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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 가는 길
김재희
하늘이 맑다. 하늘은 맑은데 스산한 바람 때문인지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어머니의 마음조차 내 어수선함을 더욱 산란하게 한다. 명절이 가까워지자 자꾸만 먼저 간 아들들만 들먹인다. 다들 고향 찾아, 부모 찾아 모여드는데 너희는 어찌 소식이 없느냐고, 그런 어머니 마음을 다독여 들이고자 나들이를 나섰다. 오빠의 흔적을 찾아가기로 했다. 어머니도 알고 계시는 곳이기에 그곳에 가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까 싶었다. 용담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다만 물 수위가 한참이나 낮아져서 하얗게 드러난 부분이 꽤 넓게 그려져 있다. 왠지 삭막해 보인다. 아마도 마음 탓인 듯하다. 용담댐을 건설할 적, 오빠는 그곳에서 현장 소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TV 뉴스에 나오는 아들 모습을 보고 자랑스러워하셨던 부모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언제 어디서나 오로지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일을 처리하는 건설인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않은 사고로 그곳에서 떠나야 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결국 명예퇴직으로 직장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오빠가 그곳을 떠난 후에도 어머니와 나는 자주 그곳을 찾아다니며 오빠를 생각했었다. 그날도 그렇게 어머니에게 오빠의 흔적을 찾아드리고 싶었다. 이미 고인이 된 오빠의 흔적을 찾아 무얼 할까마는 그래도 저렇듯 자식 생각에 애간장이 타는 모습이 안타까워서였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는 어머니의 심정이 지금 어떨까 싶어서 섣불리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전혀 말씀이 없으시니 내가 괜한 짓을 했나 싶어 후회되기도 했다. 말은 그만 잊어버리라고 하면서 왜 나는 이렇듯 다시 생각하시게끔 일을 만들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한참을 마음 졸이며 운전을 하는 내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신다. 나는 멈칫했다. 이곳을 잊어버리셨나? 하기야 요즘 부쩍 기억력이 쇠퇴하시고 약간의 치매가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혼자 계시게 하기 어려운 상태이니 모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어머니의 기억력을 되찾게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용담댐이요,” “용담댐이 어디다냐?” “용담댐 모르겠어? 생각나는 사람 없어?” “누구?”
울컥했다. 역시 어머니의 기억력이 고장이 나셨구나. 이 길이 어떤 길인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까.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어도 이제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처럼 총명하고 기가 팔팔하시던 분이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일이건만 마음이 무겁다. 오빠 이야기를 해 볼까? 아니지 그럼 더욱 혼란스러워지실 테니 그냥 묻어 두기로 하자. 그것이 어머니를 위한 일일 것이다. 때론 뭔가를 잊는 것도 좋은 일이리라. 그 숱한 인생역정을 일일이 다 기억하고만 있다면 어찌 감당할 것인가. 산다는 것은 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살아온 삶이 힘들었다고 해도 그것들은 다 지나간 흔적에 불과한 것이라고, 그러니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이 삶의 정답이라고 말이다. 적당히 잊어야 할 것들은 잊어주는 것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어머니에게 이 길은 아들을 잊지 못하는 고통의 길이었지만 이제 서서히 그 고통의 길을 잊고 계시나 보다. 구불구불 돌아갈 때마다 넋두리 한 고랑씩 만들어 놓고 한숨으로 채워놓더니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계시지 않은가. 차라리 잘 된 일인 듯싶다. 용담호의 파란 물이 내려다보이는 정자에 앉아 스산한 마음을 달래며 넋을 놓고 있었나 보다.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며 1시가 되어간다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점심시간이 지났다.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깨우고 음식점을 향했다. 시래기가 담뿍 든 매운탕을 맛있게 드신다. 이상하게도 다른 때보다 더 식욕을 느끼시는 모양이다.
“맛있어요?” “응, 맛나다. 때가 넘어서 그런가 보다.” “많이 드세요.”
어머니의 그릇에 국을 덜어 드리는 내 손이 자꾸 헛손질이다. 그리고 주문을 외운다. 이제 그만 오빠를 잊어버리시라고, 이렇게 아무 생각하지 마시고 맛있게 잘 드시기나 하시라고. 그러면서 나는 왜 자꾸 목울대가 아픈 것일까. 하늘은 저리 맑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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