무는 목재가 단단하기로 유명하다.
목재는 수레바퀴나 낫과 같은 농기구의 자루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예연원
다양한 종류의 연과 수생식물이 있는 곳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다른 꽃들보다 더 아름다우며 청초한 연꽃은 물도 필요 한 만큼만 취하고 욕심 없이 버리는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절 입구에서 만나는 일주문과 수목원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그러나 청산수목원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만(卍)의 길과 맞닿아 있는 연꽃무리 언저리를 거닐다보면 일주문과 마주친다.
본래 일주문(一柱門)은 한 줄로 늘어선 두 기둥만으로 세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건축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지어졌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꽤나 불안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의 건축양식은 그 구조적 균형미가 절묘하기 이를 데 없어 수백년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한다.
일주문에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이 녹아있다.
세속의 온갖 번뇌(속진俗塵)로 인한 어지러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귀의(歸依)하고자 하는 오직 한가지 마음(一心)만을 지니고 이 문을 넘어오라는 상징적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일주문은 두 개의 기둥만으로 세속과 탈속을 매개하고 구분하는 상징이다. 그래서 일주문은 상징적 회랑이자 열주와 같다. 생과 사. 정토와 예토 일 여혹은 그 차이마져 초월하는 힘이다.
일주문을 통과 하면서 범속한 생활의 악습과 경 박을 반성하고 세속을 지워 나가며 정신적인 재무장을 하게 된다.
일주문을 넘어 ‘만(卍)의 길’을 따라 우주만물의 섭리를 묵상하며 걸어 보자.
사방의 끝이 종횡으로 늘어나고 펼쳐지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연 국(蓮國)의 길을 걸으며 사랑하는 이들의 길상만복(吉祥萬福)을 축원해 보심은 어떨까요?
팜파스원
서양 억새로도 불리는 팜파스 글라스는 청명한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으되, 바람결에 온몸을 맡긴 채 그려내는 춤사위는 알 수 없는 ‘기품’까지 느껴지지요.
은백색의 아름다운 꽃무리가 넘실대는 모습이 장관인 팜파스그래스는 그 높이가 2~3미터에 이르며, 억새와 비슷한 모양새의 여러해살이풀이랍니다.
남아메리카가 고향인데, 특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반지름 600~700km에 걸쳐 펼쳐진 대초원 지대 ‘팜파스’의 초지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식물이 바로 이 팜파스글라스랍니다.
밀레정원
(이삭 줍는 여인들, 만종)
1960~1970년대 한국의 거의 모든 이발소에는 밀레의 그림 한 점씩이 걸려 있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개업이나 집들이 선물 목록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고,
심지어 쟁반이나 작은 찻상에도 프린트돼 있을 정도였다.
화가의 이름이나 제목은 몰랐을지언정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이 그림은 고된 노동을 마친 부부가 해질 무렵의 들녘에 서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무심코 이 그림을 접한 이들은 종교적 정감과 서정성으로 빚어낸 풍경 앞에서 어느덧, 숙연해지곤 한다.
그 그림은 바로,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 의 작품 〈만종(The Angelus, 晩鐘)〉.19세기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화가 밀레는 농촌에서 노동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림의 주제로 삼아 평생을 달렸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씨 뿌리는 사람들. 이삭 줍는 여인들. 낮 잠등이 대표작이다.
청산수목원에는 밀레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가꾼 정원이 있는데
너른 잔디밭과 울창한 수목을 배경으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조각상으로 재현해 마치 관람자가 그림 안으로 들어온 느낌을 안겨주는 밀레 정원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추수 후 밭에 떨어진 이삭을 함께 주우며 사진을 찍으며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한다.
기도하는 부부와 함께 손 모아 기도를 하며 소원을 빌어 보기도 한다.
삼 족 오 미로공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 섬의 미궁(迷宮) 라비린토스(Labyrinthos)를 알고 있나요?.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다이달로스에게 명하여 지었다는 이 건물은 아주 복잡하게 설계돼 있어 한번 들어가면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곳은 미노스 왕이 파시파에 왕비가 낳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감금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빠져나온 유일한 사람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뿐이라고 한다.
출입문에 실을 묶은 뒤 실타래를 풀면서 안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고 다시 실을 당기며 나와 무사히 미궁을 탈출할 수 있었다고 전 해진다.
10년의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어쩌면 테세우스의 긴 실타래가 필요할지도 모를 일다.
삼족어 미로 공원은 고구려시대 고분군중 평양시 역포 구역의진파리 7호 고분에서 출토된 해 뚫음무늬 금동장식을 그대로 본떠 조성하였다.
무덤 주인의 베개 마구리 장식품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해뚫음무늬 금동장식’은 봉황과 용, 그리고 태양 속에 산다는 세발까마귀[삼족오(三足烏)] 등의 동물문양과 불꽃무늬 등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 문양은 매우 유려하면서도 고구려인의 기상이 넘쳐흐르는 듯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은 바로 이 금동장식의 유려함을 고스란히 재현해 조성했다.
향나무와 화살나무로 둘레를 두르고 안쪽으로는 가이스카향나무, 홍가시나무, 황금측백나무 등을 심어 라비린토스에 버금가는 미로(迷路)를 조성했다.
2007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했으니, 현재 모습을 갖추기까지 꼬박 1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고구려인의기상을 엿볼 수 있는 광개토대왕의 현무도를 비롯한 고구려 고분벽화도 곳곳에 숨어있어 찾는 이들의 흥미를 한껏 북돋아준다.
메타세콰이어길
중국 쓰촨 지방에서 채집된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메타쒜콰이어이다.
청산 수목원에서 바로 그 메타쎄콰이어를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잎이 황금색을 띠어 조금은 더 특별한 ‘황금메타세쿼이어길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초식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2억년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처음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그 멋진 자태를 뽑 내고 있는 메타세쿼이아는 화석으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때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북 포항에서 이 나무의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고 전해진다.다.
메타세쿼이아는 일본의 고 식물학자 미키 시게루(三木茂) 박사가 일본 혼슈 중부지방에서 세쿼이아와 비슷한 나무 화석을 발견해 이를 비교 연구하던 중 낙우송이나 미국 서부지역에 자생하는 상록수 세쿼이아(미국 삼나무)와는 다른 속(屬)임을 밝혀낸 뒤 이를 ‘새로운 세쿼이아’라는 뜻으로, 그리스어 접두어 ‘메타(meta)’를 붙여 1941년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중국 쓰촨 지방에서 이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1943년에 채집된다.
쓰촨 지방 주민들이 ‘슈이샨(水杉)’이라고 부르던 나무였다.
이어 식물분류학자 후시안수(胡先驌) 박사는 이 나무가 미키 박사가 발견한 화석과 같은 속임을 확인하고 1948년에 이를 신종으로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놀라운 소식을 접한 미국 하버드 대학 아널드 식물원이 자생지 조사와 표본 수집 등의 연구에 나서면서 마침내 대량 복제번식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이 나무는 전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1956년 식물 육종가 현신규 박사가 들여와 산림청이 번식시킨 뒤 1970년대부터 가로수로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처럼 널리 퍼질 수 있었다.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유명하다.
메타세쿼이아는 키가 30~60미터에 이르고 직경만 해도 2~3미터에 까지 자랍니다.
잎은 마주나고 생장속도도 빠르고 물을 좋아해 습지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아직 그 역사가 짧아 담양 가로수길의 정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억 년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신 세 철 원장은 문학적 소양도 뛰어나 지역문예지로 명성이 높은 흙빛 문학을 통해 수준 높은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지역자원조사를 통해서 태안지역의 식생과 야생화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서 야생화 보존과 번식 그리고 보급에도 힘썼다.
또한 불교의 사상에 심취하여 연꽃을 사랑하면서 다양한 수생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1990년부터 전국의 연꽃과 세계의 연꽃을 수집하면서 청산수목원에 예연원이라는 연꽃전시장을 만들게 되었다.
당시 연꽃 및 수련이 200여종, 각종 수생식물 100여종, 야생화 300여종을 식재해서 가꾸다가 2003년 연꽃축제를 시작으로 청산수목원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게 되었다.
현재는 우리나라 최다 연꽃 종을 보유하고 있다.
밀레와 고흐를 사랑하고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수목원을 꾸몄으며 다양한 문화예술에 대한 열망을 청산수목원에서 표출하고 싶어 했던 분이다.
서양의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문양에 크게 주목했으며 동양의 명리학과 민화에 심취했던 그는 항상 겸손하고 수줍은 미소로 청산수목원을 소개했다. 3만평의 부지에 식물을 조성 하다가 만 오천 평의 토지를 더 매입하여 현재 45.000평의 정원에 그가 추구하던 태마정원과 편의 시설을 갖추어 관람객을 맞고 있다.
그는 해양생물, 야생화, 조경, 문학, 민화, 향토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반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분으로 항상 뒤에서만 큰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그의 능력과 열정을 필요로 해서 향토문화연구소장직을 맡아 전면에서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추대하였는데, 그 열정에 불이 붙어 열심히 활동하던 중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안타까운 사고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의 죽음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비전에 큰 손실이었고 태안에 큰 별이 하나 졌다고 할 정도로 충격적 이었다.
그가 이런 철학적 이념을 가지고 조성해 놓은 테마 정원을 소개한다.
홍가시원
홍가시 나무는 봄에 새잎이 나올 때 단풍처럼 고운 붉은 빛을 띠므로 홍가시 나무라고 합니다.
속명 포티니아(Photinia)는 그리스어로 빛난다는 뜻의 포테이노스(photeinos)에서 유래된 말로 새로 나온 잎이 빨간색이며 광택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종명 그라브라(glabra)는 ‘털이 없는’이라는 뜻입니다. 참나무과에 속하는 가시나무류와는 이름만 비슷하지 전혀 다른 나무입니다.
원산지가 일본이며 남부 지방에서 조경수로 많이 심었지만 근래에는 중부 지방에서도 식재되고 있습니다.
잎은 자라면서 녹색으로 변하는데 가지치기를 해주면 항상 붉은 색의 새순을 즐길 수 있습니다.
홍가시나무는 목재가 단단하기로 유명하다.
목재는 수레바퀴나 낫과 같은 농기구의 자루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예연원
다양한 종류의 연과 수생식물이 있는 곳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다른 꽃들보다 더 아름다우며 청초한 연꽃은 물도 필요 한 만큼만 취하고 욕심 없이 버리는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절 입구에서 만나는 일주문과 수목원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그러나 청산수목원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만(卍)의 길과 맞닿아 있는 연꽃무리 언저리를 거닐다보면 일주문과 마주친다.
본래 일주문(一柱門)은 한 줄로 늘어선 두 기둥만으로 세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건축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지어졌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꽤나 불안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의 건축양식은 그 구조적 균형미가 절묘하기 이를 데 없어 수백년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한다.
일주문에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이 녹아있다.
세속의 온갖 번뇌(속진俗塵)로 인한 어지러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귀의(歸依)하고자 하는 오직 한가지 마음(一心)만을 지니고 이 문을 넘어오라는 상징적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일주문은 두 개의 기둥만으로 세속과 탈속을 매개하고 구분하는 상징이다. 그래서 일주문은 상징적 회랑이자 열주와 같다. 생과 사. 정토와 예토 일 여혹은 그 차이마져 초월하는 힘이다.
일주문을 통과 하면서 범속한 생활의 악습과 경 박을 반성하고 세속을 지워 나가며 정신적인 재무장을 하게 된다.
일주문을 넘어 ‘만(卍)의 길’을 따라 우주만물의 섭리를 묵상하며 걸어 보자.
사방의 끝이 종횡으로 늘어나고 펼쳐지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연 국(蓮國)의 길을 걸으며 사랑하는 이들의 길상만복(吉祥萬福)을 축원해 보심은 어떨까요?
팜파스원
서양 억새로도 불리는 팜파스 글라스는 청명한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으되, 바람결에 온몸을 맡긴 채 그려내는 춤사위는 알 수 없는 ‘기품’까지 느껴지지요.
은백색의 아름다운 꽃무리가 넘실대는 모습이 장관인 팜파스그래스는 그 높이가 2~3미터에 이르며, 억새와 비슷한 모양새의 여러해살이풀이랍니다.
남아메리카가 고향인데, 특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반지름 600~700km에 걸쳐 펼쳐진 대초원 지대 ‘팜파스’의 초지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식물이 바로 이 팜파스글라스랍니다.
밀레정원
(이삭 줍는 여인들, 만종)
1960~1970년대 한국의 거의 모든 이발소에는 밀레의 그림 한 점씩이 걸려 있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개업이나 집들이 선물 목록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고,
심지어 쟁반이나 작은 찻상에도 프린트돼 있을 정도였다.
화가의 이름이나 제목은 몰랐을지언정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이 그림은 고된 노동을 마친 부부가 해질 무렵의 들녘에 서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무심코 이 그림을 접한 이들은 종교적 정감과 서정성으로 빚어낸 풍경 앞에서 어느덧, 숙연해지곤 한다.
그 그림은 바로,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 의 작품 〈만종(The Angelus, 晩鐘)〉.19세기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화가 밀레는 농촌에서 노동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림의 주제로 삼아 평생을 달렸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씨 뿌리는 사람들. 이삭 줍는 여인들. 낮 잠등이 대표작이다.
청산수목원에는 밀레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가꾼 정원이 있는데
너른 잔디밭과 울창한 수목을 배경으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조각상으로 재현해 마치 관람자가 그림 안으로 들어온 느낌을 안겨주는 밀레 정원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추수 후 밭에 떨어진 이삭을 함께 주우며 사진을 찍으며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한다.
기도하는 부부와 함께 손 모아 기도를 하며 소원을 빌어 보기도 한다.
삼 족 오 미로공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 섬의 미궁(迷宮) 라비린토스(Labyrinthos)를 알고 있나요?.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다이달로스에게 명하여 지었다는 이 건물은 아주 복잡하게 설계돼 있어 한번 들어가면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곳은 미노스 왕이 파시파에 왕비가 낳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감금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빠져나온 유일한 사람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뿐이라고 한다.
출입문에 실을 묶은 뒤 실타래를 풀면서 안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고 다시 실을 당기며 나와 무사히 미궁을 탈출할 수 있었다고 전 해진다.
10년의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어쩌면 테세우스의 긴 실타래가 필요할지도 모를 일다.
삼족어 미로 공원은 고구려시대 고분군중 평양시 역포 구역의진파리 7호 고분에서 출토된 해 뚫음무늬 금동장식을 그대로 본떠 조성하였다.
무덤 주인의 베개 마구리 장식품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해뚫음무늬 금동장식’은 봉황과 용, 그리고 태양 속에 산다는 세발까마귀[삼족오(三足烏)] 등의 동물문양과 불꽃무늬 등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 문양은 매우 유려하면서도 고구려인의 기상이 넘쳐흐르는 듯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은 바로 이 금동장식의 유려함을 고스란히 재현해 조성했다.
향나무와 화살나무로 둘레를 두르고 안쪽으로는 가이스카향나무, 홍가시나무, 황금측백나무 등을 심어 라비린토스에 버금가는 미로(迷路)를 조성했다.
2007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했으니, 현재 모습을 갖추기까지 꼬박 1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고구려인의기상을 엿볼 수 있는 광개토대왕의 현무도를 비롯한 고구려 고분벽화도 곳곳에 숨어있어 찾는 이들의 흥미를 한껏 북돋아준다.
메타세콰이어길
중국 쓰촨 지방에서 채집된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메타쒜콰이어이다.
청산 수목원에서 바로 그 메타쎄콰이어를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잎이 황금색을 띠어 조금은 더 특별한 ‘황금메타세쿼이어길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초식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2억년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처음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그 멋진 자태를 뽑 내고 있는 메타세쿼이아는 화석으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때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북 포항에서 이 나무의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고 전해진다.다.
메타세쿼이아는 일본의 고 식물학자 미키 시게루(三木茂) 박사가 일본 혼슈 중부지방에서 세쿼이아와 비슷한 나무 화석을 발견해 이를 비교 연구하던 중 낙우송이나 미국 서부지역에 자생하는 상록수 세쿼이아(미국 삼나무)와는 다른 속(屬)임을 밝혀낸 뒤 이를 ‘새로운 세쿼이아’라는 뜻으로, 그리스어 접두어 ‘메타(meta)’를 붙여 1941년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중국 쓰촨 지방에서 이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1943년에 채집된다.
쓰촨 지방 주민들이 ‘슈이샨(水杉)’이라고 부르던 나무였다.
이어 식물분류학자 후시안수(胡先驌) 박사는 이 나무가 미키 박사가 발견한 화석과 같은 속임을 확인하고 1948년에 이를 신종으로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놀라운 소식을 접한 미국 하버드 대학 아널드 식물원이 자생지 조사와 표본 수집 등의 연구에 나서면서 마침내 대량 복제번식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이 나무는 전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1956년 식물 육종가 현신규 박사가 들여와 산림청이 번식시킨 뒤 1970년대부터 가로수로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처럼 널리 퍼질 수 있었다.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유명하다.
메타세쿼이아는 키가 30~60미터에 이르고 직경만 해도 2~3미터에 까지 자랍니다.
잎은 마주나고 생장속도도 빠르고 물을 좋아해 습지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아직 그 역사가 짧아 담양 가로수길의 정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억 년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지역자원조사를 통해서 태안지역의 식생과 야생화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서 야생화 보존과 번식 그리고 보급에도 힘썼다.
또한 불교의 사상에 심취하여 연꽃을 사랑하면서 다양한 수생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1990년부터 전국의 연꽃과 세계의 연꽃을 수집하면서 청산수목원에 예연원이라는 연꽃전시장을 만들게 되었다.
당시 연꽃 및 수련이 200여종, 각종 수생식물 100여종, 야생화 300여종을 식재해서 가꾸다가 2003년 연꽃축제를 시작으로 청산수목원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게 되었다.
현재는 우리나라 최다 연꽃 종을 보유하고 있다.
밀레와 고흐를 사랑하고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수목원을 꾸몄으며 다양한 문화예술에 대한 열망을 청산수목원에서 표출하고 싶어 했던 분이다.
서양의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문양에 크게 주목했으며 동양의 명리학과 민화에 심취했던 그는 항상 겸손하고 수줍은 미소로 청산수목원을 소개했다. 3만평의 부지에 식물을 조성 하다가 만 오천 평의 토지를 더 매입하여 현재 45.000평의 정원에 그가 추구하던 태마정원과 편의 시설을 갖추어 관람객을 맞고 있다.
그는 해양생물, 야생화, 조경, 문학, 민화, 향토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반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분으로 항상 뒤에서만 큰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그의 능력과 열정을 필요로 해서 향토문화연구소장직을 맡아 전면에서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추대하였는데, 그 열정에 불이 붙어 열심히 활동하던 중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안타까운 사고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의 죽음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비전에 큰 손실이었고 태안에 큰 별이 하나 졌다고 할 정도로 충격적 이었다.
그가 이런 철학적 이념을 가지고 조성해 놓은 테마 정원을 소개한다.
홍가시원
홍가시 나무는 봄에 새잎이 나올 때 단풍처럼 고운 붉은 빛을 띠므로 홍가시 나무라고 합니다.
속명 포티니아(Photinia)는 그리스어로 빛난다는 뜻의 포테이노스(photeinos)에서 유래된 말로 새로 나온 잎이 빨간색이며 광택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종명 그라브라(glabra)는 ‘털이 없는’이라는 뜻입니다. 참나무과에 속하는 가시나무류와는 이름만 비슷하지 전혀 다른 나무입니다.
원산지가 일본이며 남부 지방에서 조경수로 많이 심었지만 근래에는 중부 지방에서도 식재되고 있습니다.
잎은 자라면서 녹색으로 변하는데 가지치기를 해주면 항상 붉은 색의 새순을 즐길 수 있습니다.
홍가시나무는 목재가 단단하기로 유명하다.
목재는 수레바퀴나 낫과 같은 농기구의 자루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예연원
다양한 종류의 연과 수생식물이 있는 곳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다른 꽃들보다 더 아름다우며 청초한 연꽃은 물도 필요 한 만큼만 취하고 욕심 없이 버리는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절 입구에서 만나는 일주문과 수목원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그러나 청산수목원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만(卍)의 길과 맞닿아 있는 연꽃무리 언저리를 거닐다보면 일주문과 마주친다.
본래 일주문(一柱門)은 한 줄로 늘어선 두 기둥만으로 세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건축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지어졌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꽤나 불안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의 건축양식은 그 구조적 균형미가 절묘하기 이를 데 없어 수백년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한다.
일주문에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이 녹아있다.
세속의 온갖 번뇌(속진俗塵)로 인한 어지러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귀의(歸依)하고자 하는 오직 한가지 마음(一心)만을 지니고 이 문을 넘어오라는 상징적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일주문은 두 개의 기둥만으로 세속과 탈속을 매개하고 구분하는 상징이다. 그래서 일주문은 상징적 회랑이자 열주와 같다. 생과 사. 정토와 예토 일 여혹은 그 차이마져 초월하는 힘이다.
일주문을 통과 하면서 범속한 생활의 악습과 경 박을 반성하고 세속을 지워 나가며 정신적인 재무장을 하게 된다.
일주문을 넘어 ‘만(卍)의 길’을 따라 우주만물의 섭리를 묵상하며 걸어 보자.
사방의 끝이 종횡으로 늘어나고 펼쳐지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연 국(蓮國)의 길을 걸으며 사랑하는 이들의 길상만복(吉祥萬福)을 축원해 보심은 어떨까요?
팜파스원
서양 억새로도 불리는 팜파스 글라스는 청명한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으되, 바람결에 온몸을 맡긴 채 그려내는 춤사위는 알 수 없는 ‘기품’까지 느껴지지요.
은백색의 아름다운 꽃무리가 넘실대는 모습이 장관인 팜파스그래스는 그 높이가 2~3미터에 이르며, 억새와 비슷한 모양새의 여러해살이풀이랍니다.
남아메리카가 고향인데, 특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반지름 600~700km에 걸쳐 펼쳐진 대초원 지대 ‘팜파스’의 초지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식물이 바로 이 팜파스글라스랍니다.
밀레정원
(이삭 줍는 여인들, 만종)
1960~1970년대 한국의 거의 모든 이발소에는 밀레의 그림 한 점씩이 걸려 있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개업이나 집들이 선물 목록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고,
심지어 쟁반이나 작은 찻상에도 프린트돼 있을 정도였다.
화가의 이름이나 제목은 몰랐을지언정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이 그림은 고된 노동을 마친 부부가 해질 무렵의 들녘에 서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무심코 이 그림을 접한 이들은 종교적 정감과 서정성으로 빚어낸 풍경 앞에서 어느덧, 숙연해지곤 한다.
그 그림은 바로,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 의 작품 〈만종(The Angelus, 晩鐘)〉.19세기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화가 밀레는 농촌에서 노동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림의 주제로 삼아 평생을 달렸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씨 뿌리는 사람들. 이삭 줍는 여인들. 낮 잠등이 대표작이다.
청산수목원에는 밀레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가꾼 정원이 있는데
너른 잔디밭과 울창한 수목을 배경으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조각상으로 재현해 마치 관람자가 그림 안으로 들어온 느낌을 안겨주는 밀레 정원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추수 후 밭에 떨어진 이삭을 함께 주우며 사진을 찍으며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한다.
기도하는 부부와 함께 손 모아 기도를 하며 소원을 빌어 보기도 한다.
삼 족 오 미로공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 섬의 미궁(迷宮) 라비린토스(Labyrinthos)를 알고 있나요?.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다이달로스에게 명하여 지었다는 이 건물은 아주 복잡하게 설계돼 있어 한번 들어가면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곳은 미노스 왕이 파시파에 왕비가 낳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감금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빠져나온 유일한 사람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뿐이라고 한다.
출입문에 실을 묶은 뒤 실타래를 풀면서 안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고 다시 실을 당기며 나와 무사히 미궁을 탈출할 수 있었다고 전 해진다.
10년의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어쩌면 테세우스의 긴 실타래가 필요할지도 모를 일다.
삼족어 미로 공원은 고구려시대 고분군중 평양시 역포 구역의진파리 7호 고분에서 출토된 해 뚫음무늬 금동장식을 그대로 본떠 조성하였다.
무덤 주인의 베개 마구리 장식품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해뚫음무늬 금동장식’은 봉황과 용, 그리고 태양 속에 산다는 세발까마귀[삼족오(三足烏)] 등의 동물문양과 불꽃무늬 등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 문양은 매우 유려하면서도 고구려인의 기상이 넘쳐흐르는 듯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은 바로 이 금동장식의 유려함을 고스란히 재현해 조성했다.
향나무와 화살나무로 둘레를 두르고 안쪽으로는 가이스카향나무, 홍가시나무, 황금측백나무 등을 심어 라비린토스에 버금가는 미로(迷路)를 조성했다.
2007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했으니, 현재 모습을 갖추기까지 꼬박 1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고구려인의기상을 엿볼 수 있는 광개토대왕의 현무도를 비롯한 고구려 고분벽화도 곳곳에 숨어있어 찾는 이들의 흥미를 한껏 북돋아준다.
메타세콰이어길
중국 쓰촨 지방에서 채집된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메타쒜콰이어이다.
청산 수목원에서 바로 그 메타쎄콰이어를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잎이 황금색을 띠어 조금은 더 특별한 ‘황금메타세쿼이어길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초식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2억년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처음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그 멋진 자태를 뽑 내고 있는 메타세쿼이아는 화석으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때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북 포항에서 이 나무의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고 전해진다.다.
메타세쿼이아는 일본의 고 식물학자 미키 시게루(三木茂) 박사가 일본 혼슈 중부지방에서 세쿼이아와 비슷한 나무 화석을 발견해 이를 비교 연구하던 중 낙우송이나 미국 서부지역에 자생하는 상록수 세쿼이아(미국 삼나무)와는 다른 속(屬)임을 밝혀낸 뒤 이를 ‘새로운 세쿼이아’라는 뜻으로, 그리스어 접두어 ‘메타(meta)’를 붙여 1941년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중국 쓰촨 지방에서 이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1943년에 채집된다.
쓰촨 지방 주민들이 ‘슈이샨(水杉)’이라고 부르던 나무였다.
이어 식물분류학자 후시안수(胡先驌) 박사는 이 나무가 미키 박사가 발견한 화석과 같은 속임을 확인하고 1948년에 이를 신종으로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놀라운 소식을 접한 미국 하버드 대학 아널드 식물원이 자생지 조사와 표본 수집 등의 연구에 나서면서 마침내 대량 복제번식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이 나무는 전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1956년 식물 육종가 현신규 박사가 들여와 산림청이 번식시킨 뒤 1970년대부터 가로수로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처럼 널리 퍼질 수 있었다.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유명하다.
메타세쿼이아는 키가 30~60미터에 이르고 직경만 해도 2~3미터에 까지 자랍니다.
잎은 마주나고 생장속도도 빠르고 물을 좋아해 습지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아직 그 역사가 짧아 담양 가로수길의 정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억 년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지역자원조사를 통해서 태안지역의 식생과 야생화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서 야생화 보존과 번식 그리고 보급에도 힘썼다.
또한 불교의 사상에 심취하여 연꽃을 사랑하면서 다양한 수생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1990년부터 전국의 연꽃과 세계의 연꽃을 수집하면서 청산수목원에 예연원이라는 연꽃전시장을 만들게 되었다.
당시 연꽃 및 수련이 200여종, 각종 수생식물 100여종, 야생화 300여종을 식재해서 가꾸다가 2003년 연꽃축제를 시작으로 청산수목원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게 되었다.
현재는 우리나라 최다 연꽃 종을 보유하고 있다.
밀레와 고흐를 사랑하고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수목원을 꾸몄으며 다양한 문화예술에 대한 열망을 청산수목원에서 표출하고 싶어 했던 분이다.
서양의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문양에 크게 주목했으며 동양의 명리학과 민화에 심취했던 그는 항상 겸손하고 수줍은 미소로 청산수목원을 소개했다. 3만평의 부지에 식물을 조성 하다가 만 오천 평의 토지를 더 매입하여 현재 45.000평의 정원에 그가 추구하던 태마정원과 편의 시설을 갖추어 관람객을 맞고 있다.
그는 해양생물, 야생화, 조경, 문학, 민화, 향토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반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분으로 항상 뒤에서만 큰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그의 능력과 열정을 필요로 해서 향토문화연구소장직을 맡아 전면에서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추대하였는데, 그 열정에 불이 붙어 열심히 활동하던 중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안타까운 사고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의 죽음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비전에 큰 손실이었고 태안에 큰 별이 하나 졌다고 할 정도로 충격적 이었다.
그가 이런 철학적 이념을 가지고 조성해 놓은 테마 정원을 소개한다.
홍가시원
홍가시 나무는 봄에 새잎이 나올 때 단풍처럼 고운 붉은 빛을 띠므로 홍가시 나무라고 합니다.
속명 포티니아(Photinia)는 그리스어로 빛난다는 뜻의 포테이노스(photeinos)에서 유래된 말로 새로 나온 잎이 빨간색이며 광택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종명 그라브라(glabra)는 ‘털이 없는’이라는 뜻입니다. 참나무과에 속하는 가시나무류와는 이름만 비슷하지 전혀 다른 나무입니다.
원산지가 일본이며 남부 지방에서 조경수로 많이 심었지만 근래에는 중부 지방에서도 식재되고 있습니다.
잎은 자라면서 녹색으로 변하는데 가지치기를 해주면 항상 붉은 색의 새순을 즐길 수 있습니다.
홍가시나무는 목재가 단단하기로 유명하다.
목재는 수레바퀴나 낫과 같은 농기구의 자루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예연원
다양한 종류의 연과 수생식물이 있는 곳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다른 꽃들보다 더 아름다우며 청초한 연꽃은 물도 필요 한 만큼만 취하고 욕심 없이 버리는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절 입구에서 만나는 일주문과 수목원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그러나 청산수목원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만(卍)의 길과 맞닿아 있는 연꽃무리 언저리를 거닐다보면 일주문과 마주친다.
본래 일주문(一柱門)은 한 줄로 늘어선 두 기둥만으로 세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건축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지어졌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꽤나 불안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의 건축양식은 그 구조적 균형미가 절묘하기 이를 데 없어 수백년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한다.
일주문에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이 녹아있다.
세속의 온갖 번뇌(속진俗塵)로 인한 어지러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귀의(歸依)하고자 하는 오직 한가지 마음(一心)만을 지니고 이 문을 넘어오라는 상징적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일주문은 두 개의 기둥만으로 세속과 탈속을 매개하고 구분하는 상징이다. 그래서 일주문은 상징적 회랑이자 열주와 같다. 생과 사. 정토와 예토 일 여혹은 그 차이마져 초월하는 힘이다.
일주문을 통과 하면서 범속한 생활의 악습과 경 박을 반성하고 세속을 지워 나가며 정신적인 재무장을 하게 된다.
일주문을 넘어 ‘만(卍)의 길’을 따라 우주만물의 섭리를 묵상하며 걸어 보자.
사방의 끝이 종횡으로 늘어나고 펼쳐지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연 국(蓮國)의 길을 걸으며 사랑하는 이들의 길상만복(吉祥萬福)을 축원해 보심은 어떨까요?
팜파스원
서양 억새로도 불리는 팜파스 글라스는 청명한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으되, 바람결에 온몸을 맡긴 채 그려내는 춤사위는 알 수 없는 ‘기품’까지 느껴지지요.
은백색의 아름다운 꽃무리가 넘실대는 모습이 장관인 팜파스그래스는 그 높이가 2~3미터에 이르며, 억새와 비슷한 모양새의 여러해살이풀이랍니다.
남아메리카가 고향인데, 특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반지름 600~700km에 걸쳐 펼쳐진 대초원 지대 ‘팜파스’의 초지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식물이 바로 이 팜파스글라스랍니다.
밀레정원
(이삭 줍는 여인들, 만종)
1960~1970년대 한국의 거의 모든 이발소에는 밀레의 그림 한 점씩이 걸려 있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개업이나 집들이 선물 목록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고,
심지어 쟁반이나 작은 찻상에도 프린트돼 있을 정도였다.
화가의 이름이나 제목은 몰랐을지언정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이 그림은 고된 노동을 마친 부부가 해질 무렵의 들녘에 서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무심코 이 그림을 접한 이들은 종교적 정감과 서정성으로 빚어낸 풍경 앞에서 어느덧, 숙연해지곤 한다.
그 그림은 바로,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 의 작품 〈만종(The Angelus, 晩鐘)〉.19세기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화가 밀레는 농촌에서 노동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림의 주제로 삼아 평생을 달렸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씨 뿌리는 사람들. 이삭 줍는 여인들. 낮 잠등이 대표작이다.
청산수목원에는 밀레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가꾼 정원이 있는데
너른 잔디밭과 울창한 수목을 배경으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조각상으로 재현해 마치 관람자가 그림 안으로 들어온 느낌을 안겨주는 밀레 정원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추수 후 밭에 떨어진 이삭을 함께 주우며 사진을 찍으며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한다.
기도하는 부부와 함께 손 모아 기도를 하며 소원을 빌어 보기도 한다.
삼 족 오 미로공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 섬의 미궁(迷宮) 라비린토스(Labyrinthos)를 알고 있나요?.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다이달로스에게 명하여 지었다는 이 건물은 아주 복잡하게 설계돼 있어 한번 들어가면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곳은 미노스 왕이 파시파에 왕비가 낳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감금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빠져나온 유일한 사람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뿐이라고 한다.
출입문에 실을 묶은 뒤 실타래를 풀면서 안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고 다시 실을 당기며 나와 무사히 미궁을 탈출할 수 있었다고 전 해진다.
10년의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어쩌면 테세우스의 긴 실타래가 필요할지도 모를 일다.
삼족어 미로 공원은 고구려시대 고분군중 평양시 역포 구역의진파리 7호 고분에서 출토된 해 뚫음무늬 금동장식을 그대로 본떠 조성하였다.
무덤 주인의 베개 마구리 장식품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해뚫음무늬 금동장식’은 봉황과 용, 그리고 태양 속에 산다는 세발까마귀[삼족오(三足烏)] 등의 동물문양과 불꽃무늬 등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 문양은 매우 유려하면서도 고구려인의 기상이 넘쳐흐르는 듯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은 바로 이 금동장식의 유려함을 고스란히 재현해 조성했다.
향나무와 화살나무로 둘레를 두르고 안쪽으로는 가이스카향나무, 홍가시나무, 황금측백나무 등을 심어 라비린토스에 버금가는 미로(迷路)를 조성했다.
2007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했으니, 현재 모습을 갖추기까지 꼬박 1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고구려인의기상을 엿볼 수 있는 광개토대왕의 현무도를 비롯한 고구려 고분벽화도 곳곳에 숨어있어 찾는 이들의 흥미를 한껏 북돋아준다.
메타세콰이어길
중국 쓰촨 지방에서 채집된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메타쒜콰이어이다.
청산 수목원에서 바로 그 메타쎄콰이어를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잎이 황금색을 띠어 조금은 더 특별한 ‘황금메타세쿼이어길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초식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2억년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처음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그 멋진 자태를 뽑 내고 있는 메타세쿼이아는 화석으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때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북 포항에서 이 나무의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고 전해진다.다.
메타세쿼이아는 일본의 고 식물학자 미키 시게루(三木茂) 박사가 일본 혼슈 중부지방에서 세쿼이아와 비슷한 나무 화석을 발견해 이를 비교 연구하던 중 낙우송이나 미국 서부지역에 자생하는 상록수 세쿼이아(미국 삼나무)와는 다른 속(屬)임을 밝혀낸 뒤 이를 ‘새로운 세쿼이아’라는 뜻으로, 그리스어 접두어 ‘메타(meta)’를 붙여 1941년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중국 쓰촨 지방에서 이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1943년에 채집된다.
쓰촨 지방 주민들이 ‘슈이샨(水杉)’이라고 부르던 나무였다.
이어 식물분류학자 후시안수(胡先驌) 박사는 이 나무가 미키 박사가 발견한 화석과 같은 속임을 확인하고 1948년에 이를 신종으로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놀라운 소식을 접한 미국 하버드 대학 아널드 식물원이 자생지 조사와 표본 수집 등의 연구에 나서면서 마침내 대량 복제번식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이 나무는 전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1956년 식물 육종가 현신규 박사가 들여와 산림청이 번식시킨 뒤 1970년대부터 가로수로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처럼 널리 퍼질 수 있었다.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유명하다.
메타세쿼이아는 키가 30~60미터에 이르고 직경만 해도 2~3미터에 까지 자랍니다.
잎은 마주나고 생장속도도 빠르고 물을 좋아해 습지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아직 그 역사가 짧아 담양 가로수길의 정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억 년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또한 불교의 사상에 심취하여 연꽃을 사랑하면서 다양한 수생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1990년부터 전국의 연꽃과 세계의 연꽃을 수집하면서 청산수목원에 예연원이라는 연꽃전시장을 만들게 되었다.
당시 연꽃 및 수련이 200여종, 각종 수생식물 100여종, 야생화 300여종을 식재해서 가꾸다가 2003년 연꽃축제를 시작으로 청산수목원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게 되었다.
현재는 우리나라 최다 연꽃 종을 보유하고 있다.
밀레와 고흐를 사랑하고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수목원을 꾸몄으며 다양한 문화예술에 대한 열망을 청산수목원에서 표출하고 싶어 했던 분이다.
서양의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문양에 크게 주목했으며 동양의 명리학과 민화에 심취했던 그는 항상 겸손하고 수줍은 미소로 청산수목원을 소개했다. 3만평의 부지에 식물을 조성 하다가 만 오천 평의 토지를 더 매입하여 현재 45.000평의 정원에 그가 추구하던 태마정원과 편의 시설을 갖추어 관람객을 맞고 있다.
그는 해양생물, 야생화, 조경, 문학, 민화, 향토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반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분으로 항상 뒤에서만 큰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그의 능력과 열정을 필요로 해서 향토문화연구소장직을 맡아 전면에서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추대하였는데, 그 열정에 불이 붙어 열심히 활동하던 중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안타까운 사고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의 죽음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비전에 큰 손실이었고 태안에 큰 별이 하나 졌다고 할 정도로 충격적 이었다.
그가 이런 철학적 이념을 가지고 조성해 놓은 테마 정원을 소개한다.
홍가시원
홍가시 나무는 봄에 새잎이 나올 때 단풍처럼 고운 붉은 빛을 띠므로 홍가시 나무라고 합니다.
속명 포티니아(Photinia)는 그리스어로 빛난다는 뜻의 포테이노스(photeinos)에서 유래된 말로 새로 나온 잎이 빨간색이며 광택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종명 그라브라(glabra)는 ‘털이 없는’이라는 뜻입니다. 참나무과에 속하는 가시나무류와는 이름만 비슷하지 전혀 다른 나무입니다.
원산지가 일본이며 남부 지방에서 조경수로 많이 심었지만 근래에는 중부 지방에서도 식재되고 있습니다.
잎은 자라면서 녹색으로 변하는데 가지치기를 해주면 항상 붉은 색의 새순을 즐길 수 있습니다.
홍가시나무는 목재가 단단하기로 유명하다.
목재는 수레바퀴나 낫과 같은 농기구의 자루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예연원
다양한 종류의 연과 수생식물이 있는 곳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다른 꽃들보다 더 아름다우며 청초한 연꽃은 물도 필요 한 만큼만 취하고 욕심 없이 버리는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절 입구에서 만나는 일주문과 수목원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그러나 청산수목원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만(卍)의 길과 맞닿아 있는 연꽃무리 언저리를 거닐다보면 일주문과 마주친다.
본래 일주문(一柱門)은 한 줄로 늘어선 두 기둥만으로 세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건축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지어졌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꽤나 불안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의 건축양식은 그 구조적 균형미가 절묘하기 이를 데 없어 수백년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한다.
일주문에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이 녹아있다.
세속의 온갖 번뇌(속진俗塵)로 인한 어지러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귀의(歸依)하고자 하는 오직 한가지 마음(一心)만을 지니고 이 문을 넘어오라는 상징적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일주문은 두 개의 기둥만으로 세속과 탈속을 매개하고 구분하는 상징이다. 그래서 일주문은 상징적 회랑이자 열주와 같다. 생과 사. 정토와 예토 일 여혹은 그 차이마져 초월하는 힘이다.
일주문을 통과 하면서 범속한 생활의 악습과 경 박을 반성하고 세속을 지워 나가며 정신적인 재무장을 하게 된다.
일주문을 넘어 ‘만(卍)의 길’을 따라 우주만물의 섭리를 묵상하며 걸어 보자.
사방의 끝이 종횡으로 늘어나고 펼쳐지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연 국(蓮國)의 길을 걸으며 사랑하는 이들의 길상만복(吉祥萬福)을 축원해 보심은 어떨까요?
팜파스원
서양 억새로도 불리는 팜파스 글라스는 청명한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으되, 바람결에 온몸을 맡긴 채 그려내는 춤사위는 알 수 없는 ‘기품’까지 느껴지지요.
은백색의 아름다운 꽃무리가 넘실대는 모습이 장관인 팜파스그래스는 그 높이가 2~3미터에 이르며, 억새와 비슷한 모양새의 여러해살이풀이랍니다.
남아메리카가 고향인데, 특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반지름 600~700km에 걸쳐 펼쳐진 대초원 지대 ‘팜파스’의 초지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식물이 바로 이 팜파스글라스랍니다.
밀레정원
(이삭 줍는 여인들, 만종)
1960~1970년대 한국의 거의 모든 이발소에는 밀레의 그림 한 점씩이 걸려 있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개업이나 집들이 선물 목록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고,
심지어 쟁반이나 작은 찻상에도 프린트돼 있을 정도였다.
화가의 이름이나 제목은 몰랐을지언정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이 그림은 고된 노동을 마친 부부가 해질 무렵의 들녘에 서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무심코 이 그림을 접한 이들은 종교적 정감과 서정성으로 빚어낸 풍경 앞에서 어느덧, 숙연해지곤 한다.
그 그림은 바로,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 의 작품 〈만종(The Angelus, 晩鐘)〉.19세기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화가 밀레는 농촌에서 노동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림의 주제로 삼아 평생을 달렸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씨 뿌리는 사람들. 이삭 줍는 여인들. 낮 잠등이 대표작이다.
청산수목원에는 밀레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가꾼 정원이 있는데
너른 잔디밭과 울창한 수목을 배경으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조각상으로 재현해 마치 관람자가 그림 안으로 들어온 느낌을 안겨주는 밀레 정원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추수 후 밭에 떨어진 이삭을 함께 주우며 사진을 찍으며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한다.
기도하는 부부와 함께 손 모아 기도를 하며 소원을 빌어 보기도 한다.
삼 족 오 미로공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 섬의 미궁(迷宮) 라비린토스(Labyrinthos)를 알고 있나요?.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다이달로스에게 명하여 지었다는 이 건물은 아주 복잡하게 설계돼 있어 한번 들어가면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곳은 미노스 왕이 파시파에 왕비가 낳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감금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빠져나온 유일한 사람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뿐이라고 한다.
출입문에 실을 묶은 뒤 실타래를 풀면서 안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고 다시 실을 당기며 나와 무사히 미궁을 탈출할 수 있었다고 전 해진다.
10년의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어쩌면 테세우스의 긴 실타래가 필요할지도 모를 일다.
삼족어 미로 공원은 고구려시대 고분군중 평양시 역포 구역의진파리 7호 고분에서 출토된 해 뚫음무늬 금동장식을 그대로 본떠 조성하였다.
무덤 주인의 베개 마구리 장식품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해뚫음무늬 금동장식’은 봉황과 용, 그리고 태양 속에 산다는 세발까마귀[삼족오(三足烏)] 등의 동물문양과 불꽃무늬 등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 문양은 매우 유려하면서도 고구려인의 기상이 넘쳐흐르는 듯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은 바로 이 금동장식의 유려함을 고스란히 재현해 조성했다.
향나무와 화살나무로 둘레를 두르고 안쪽으로는 가이스카향나무, 홍가시나무, 황금측백나무 등을 심어 라비린토스에 버금가는 미로(迷路)를 조성했다.
2007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했으니, 현재 모습을 갖추기까지 꼬박 1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고구려인의기상을 엿볼 수 있는 광개토대왕의 현무도를 비롯한 고구려 고분벽화도 곳곳에 숨어있어 찾는 이들의 흥미를 한껏 북돋아준다.
메타세콰이어길
중국 쓰촨 지방에서 채집된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메타쒜콰이어이다.
청산 수목원에서 바로 그 메타쎄콰이어를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잎이 황금색을 띠어 조금은 더 특별한 ‘황금메타세쿼이어길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초식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2억년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처음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그 멋진 자태를 뽑 내고 있는 메타세쿼이아는 화석으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때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북 포항에서 이 나무의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고 전해진다.다.
메타세쿼이아는 일본의 고 식물학자 미키 시게루(三木茂) 박사가 일본 혼슈 중부지방에서 세쿼이아와 비슷한 나무 화석을 발견해 이를 비교 연구하던 중 낙우송이나 미국 서부지역에 자생하는 상록수 세쿼이아(미국 삼나무)와는 다른 속(屬)임을 밝혀낸 뒤 이를 ‘새로운 세쿼이아’라는 뜻으로, 그리스어 접두어 ‘메타(meta)’를 붙여 1941년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중국 쓰촨 지방에서 이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1943년에 채집된다.
쓰촨 지방 주민들이 ‘슈이샨(水杉)’이라고 부르던 나무였다.
이어 식물분류학자 후시안수(胡先驌) 박사는 이 나무가 미키 박사가 발견한 화석과 같은 속임을 확인하고 1948년에 이를 신종으로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놀라운 소식을 접한 미국 하버드 대학 아널드 식물원이 자생지 조사와 표본 수집 등의 연구에 나서면서 마침내 대량 복제번식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이 나무는 전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1956년 식물 육종가 현신규 박사가 들여와 산림청이 번식시킨 뒤 1970년대부터 가로수로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처럼 널리 퍼질 수 있었다.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유명하다.
메타세쿼이아는 키가 30~60미터에 이르고 직경만 해도 2~3미터에 까지 자랍니다.
잎은 마주나고 생장속도도 빠르고 물을 좋아해 습지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아직 그 역사가 짧아 담양 가로수길의 정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억 년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당시 연꽃 및 수련이 200여종, 각종 수생식물 100여종, 야생화 300여종을 식재해서 가꾸다가 2003년 연꽃축제를 시작으로 청산수목원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게 되었다.
현재는 우리나라 최다 연꽃 종을 보유하고 있다.
밀레와 고흐를 사랑하고 다양한 예술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수목원을 꾸몄으며 다양한 문화예술에 대한 열망을 청산수목원에서 표출하고 싶어 했던 분이다.
서양의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문양에 크게 주목했으며 동양의 명리학과 민화에 심취했던 그는 항상 겸손하고 수줍은 미소로 청산수목원을 소개했다. 3만평의 부지에 식물을 조성 하다가 만 오천 평의 토지를 더 매입하여 현재 45.000평의 정원에 그가 추구하던 태마정원과 편의 시설을 갖추어 관람객을 맞고 있다.
그는 해양생물, 야생화, 조경, 문학, 민화, 향토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반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아이디어와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분으로 항상 뒤에서만 큰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그의 능력과 열정을 필요로 해서 향토문화연구소장직을 맡아 전면에서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추대하였는데, 그 열정에 불이 붙어 열심히 활동하던 중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안타까운 사고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의 죽음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비전에 큰 손실이었고 태안에 큰 별이 하나 졌다고 할 정도로 충격적 이었다.
그가 이런 철학적 이념을 가지고 조성해 놓은 테마 정원을 소개한다.
홍가시원
홍가시 나무는 봄에 새잎이 나올 때 단풍처럼 고운 붉은 빛을 띠므로 홍가시 나무라고 합니다.
속명 포티니아(Photinia)는 그리스어로 빛난다는 뜻의 포테이노스(photeinos)에서 유래된 말로 새로 나온 잎이 빨간색이며 광택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종명 그라브라(glabra)는 ‘털이 없는’이라는 뜻입니다. 참나무과에 속하는 가시나무류와는 이름만 비슷하지 전혀 다른 나무입니다.
원산지가 일본이며 남부 지방에서 조경수로 많이 심었지만 근래에는 중부 지방에서도 식재되고 있습니다.
잎은 자라면서 녹색으로 변하는데 가지치기를 해주면 항상 붉은 색의 새순을 즐길 수 있습니다.
홍가시나무는 목재가 단단하기로 유명하다.
목재는 수레바퀴나 낫과 같은 농기구의 자루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예연원
다양한 종류의 연과 수생식물이 있는 곳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다른 꽃들보다 더 아름다우며 청초한 연꽃은 물도 필요 한 만큼만 취하고 욕심 없이 버리는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절 입구에서 만나는 일주문과 수목원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그러나 청산수목원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만(卍)의 길과 맞닿아 있는 연꽃무리 언저리를 거닐다보면 일주문과 마주친다.
본래 일주문(一柱門)은 한 줄로 늘어선 두 기둥만으로 세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건축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지어졌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꽤나 불안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의 건축양식은 그 구조적 균형미가 절묘하기 이를 데 없어 수백년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한다.
일주문에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이 녹아있다.
세속의 온갖 번뇌(속진俗塵)로 인한 어지러운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귀의(歸依)하고자 하는 오직 한가지 마음(一心)만을 지니고 이 문을 넘어오라는 상징적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일주문은 두 개의 기둥만으로 세속과 탈속을 매개하고 구분하는 상징이다. 그래서 일주문은 상징적 회랑이자 열주와 같다. 생과 사. 정토와 예토 일 여혹은 그 차이마져 초월하는 힘이다.
일주문을 통과 하면서 범속한 생활의 악습과 경 박을 반성하고 세속을 지워 나가며 정신적인 재무장을 하게 된다.
일주문을 넘어 ‘만(卍)의 길’을 따라 우주만물의 섭리를 묵상하며 걸어 보자.
사방의 끝이 종횡으로 늘어나고 펼쳐지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연 국(蓮國)의 길을 걸으며 사랑하는 이들의 길상만복(吉祥萬福)을 축원해 보심은 어떨까요?
팜파스원
서양 억새로도 불리는 팜파스 글라스는 청명한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으되, 바람결에 온몸을 맡긴 채 그려내는 춤사위는 알 수 없는 ‘기품’까지 느껴지지요.
은백색의 아름다운 꽃무리가 넘실대는 모습이 장관인 팜파스그래스는 그 높이가 2~3미터에 이르며, 억새와 비슷한 모양새의 여러해살이풀이랍니다.
남아메리카가 고향인데, 특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반지름 600~700km에 걸쳐 펼쳐진 대초원 지대 ‘팜파스’의 초지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식물이 바로 이 팜파스글라스랍니다.
밀레정원
(이삭 줍는 여인들, 만종)
1960~1970년대 한국의 거의 모든 이발소에는 밀레의 그림 한 점씩이 걸려 있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개업이나 집들이 선물 목록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고,
심지어 쟁반이나 작은 찻상에도 프린트돼 있을 정도였다.
화가의 이름이나 제목은 몰랐을지언정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법한 이 그림은 고된 노동을 마친 부부가 해질 무렵의 들녘에 서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무심코 이 그림을 접한 이들은 종교적 정감과 서정성으로 빚어낸 풍경 앞에서 어느덧, 숙연해지곤 한다.
그 그림은 바로,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 의 작품 〈만종(The Angelus, 晩鐘)〉.19세기 프랑스 바르비종파의 대표적인 화가 밀레는 농촌에서 노동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림의 주제로 삼아 평생을 달렸던 화가로 알려져 있다.
씨 뿌리는 사람들. 이삭 줍는 여인들. 낮 잠등이 대표작이다.
청산수목원에는 밀레의 작품세계를 주제로 가꾼 정원이 있는데
너른 잔디밭과 울창한 수목을 배경으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조각상으로 재현해 마치 관람자가 그림 안으로 들어온 느낌을 안겨주는 밀레 정원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추수 후 밭에 떨어진 이삭을 함께 주우며 사진을 찍으며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한다.
기도하는 부부와 함께 손 모아 기도를 하며 소원을 빌어 보기도 한다.
삼 족 오 미로공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 섬의 미궁(迷宮) 라비린토스(Labyrinthos)를 알고 있나요?.
크레타의 왕 미노스가 다이달로스에게 명하여 지었다는 이 건물은 아주 복잡하게 설계돼 있어 한번 들어가면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곳은 미노스 왕이 파시파에 왕비가 낳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감금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빠져나온 유일한 사람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뿐이라고 한다.
출입문에 실을 묶은 뒤 실타래를 풀면서 안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고 다시 실을 당기며 나와 무사히 미궁을 탈출할 수 있었다고 전 해진다.
10년의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어쩌면 테세우스의 긴 실타래가 필요할지도 모를 일다.
삼족어 미로 공원은 고구려시대 고분군중 평양시 역포 구역의진파리 7호 고분에서 출토된 해 뚫음무늬 금동장식을 그대로 본떠 조성하였다.
무덤 주인의 베개 마구리 장식품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해뚫음무늬 금동장식’은 봉황과 용, 그리고 태양 속에 산다는 세발까마귀[삼족오(三足烏)] 등의 동물문양과 불꽃무늬 등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 문양은 매우 유려하면서도 고구려인의 기상이 넘쳐흐르는 듯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삼족오 미로공원〉은 바로 이 금동장식의 유려함을 고스란히 재현해 조성했다.
향나무와 화살나무로 둘레를 두르고 안쪽으로는 가이스카향나무, 홍가시나무, 황금측백나무 등을 심어 라비린토스에 버금가는 미로(迷路)를 조성했다.
2007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했으니, 현재 모습을 갖추기까지 꼬박 1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고구려인의기상을 엿볼 수 있는 광개토대왕의 현무도를 비롯한 고구려 고분벽화도 곳곳에 숨어있어 찾는 이들의 흥미를 한껏 북돋아준다.
메타세콰이어길
중국 쓰촨 지방에서 채집된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메타쒜콰이어이다.
청산 수목원에서 바로 그 메타쎄콰이어를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잎이 황금색을 띠어 조금은 더 특별한 ‘황금메타세쿼이어길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초식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2억년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처음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그 멋진 자태를 뽑 내고 있는 메타세쿼이아는 화석으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때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북 포항에서 이 나무의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고 전해진다.다.
메타세쿼이아는 일본의 고 식물학자 미키 시게루(三木茂) 박사가 일본 혼슈 중부지방에서 세쿼이아와 비슷한 나무 화석을 발견해 이를 비교 연구하던 중 낙우송이나 미국 서부지역에 자생하는 상록수 세쿼이아(미국 삼나무)와는 다른 속(屬)임을 밝혀낸 뒤 이를 ‘새로운 세쿼이아’라는 뜻으로, 그리스어 접두어 ‘메타(meta)’를 붙여 1941년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중국 쓰촨 지방에서 이 나무 화석의 실제 살아 있는 표본이 1943년에 채집된다.
쓰촨 지방 주민들이 ‘슈이샨(水杉)’이라고 부르던 나무였다.
이어 식물분류학자 후시안수(胡先驌) 박사는 이 나무가 미키 박사가 발견한 화석과 같은 속임을 확인하고 1948년에 이를 신종으로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놀라운 소식을 접한 미국 하버드 대학 아널드 식물원이 자생지 조사와 표본 수집 등의 연구에 나서면서 마침내 대량 복제번식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이 나무는 전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는 1956년 식물 육종가 현신규 박사가 들여와 산림청이 번식시킨 뒤 1970년대부터 가로수로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처럼 널리 퍼질 수 있었다.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유명하다.
메타세쿼이아는 키가 30~60미터에 이르고 직경만 해도 2~3미터에 까지 자랍니다.
잎은 마주나고 생장속도도 빠르고 물을 좋아해 습지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청산수목원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아직 그 역사가 짧아 담양 가로수길의 정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억 년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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