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시 ‘여우난골족’에는 설의 풍경이 잘 그려져 있다. 멀고 가까운 친척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그들의 면면이 소개되는 과정과 다 모인 다음에 어른은 어른끼리, 아이는 아이끼리 음식 장만과 노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되어 있다.
명절날 나는 어머니 아버지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는 큰 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신리 고모
고모의 딸 이녀 작은 이녀
....중략
저녁 숟가락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 옆 밭 마당에 딸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국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이, 말타고 장가가는 놀이를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떠들썩하게 논다
밤이 깊어 가는 집안엔 어머니는 어머니들끼리 아랫방에서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윗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등잔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새벽닭이 울어 졸음이 오면
아랫목 싸움 자리싸움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하략
여기에는 여러 가지 놀이가 평안도 사투리라 설명이 필요하다.
쥐잡이는 손수건을 쥐 모양으로 접어서 돌려 가며 노는 아이들 놀이라고 책 뒤에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설명이다. 전후 맥락을 보면 배나무 동산에서 하는 놀이라 실외 놀이로 보인다. 이어 나오는 놀이가 꼬리잡기도 밖에서 하는 놀이이기에 위의 설명은 잘못된 것이다. 쥐잡이는 오히려 닭살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닭살이는 요즘 알고 있는 ‘쥐와 고양이’와 유사하나 닭을 물고 가는 쥐와 대화하는 과정이 중시되는 역할놀이의 일종이다.
숨국막질은 숨바꼭질의 평안도 사투리다.
꼬리잡이는 앞 사람의 허리를 잡고 길게 이으면 앞 사람이 꼬리를 잡는 놀이이다.
시집가는 놀음은 가마타기로 마주보고 손을 우물정자(井)로 엇갈려 걸면 그 위에 타는 놀이다.
조아질은 공기놀이의 지방 사투리이다.
쌈방이는 주사위를 말한다.
바리깨 돌림은 놋쇠로 만든 밥그릇의 뚜껑을 빙 둘러 앉아 다리 밑으로 돌리면 술래가 찾아내는 것이다. 주로 남아들이 했던 놀이로 어른들은 같은 방법으로 목침 돌리기를 했다.
호박떼기는 역할놀이로 호박 따는 사람이 술래, 호박주인은 할머니로 할머니의 허리를 잡고 시작한다. 그러면 호박 장수는 할머니에게 호박을 사러 왔다고 하고 할머니는 아직 씨도 안심었다-이제 싹이 나왔다-밤톨만하다-주먹만하다-아기 머리통만하다 하면서 호박의 크는 과정을 모의하고 나중에 따가라고 하면 맨 뒤에 호박을 따서 다른 곳에 숨기고 가다가 떨어뜨려 깨뜨렸느니, 쥐가 물어갔느니 하면서 모두 따가서 숨기면 화가 난 할머니가 호박을 찾으러 가는 놀이로 북쪽 지방에서 많이 하던 놀이다.
제비손이구손이는 여럿이 서로 마주보고 다리를 뻗고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씩 세어가는 다리헤기 놀이를 말한다. 이때 부르는 노래가 한국민속종합보고서 평안도, 황해도(문공부, 1980)에 실려있어 소개한다.
한알동 두알동 삼나 니피 오두둑 바두둑 제비 사니 구 사니 종 제비 파리 땅<평양>
한알똥 두알똥 삼우띠 낫띠 오간 나니 녹낭 거리 파리 장군 가드락 꿍<박천>
한알궁 두알궁 삼재 엄재 호박 꺾기 두루미 찌장 가드라 꿍< 龍川>
상거리 낭거리 줄누 노자 이만 잔채 못얻어 먹으니 네집에 불이야 호미궁 짓궁 거드러 가느라 꿍<宣川>
한알데 두알데 세알 때 네알 때 용낭 거리 팔대 장군 노루 사슴이 범에 약골 고드레 땅<황해 해주>
하나 먹어 두리 똥 삼산 니개 콩나물 비둘기 아이 어른 잡아 놓고 곡수발리 싣고 왈랑 절랑 까마 때 까닥<황해 옹진>
시를 읽으면 그림이 떠오르는 시가 있고 가슴이 멍한 시가 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당시의 정겨운 설 풍경이 떠올라야 하는데 놀이가 나오는 부분에 눈이 가고 해설을 보고 틀린 부분을 찾아내는 나를 보면서 '병(病)'이 깊었다'란 생각에 씁쓸했다. 그런데 더 씁쓸하게 만드는 것은 이 병은 고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오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