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촨성 당링산 주봉인 샤창라 아래에 있는 다하이쯔 호수. photo 유광석 |
앞에서 동티베트 단바의 티베트 건축인 조방과 조루를 찾아보았습니다. 오늘은 조방에 사는 한 가정을 방문하여 일상을 들여다보고, 조방의 뒤로 펼쳐진 동티베트의 네 가지 별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동티베트에는 서로 다른 별들이 제각각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첫째 별은 밤이 되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입니다. 둘째는 낮이면 멀리 하얀 설산이 강한 햇살에 반짝이고 있는 별입니다. 천상에서 내려다보면 설산 사이사이에 촘촘히 박힌 크고 작은 호수들이 거울처럼 빛나는 세 번째 별이고, 지상에 내려와 길을 걸으면 치장도 않은 여인네에게서도 수려한 이목구비가 빛을 발하니 네 번째 별이라고 합니다.
해발 5000m 만년설이 있는 곳
동티베트의 설산은 히말라야와 달리 눈이 없는 평지에서 빤히 보이기 때문에 더욱 눈이 부십니다. 설산은 해발 5000m가 넘어 1년 내내 눈이 녹지 않습니다. 청두에서 단바로 가면서 지나가는 바랑산(해발 5040m)은 고갯마루에서 가까이 볼 수 있어 아름답고, 쓰구냥산(해발 6250m)의 눈 덮인 주봉은 쉽게 자태를 드러내지 않기에 보이기만 해도 감탄스러운 설산입니다. 동티베트의 남부에 있는 공가산(해발 7556m)은 시짱자치구를 제외하면 중국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거대한 빙하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신비의 설산이지요.
단바에서 북쪽으로 60여㎞ 가면 있는 당링산이 별처럼 빛나는 설산입니다. 당링산은 주봉 샤창라가 해발 5470m이고, 그 바로 아래의 다하이쯔와 후루하이 두 개의 호수가 더없이 아름답지요. 고원과 설산의 호수는 산 아래가 아니라 정상 부근의 고지대에 많습니다. 설산 만년설이 녹아서 만들어진 호수들이지요. 이 호수의 물은 지하로 스며들어 산 아래 계곡으로 흘러나갑니다. 워낙 높은 지대의 호수들이라 일반인의 눈에 쉽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티베트를 구글 지도로 조금씩 확대해보면 얼마나 많은 호수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뿌려져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천상의 누군가가 별들을 소쿠리에 담아서 티베트고원에 쏟아 부은 것 같지요. 호수의 물은 한없이 맑고 투명합니다. 별보다 빛나는 투명함이라고나 할까요.
미인곡의 전설
동티베트의 또 하나의 별은 미인들입니다. 단바에는 미인곡의 전설이 있지요. 13세기 전반 칭기즈칸이 몽골고원을 통일하던 시기에 간쑤성과 닝샤, 산시성 일대에는 티베트 계통의 당항족(탕구트족)이 세운 나라 서하가 있었습니다. 칭기즈칸이 동서로 세력을 뻗쳐나갈 때 이미 200년 가까이 강성한 국력을 자랑했던 서하가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지요. 그러나 칭기즈칸을 적대했던 결과는 왕조의 멸망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간쑤성 일대에 있던 서하의 귀족과 궁녀들이 단바 지역으로 피난와서 정착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단바는 미녀로 유명해졌고, 지금도 단바현 바디향 계곡 10㎞ 안쪽에 있는 공산촌은 미인곡이란 별칭을 갖고 있지요. 이곳에서는 전통적으로 매년 미인 선발 행사를 열기도 합니다.
실제로 단바를 서너 차례 답사하면서 느낀 건데 이 지역에서는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미모가 빛나는 여인네들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해발 3000m 전후로 자외선이 강한 탓에 하얀 피부는 찾기 힘들지만, 이목구비에 동양적인 부드러운 선이 돋보이는 미인이 꽤나 많습니다.
동티베트의 네 가지 별이란 말에 공감한다면, 네 가지 별빛에 빠져보는 트레킹을 해볼 수 있습니다. 동티베트 오지 마을의 미녀 목동들의 안내를 받아 야크의 여름 유목 산길을 따라 당링산을 오른 다음, 샤창라 주봉 아래 호숫가에서 캠핑을 하면서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을 감상하는 것입니다. 한번 길을 나서 보시겠습니까?
단바에서 북쪽의 진촨 방향으로 68㎞ 정도 계곡 길을 따라가면 당링산 입구에 당링촌이 있습니다. 당링촌에서 출발하여 해발 3300m에서 시작해서 시계 방향으로 4500m 고개를 넘어 4200m 호숫가에서 캠핑을 하고 다음날 내려오는 코스입니다. 이 코스는 현지인의 안내가 필수적입니다. 당링촌에서는 몇 사람이 산길 안내와 캠핑을 도와줄 수 있는데, 그 가운데 차이란조마라고 하는 스물넷의 티베트 미녀 목동을 만나면 운이 좋은 것이지요.
안내를 부탁하기 전에 그녀가 사는 이야기를 좀 들어봤습니다. 차이란조마는 보통 ‘조마’라고 부릅니다. 티베트 사람들은 네 음절로 된 이름을 짓지만 일상에서는 뒤의 두 음절만 애칭처럼 부르지요. 성은 없습니다. 조마는 이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을 도와 생업에 종사하는데 학교에는 가본 적이 없습니다.
조마와 조마의 여동생들
차이란조마는 오빠가 하나 있고, 아래로 여동생만 넷, 그러니까 딸이 다섯인 딸 부잣집의 큰딸입니다. 동생들은 조마의 생모가 일찍 세상을 뜬 다음에 이복형제로 태어났기 때문에 나이 차이가 있습니다. 십대 후반의 큰 동생은 탑공불학원에 들어가서 비구니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비구니 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복장과 규율은 이미 비구니 그대로이고, 결혼도 하지 않습니다. 학생 신분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사진을 찍는 것은 결례지요. 곧 3년 과정을 마치면, 어느 사찰로 들어가 라마승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티베트사람들의 불심은 오체투지에서 보듯이 그들의 생활 자체이기 때문에 형제자매 중 한 사람이 승려가 되는 건 집안의 자랑이지요. 가톨릭 집안에서 신부나 수녀가 한 사람 나오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셋째 딸 진조는 이제 십대 중반이지만 조마와 함께 집안의 생업을 영위하는 집안의 기둥입니다. 생업에 바쁠 때에는 일꾼이지만, 외지인을 만나면 수줍어하고,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겹게 따라 부르면서 시시때때로 깔깔대는 천진난만한 산골 소녀입니다. 넷째 딸은 집안에서 처음으로 중국의 초등학교에 들어가 이제 6학년이지요. 막내 동생은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늦둥이로, 여느 집과 다를 바 없이 부모는 물론 언니오빠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큰언니에게 매달릴 때면 딸인지 동생인지 구별하기 어렵지요.
야크의 선물
이 깊은 산골의 생업은 어떤 것일까요. 해발 3300m의 산골 오지이기 때문에 농사는 짓지 않습니다. 조마와 진조가 주로 맡은 가업은 야크 치기입니다. 80여마리가 있는데, 적은 숫자가 아니지요. 야크의 젖을 짜서 우유와 치즈로 외지에 파는데 연간 10만위안이 훌쩍 넘는 소득을 올리지요.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야크를 도살해서 고기로 팔지는 않습니다. 자연사하는 야크를 식용으로 처리할 뿐이지요. 안거낙업이 따로 없지요. 바로 여기가 그런 곳입니다.
야크는 해발 3500m의 마을 뒷산에서 키웁니다. 원래 야생의 야크는 해발 4000m 이상에서만 사는데, 가축화하면서 낮은 곳으로 내려왔습니다. 여름에는 가축화된 야크도 4000m가 넘는 곳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이때 조마와 진조 두 자매는 7, 8월 두 달간 야크떼를 몰고 여름 유목을 나가야 합니다. 당링촌에서는 당링산 정상 근처로 올라가지요. 유목에 나서면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세워 기둥으로 삼고 야크 털로 짠 덮개를 덮어 거처를 마련하지요. 이곳에서 주변의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워 취사를 하면서 지냅니다. 최근에는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 지원정책의 하나로 지급해준 돔형 텐트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산골에도 변화가 밀려온 셈입니다.
조마나 진조 모두 동양적인 미모를 갖고 있습니다. 야크를 몰거나 말에 짐을 싣고서 험한 산길을 오를 때에는 당당한 일꾼이지만, 산 위에 도착해 호수에서 세수를 하고 나면 금방 수줍은 미소녀로 되돌아오곤 합니다. 흥이 나면 그녀는 맑은 목소리로 멋들어진 티베트 전통민요를 힘찬 가락에 따라 부드럽게 불러주기도 합니다.
해발 4500m에서의 캠핑
조마와 진조가 길안내를 하기로 했다면 본격적인 캠핑 준비를 해야 합니다. 산 위에서 하룻밤을 지내자면 여름에는 침낭이면 족하지만 봄가을이나 초겨울에는 개인용 천막까지 있어야 합니다. 말 서너 마리에 싣고 가야 합니다.
짐을 챙겨 아침에 출발해서 해가 지기 전에 샤창라 주봉과 다하이쯔가 내려다보이는 해발 4500m의 고개를 넘어서야 합니다. 조마나 진조와 같은 현지인이거나 고지대에 완전히 적응한 사람이라면 3~4시간이면 오를 수 있지만, 외지인들은 산악전문가라 하더라도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8시간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고산병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이지요. 고산병을 완화하고 예방해주는 의약품을 준비해야 합니다.
마을을 출발해 뒷산을 타기 시작해 산록을 거슬러 두세 시간을 올라가야 비로소 계곡을 벗어납니다. 멀리 끝도 없이 겹쳐지고 이어진 고원의 능선들이 보이지요. 첩첩산중이란 말이 실감나는 풍경, 이것만으로도 너무 아름답습니다.
두세 시간을 더 오르면 고원의 크고 작은 호수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정말 이렇게 높은 고지대에 거울 같은 호수가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신비롭지요. 설산의 눈이 녹아 모인 물들이 호수를 이룬 것입니다. 고원의 호수를 ‘빛나는 별’로 묘사한 것을 금방 이해할 수 있지요.
그렇게 자잘한 호수 몇 개를 지나고 해발 4500m의 마지막 고개를 힘겹게 넘어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에 질식할 것만 같은 감동에 빠지게 되지요. 당링산의 주봉 샤창라의 웅장한 자태! 그 아래 자리 잡은 거대한 호수의 짙은 물빛! 그리고 주봉과 호수 사이를 조용히 흘러가는 구름!
주봉은 날카로운 모서리를 드러낸 채 눈부신 백색의 만년설을 이고 있고, 호수는 이름이 왜 ‘큰 바다’인지 설명이 필요 없는 순간입니다. 7~8시간의 고된 걸음 끝에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시야를 가리기도 하지요.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합니다. 고산병에 지친 몸을 움직여 천막을 치고,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피워야 합니다.
이렇게 캠핑 준비를 마치고 식사를 하면 드디어 별들의 잔치가 벌어집니다. 하늘에는 무서울 정도로 쏟아지는 별들, 별빛에 반사되는 설산 연봉들, 그 아래 펼쳐진 호수의 수면, 그리고 조마와 진조의 아름다운 눈빛이 영롱한 별들의 잔치를 벌입니다. 이렇게 별빛 세례에 빠져 있다 보면,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하산하지 않겠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별들의 잔치
다음 날 짐을 걷고 하산하는데, 말들은 올라온 길을 되돌아가고, 사람들은 다하이쯔 아래로 하산하게 됩니다. 다하이쯔 아래의 너덜길은 말들이 통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산길에 다하이쯔 물가에 서서 맑은 물에 손을 적셔본 다음, 다시 낮은 능선을 올라서면 후루하이라는 또 하나의 커다란 호수가 깊은 눈망울을 반짝이는 광경에 감탄하게 됩니다. 이름 그대로 조롱박처럼 허리가 잘록한 호수인데 이것은 능선 위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입니다.
두 호수 사이의 너덜길을 힘들게 빠져나와 후루하이의 입구 오른쪽까지 도착하면 힘든 코스는 끝이 나고, 그 이후는 비교적 편안한 하산길입니다. 당링산 트레킹을 하는 중국인들은 당링촌에서 출발해 이 후루하이 입구까지만 올라왔다 돌아갑니다. 4500m 고개를 넘어 고지대에서 캠핑까지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고, 아직은 중국에 트레킹 문화가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어 시간 하산하면 페이지핑이란 평평하고 탁 트인 계곡을 만납니다. 페이지핑은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평평한 땅이란 말이고, 말 그대로 좌우의 산자락이 2~3㎞ 정도로 넓게 펼쳐진 곳입니다. 일부러 만들지 않은 다음에야 이토록 험한 산지에 어떻게 이런 평지가 생겨났을까 신기하기만 합니다.
당링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페이지핑을 들어 샹그리라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샹그리라는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는 이상향입니다. 제임스 힐튼은 동양에 한번도 와본 적이 없이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샹그리라를 만들어냈지만, 중국 서남부와 인도, 파키스탄, 네팔, 부탄 등지에서는 스스로 샹그리라라고 주장하는 지역이 상당히 많습니다. 소설의 허구에 빗대어 자기 고장을 홍보하는 것이지요. 심지어 중국 정부는 윈난성 북부의 중뎬이란 곳을 아예 샹그리라로 개명해서 관광산업에 빅히트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힐링투어
아무튼 이런 주장의 주요 근거 중 하나는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는 활주로와 같은 의외의 평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당링촌을 두고 샹그리라라고 재미있게 말하는 사람들은 이 페이지핑을 그 근거의 하나로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1박2일의 힘들고 아름다운 트레킹을 마치고 나면, 티베트의 조방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조방의 자연환경을 이루는 설산과 계곡에 깊이 잠겨 보는 최고의 여행이란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이 트레킹은 현지인의 안내가 필수적이지만, 산악전문가 수준은 아닙니다. 일반인에게도 꽤 도전적인 수준의 트레킹으로 강력히 권할 만합니다.
당링산과 주변의 계곡은 유황이 풍부한 천연온천도 아주 좋고, 단풍의 추색도 좋습니다. 매년 10월이면 중국인 여행객들도 꽤 찾는 곳인데,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중국 여행 트렌드가 단순한 단체여행에서 개별적인 자유여행으로 넘어가는 가운데 약간의 모험적 요소를 얹은 개성 있는 여행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합니다. 계사년 올 일 년의 계획을 짜면서 이런 여행을 한번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지요. 속세의 번잡한 마음을 전부 털어내는 힐링투어가 되어줄 것입니다.
동티베트에는 네 개의 별이 빛나고 있다
쓰촨성 당링허촌 고원의 별 /윤태옥 다큐멘터리 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