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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직아악부의 마지막 후예···
이왕직아악부는 조선시대 예조 (현재 문화관광부)에 속해 나라음악을 관장하던 장악원의 후신으로, 1915년 일제 총독부에 의해 설립된 음악기관이었다. 이후 1946년 구황궁아악부로 명칭이 바뀔 때까지 30년간 존속했던 기관으로, 일제시대 아악의 보존과 후진양성을 통해 미약하나마 그 명맥을 유지케 한 것이다.
조선조 말, 고종 32년(1895)에 700여명에 이르던 장악원의 악원수가 갑오경장과 한일합방등 사회적인 대 변혁기를 거치는 동안, 1917년에는 겨우 57명만이 남게 되었다. 남은 악사들마져도 노령으로 수 백년의 전통을 이어온 아악은 존망의 위기에 처하게되고, 이에따라 아악의 보존과 육성을 목적으로 장악부 부설로 설립된 학교가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이다.
1919년 1회 아악생 9명 모집을 시작으로, 1921년 2회 18명,1926년 3회 18명, 1931년 4회 18명, 1936년 5회 18명, 1941년 5회 25명, 1945년 7회 25명을 5년 간격으로 공개모집하여 교육하였으나, 7기생은 해방과 더불어 재정난 등을 이유로 곧바로 해산되었고 더욱이 5기생이후 학생들은 대부분 음악을 버리고 전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후 1951년 국립국악원이 개원되고, 부서로 1955년도에 국악양성소가 문을 열고 1기생을 뽑을때까지 국악계는 약 20년이상의 공백기가 생기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모든 문화를 말살하려고 창씨개명까자 단행했던 조선총독부에 의해, 그것도 전액 관비로 아악생을 모집하고 교육시켜 오늘날 국악의 단절을 이만큼이나마 막았으니 천만다행이며, 지금에와서 돌이켜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직도 현역 못지않은 건강과 열정으로 활동하고 계신 몇 분 남지않은 재야의 이왕직아악부 출신 선생님들을 모시고 연주회를 갖게 되었으니, 우리는 참으로 행복하며 이 자리를 빌어 선생님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1999.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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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의 중, 고등학교 학창시절 - 가르치시던 선생님들을 모시고 마지막 연주회 -
일제시대 정악의 맥을 이시던 선생님들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