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증조부(李信載)님은, 고종순종때 무관(겸무)으로 사과,선전관,나중에는 敦寧部同知事(정3품, 임금이 내린 벼슬임명장 교지가 있슴, 이 사실은 양희경, 손순동친구도 아는 사실임,31사단에 근무시, 순동이는 경비대대장이라 관사에 살았고 나는 61아파트에 살았는데 교지11장을, 병풍식으로, 만듦) 이르렀다. 경술국치직전, 낙향(長興長東)했으나 동양척식에 토지일부를 강제로 빼앗기고, 관헌의 접근이 곤란한 산골짜기인 인근 곰재(장흥부속현)로 이사했다 증조부님, 조부(李鐘根)님, 큰아버님(李경원 경수,부잣집이라 공부시켰다는데 생몰연대가 해방무렵이나 미상행불 일제시대 아나키스트운동했다하기도하고 해방정국시 행불되었다하고 내동 고모가 아는데 ㅜ, 큰어머님은 제가 중학교때 뵈었고 평생 수절하심), 아버님모두, 일제관리들의 창씨개명강요을 거부했다.지금 일제때의 호적(제적)등본을 떼면, 창씨改名者는 《일본이름이 나타나는데》, 증조부님이하는 우리 이름 그대로다ㆍ
경술국치에 적는다 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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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때 선산에 성묘하는데, 험동아제 이장수아저씨가 애기하기를, 제암산아래 산들은/ 전부 네할아버지산이고
웅치땅 반은 너네 벼슬할아버지 땅이었단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땅들이 죄다, 다른사람이 짓는다?
중학교때 산두꼴 대흠이 성집에 놀러가면, 대흠성 아부지가, 늬가 양수아들이지?, 너네 할아버지는 무관으로 벼슬이 높았는데, 항상 말을 타고 大野리 예동와 장흥 보성에 오고갔다했다한다, 보성에서 진짜 벼슬집안이 네집이다 했었다,공부잘해라ㆍ내가 군대생활할 때 熊峙 만리에 이신재名의 전답이 발견되서 이전등기때문 연락이 와서 (면사무소직원 전화)
당시 1990년 양※※에게 위임했는데 어찌되었는지?
그리고 부친생전에, 보성 귀기동, 영철이 사는 동네 뒤한 《야산과 정씨 선산이, 우리 증조부 李신재》땅으로 밝혀져 아랫강산 면서기, 李씨가 수속했다했고, 회천에서도 땅이 발견되었다 했다, 군대있을 때 장흥누가 그러는데, 장동땅이 너네 증조부이름으로, 된땅이, 많이 있다ㆍ 군대생활때려 치우고 찾으란 것도 장동 배산에서 들었는데 ,,,제대후 알아보니 땅임자가 나타나지않으면 10년경작자가 땅을 등기소유하는, 특별조치법으로, 소유권이 변동되었다 했고
몇년전 알아보니 소송방법이 있는데 소송비만 몇천만원이 된다했다 차일 피일 ㆍ長東땅은 전부 이신재 땅이라한다, 이유는 순종고종 경운궁 시종승 시종이
증조부의 형님되는 李소영님이어서 그렇다함
우리집의 불효자는 나다 내가 조상불경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