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초(2월 말),
내가 병원에서 퇴원해서 얼마 되지 않은 즈음이었는데, 스페인에서 연락이 왔다.(그 전해에 바르셀로나 대학에 서류를 보냈던 것에 따른)
와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 학교에서 나를 받아주겠다는 통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스페인에 가서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으니,
어차피 운명인가 보다! 하는 심정으로, 정말 환자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는데도, 부랴부랴 나는 스페인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곧 새학년 새학기가 되므로 바로 학교에 사직서를 냈고(총 5년 근무), 짐정리를 했고(그동안 그렸던 그림들을 총정리하면서 슬라이드 사진(기록 차원에서)을 찍어둔 것도 이 시점이었다. (그 상황 역시, 인생의 매우 중요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뭔가 정리를 해둬야만 할 것 같아서 했던 건데, 그 때 찍었던 작품사진을 지금 써먹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림의 보관 문제도 새롭게 떠올랐는데, 공교롭게도 스페인 행을 추진하면서 알게 되었던(그것 역시 나를 스페인으로 가게끔 힘을 실어준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당시 혜화동 성당에 다니던 스페인 수녀님들의 수녀원(성북동) 지하실에 맡기고('유언'(?)과 함께. 만약의 경우 내 사후엔 어떻게 처리하라는 내용) 위태위태한 모습으로,
1990 년 3월 스페인 행 비행기에 오른다.
아래) 스페인 가기 며칠 전, 동성 미술반 제자들과 마지막 야유회(두물머리)

난생 처음 타보는 외국으로 향하던 비행기.
모스크바를 거쳐(시베리아 벌판이 하얗게 눈에 덮여 있는 모습을 비행기 안에서 보았다.), 이태리 '로마'에 하루 반 정도 머물었다. (가는 길에, 거기서 신부 수업을 받고 있던 수사님도 만나느라. 그런데 피로와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 가야 할 일이 너무 막막한 상태여서 아무런 흥이 나지 않았다.)(나중에 그 수사님 왈, 당시에 본인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웃고 있었지만 내가 정말 걱정스런(대책없는) 사람이었다고......)
나는 지금도 그 얘길 할 때마다,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흩날리듯'이란 표현을 쓰곤 한다.
정말, 나는 스페인을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흩날리듯, 그렇게 갔던 것 같다.
너무나 막연하게......
이태리 로마에서 그 수사님과(당시의 마땅한 사진이 없지만, 이 게 내가 스페인으로 향하던 모습이었다.)

아래) 그 수사님이 그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 바르셀로나에 일이 있어서 왔다가(그 때는 이미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상태였다.), 나와 하루 정도 바르셀로나 관광을 했다.
(왼쪽: '침묵의 집. 오른쪽: 바르셀로나의 '구엘' 공원(가우디 작품)

위,아래) 내가 살던 바르셀로나의 산 언덕마을의 '침묵의 집'에서...

아래) 그 다음 다음 해 겨울(봄), '침묵의 집' 현관에서... (그 당시엔 중요성도 모른 채, 제대로 된 그 집 사진도 찍어두지 못했다. 그래서 이 사진 저 사진 그 집이 나온 것을 모으다 보니, 이런 식이다.

내가 여기에(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살게 되었던 집 사진을 싣는 이유는,
낯설고 물설었던 외국 땅에 도착해, 한 달만(1990년 4월)에 겨우 집을 구해 살기 시작했는데,
바르셀로나에 속하긴 했지만 시내는 아닌, 그 이전에 '돈 벌러' 바르셀로나에 와서 촌락을 형성했던 스페인의 다른 지방사람들이 살던 시골스런 정이 남아 있던 마을('깐 까라예우(Can Caralleu)')의 한 가운데에 있던 아주 조그만 집으로,
제대로 된 풍경 사진 하나 없어서, 그나마 풍경이 좀 크게 보이는 아래 사진을 실어 본다.

그 집에서는 바르셀로나 시내가 다 보였으며 그 너머의 지중해도 보이는 아주 전망좋은 곳이었고, 어차피 혼자 살다 보니 '침묵'과 함께하게 된 것으로,
나에겐 그게 너무 신기하고 낯설었기 때문에 그냥 이름을 붙였던 게 바로 '침묵의 집'이었던 것이다.(이 때부터 나는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살면서는 거기에 이름을 붙이는 버릇이 생긴다.)
그래서 아래 그림은, 내 삶을 얘기할 때마다 꼭 등장하곤 한다. (내 스페인 삶의 시작이다.)

위) '옛날에, '침묵의 집'에 한 화가가 살았는데...'. A4. 색연필, 수채. 1990
아래) '첫 자화상(바르셀로나)', A4. 파스텔, 1990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자마자의 한 달 정도는 집을 구하느라 너무나 힘들었던 반면,
일단 집을 구하면서는,
드디어 내가 원했던(?) 어디 먼 외국 땅에서 나 혼자 뎅그러니 살아가는 생활에 돌입하게 되었는데,
그 때가 봄으로,
나에겐 정말, '내 생의 가장 찬란했던 봄'으로 기억되는(당시엔 잘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시절이다.
물론 잔뜩 겁에 질린 상태로도 행복했고, 절박했고, 아름답기까지 했던 시절로 기억된다.
일단 언어 공부를 해야만 했는데, 그 해 9월에나(거기는 9월에 학기가 시작되어) '언어학교'에 갈 수 있었고 학교(대학) 역시 9월까지 기다려야만 해서,
봄에서 여름까지 거의 반 년을 그 집에 틀어박혀(중간에 식당 접시닦이 아르바이트도 시작을 했지만, 주로 집에서 지낸 시간이 많아) '혼자만의 삶'을 살아야 했다.
처음 한 달 정도를 바르셀로나 도심의 한 아파트 방에서 암울하게 생활을 하다,
드디어 나만의 공간(침묵의 집)에서 '화가로의 삶'을 시작했던 나는,
그 즉시 원칙을 세워둔다.
이 먼 곳까지 놀러온 게 아니니, 일기를 쓰듯 하루에 단 한 점이라도 뭔가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각오였다.(물론 '피를 말리던 그 철칙'을 정확히 지킨 건 아니지만, 그런 자세였다.)
모든 게 신기했고, 또 절박했으며, 화가로 살다 그대로 죽어도 된다는 각오가 돼 있었다.
돌이켜 봐도, 그렇게 시작되었던 그 시절의 드로잉들이 지금의 나에겐 얼마나 소중하고 또 가치가 있는지 모른다. 물론 하나에서 열까지 다 내 삶에 대한 것들이었다.
당시의 드로잉들...

위) '혼자 있는 밤의 대화'. A4. 연필,색연필, 1990
아래) '흰 종이 앞에 앉았는데...', A2. 수채. 파스텔, 1990


위) '혼자 있는 밤에는...'. A4. 연필,파스텔, 1990
아래)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보며..', A4. 펜. 파스텔, 1990

이 시절의 드로잉을 보면,
한국에서 했던 '모서리'는 사라져가고 있지만, 화면 어딘가엔 창을 집어넣곤 했는데(위, 아래 등등),

위) '숨겨진 의미'. B4. 종이 꼴라지, 수채. 1990
아래) '잊어버린 사람, 잊어가는 사람', A3. 수채, 1990

아래) '그림 외출 중', A2. 수채, 1990


위) '축제'. A4. 펜, 파스텔. 1990
아래) '바다가 말을 하고 싶어 한다.', A4. 파스텔, 1990

아래) '꽃(아마폴라) 들판'. A4. 파스텔. 1990


위) '은둔 생활'. A2. 수채. 1990
아래) '자화상', B4. 목판, 1990

아래) 자화상, 10호 유화. 1990


위) '지중해 풍토'. B4. 다색목판. 1990
아래) '자극', A4. 파스텔, 1990

아래) '친구', A4. 종이 꼴라지, 펜, 19903


위) '스페인 여자'. A3. 파스텔. 1990
아래) '스페인 여자', A4. 수채, 1990


위) '가우디와의 만남'. A4. 펜, 채. 1990
아래) '가우디와의 만남', 20호 유화, 1992


위) '초가을 달빛, 밤 바람'. B4. 수채. 1990
아래) '구름이 춤추는 밤', B4. 수채 파스텔, 1990

아,
그리고 한 가지, 내 '달력'에 대한 얘기도 빠트리고 넘길 수 없는 얘긴데,
나는 이 때부터(바르셀로나 시절) 매월 단 한 번을 빼먹지 않고 '달력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 (외국에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국냄새가 나는?) 달력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아래) '4월 달력(1990)', A3. 펜, 파스텔, 1990

물론, 나는 그 이전에도 달력을 그리긴 했지만, 이따금 한 번씩 했던 것에 비한다면,
나에게 남아 있는 그 전의 달력들

이제는 매월 의무적이자 연속적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2019. 8월) 그려오고 있다는 사실도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겠다.

위,아래) '5,6월 달력', A3. 펜, 파스텔, 1990

그리고 바르셀로나 시절 초기,
무슨 인연으로(?),
나에게 그 '침묵의 집'을 소개시켜 주고,
바로 아랫집에 살면서 온갖 내 어려움을 (자기네 가족처럼)챙겨준 '호아킨, 아말리아' 부부 가족.
그 중, 어느 한 해 1월 1일, 집에 혼자 있던 나를 끌고 자기집에 데려가 함께 식사를 한 뒤의 사진이다.
지금도 그들은 그 집에 살고 있다. (아래)

아래) 그 집 거실에 놓여 있는 '호아킨 씨' 초상. 유화 10호. 1993
내가 스페인에 살다가 떠나오기 전,
너무나 고마운 나머지(특히 호아킨 씨) 감사의 선물로 그려 선물했던 초상화. (그 집엔 다른 그림 몇 점도 있다. 지금도 그 집에 걸려 있다.)
그런데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다 좋아하는데, 정작 장본인인 호아킨씨만 이 초상화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
너무 심각하게 그려놓았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