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한국영화, 장르:재난드라마 개봉:2016.08.10.
감독,각본:김성훈, 관객:7,120,508명(2016.12.02.현재)
제작:어나더썬데이,하이스토리,비에이엔터테인먼트,
주연:하정우,배두나,오달수
매일 아침저녁으로 우리는 터널을 통과하며 출퇴근을 반복한다. 안전에 대한 의심은 전혀 없다. 그저 터널의 혜택으로 출근길이 20분이상 단축되는것에 만족한다. 자동차 하도 영업대리점 이정수 과장도 마찬가지다.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신차 8대를 구입하겠다는 고객의 전화를 받고 크게 기뻐하며 속도는 빨라진다. 눈앞에 보이는 하도터널을 통과하며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귀가하는 이정수 과장의 눈빛에는 가슴벅찬 기대감이 있다.
터널안을 통과하며 중간지점에 도달하였을 무렵, 터널안에 원인모를 정전이 발생하였다. 연이어 갑자기 무너져 내린 터널 내부는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고 이정수 과장이 손을 쓸 틈도 없이 갇혀버리는 상황이 되었다. 모든 운명적 상황은 얘기치 않은 곳에서 가장 중요한 딸의 생일날 일어난다. 그가 가진 것은 베터리 78% 잔량의 휴대폰, 380mm 생수 2병, 그리고 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케익이 전부였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저 열심히 살아간다. “이정수 과장”(하정우역) 역시 우리와 다를바 없는 평범한 가장이다. 평소처럼 도로를 달리고 터널을 지날뿐 특별한것이 없다. 그러나 매일처럼 오가던 터널이 무너졌을 때 그에게 무너진 것은 터널만이 아니라 그의 모든 일상도 함께 무너져 버렸다. 차량위로 떨어진 환풍기와 돌더미 사이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이정수 과장은 실내등을 켜고 휴대폰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119구조대와의 교신조차도 어렵게 이루어졌다. “구조대장 김대경”(오달수역)은 이정수 과장의 신고를 받고 즉시 출동하는 등 초기대응의 신속함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터널입구부터 모든 상황은 예사롭지 않았다. 베테랑구조대 조차 당황한 입구의 상황은 이 구조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되었다.쇼핑몰에서 딸의 생일을 준비하던 “세현”(배두나역)은 쇼핑몰에 설치된 대형TV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바라보고 어디론가 환급히 달려간다. 그저 가정주부로서 살아가는 평범한 세현에게 발생한 남편의 소식은 차마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가 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믿고 그들과 함께 포토라인에 서서 사진을 찍는 것이 전부였다.
포크레인등 각종 장비들이 동원되어 입구를 찾은 김대경 구조대장과 “막내대원”(조현철역)이 차량을 몰고 진입에 성공함으로서 구조의 실마리가 잡히는 듯 하였다. 막내대원의 실수로 자동차 경적음이 울리고 터널내에는 미세한 진동이 발생한다. 이 소리에 잠을 깬 이정수 과장이 김대경 구조대장을 불렀고, 두사람은 서로의 목소리를 확인하며 구조의 청신호를 알려왔다. 그러나 그 음파의 진동때문이었을까? 터널은 다시 붕괴위기를 맞고 김대경 구조대장과 대원은 황급히 차를 후진하고 무사히 빠져나가지만 터널은 또다시 2차 붕괴되며 구조의 길은 멀어지고 있었다. 안전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나타나는 세가지 경향이 있다. 첫째, 부실공사다 도로위에 자동차만큼 많은 차량은 없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차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도로위에는 수많은 차들이 쏟아져 나온다. 터널은 사람의 편리에 의해 요구된 스피드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부실공사다 터널 암석붕괴를 방지하는 락볼트가 단위당 10개씩 들어가야 하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곳에 위치한다고 몇 개씩 누락하면서 터널의 안전은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부실공사는 설계도면까지 부실해진다. 이로서 구조는 차질을 빚고 상황은 더욱 더 어려운길로 치닫는다. 두 번째, 언론이다. 국민의 알권리는 무엇일까? 뉴스를 생산하며 특종으로 먹고사는 언론의 생리는 안전사고 발생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전화기의 배터리잔량이 자신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순간 기자들은 끊임없이 발신음을 눌러댄다. 남편의 생사가 염려되는 “세현”(배두나역)에게 집중된 카메라 플래쉬, 그리고 구조에 매달려 있어야 할 구조대장을 끊임없이 불러대는 취재기자들의 무개념, 힘을 보태어도 뭐라 할판에 지치게 하는 두가지 행태는 어이가 없다. 세 번째는 정부와 정치인이다. 시장이 오고, 국회의원이 오고, 장관이 오고, 그때마다. 접견에 바쁜 구조대의 일상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생존유가족과의 기념촬영과 작업진행에 관한 브리핑의 재현과 재현, 모든 것을 책임져 줄 듯한 정부의 단호한 입장에는 언제나 밑도끝도 없는 공약들이 섞여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구조는 더뎌지고 국민들의 무관심속에 정부는 제2 하도터널건설에 차질을 우려하여 손실금 500억원을 주장하며 구조에 부정적인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재난발생시 나타나는 현상 또한 세가지다. 첫째, 사고는 부실로 인하여 언제나 예고되었다는 것이다. 단지 감독기구와 공사관계자들의 이해관계로 인하여 방치되고 용인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보통의 국민이 부실공사의 희생자가 된다는 것이다. 정부관계자 이거나 이해관계자도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 피해자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셋째, 생각보다 구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안전시스템과 구조작전 시스템은 사고직전까지는 원활하게 작동한다. 그러나 사고직후부터 이 시스템은 전혀 무용지물이 된다. 우왕좌왕할뿐 그 누구도 뚜렷한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재난발생에서 나타나는 구도도 세가지다. 첫째, 무너진 터널안에 고립되어 외부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전국민의 성원속에 구조는 신속정확하게 이루어질것이라는 기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둘째, 터널 내 갇힌자를 두고 변해가는 터널밖의 정서와 감정이다. 처음에는 안전사고와 부실공사에 대한 뜨거운 이슈들이 뉴스를 달구어 낸다. 국민들의 관심도 갇힌자에 대한 성원과 후원과 응원을 더해가며 초미의 관심사가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일상으로 복귀하고 외면하기 시작한다. 셋째, 구조대와 유가족이다. 이들은 터널밖에 있지만 속은 타들어 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초조감은 짙어지고 의지는 비탄에 젖어들기 시작한다.
“이정수씨의 구출을 위해서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다하라는 대통령님의 지시에 따라서 저희 정부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는 “장관”(김해숙역)의 말은 결코 낯설지 않다. 세월호 사건때에도 이 말은 어린 고등학생의 심장에 꽂혀서 죽음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없는 안전 불감증은 이 영화 곳곳에서 끝없이 표출되지만 새삼 충격받을 일도 아니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저번에 도롱뇽 하나 때문에 터널 공사 중단됐던거 다들 기억하시죠?”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는 터널 내 구조에 관한 손익계산서를 따져 보고 있다. 터널의 부실공사가 알려지면서 제2 하도터널공사가 차질을 빚고 중단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골몰해 있는 사람들에게 보통의 사람 하나쯤은 도롱뇽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도롱뇽이 아니라 사람인데요!” 정부관계자들이 이해득실을 따지는 자리에서 김대경 구조대장의 한마디 말은 웃음을 자아내면서 또한 우리 사회, 씁슬한 자아상의 한 단면을 보는 듯 하다.
한편 외부상황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는 이정수 과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차량 내부의 공간확보와 전기량 점검, 생수의 활용, 휴대폰 밧데리의 효과적 활용등에 관한 나름대로의 원칙을 정하며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수는 뚜겅을 활용해 한컵씩만을 사용하고 통화도 필요한 부분만 짧게 사용하였다. 자신의 아내인 세현의 전화를 받은 이정수 과장은 가장으로서 오히려 아내를 안심시키려고 애썼다. 누구보다도 잘 아는 가족에 대한 사랑은 보통사람들이 가지는 작은 가치이지만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여유를 잃지 않으려는 이정수 과장의 고군분투는 손톱깎기로 면도를 하는 장면에서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라디오를 들으며 “잠시광고 듣고 오겠습니다 다른데 가지 마세요”라는 멘트에 “딴데 갈데도 없다”는 이정수 과장의 넉살좋은 화답은 전국민을 웃음바다로 만들며 울게도 한다. 남편인 이정수과장과의 유일한 소통공간인 라디오를 통해 세현은 남편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사랑을 전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저 많은 돌들을 치워 줄때까지 살아남으려는 이정수 과장의 집념과는 달리 터널외부의 상황은 만만치가 않다.
부실공사와 부실 설계도에 갈 길을 잃은 구조대도 지쳐가기는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매뉴얼조차 없는 상황은 한국사회의 현실적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복사판 세계다 구조보다 보고를 중요시하는 정부관계자들의 세태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관료사회를 지적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구조현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제2 하도터널공사 중지로 인한 손실규모도 날로 커져가는 바람에 지역의 여론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구조대원들도, 여론의 동향도 구조중지에 대한 말들이 수면위로 부상하면서 남편을 끝까지 지켜가기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세현은 압박에 시달린다. 결국 라디오를 통해 남편의 구조중지와 함께 제2 하도터널 공사재개에 서명했다는 소식이 이정우 과장에게 전해지자 이정우는 평정심을 잃어버린다.
세현의 서명을 받은 정부관계자는 터널 폭파를 지시하고 터널내 생존자에 대한 구조는 완전히 중단된다. 이 사실을 알게된 이정수 과장은 망연자실에 빠지고 곧, 폭파시켜 버릴 터널안에서 탈출하기 위해 자동차 경적음을 울리며 온갖 몸부림을 쳐 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터널 밖에서 자동차 경적음을 들었던 김대경 구조대장이 폭파를 중단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폭파를 막을 순 없었다.
터널 붕괴 35일째 되던날, 이정수 과장의 차량이 발견되고 구조대원들이 잔해에 뒤덮여 쓰러져 있는 이과장을 발견한다 이미 죽은줄로 생각한 이정수 과장은 끝내 생존해 있었다 주유소에서 받은 생수 2병과 생일선물용 케익, 그리고 어디선가 한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있었으나 35일의 기적같은 생명은 모두를 집중시키며 여론의 중심의 서게 된다 이 영화는 결국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이정수 과장 스스로의 힘과 의지에 의해서 생존한 전쟁과 같은 스토리였다 정부도, 119구조대도, 유일한 혈육이자 사랑하는 아내였던 세현도, 이정수 과장을 포기하고 말았을 때 신의 손길은 그에게 생명을 허락하였다.
인생에 있어서 기적이란 모든 사람들이 손을 놓아버렸을 때 일어난다. 인간의 모든 노력으로 아무것도 이룰수 없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는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절망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래도 되지 않을때가 더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붙들 존재가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 유일한 희망이고 행복인 것이다.
터널은 안전불감증에 시달린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에게 증오를 불러 일으킨다. 정부는 그때마다 시스템을 정비하고 예산을 투입하고 부실의 원인 규명을 위해 야단법석을 떨지만 아무것도 이루어 낸 것이 없다. 이 영화는 끝났지만 세상은 달라진 것이 없다. 그저 생명보다 더 중한 것이 경제적 이해득실이었다는 꼼수만 밝혀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