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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신명기12장1~19절
제목 : 그처럼 행하지 말라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평안히 거주할 때, 이방신들을 위한 신당과 주상을 제거하고 그들의 제의 방식을 따르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1. 신당과 주상을 제거하라(1~3절).
모세는 이제 그들이 지키야 할 법들을 12장을 시작으로 26장까지 장황하게 풀어냅니다.
1) 평생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들입니다(1절)
“[1] 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
차지하게 하신 땅. – 이처럼 하나님이 이미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고 완료(完了) 시제를 사용한 것은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1) 언약적 측면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위시한 이스라엘의 열조들에게 언약을 통해 이미 가나안 땅에 대하여 약속하셨으므로, 그 소유권은 분명히 이스라엘에게 있다는 의미입니다(창17:1-8 ; 26:1-5 ; 28:10-15).
(2) 히브리적 사고(思考)와 문체적 특징이다.
즉 이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이 명백한 기정사실임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문법상의 '확신의 완료형'(perfects of confidence)입니다.
규례와 법도. – 4:1 주석 참조.
2) 우상을 섬기는 곳을 마땅히 파멸하라 하십니다(2절).
“[2]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를 막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 수 9:1-2 강해,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을 참조하라.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 – 가나안 족속들은 대개 높은 산에 우상을 섬기는 처소를 설치하였는데(왕상 14:23 ; 렘 2:20 ; 3:6 ; 겔 6:13), 그 까닭은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올라설수록 그들의 경배 대상인 하늘의 우상신에게 더욱 가까워 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울창한 나무 아래에서 우상 섬기기를 즐겨하였는데(왕상 14:23 ; 왕하 16:4 ; 17:10 ; 대하 28:4), 그 까닭은 자연의 웅장함을 통해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의 의식에 더욱더 엄숙함과 신비감을 부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하여야 할 사실은 거룩한 예배 처소를 마련하거나 예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경배 드리는 자의 '마음가짐'이란 점입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는 여느 우상과는 달리 무엇보다도 예배하는 자의 중심을 감찰하시는 참 신이시기 때문입니다(삼상 16:7).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산에서도 말고 저 산에서도 말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은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하라고 교훈 하셨습니다(요 4:21-24).
마땅히 파멸하며. – 원어 '아바드'는 '파괴하고 파괴하다'는 중첩 어입니다.
그러므로 KJV는 이를 '철저히 파괴하다'(utterly destroy)로, RSV는 '반드시
파괴하다'(surely destroy)로, 그리고 NIV는 '완전히 파괴하다'(destroy completely)로 각기 번역하고 있습니다.
3) 우상의 이름들을 지워 버리라 하십니다(3절).
“[3] 그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 '아세라'(Ashera)는 가나안의 대표적인 여신 중 하나이며, '주상'(柱像)은 우상 숭배와 관련된 기념 비석을 일 컫는 단어입니다. 7:5 주석 참조.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 – 우상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없애 버리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이름이란 그것에 의하여 대표되는 사물이나 사람의 '존재' 또는 '인격'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7:24>.
아뭏든 이 명령은 여호와만을 섬겨야 할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우상 숭배 관습에 물들어 범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이자 반드시 필요한 방법임을 보여 줍니다(살전 5:22).
2. 텍하신 곳에서 정하신 방식대로(4~19절)
1) 합법적 성소의 지정(4~7절)
(1) 하나님께는 그런 방식으로 하지 말라 하십니다
“[4]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
그 처럼 행하지 말고 - 정확한 번역은 '그들의 방식대로 하지 말고'입니다.
즉 가나안 족속들이 자의(自意)에 따라 산이나 푸른나무 아래에 신전이나 신당을 지어 놓고, 각자 편리한 대로 우상을 섬기듯이 하나님을 경배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미 백성들에게 자신을 섬기는 규례와 방법에 대하여 지시해 주셨는 바(출 20:3, 11 ; 레 1-7장), 이제 자신을 섬길 장소를 계시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계시의 근본정신은 진정 여호와를 참 되시며 완전하신 인격자이자 전능하신 신으로 알고, 바로 섬기라는 것입니다(롬 1:21-23).
(2) 자신의 이름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현존 하십니다(5절).
“[5]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 하나님의 이름은 곧 성품과 속성을 증거해 주며, 더 나아가 그 분의 존재 자체와 인격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신다는 말은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전 존재를 그 곳에 계시하시고, 또한 당신의 모든 권위와 영광을 그곳에 두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택하신 곳. – 이 말은 학자에 따라 에루살렘 혹은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는가 하면, 또는 어떤 특정한 한 장소를 가리키기 보다는 어느 곳이든지 하나님께서 정해주시는 예배 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사적 정황에 의거할 때, 이 말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12지파의 기업(수 14:6-21:45) 가운데서 한 특정한 곳을 선택하여 지정하시겠다는 의미인 것으로 해석 되어야 합니다.
즉 이는 이스라엘 사회의 '유일 중앙 성소'(唯一中央聖所)에 관한 규정인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훗날 유다 지파의 땅 예루살렘에 성전이 건립됨으로써 역사적 성취를 보았는데(대하 6:5 ; 7:12), 이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의가 담겨 있습니다.
① 종교적 의의상 이교도들의 우상 숭배 풍습으로부터 구별되어 순수한 여호와 신앙의 보전을 가능하게 하였다.
② 사회적 의의상 12지파로 분할된 이스라엘 사회 전체를 하나의 민족 공동체로 결속시키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 일부 고등 비평가들은 이스라엘의 성소(聖所) 단일화 작업을 B.C. 622년경 요시야왕 통치 때에 있었던 일로 봅니다(왕하 22:3-23:25).
그리하여 신명기는 결국 후대 왕국 시대의 작품이라는 견해를 피력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요시야 통치 18년에 있었던 잡다한 우상의 산당들을 대대적으로 정리한 개혁적 측면의 일인 반면, 본장의 유일 성소 명령은 이방의 온갖 우상 신전들로부터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을 보존토록 하기 위한 예방적 측면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성소에세 바쳐야 할 제물들의 품목을 나열합니다(6절)
“[6]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가나안 정복 후 그곳에 정착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일 제물을 하나님께 드릴 경우, 반드시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여 지정한 그 '택하신 곳'(5절)에서만 드려야 했습니다.
번제 – 짐승을 잡은 후 가죽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번제 단 위에서 불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레 1:3-9)로 '온전한 헌신'을 상징합니다<레 1:3-9 강해, 번제에 대하여>.
제물. – 속죄(贖罪)를 위하여 하나님께 피를 흘려 바치는 모든 희생 제물을 가리킵니다(레 1:11 ; 3:2).
십일조. – 한편으로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생활을 보장하고(민 18:21-32), 또 한편으로는 가나한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에서(신 26:12-15) 소득의 십분의 일(1/10)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종의 헌물입니다<창 28:10-22 강해, 구약의 십일조>.
이러한 십일조(十一條, tithe)의 기원은 이미 모세 이전 곧 아브라함(창 17:17-20)과 야곱(창 28:22)에게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레 27:26-24 강해, 십일조의 역사>.
한편 오늘날에 있어서도 십일조는 받은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로서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행하여야 할 것입니다(고후 9:10-12). 민 18:21-32 주석 참조.
거제 – 화제(火祭), 요제(搖祭), 전제(奠祭)와 더불어 제사 드리는 4대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이는 화목 제물의 뒷다리 부분을 들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방법인데, 제사 후 그 제물은 제사장으로 돌려졌습니다(레 7:14, 32).
서원제. – 낙헌제(樂獻祭), 감사제(感謝祭)와 더불어 화목제의 3대 종류 중 하나로, 하나님께 맹세하여 바치기로 서원한 것을 그분께 바치는 제사입니다(레 22:21).
낙헌 예물. –즉 낙헌제(일명 자원제)를 가리키는데, 자발적이고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제사입니다<레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 출애굽 당시의 유월절 사건과 관련된 규례입니다.
즉 당시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이스라엘의 초태생(初胎生)은 후일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어린 양의 죽음으로 인해 대속되었는데, 그 결과 모든 초태생은 당연히 하나님께 구별하여 바쳐야 할 그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출 12:1-13:2).
이런 점에서 오늘날의 성도 역시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유라 하겠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롬 3:25). 출13:2 주석 참조.
(4) 이스라엘은 이 제물들을 지정된 장소에서 가지고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나누워 먹으면서 온 가족이 즐거워해야 합니다(7절).
“[7]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여호와 앞에서 먹고. – 이 말은 하나님께 바쳤던 희생 제물들을 나누어 먹고 즐거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들을 어디까지나 제사장들의 몫으로 돌리워졌을 뿐입니다(레6:24-30 ; 7:1-10 ; 민 18:8-20).
이 말은 곧 한해의 추수가 끝나면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중 얼마를 구별하여 감사 잔치를 베풀고 온 가족이 참여하여 기쁨으로 즐기는 것을 가리킵니다(14:22-27).
너희 가족. - '가족'에 해당하는 원어 '바이트'는 '미쉬파하'(가족, 족속, 종족-29:18 ; 창 10:5 ; 레 25:47)보다 더 구체적인 단어로 혈연적인 가족 뿐 아니라 그 집에 거하는 종, 심지어는 그 집에 잠시 유하는 나그네(5:14 ; 출 20:19)까지도 의미합니다.
2) 합법적 성소에서의 제사들(8~12절).
(1) 가나안에서도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예배와 제사를 드리라 하십니다(8절).
“[8]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 ”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 여기서 '소견대로'라는 말은 ‘자기 눈에 옳은 대로'(KJV, RSV) 또는 '자기 생각에 알맞는 대로'(Living Bible)라는 뜻입니다.
이는 여호와의 제사 제도와 관련된 말로, 이스라엘이 이미 시내 산에서 제사 규례의 율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광야 생활로 말미암아 그 같은 규례를 온전히 지키지 못한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는...하지 말지니라. - 장차 가나안 땅에서 입성하여 안정된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제사 율법을 철저히 준행하여 오직 지정된 장소에서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규례를 따라 예배와 제사를 드리라는 뜻입니다(4-7절).
(2) 아직은 하나님께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9절).
“[9]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
안식과 기업. –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차지하게 될 땅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는 '기업'(상속물)이며, 동시에 그 곳은 더 이상 광야 40년과 같은 유랑 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안주하게 될 '안식'의 장소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영적 가나안, 곧 천국에 이르러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받으며 영원히 안주하게 되는 것을 예표해 줍니다(히 9:15).
실로 그 같은 궁극적 안식은 개인적으로는 죽음을 맞이할 때, 종말적으로는 예수 재림시에 이루어질 것입니다(고후 5:1 ; 히 6:2)
(3) 모세는 다시 한 번 조상들의 오랜 관행을 금지하면서 ’지정된‘ 성서에서만 그런 제물을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10절).
“[10]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11]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
너희로 평안히 거하게 하실 때. - '평안'에 해당하는 '솰롬'은 개인이나 집단이 향유(享有)하는 완전한 상태 즉 건강이나 번영, 안정이나 영적 만족 상태등을 의미 합니다.
본절에서는 특히 대적의 위협으로부터의 안전을 강조하고 있는데, 일찍부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솰롬'(shaldm)을 위해 가나안 원주민들을 다 쫓아내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6:18, 19 ; 7:20-24 ; 9:5 ; 11:23).
여호와께서...택하실 그 곳. – 이처럼 여호와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기 위하여 특별히 한 곳을 선택하시는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눈에 좋은 곳에 임의대로 제단을 쌓고 자의적(自意的) 방법으로 우상을 섬기던 이방 풍습과는 엄격히 구별된 상황에서, 그리고 구별된 선민 이스라엘에게서, 구별된 거룩한 이름이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서원물. - '아름다운'에 해당하는 '미브하르'는 '선택된', '정선(精選)된', '가장 좋은'이란 뜻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특별히 선정해 놓은 최상품의 서원물을 가리키는데, 드리는 자의 지극한 정성과 감사하는 마음을 잘 반영해 줍니다. 6절 주석 참조.
(4) 가족의 범위를 넓힙니다(12절)
“[12] 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 이미 앞서 언급한 감사 잔치<7절>에 수하(手下)의 종들 뿐 아니라 레위인들 까지도 참석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레위인들을 잔치에 반드시 초청하도록 규정한 것은 종교적인 이유 뿐 아니라 사회적인 면에서, 따로 생계를 위한 분깃이 없는 그들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레위인은...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 이스라엘의 여느 지파와는 달리 레위 지파에게는 가나안의 토지가 분배되지 않은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처럼 토지 분배에서 레위 지파를 제외시킨 까닭은 오직 그들 지파는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만 전념해야 하므로, 토지를 경작하거나 가축을 칠 겨를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10:9>. 민 18:24 주석 참조.
3) 희생 도살과 일반 도살의 구분(13~19절)
소위 일반 도살과 희생 도살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1) 희생 제물에 대한 규례입니다(13,14절)
“[13]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14]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
번제를 드릴때에 한 지파를 택하여 지정한 곳에서 명령하는 모든 것을 행하라 하십니다.
오직...한 지파 중에... 택하실 그 곳. – 이스라엘 여러 지파 중에서 한 지파를 택하신 후, 그 지파의 기업 가운데서도 다시 한 곳을 택하여 이스라엘의 유일한 중앙 성소로 삼으실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르키는 '한 지파'는 곧 장차 그 기업 중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질 유다 지파(창 49:8-12 ; 시 78:67-70)를 가리킵니다(5절).
(2) 일반 도살에 대한 규례입니다(15절).
“[15]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막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는 것 같이 먹으려니와 ”
제물용(祭物用)이 아니라 단순히 먹기 위해 잡는 일반 식용(食用) 고기에 관한 규례이다.
즉 모든 희생 제물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성소에서 잡아야 했지만, 식용 짐승은 자기 거주지에서 마음대로 잡아도 무방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20-28절).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본절은 레 17:3-6과는 다른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제물용이든 식용이든 간에, 모든 짐승은 반드시 회막 안으로 가져와 그곳에서 잡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같은 차이점은 레위기의 규례가 회막을 중심으로 운집하여 생활하던 광야 유랑 시절에 주어진 것인 반면, 본절의 신명기 규례는 이제 멀지 않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 백성들이 각자의 기업대로 여러 곳에 흩어져 살게 된 시점에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계시 발전적(啓示發展的)측면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무론하고. – 하나님께 희생 제사로 드린 제물은 비록 제사장과 그 가족일지라도 반드시 의식상(儀式上) 정결한 자들만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레22:1-16).
그러나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먹기 위해 잡은 식용(食用) 짐승의 고기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구분이 필요 없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노루나 사슴을 먹는 것 같이 먹으려니와. – 노루와 사슴은 이스라엘의 먹을 수 있는 짐승이긴 하였지만(14:5),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로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두 짐승은 정(淨)한 자건 부정(不淨)한 자건 간에 어디서든지 자유롭게 잡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의미는 이와 마찬가지로 소나 양, 염소 등과같이 제물용으로 쓸 수 있는 짐승(레 17:3)도 단순히 먹기 위해 잡을 경우에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어디 에서나 잡아 먹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3)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아야 합니다(16절).
“[16]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피는 먹지 말고. – 생명에 대한 존중 처사입니다.
왜냐하면 피는 생명 그 자체와 동일시되었기 때문입니다<23절>. 레 17:10-14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 제물용으로 잡은 짐승의 피는 제단에 바쳤지만(레 1:5 ; 민 18:17), 식용으로 잡은 짐승의 피는 이처럼 땅에 쏟아 부어야 했습니다.
그 까닭은 피로 상징되는 생명으로 하여금 원래 그 생명이 비롯되었던 흙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창 3:19 ; 전 3:20).
또한 이는 생명의 주권이 오직 흙에서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행위이기도 했습니다(창 2:7).
(4)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그분께 감사하며 가족과 레위인들과 더불러 즐기라 하십니다(17~19절).
“[17]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과 네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네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네 각 성에서 먹지 말고 [18]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19] 너는 삼가 네 땅에 거주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
앞 부분에서 상세히 다룬 내용(4-14절)을 다시 요약하고 있는 부분으로, 곧 매년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거두는 풍성한 수확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하며, 잔치를 연 후 온 가족과 레위인들로 더불어 즐기라는 것입니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 – 가나안 땅의 3대 소산물로, 히브리인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로 간주하였습니다(렘 31:12 ; 욜 2:19).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 – 레위인들은 그들이 맡은 독특한 종교적 직무로 인해 오직 그 일에만 전념해야 했기 때문에, 일반 여느 지파와는 달리 생계를 보장할 만한 기업이나 분깃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10:9 ; 민 18:21-24).
따라서 레위인들은 생계에 관한 한 오직 여호와만을 의존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런 점에서 여호와께서는 십일조 외에 절기나 잔치의 날에 레위인들을 초청하는 규례를 만들어 그들의 생계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셨던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상을 성소에서 제거하고 정한 곳에서 정한 대로 제사를 드리라고 하십니다.
신앙생활의 중심에는 예배에 있습니다.
주님의 백성은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실한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 우라가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만 예배하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예배하고, 기쁨으로 하나님께 예배하여야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하고 전심으로 주의 은혜를 기뻐하고, 주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방식대로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약속의 땅에서 결실하게 하신 분은 가나안의 풍요한 다산의 신 바알과 아세라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여호와입니다(6~11,13,14절).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당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야 했고, 가나안의 신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땀흘려 그들의 손으로 창고에 쌓고 외양간을 채웠지만, 그수고가 결실을 맺도록 은총을 베푸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 돌려야 할 마땅한 감사와 예배를 헛된 우상과 교만한 자아에게 돌리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2) 하나님 앞에서 이웃과 더불어 먹고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7,12,18,19절).
이 감사의 축제에 함께할 이웃은 그들의 자녀와 종과 그들 성읍의 레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비록 약속의 땅에서 기업을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먹고 즐기는 감사의 잔치에서 배제되지 않습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께 합당한 찬송과 감사를 드리는 것과 더불어, 이웃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다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손을 들면서 소외된 이웃에게는 정죄의 돌을 들었던 종교지도자들을 가증하게 여기셨습니다(참조, 암5:21~24).
그러나 연약한 이웃의 손을 맞잡고 예배당의 문을 여는 자들은 기뻐하며 영접하실 것입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이방 민족의 방식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2~5, 13,14절).
그들은 자기 성읍 가까운 곳에 신당을 짓고, 신의 형상을 조각한 주상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해서 언제든 자신들의 필요에 부응할 수 있는 신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신을 섬긴 것이 아니라, 실상은 인간을 섬기도록 신을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택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찾아와야 했고, 새긴 형상에 절하지 말고 이름을 두신 곳에서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야 했습니다.
나의 신앙 행위에 베아 있는 이교적 관습은 무엇이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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