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의산 위상 정립과 춘천이궁 의 역사적 의미 확립을 위한
시민 대 토론회 제안서
토론회 제목(가제)
“항몽 유적 봉의산의 역사적 가치 조명과 춘천이궁의 위상”
제안의 변
안녕하십니까 ?
춘천 역사문화 연구회 운영위원 오동철 입니다.
역사적으로 춘천을 고찰한 학자들의 의견과 시민들이나 외지인들이 느끼는 춘천의 역사성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6.25 민족 동란의 비극이후, 군사도시로 자리매김한 춘천의 현실과, 미군의 주둔으로 나타난 기지촌의 발달, 육군 2군단 사령부와, 예하부대들의 집중적 배치로 발생한, 춘천의 근대화는 군사도시로서의 춘천을, 외부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산업의 발달이 수도권 상수원에 막혀 정체되면서, 근대화의 시발점이 된 댐의 집중적 건설을 통해, 호반의 도시라는 이미지로 자리매김하며, 춘천은 근대들어 신설된 도시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게 된 것이 현실입니다.
춘천의 과거를 돌아보면, 고고학자들의 의견을 통해 드러나는, 역사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를 거치는, 오랜 유적들이 남아있는, 남한에서 드물게 오랜 역사적 증거들을 지니고 있다고 발표되고 있습니다.
이는 춘천이 가진 특수성에 기인했다고 보이는데, 험준한 산맥이 빙 둘러싼 천혜의 분지지형과 ,북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북한강과, 동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소양강이 만나는, 두물 머리를 서쪽에 끼고 있어, 천혜의 요새를 형성한 군사적 지형특성과, 따뜻한 햇살과 풍부한 수량으로 인해 고대농업과 수렵이 용이했던 이유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춘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증거로 남은 청동기 유적을 비롯해, 충적지형의 특성속에 물가를 접하고, 구석기 신석기 유적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삼국사기에는 백제온조왕 13년인 기원전 6년부터, 역사의 기록이 전해 내려오며, 삼국시대인 673년 신라가 우수주를 설치하였다는 기록이후, 삭주 춘주 광해주 춘천을 이어져, 행정의 중심지로서의 기록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춘천의 진산인 봉의산은 그 연대가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은, 도성의 방어를 튼튼히 하였던, 봉의산성이 자리하고 있으며, 1217년의 거란족 침입과, 1253년의 몽골족 침략 등의, 외침에 항거한 춘천인 들의 혼이 서려있는, 항몽 유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근대들어 고종황제 즉위시대인 1890년, 국가의 안위를 도모하기위한, 이궁의 건립논의가 있었고, 이궁의 최적지로 춘천이 선택되어, 1890년부터 1893년까지 3년에 걸쳐, 춘천 유수부안에 춘천이궁이 건립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유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춘천의 역사적 위상은 돌이켜보기 민망 할 만큼 암울하기만 합니다.
혹자들은 춘천의 정체성이, 아직도 자리매김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역사적 정체성 이 확립되지 못한데서 생겨난, 자긍심 부족을 꼽기도 합니다.
지역의 자긍심을 높이고,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은, 지역발전은 물론 시민들에게 자부심과 가치 확립의 목표를 심어주는, 동기부여도 된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지역민 스스로 자긍심을 가지고, 역사성 확립을 통한 정체성의 제고를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역사적 기반을 소중히 하고, 유구한 역사의 가치를 지켜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청동기 시대의 혈거유지가 남아있고, 오랑캐의 침입으로부터 지역의 안위를 지켜내고자 피 흘린, 숭고한 희생정신이 녹아있는 봉의산은, 유구한 역사적 가치를 잃어버린 채 신음하고 있으며, 이 시대의 후손들은, 선조들의 흘린 피로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지켜온 사실조차 망각하며 살아갑니다.
구한말 격동기, 국가의 안위를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로 자리매김한, 애국충절의 고장, 춘천의 위상을 확립하는 일은, 진산인 봉의산의 역사적 가치조명과, 유적의 위상확립, 복원을 통한 후손들의 교육의 장 마련 등 을 통해 계량할 수 없는 자산들로 재탄생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춘천인 들의 혼이 살아 숨 쉬는, 봉의산의 애국충절의 흔적을 찾아 세우고, 춘천 이궁의 위상을 정립하는 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책무이며, 간과해서는 안될 의무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이에 춘천 역사문화 연구회는, 춘천 이궁의 정문 문루였던 조양루 와 내삼문이었던 위봉문이, 75년만에 제자리로 돌아오는 역사적 시기를 맞아, 유구한 춘천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춘천 이궁의 위상 정립과 장기적인 복원의 기초를 세우,는 시민,전문가를 망라한 대 토론회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1. 이 시대의 봉의산과 춘천 이궁의 평가
가. 항몽 유적으로서의 봉의산의 중심인 봉의산성이 정확한 건립시기조차 확인되지 않는 문제
를 지니고 있음.
나. 옛 성벽의 흔적이 많이 남은 구간에 대한 관리가 이루어지 않으므로, 나무들의 근경 비대
로 발생하는 자연적 훼손과, 등산객들로 인한 인 위적 훼손이 지속적으로 증가함.
다. 1993년 봉의산성 건물지 발굴 작업이, 총 10개소의 건물지 발굴 계획 중, 3개 건물지만 발
굴이 이루어지고 중단되어, 정확한 판단의 근거를 마련 하지 못한 숙제를 남김.
라. 혈거유지, 반석평 암각시, 신라고분등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가 없어 역사성의 확립이 이루어
지지 않으며 무지로 인한 훼손이 지속적으로 발생함.
마. 춘천의 진산인 봉의산의 핵심 요충지에 자리하였던, 강원신사의 흔적 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일제강점기에서 벋어난 해방의 의미가 퇴색함.
바. 국가의 변란시, 조정과 황제의 안위를 보장하여, 나라의 근간을 유지 하기 위한 원대한 비전
에서 탄생한 이궁의, 위상과 존재감이 나타나 지 못함.
2. 미래로의 도약을 위한 지역 역사의 재정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지역만이 발전동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역사 문화의 중요성
이, 어느 때 보다 높은, 시대적 특성과, 수도권 시대의 강원도 수부도시의 위상 강화.
가. 민선 자치 5기를 맞는 지방화 시대, 지역의 특성을 살린 역사문화의 도시로의 위상정립을
통한, 정체성 확립이 요구.
나. 서울 춘천 고속도로 개통, 경춘선 복선전철 개통을 계기로, 수도권 관 광수요가 급격히 늘어
나며, 지역의 발전 동력이 관광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새로운 관광자원 개발이 필요.
다. 역사의 도시로 자리매김한, 공주와 부여, 신라천년의 유적을 통해 수 학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한 경주의, 사례를 통한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
라. 산과 강이 어우러지는 천혜의 비경과, 새롭게 조성될 레고랜드, 미군 공여지를 이용한, 역사
에 기반한 도심 재개발에 맞추어, 춘천을 역사와 문화, 예술과 축제, 의 도시로 승화 수도권 제
1 의 역사문화 관광도시 로, 도약하는 계기 마련.
3. 제안의 취지
가. 봉의산의 역사적 위상 정립과 중단된 발굴, 재조사의 기초를 세움.
나. 춘천이궁의 역사적 정통성을 확립하는, 학술 연구, 사료 발굴을 통한 장기적 복원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함.
다. 유구한 역사와, 애국충절의 혼이 서린 후손들로서, 자긍심 고취를 통 한 정체성확립의 토대
를 마련함.
4. 운영방안
1) 조양루 이전 준공시기를 맞추어, 조양루, 위봉문 이전의 당위성 설파와, 장기적 이궁복원을
위한, 전문가 시민 대토론회 개최.
2) 토론의 주제는, 봉의산의 위상정립과, 춘천 이궁을 연계하는, 장기적 과제의 기초를 세우는
주제로 진행.
3) 지역의 언론사와, 춘천 역사문화 연구회,춘천 문화원, 강원도,춘천시 가 참여하는 민,언,관,학계
가 망라한 토론회로 추진.
5.사전 준비 사항
1) 자료집 준비, 기초 사료 발굴, 참가자 경비지급 등 비용마련 방안.
2) 토론회 전담 준비인력 배치문제.
3) 주제와 관련한 발제자 섭외 및 자료 준비
4) 강원도.춘천시등 행정의 지원체계 가능방안 조성.
6. 토론회 예시
1) 토론회 제목
“항몽 유적 봉의산 의 역사적 가치 조명과 춘천이궁의 위상복원 을 위 한 시민 대토론회”
대 제목을
“항목유적 봉의산성과 고종황제의 원대한 꿈
춘천이궁”
으로 하고 부제로
“항몽 유적 봉의산 의 역사적 가치 조명과 춘천이궁의 위상복원 을 위한 시민 대토론회”로 하
는 방안도 검토.
2).발제자(3~4인) : 춘천 역사문화 연구회 대표. 강원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중, 산성 전문인 류재
춘 교수. (전)한림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춘천 이궁 논문 저자인 오영섭 교수.
3).토론자(5~6인) : 강원도 관계자1인, 춘천시청 관계자1인,시민단체 대표자 1인 학계 대표자 1인,
지역 언론계 대표1인, 춘천문화원 또는 강원향토사 연구회대표 1인 (발제자는 당연 토론자로
참여)
4).사회 : 춘천 역사문화 연구회 와 지역 언론과 학계에서 선택.
7. 토론회 규모 및 예산.
1). 토론회 참여 관람자는 희망자를 사전 접수하여 진행하되 집중도를 감안 하여 100인 규모가
참여하는 중 규모 토론회로 개최.
2).소요 예산
첫댓글 이궁 건립시기는 "1890년부터 1893년까지 3년에 걸쳐"가 아니고 80년대 후반 2년여에 걸쳐 1890년 7월에 완공되었습니다. 제안의 전반적인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우리가 시민단체로서 취지와 당위성의 주장만으로 합당한 제안이 되는지는 좀 더 합의된 동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느낌엔 역량이 부족한데도 왜 이런 큰 주장을 하면서 부담감을 자초해야 하는지 등등에 대한 입장이 더 설득력을 얻어가는 방향으로 호소돼야 할 거 같구요. 서울에 가 있어 춘천을 떠난 오영섭 같은 기존 연구자가 비록 이궁 논문을 쓰긴 했으나, 문제의 비중상 강대 사학과에서 누군가가 주장을 대변하는 방향이 올바르게 여겨지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