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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민수기13장21~33절
제목 : 가나안의 길목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각 지파에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을 뽑어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합니다.
그들에게 6가지를 정탐하여 오라하며 담대하라하시고 그땅의 실과를 가져오라 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정탐꾼들이 가져온 크고 탐스러운 과실은 사람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부정적 보고는 사람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불러일으킵니다.
1. 헤브론과 에스골 골짜기(21~24절)
1)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정탐합니다(21절)
“[21] 이에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정탐하되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에 이르렀고”
그들은 올라가서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르홉에까지 정탐을 합니다.
'신 광야'는 팔레스틴 남쪽, 사해(死海)와 아카바 만 사이의 광활한 광야 지대로서 가나안땅 제일 남쪽 경계를 이룹니다(34:3).
그리고 '하맛'과 '르홉'은 약속의 땅 가장 북쪽 경계를 이루는 곳입니다(수 13:5 ;삼하10:8).
특별히 르홉(Rehob)은 사사 시대 이후 '단'이라고 불리우던(삿18:28,29),
라이스(Lais) 성읍 주변에 있는 도시입니다.
결국 본절은 12명의 정탐꾼들이 팔레스틴 지역을 남쪽부터 북쪽까지,
철두철미(徹頭徹尾)하게 정탐했음을 보여 줍니다.
한편 정탐꾼들의 거쳐간 진행로를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 정탐꾼들의 거쳐간 진행로입니다(22~24절).
(1) 네겝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릅니다(22절)
“[22] 또 네겝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 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 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더라”
또. - 이 말은 정탐꾼들이 르홉까지 갔다가 다시 방향을 바꾸어 남방으로 갔다는 뜻이 아닙니다.
21절은 먼저 전체적인 정탐 과정을 총론격으로 말한 것이며,
뒤이어 나오는 본절은 보다 상세히 그 정탐 여정을 언급하기 위해서
'또'라는 접속사를 붙인 것입니다.
그들은 네겝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릅니다.
헤브론는 아브라함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족장시대에 자주 언급된 것으로 보아 고대 세계의 문화 중심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창13:18 ; 23:19).
*창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창23:19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한편 '헤브론'보다 7년 뒤에 세워졌다는 '소안'은 애굽 나일강 삼각주 동쪽의 한 지류에 위치했습니다(Keil).
그 지명의 뜻이 '낮은 땅'이라는 사실에서 그곳은 나일강 뚝 보다 저지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곳은 후일에 타니스(Tanis)로 불리워졌는데 힉소스(Hyksos) 왕조 때 건설되어 애굽의 수도 내지는 바로의 거처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세가 어떤 이유로 '헤브론'과 '소안'을 연결시켰는지에 관해
서는 명확히 알려진 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헤브론 성읍의 오래된 역사성을 지적함으로써 그 성읍의 견고함을 미리 암시하려는 듯합니다.
아울러 이는 결과적으로 모세가 애굽의 도시 '소안'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는 것도 암시하는데, 아마도 그는 애굽 궁중 생활에서 그러한 학문을 배웠으리라 추정됩니다.
아낙자손.-가나안 족속 보다 훨씬 전에 그 땅에 존재했던 원주민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헤브론을 중심하여 생활했습니다.
아낙의 아비 아르바(수14:15)가 아낙 자손의 창시자로 여겨지지만(수15:13), 그 기원에 대해서는 불명확합니다.
*수14:15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즉 이들이 살고 있던 헤브론의 옛 명칭이 '기럇아르바'로 되어 있었던 점으로 보아 '아르바'가 아낙 자손의 창시자로 생각될 뿐입니다.
한편 아낙 자손은 신체가 크고, 강한 거인 족속이었습니다(33절).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이들로 인해 기가 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신9:2).
*신9:2 “크고 많은 백성은 네가 아는 아낙 자손이라 그에 대한 말을 네가 들었나니 이르기를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 하거니와”
하지만 믿음의 용사 갈렙은 후일(약 50년 후) 이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영토를 확장했습니다(수 14 : 12 ; 15 : 13, 14).
*수14: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수15:13,14 “[13]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을 유다 자손 중에서 분깃으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니 아르바는 아낙의 아버지였더라[14]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그 세 아들 곧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 - 거대한 아낙 자손의 강력한 세 지도자 였습니다.
그러나 12지파의 영토가 각기 분배되고 헤브론이 갈렙의 기업으로 돌아갔을 때, 갈렙은 담대한 신앙과 굳센 믿음으로, 이들을 용감히 쫓아내었습니다(수15: 14;삿1:20).
*삿1:20 “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2) 헤브론에서 에스골 골짜기에 이릅니다(23절).
“[23]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따니라”
에스골 골짜기. - '에스골'은 '포도 송이'라는 뜻을 지닌 곳으로,
헤브론에서 가까우며 과일 농사에 적합한 곳입니다.
그리고 '골짜기'(나할)란 겨울 우기(10-4월)에만 생기는 골짜기의 개울,
곧 '와디'(Wady)를 가리킵니다.
이 '와디'는 종종 건기(乾期)에는 지표면에 물이 말라버리지만 땅속에는 과수(果樹)가 자라기에 충분한 수분을 품고 있습니다.
결국 '에스골 골짜기'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확인하고 감탄했던 만큼(24절) 포도 농사가 잘되던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이곳은 가나안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포도를 생산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Robinson).
➀ 포도송이를 둘이 막대기에 꿰어메었습니다.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이것은 가나안 땅에서 재배되는 농산물이 매우 풍요로왔음을 대변해 줍니다.
지금도 팔레스틴에서는 무게가 4-5kg 정도 나가는 포도송이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한편 포도 송이를 '막대기에 꿰어' 운반한 것은 그 무게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을 손상시키지 않고 운반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
➁ 석유와 무화과도 따서 운반했습니다.
정탐꾼들이 포도송이와 더불어 이것도 운반한 것은 가나안 땅의 실과를 가져 오라는 모세의 명령에 충실했음을 보여 줍니다.
아울러 이것은 그 땅이 각종 농산물에 적합한 옥토(沃土)임을 증명해 줍니다.
(3) 그곳에서 포도를 베었으므로 에스골 골짜기라 불렀습니다(24절)
“[24]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포도를 베었으므로 그 곳을 에스골 골짜기라 불렀더라”
에스골 골짜기라 불렀더라. - '에스골 골짜기'란 옛날 이곳을 통치했다는 족장'에스골'(창 14 : 13, 24)의 이름과 연관하여 붙여졌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이름은 또한 풍성한 '포도 송이'와 관련하여 비옥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해 경탄을 발했던 이스라엘의 기쁨을 반영한 이름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2. 정탐의 보고(25~29절)
모세는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파견하면서 여섯 가지를 알아 보도록 명령하였습니다.
➀ 그 땅 거민이 강한지 약한지. ➁ 사람이 많은지 적은지.➂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 ➃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 ➄ 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➅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도록 했습니다.
1) 40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25절)
“[25] 사십 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사십 일 동안. - 약속의 땅 가나안의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의 거리를 보통 160km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 거리는 일반 성인(成人) 남자가 산악 지역을 감안한다할지라도 일주일이면 충분히 주파(走破)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러므로 왕복 기간이'40일'을 경과했다는 것은
가나안 곳곳을 충분히 정탐했음을 시사합니다.
더욱이 성경 문학적 표현으로 '40'이란 숫자는 충분한 기다림과 인내의 기간을 뜻하므로(출 24:18;눅4:1,2), 12정탐꾼들이 자신들의 정탐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24: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눅4:1,2 “[1]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2]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2) 바란 광야 가데스에 도착하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와 보고를 합니다(26~28절)
(1) ➂➄➅에 대한 답입니다 -그 땅의 과일을 보입니다(26,27절)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보고하고. - 여기서 '보고하다'(다바르)는 말은 '진술하다', '대답하다', '사물의 원인을 말하다'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결국 12정탐꾼들은 자신들이 목격한 바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낱낱이 보고했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보고를 더욱 신빙성 있게 하는 자료로 '그 땅 실과를' 백성에게 내보였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한 수사학적 표현으로(출3:8;렘11:5),
곧 '풍요롭고 기름진 땅'을 의미합니다<신 11 : 9>.
*신11:9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27).
-23절에서 포도송이를 둘이 막대기에 꿰어메었다고 했습니다.
-무게가 4-5kg 정도 나가는 포도송이를 볼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석유와 무화과도 따서 운반했습니다.
(2) ➀➁➃에대한 답입니다-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습니다(28절).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그러나(에페스 키)는 정탐꾼들의 보고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32절),
그들의 불신앙적 견해를 단적으로 보여 준말입니다.
➀ 그 땅의 거주님은 강하였습니다.
➁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컸습니다.
➂ 강력한 족속이었습니다.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이 기름지고 풍요로운 반면에 매우 강력한 방어 진지와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사실(fact)대로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10명의 정탐꾼은
그 '사실'을 근거로 '악평'(32절)함으로써,
가나안을 반드시 기업으로 주시겠다던 하나님의 약속을 업신여기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10명의 정탐꾼들은 2명의 정탐꾼(여호수아와 갈렙)과
동일한 '사실'을 놓고도,
'믿음'의 결핍으로 인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아낙 자손 - 22절 주석 참조.
3) ➃에 대한 답변입니다 -각 족속이 배치되어 있는 상태입니다(29절)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였습니다.
이 족속들은 가나안 땅의 강력한 족속들로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전쟁 당시 가장 큰 장애물로 여겼던 그곳 원주민들이었습니다<수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3. 갈렙의 호평 vs 다른 정탐꾼들의 악평(30~33절)
1)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면 능히 이기리라하십니다(30절).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 여기서 '조용하게'(하사)란 말은 '잠잠하게 만들다'는 뜻으로(삿 3 : 19). '조용히 !', '쉿 !'(hush)을 뜻하는 감탄사 '하스'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갈렙은 정탐꾼들의 겁먹은 보고와 그에 동요하는 백성들을 진정시키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환기 시키며,
믿음을 재무장시킬 의향이었습니다.
이처럼 그가 백성 앞에 나서서 담대히 외칠 수 있었던 근거는 인간적인 회유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한편 여기서 여호수아 대신 갈렙이 대표적으로 말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
백성들의 눈에 모세의 수종자 여호수아 보다는 갈렙이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있는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 갈렙의 이 말은 결코 만용(蠻勇)에서 우러나온 말이 아니라, 여호와의 약속을 굳게 믿는 신앙에 기초한 말입니다.
이와 같이 참 신앙인은 환경을 초월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기에 항상 담대히 전진할 수 있습니다(요 16 :33 ; 히 11 : 1).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강하므로 치지 못하리라고 말합니다(31절).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 -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10명의정탐꾼을 일컫습니다.
한편 백성들의 설득 작업에 '여호수아'가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14:6의 정황으로 보아 이때 여호수아는 분명 갈렙과 견해를 같이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여호수아는 모세의 부관으로서 모세의 입장을 대변해야 했기에 공정성을 지니기엔 문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객관적인 입장에 있는 갈렙이,
전격적으로 나서서 긍정적인 보고를 주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 노예의 신분을 막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막강한 군사력과 방어벽을 구축하고 있던 가나안 원주민들을 상대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수행해야 할 전쟁은 단순히 무기와 병력에만 의존하는 일상 전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거룩할 목적을 지닌 영적인 전쟁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들에게는 군대의 대장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셨기에 주저하거나 낙담해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확신하지 못했던(삼상 17 : 47),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미약함과 상대의 강함만 보일 뿐,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삼상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3)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10명의정탐꾼은 악평하며 부정적입니다(32절).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정탐한 땅을 악평혀여. -여기서 '악평'(다바)이란 '은밀한 행동'이라는 뜻의 '다바브'에서 유래한 말로써 '모욕', '중상', '나쁜 소식'이란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약속의 땅에 대해 나쁜 평가를 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들어가 살 '기업'으로서는 부적합한 곳이라는 평가를 내렸던 것입니다.
즉 그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불신하며 모욕했던 것입니다.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 - 이는 가나안 땅이 원래 생존 불가능한, 즉 박토(薄土)이거나 기후 조건이 나쁘다거나, 각종 질병이 만연하는 땅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앞의 보고대로(26, 27절) 그 땅이 매우 비옥하고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 열국들이 그곳을 서로 쟁취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펼칠 것이며 따라서 수많은 희생자가 계속 발생될 곳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 여기서 '장대한 자들'(아느쉐 모도트)이란 '장신(長身)의 사람들', '두 사람 크기의 사람들', 곧 '키가 매우 큰 자'란 뜻입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몸집이 크다는 뜻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감히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족속들이라는 의미입니다.
4) 스스로 보기에 메뚜기 같다고 비하하였습니다(33절)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 - '네피림'은 노아 시대로부터 그 명성을 떨치던 강폭한 거인족으로서<창 6 : 4주석 참조> 정복과 수탈을 일삼던 난폭한 무리들을 가리킵니다.
*창6: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그러므로 여기서 10정탐꾼들은 아낙 자손들의 위용에 기가 질려 그들을 고대 세계의 '대장부'(네피림)를 연상하여 묘사하였던 것입니다(아낙과 네피림과의 연간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후에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 무찌른 바산 왕 '옥'<신 3 : 11>의 신장이나 다윗이 죽인 블레셋 거인 골리앗(삼상 17 : 4-7)등을 보더라도 몇몇 가나안 원주민들의 육체적인 탁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10명의 정탐꾼들이 32절에서 말한 것처럼 그 땅의 '모든 백성'이 그와 같은 장대한 체격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10정탐꾼들의 보고에는 불가능을 미리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보고가 과장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 이는 전쟁도 하기 전에 이미 정신적으로 패배한 자들의 연약한 소리입니다.
10정탐꾼들의 보고에는 신앙적인 요소가 한 마디도 첨가 되지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정탐 결과가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회의와 불신은 계속되는 14장에서 전 이스라엘 백성에게 파급되어 끝내 여호와의 진노를 사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신앙'을 내팽개친 자들에게 남는 것은 절망과 비탄 뿐입니다.
갈렙의 신앙을 본 받읍시다.
갈렙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은 긍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은 마음이 성실(誠實)한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은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忠誠)하였습니다.
갈렙은 겸손(謙遜)한 삶을 살았습니다.
갈렙은 나눔의 삶을 살았습니다.
갈렙은 젊음을 항상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갈렙은 비전(vision)의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은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갈렙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갈렙은 지속적인 헌신을 했습니다.
갈렙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였습니다.
갈렙은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습니다.
우리 모두 갈렙과 같은 신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정탐꾼들에게 헤브론의 기억은 심히 오도(誤導)됩니다(21,22절).
헤브론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처음 약속하신 곳이요, 아브라함이 이미 값을 치루고 소유권을 획득한 유서 깊은 땅입니다(창23:16~20).
그러나 지금 이곳은 망각되어 아낙 자손의 땅으로만 기억될 뿐입니다.
내게도 눈에 보이는 대로만 판단하여 포기하기에는 매우 소중하고 오랜 분깃(축복)이 있지 않습니까?
2) 정탐꾼을 파견한 곳도, 정탐 보고가 이루어진 곳도 “가데스”입니다(23~26절).
약속의 땅 길목에 위치한 가데스는 ‘애굽의 노예살이’를 청산하고
‘가나안의 자유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첫 갈림길입니다.
하지만 신앙이 무너지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곳이 또한 가데스입니다.
가나안과는 가까운 곳이 었지만, ‘믿음’없이는 그 땅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의 몫입니다.
내 인생의 가데스는 언제, 어디였습니까?
3) 열 명의 정탐꾼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이라고 폄아합니다(27~29,31~33절).
가나안 땅의 비옥함과 열매의 풍성함은 축소하고, 헤브론(22절) 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이 다 장대하다고 과장합니다.
특히 가나안 땅을 ‘죽음(삼킴)’과 연결한 것은 그 땅에서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정면으로 배격한 것입니다.
그들의 악평은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며, 하나님을 향해 도전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하나님의 존재와 은혜도, 정체성과 사명도 다 잊게 합니다.
긍정의 힘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부재한 것입니다.
4) 갈렙의 증언이 다른 정탐꾼들의 보고(25~29, 31~33절)사이에 위치합니다(30절).
믿음의 목소리가 불신의 아우성 속에 묻힌 것입니다.
하지만 “간결하지만 확신에 찬 갈렙의 메시지는, 장황하지만 불신과 두려움에 가득 찬 그들의 보고”와 대비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한 그들은 신념으로 무장했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지도, 그분이 하실 일을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믿음은 현실을 무시하지 않고 현실 너머 진실을 보고 영적 상상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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