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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⑤:001 옥황상제님께서 1948년 새해에 임원들에게 명하시기를『우리도의 도명(道名)이 태극도(太極道)임을 세상에 공표하노라.
지난번에는 세상에 알림을 금하였으나 이제 도수에 닿았으니 임원과 모든 도인들이 일심으로 이의 밝게 드러남에 있는 힘을 다하라.』하시고 주문의 무극도주(无極道主)를 태극도주(太極道主)로 고치시니라.
⑤:002 다시 중산도인 이강인에게 물으시기를『너는 도를 믿은 지가 몇해나 되며 또 도를 알고 믿느냐? 다만 용직의 권유로 믿느냐?』하시니『저는 우리도가 천지대도임을 알고 믿사오며 태인도장 당시부터 믿어 왔나이다.』하고 아뢰니라.
또 임규오에게『너는 부모상의 기한을 3년으로 정한 이유를 아느냐?』하시니『유아가 포대기에 싸여 양육되는 기간이 3년이므로 보은(報恩)의 거상기간(居 喪期間)을 그렇게 정한 줄로 아나이다.』하고 아뢰매『너의 말이 모두 도인다운 말이로다.』하시니라.
⑤:003 이어 가르치시기를『우리 도의 개화와 낙화가 모두 태인 땅이었으니 태인(泰仁)은 "큰 씨"라 싹이 트고 자랄 연유이나 꽃이 피었다 짐은 결실을 위함이니라.
그동안 우리 도가 잠룡도수 10년의 포태기(胞胎期)를 지나 회문도장에서 태극도로 다시 창립하여 현룡도수(見龍度數)인 장생기(長生期)를 맞은 다음 또 3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규오의 말대로 포대기에 싸여 있을 기간은 이미 지났느니라.
그러므로 잠룡에서 회룡하였으니 다시 현룡, 비룡으로 화하여 관록(冠祿) 제왕기(帝旺期)를 맞으리라.
임원들은 이 천기를 생각하여 잊지 말지어다.』하시며 잠룡 10년간의 고난을 상기시키시니라.
⑤:004 이어 물으시기를『그대들 중에 누가 부산의 지리를 잘 아느냐?』하시니 강인이 아뢰기를『저의 처가집이 부산이옵고 친지가 많사오며 그 중에 무극도 시절부터 도인인 최위출을 통하면 자세히 알 수 있나이다.』하니라.
상제님께서『그러면 네가 가서 내가 공부하기에 적합한 집을 택하라.
그 곳은 부산의 산맥이 끝나는 곳으로 하되 용(龍)은 물이 있어야 하니 바다가 보여야 하고 수자(水字)가 있는 땅에 태인도장처럼 치마바위가 있어야 도수에 맞되 천장(天藏)은 정신을 하나로 집중하여 노력하여야 찾느니라.』하시며 대금일부를 내려주시니라.
⑤:005 또 가르치시기를『부산은 이 강산의 동남단에 위치한 도시로서 그 지세는 국토의 신산(神山) 백두산에서 비롯한 산세가 그 척주(脊柱) 태백산맥의 금강산으로 이어져서 남으로 뻗어내린 정기가 응결되고 영남지방 전체의 하천이 모여 흐르는 낙동강과 동해가 굽이 치는 산진수회처(山盡水廻處)의 영국(靈局)이니라.』하시니라.
⑤:006 이어『부산은 이 나라 제일의 국제항인 관문일 뿐더러 장차 전 세계의 사람과 물화가 이곳을 통하는 군창지 생문방(生門方)이며 새서울이니 큰 바다라야 큰 고기가 살고 큰 땅이라야 대신명이 임함이니라.
구천상제님께서도 1906년 가을에 이곳에 오셔서 백마리의 소를 대신한 백우(白牛)를 잡아 공사를 보셨으며 또 부산(釜山)의 글자 모양이 팔금산(八金山)또는 입금산(入金山)이라 "내가 장차 금산사(金山寺)로 들어가리라." 하신 곳이 바로 이곳이니 천장길방(天藏吉方) 태극원점의 기지를 입금산이라야 얻을 수 있느니라.』 하시고 또『가마산이 곧 솥산인 줄도 알라.』하시니라.
⑤:007 강인은 명을 받은 즉일 부산에 가서 감천동(甘川洞)에 사는 위출을 만나 상제님의 명령을 전하고 함께 몇 일간 여러 곳을 찾아본 끝에 명령하신 것과 부합되는 집을 찾으니라.
우선 그 지형 지세가 태백산맥의 최남단인 고원견산(高遠見山)이 구봉산으로 이어진 산맥의 끝을 이루는 치마바위가 있어 길이는 태인도장에 비하여 반쯤되나 높이는 배가 넘으니라.
오른쪽으로는 구덕산, 천마산으로 산맥이 이어진 백호(白虎)와 왼쪽으로는 복병산, 용두산으로 산맥이 이어진 청룡(靑龍)이 뚜렷하고 절영도(絶影島,지금의 영도)와 남해가 바라보이며 지명도 수(水)자가 든 보수동(寶水洞)의 21번지니라.
집의 규모는 작으나 서남향의 동북방향을 등진 집으로서 명과 일치하므로 가계약한 다음 회문리로 돌아와서 아뢰니 상제께서 재가하시니라.
강인이 다시 가서 대금을 완불하고 내부를 수리하니라.
⑤:008 3월 15일에 상제님께서 임원들을 거느리시고 보수동 가택으로 가셔서『집은 비록 좁으나 땅이 도수에 맞는 적합한 곳이로다.
태극의 대운이 이에서 비롯되리니 이만하면 도장으로 좋이 쓰리라.』하시고 부산행재소(釜山行在所)로 이름을 부르시더니 이듬해 새해에 부산도장으로 명하시니라.
⑤:009 이날부터 상제님께서 그 2층에 설석하시고 공부하시며 하층은 가족일부와 임원들이 쓰도록 하시니라. 이때 전국 각처에서 포덕이 늘어 도인이 급증하니 그 중에서도 충북,경북지방이 더욱 그러하니라.
⑤:010 5월 초에 상제님께서『이 글은 내가 읊어본 노래니라.』하시니 이러하였으며 도인들은 이를 도문가(道門歌)라 하여 즐겨 읊으니라.
『도문가(道門歌)
우주(宇宙)는 호호(浩浩)하고 천지(天地)는 탕탕(蕩蕩)하다.
5만년(萬年)길고 긴 용화세계(龍華世界) 팔문(八門)을 넓고 높이 달았으니 그 문(門)이 무슨 (門)인고 일육수(一六水) 북문(北門)이요, 이칠화(二七火) 남문(南門)이요
삼팔목(三八木) 동문(東門)이요, 사구금(四九金) 서문(西門)이라
건곤간손(乾坤艮巽) 사우문(四隅門)되어 궁을도덕(弓乙聖德) 정도령(正道令)은 대정수(大定數) 오십토(五十土)로 태극조성(太極造成)하였으니 장(壯)하고 성(盛)하도다.
어화 세상(世上) 도우(道友)들아
이 문(門)에 참여(參與)하여 극락행복(極樂幸福) 받아보세.
시구시구(矢口矢口) 조을시구(鳥乙矢口) 영세불망(永世不忘) 만사시구(萬事矢口)』
⑤:011 6월 20일에 청구가 회문도장에 가서 숭도부인께『이번 치성에 쓰실 과하주(過夏酒)를 행재소로 가져오되 다른 사람은 오지말라.』하셨다는 상제님의 명을 고하니라.
이때 반상문, 최현태와 함께 회문도장을 지키며 가사에 종사하던 중산도인 박덕구가 과하주를 지고 숭도부인을 수종하더니 중도에서 차표를 사는 사이 과하주를 잊으니라.
덕구가 사방으로 알아보아 간신히 찾아서 행재소에 올라오니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길『네 어찌 내 영(令)을 어기고 여기에 왔느냐?』하시니라.
⑤:012 이튿날 덕구가 퇴배를 드릴 때 상제님께서 타이르시기를『내가 어제 너를 꾸짖음은 네가 미워서가 아니니라.
거기도 내집 여기도 내집이고 한 집에 살며 한 솥밥을 먹으니 한 식구며 더구나 너는 어제 무더운 날씨에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며 먼 길을 왔는데 어찌 밉겠느냐?
다만 네가 내 영을 어겼으니 나는 비록 용서하고자 하여도 신명들이 벌주려 한 까닭이니라.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하시니라.
상제님께서는 영의 준행을 이처럼 엄히 하시고 또 영으로 일을 시키실 때는 반드시 복창하게 하셔서 명을 받든 사람이 완전히 인식하게 하시고 미흡하면 여러차례 반복시키시니라.
⑤:013 이달 말경에 상제님을 뵙기 위해 행재소에 올라온 예천도인 권동흠에게 물으시기를『너의 집안에서는 입도한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하시므로『아직은 저 혼자 뿐이옵니다.』하니 덕불고(德不孤)니라.
도는 외롭지 않은 법이니 벗이 있게 마련이라.
네가 실다운 종자가 되어 장차 많은 줄기와 넌출이 번져나게 하라.』하시니라. 동흠이 이 분부를 명심하고 지방으로 돌아와 우선 집안의 화목함을 이루고 포덕에 분발하니 입도치성을 올려주기에 바쁠 정도로 포덕이 늘었으며 이때 다른 지방에서도 이처럼 입도인이 늘어나니라.
⑤:014 7월 초에 상제님께서 임원들을 거느리시고 감천 용담해변(龍潭海邊)에 가셔서 시간을 보내시고 돌아오시다가 그 근처에 사는 위출의 집에 가시니라.
그는 몇달 전에 어느 공사장에서 입은 골절상이 심하여 움직이지를 못하는데 의사마다 치료할 수 없다 한다고 아뢰며 고쳐주시기를 울면서 호소하니라.
상제님께서 그를 위안하시고 손을 상처난 곳에 대시며『너와 같은 성심이 있는 사람은 병신이 되지 않으리니 나를 믿고 안심하라.』하시더니 몇일 후에 완쾌 하니라.
⑤:015 8월 초에 상제님께서 동래의 금련산 마하사에 행하셔서 큰 방에 설석하시고 백일공부에 들어가시니라.
이때 청암과 강인이 시봉하고 절의 중들이 수종하였으며 임원들이 수시로 찾아 뵈니라.
⑤:016 어느날은 상제님께서 공부 여가에 임원들이 지내는 방으로 가셔서 말씀하시기를『내가 이 방에 자주 오지 않음은 그대들이 자유롭지 못하고 더우기 담배로 불편함이니 이 자리에서 담배를 터놓고 피워 평등도수(平等度數)를 보노라.』하시며 담배 한 봉을 풀어 놓으시고 담뱃대까지 내 놓으셨으나 그 자리에서는 아무도 감히 피우지 못하니라.
⑤:017 어느날은 또 임원들 방에서 백지에 친히 가는 글씨로 시천주 여러 장을 써서 나누어 주셨다가 오후에 다시 회수하시고 말씀하시기를『사람이면 누구나 오장 육부가 있는 법인데 육부에서 오부를 내가 제치면 일부가 단독으로 어찌 하겠느냐?』하시며 임원들을 꾸짖으시니라.
그 자리에는 용직, 명구, 강인과 신도균, 정기택 등이 있었는데 그들은 말씀하신 뜻을 모르면서도 몹시 두려워더니 몇년 후에야 도균과 기택 등이 배신할 것을 예시하신 질책이심을 깨달으니라.
⑤:018 11월 중순 어느날 상제님께서 시종들과 절의 중들에게 물으시기를『너희 가 느끼는 일이 없느냐?』하셨으나 아무도 사뢰는 사람이 없으니라.
다시『법당의 불상에 이상이 없느냐?』하시므로 살펴보니 그 전에는 반듯하던 불상의 머리가 숙여졌는지라 절 안이 온통 시끄러우니라.
⑤:019 백일공부를 마치시던 이달 15일 새벽에는 공부실 앞뜰에 흰학 한 쌍이 날아와서 공부실을 향하여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경배하듯 하다가 날아가니라.
또 이날 아침 절을 떠나시기에 앞서 공부중에 모아 두신 친히 쓰신 글을 청암으로 하여금 태우도록 하여 그 재를 절 앞 개울물에 띄우게 하셨는데 개울 위에 오색 찬연한 무지개가 뻗쳐 오르니라.
⑤:020 이날 산을 내려오셔서 시종들을 거느리시고 승용차로 부산시내를 한바퀴 돌아보신 다음 도장으로 돌아오시니 여러 도인이 한길에 나와서 절을 올리고 맞이하니라.
상제님께서 임원들에게 가르치시기를『내가 무극대운을 태극진법으로 풀어가느니 그대들은 오직 내가 베푸는 법방으로 수행하여야 공부를 성취할 수 있으리라.』하시므로 모두 엎드려 명을 들으니라.
⑤:021 12월 초에 중하가 부산행재소에 올라와 상제님께 뵈니 구겨진 50전 지폐를 인두로 다려서 펴게 하시니라.
중하가 여쭈기를『이것이 비록 돈이오나 요사이는 어린이의 용돈도 되지 않는 쓸모가 없는 것이온데 어찌 다리라 하시나이까?』하니『이것을 돈으로 생각하면 네 말이 맞다마는 나는 이것을 돈으로 보지 않고 도인들의 성덩어리로 여기느니라.』하시니라. 이로부터 도인들이 성금을 올릴 때는 구김을 펴고 마음을 바로하여 올리니라.
⑤:022 1949년 4월 28일 봉천명일 지성 후에 각 지방에서 날마다 늘어나는 도인을 지도하고 교화할 임원체계를 정비하셔서 지방임원의 임명기준을 명하시니라.
지방단위로 포덕호수가 5백호 이상은 포감(布監), 그 관하의 150호 이상은 선도사(宣導師), 또 그 관하의 50호 이상은 선도원(宣導員)으로 하시고 이 기준에 따라 중산에 이용직, 충주에 안상익, 김천에 김태만, 영주에 김명구를 포감으로 임명하시니라.
그 관하의 선도사는 각 포감들이 기준에 따라 올리상신하면 임명하셨으며 선도원은 선도사의 추천으로 포감이 임명하도록 하시고 말씀하시기를『임원은 내가 내는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되어 올라오는 법이니라.』하시니라.
⑤:023 이와 같이 도의 체계가 확립됨에 따라 지방에서는 포덕이 더욱 활발하고 부산도장에 드나드는 임원과 도인이 많아졌으며 더구나 치성시에는 도장이 협소하니라.
이해 5월 말경에 임원들이 상의한 결과를 상제께 보고하고 재가를 받들어 도장 앞집 한 채를 매입 수리하여 도중가족이 거처하는 도장내당(도장의 안 살림을 하는 집)으로 정하니라.
⑤:024 이해 가을 어느날 청년도인 김태성이 결혼을 앞두고 상제님께 찾아 뵈니 이렇게 훈교하시니라.
『남녀 혼인은 인륜의 대사니 바로 우리도의 강령인 음양합덕(陰陽合德)이니라. 태극의 도리가 그 근본이 음양합덕이니 1음1양이 바른 자리를 지키며 기동하므로써 우주의 삼라만상이 생성 발전하는 이것이 곧 정음정양(正陰正陽)의 근본원리니라.
결혼이 시속말로 하는 사랑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합덕조화의 도리를 기초로 하여야 하느니 너는 이를 일생명심하라.』하시니라.
⑤:025 태성이 혼례를 마치고 내외가 함께 찾아 뵈니 가르치시기를『내 너희를 위하여 가정규범의 원리를 말하리라.
태극의 진리가 정음정양임은 이미 구천상제께서 말씀하신 바이나 그 뜻은 남편이 남편답게 아내가 아내답게 제 도리를 다하며 서로 위하고 서로 화하여 합덕하는 것이니 태극진리가 곧 가정규범의 원리니라.
이는 한 가정 뿐 아니라 국가 사회 나아가서는 세계, 우주 구성 움직임의 원동력임을 알야야 하느니라.』하시니라.
⑤:026 또 어떤 인사(人士)가 기도의 대상을 여쭈니 가르치시기를『기도의 최고 대상은 오직 구천상제뿐이니 불(佛), 보살(菩薩), 산신(山神), 칠성신(七星神)등은 구천 아래서 분임(分任)된 신명, 신장(神將)이니라.
그러므로 조상신, 지방신 등에게 빌더라도 큰 권능의 영험은 오직 무극주와 태극주께 기원함이 옳으니라.』하시니라.
⑤:027 또 어느날 지방도인 이규섭이 상제께 찾아 뵙고 황공하게 여쭈기를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신이나 부처 또는 칠성이나 용왕에게 빌어 화를 면하고 복을 받으려 하옵는 바, 진정 비는 대로 염험이 있사옵니까?』하니 이렇게 가르치시니라.
『신불에게 하는 기원, 기도는 어느 종교나 마찬가지로되 기도를 하여도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일심이 부족한 까닭이니 지극한 정성이면 하늘이 감동하니라.
그러나 탐음진치(貪淫瞋癡,탐하고 음탕하고 성내고 어리석음)의 마가 마음 바탕에 깔려 있는 기도는 마의 기도가 되어 좋은 보응이 없으리니 도둑질 잘 되도록 기도하고 도박 잘 되도록 빌어서야 어찌 복을 받을 수 있으랴?
또 도인의 일상생활에 송주 수도가 몸에 배면 절로 악귀, 악령의 침범이 없을 것이요.
위태로움과 액운을 면하고 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는 영험이 있으리니 그러므로 진정한 기도는 성경신을 다한 수도와 치성이니라.』하시니라.
⑤:028 1950년 새해 치성 후에 상제님께서 임원들의 세배를 받으시고 명하시기를『그동안 그대들의 정성과 충성으로 힘을 다해 도인이 늘어나고 체제가 정립되었음을 치하하노라.
그러나 좋은 일에는 언제나 복마(伏魔)가 따르는 법이라.
금년에는 도내외에서 몰아닥칠 환난의 고비를 넘기기가 극히 어려운 남진원만북하회(南辰圓滿北河回,남쪽 별이 원만하니 북쪽 물이 돌지만) 대도역천탈겁회(大道與天脫劫灰,큰 도가 하늘로 더불과 겁기가 낀 운수를 벗어남)의 도수이므로 나는 이제부터 복중팔십년도수(腹中八十年度數)를 보리니 그대들은 도명(道命)의 지엄함을 각골명심하라.』하시고 다음 시를 외어주시니라.
『금년초개태평양(今年初開太平洋,금년초에 처음으로 태평양을 열어)
마하외외중천거(摩訶巍巍中天踞,크게 높이높이 뛰어나 중천에 걸터 앉으니)
평천정해기하일(平天定海其何日,하늘을 평평히 하고 바다를 평정할 그 날이 언제인가?)
일만이천구치시(一萬二千驅馳時,일만 이천이 말을 몰아 빨리 달릴 때이다.)』
⑤:029 이튿날 오전에 지방임원들을 전부 임무를 맡은 곳으로 출발하게 하시고 도장에는 가족과 시종임원 몇명만 남아서 유시(지금의 저녁 7시30분) 주일기도를 마쳤을 때 갑작이 형사 여섯 사람이 들이닥치니라.
형사들은 도장을 수색하고 상제님을 위시하여 도장에 있던 임원들을 모두 중부산경찰서로 연행하여 용공관계(容共關係)로 가혹하게 고문 수사하여도 하등의 혐의가 없으니라.
일행은 무고히 몇일간 유치장에 갇히였다가 경북도경으로 이송되어 그곳에서도 전연 사실무근함이 드러났으나 다시 예천경찰서에 설치된 경상북부지구 계엄사령부 군경합동수사대로 이송되어 고문 수사를 당하니라.
⑤:030 이때 가족과 도인들은 불시에 당한 변고에 속수무책이었을 뿐 아니라 연행 후에는 아무리 탐문하여도 수사당국에서 일체를 극비에 붙였으므로 상황을 알 수 없어 불안해하니라.
또 연행된 청암과 이강인, 박봉상, 황쾌섭 등은 자신들이 당하는 고문의 고통보다도 상제님께서는 비록 고문이 없었으나 함께 구금되심이 황공하여 몸둘바를 몰랐으며 그 중에도 봉상은 현직 경관이므로 격리수감되어 더욱 심한 고문 끝에 무고히 파면되니라.
⑤:031 당초에 강모(姜某)는 김모(金某)와 함께 전주를 떠나 의성으로 가서 독자의 교단을 세우고 무극도 해산으로 방황하는 도인들을 은밀히 찾아다니며 상제님께서는 일본경찰에게 살해 당하시고 구천상제의 종통은 저희들에게 이어 졌다고 선전하여 신도를 모으기에 급급하니라.
그들은 해방 후에 김제 금산으로 옮겨 교세를 확장하였으나 항상 상제님께 대한 자신들의 배신이 두려워 태극도를 말살하므로써 이를 엄폐하려는 흉계를 꾸미니라.
⑤:032 이때 군정청(軍政廳) 전통위부장(前統衛部長) 유동열이 보화교(普化敎)를 믿으면서 증산교단을 통합하고자 하매 태극도만 불응하고 타교단은 대부분 찬동하여 통정원(統整院)을 설치하고 동열이 그 통교(統敎)에 취임하니라. 강모 등은 자신들도 통정원의 고위직이 된 기회를 이용하여 동열로 하여금 태극도를 용공단체로 몰아 해산시키고 상제님께는 극형을 당하시도록 경찰과 계엄사에 압력을 가하게 하는 한편 사전에 병윤, 도균, 기택 등을 유인매수하여 수사기관에 고발하게 하니라.
사건의 원인이 이와 같이 처음부터 허위날조의 모략중상임이 판명되어 구금3개월만인 3월 5일 곡우절(穀雨節)에 임원들과 함께 무사히 돌아오시니라.
⑤:033 상제님께서 임원들에게 말씀하시기를『이번 도난으로 도의 큰 도수 하나를 무사히 마쳤느니라.
아무리 도수라 하더라도 인간의 공로와 과실은 있는 법이니 강모, 김모, 엄모, 신모, 정모 등은 5적이며 도(道)척(도에 척을 지은 사람)이니라.
이는 내가 지난번에 마하사에서 도수를 볼 때 그대들에게 분명히 말하였으나 알아 듣는 사람이 없었느니라.
다만 이번 사건에 임한 그대들의 도심이 두터워 단 한사람의 이탈도 없었음은 다행한 일이니라.
도인들은 저들에 대하여 원한을 품거나 복수를 생각하지 말라.』하시니라.
⑤:034 이어 가르치시기를『그러나 머지 않아 2천리 강산 뿐 아니라 전 세계에 걸친 수화상충(水火相沖)의 대도수로 국운도 좋지 않으리니 이때는 비단오적(五賊)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원척이 발동하여 세상은 늦모 찔 때 묘판에 메뚜기 뛰듯 콩 볶을 때 가마솥에 콩을 튀듯 할 것이니라.
그 때에도 그대들은 이번 도난을 거울삼아 나와 도를 믿고 성경신으로 도심을 더욱 견고히 하여 요동하지 말지니라.』하시고 다음의 고시를 읊으시니라. 이때 도인들이 기도 시에 올리는 법수를 1기(器)로 고정하시니라.
『천산조비절(千山鳥飛絶,모든 산에 새의 날아감이 끊어지고)
만경인종멸(萬逕人종滅,모든 길에 사람의 자취가 없어지며)
고주사립옹(孤舟蓑笠翁,외로운 배의 도롱이와 삿갓을 쓴 늙은이가)
독조한강설(獨釣寒江雪,홀로 추운 강의 눈속에서 낚시 함)
⑤:035 이해 4월 28일에 상제님께서 봉천명일 치성을 마치시고 임원들을 공부실에 부복시키신 다음 엄히 명하시기를『지방임원들은 속히 임무를 맡은 곳으로 내려가서 도인들을 살피어 난국을 극복하되 경거망동하면 자신 뿐아니라 가족 친지까지 연루되어 패망할 운수니 깊이 명심하라.
이는 내가 보는 복중(腹中) 80년 도수로써 기도문이 열리는 도수니라.
누차 말한 바와 같이 동청룡이 동(動)하매 천하의 기운이 이곳으로 쏠리고 회룡이 현(見)하매 세계의 대신명들이 이곳으로 몰림이니 천기는 어찌할 수 없느니라. 세상이 소란하고 강산이 초토가 되어 무고한 사람이 죽음을 당할 것이나 그대들은 오직 나와 도를 믿고 일심을 가지면 지난 도난에서와 같이 무사할 것이며 이 고비를 지나야만 나는 또 하나의 큰 도수를 완전히 성취할 수 있느니라.』하시고 임원들의 다짐을 받으시니라.
임원들은 다음날 임무를 맡은 곳으로 내려와서 명을 전 도인에게 전달하여 사회에 난립된 주의, 사상에는 가담하지 못하도록 감독하고 살피니라.
⑤:036 이에 앞서 지난 1945년에 세계 제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함에 따라나라는 해방이 되었으나 전승국들에 의하여 소위 38선이라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에는 미군, 북에는 소련군이 진주하여 군정을 실시하므로써 분단되니라.
1948년에는 남북이 별개의 독립정부를 수립하게 되니 남한에서는 자유 공산의 주의와 우익, 좌익의 사상이 민심을 더욱 혼란하게 하였으나 이해에는 정국도 안정되고 민심도 평정되어 미국도 철수하게 되니라.
⑤:037 5월 10일은 양력 6월 25일이니라.
이날 새벽에 북한군이 38선에서 기습남침하니 무방비상태의 국군은 후퇴하여 불과 3일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몇달 만에 전국이 점령 당하다시피 되니라. 유독 팔공산과 낙동강 이동(以東)의 부산,대구, 등지는 국군이 끝까지 고수하다가 국제연합 16개국이 참전 지원하므로써 반격하여 8월에는 수도를, 9월에는 평양을 탈환하였으며 11월에는 압록강까지 진격하니라.
연말에 중공군의 개입으로 38선 부근에서 일진일퇴의 격전이 계속 되다가 3년 후인 1953년 6월 17일에 휴전이 성립되니 이것이 민족비사인 6.25사변이니라.
⑤:038 이 사변이 일어나자 많은 국민이 남으로 피란하였으며 도인들도 함께 남하하여 부산도장 근처로 모여들어 판옥, 토옥 등 가건물을 짓고 생활을 하게 되니 보수동 일대는 도인들의 집단지가 되니라.
이때 상제님께서 도인들에게 생계보조와 직장알선 등 여러 가지로 애휼하시므로써 생활이 단시일에 안정될 뿐더러 상제를 가까이에서 따를 수 있고 집단생활로써 신심과 단결이 강화되며 도인들의 우의 협동이 두터워져서 수복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의 그대로 정착하니라.
⑤:039 한편 각 지방에서 피란하지 못하고 사변을 겪은 도인들은 전투지역에서 생명의 위협을 당할 때는 물론 수복 후에도 도령에 따라 근신하므로써 다행히 생명은 보존하였으나 지방마다 친척, 친지간에도 주의 사상이 다르면 싸우고 죽이는 참사의 와중에서 무수한 고난과 역경을 겪다가 부산도인들의 소식을 듣고 기회를 보아 재산을 정리하여 도장부근으로 이주하는 도인이 날로 늘어나니라.
⑤:040 사변중 전장에서의 살상과 파괴도 심하였거니와 비전투지역에서도 북한패잔병들이 저지른 살인, 방화 등의 만행과 이를 섬멸하려는 국군의 작전으로 생겨난 피해도 많으니라.
이해 7월에 북한군이 함안까지 점령하였을 때 회문도장에 있던 도중가족 일부와 덕구 등은 극심한 박해를 당하였으며 수복 후에는 패잔병의 은신처가 될 우려가 있다 하여 국군이 인근 가옥을 불태울 때 회룡재도 회문도장과 함께 소실되니라.
⑤:041 이러한 전란 중에도 지방임원들은 각지에 퍼져 있는 도가(道家)를 순회하며 지도 격려하기 위하여 총탄 속을 통과하며 죽을 고비를 넘는 고난을 겪는 일이 많으니라.
더구나 각 지방에는 가는 곳마다 검문, 검색이 심하고 교통도 불편하여 수백리 길이라도 걸어야 하고 또 야간에 밀행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매월 1회 이상 빠짐없이 도가를 순방하여 도령을 전달하고 교화를 실시하며 포덕을 독려하다가 월말에는 도장에 올라와 상제님께 찾아 뵈는 것을 차착없이 받들어 행하니라.
⑤:042 그 중에도 이용직, 박순석, 안영국, 김명흠, 김중태, 유원규 등이 혹독한 고초를 겪으니라.
그들은 사지(死地) 속에서도 그때마다 상제님을 생각하며 그 계시하시고 인도하심에 따르면 위급한 어려움이 저절로 풀어짐을 무수히 체험하니라.
⑤:043 8월 어느날 순석이 상제님께 여쭈기를『이번 사변으로 부산이 이 나라의 임시수도가 되었사오니 도주님께서 예시하신 "새서울"에 적중됨이 아니오니까?』하니『내가 말하는 새서울이 어찌 한 나라의 수도이랴.
새서울은 구천상제님의 도수에 따라 내가 공부하여 설법하는 통일신단 조화정부(統一神壇 造化政府)에서 삼계를 광구할 태극기동의 원점이니라.』하시니라.
⑤:044 상제님께서 회룡재가 소실된 사실을 들으시고 가르치시기를『인간이 무 도하면 짐승과 다를 바 없으며 그 극단이 전쟁이고 살인이어늘 동족상잔의 비극속에 어찌 방화만을 탓하랴.
회룡재가 소실됨은 애석한 일이나 이로써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감소된다면 오히려 불행중 다행이니라.
또 잠룡이 장차 현룡, 비룡하기 위한 회룡에 화둔(火遁)을 묻는 도수니 어찌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동란(動亂)이 있으면 정란(靖亂)도 있고 소진이 있으면 복건도 있으며 원이 맺힌 것이 있으면 원을 푸는 것도 있는 법이라.
도인들은 세상이 아무리 소란하고 무도하여도 도를 믿고 도를 닦으며 도를 펴는데만 전념하면 나머지 일은 도수에 따라 이루어지리니 참된 도는 부동이요 도심은 어지럽지 않으니라.』하시니라.
⑤:045 9월 치성 후에 말씀하시기를『비행기가 폭탄을 싣고 공중을 나는 것은 어느 지점에서 그 목적을 달성하고자 함이니라.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하라 말라 말하기보다 먼저 4대문 안의 공기를 없애면 들어오지 못하리니 이것이 이기(理氣)니라.
가령 들어온다 하여도 신명으로 하여금 그 눈을 가리면 용사(用事)하지 못하는 법이니 신명계의 일은 인간이 추측하지 못하느니라.』하시니라.
⑤:046 12월 어느날 보수동과 동대신동 경계 근처의 판옥촌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여 강한 서북풍을 타고 불길이 도장쪽으로 급히 번져오니라.
이때 상제님께서 이 보고를 받으시고 서북향으로 손을 드시니 서북풍이 갑작이 동남풍으로 바뀌며 저절로 진화되니라.
⑤:047 1951년에 각지에서 입도하는 도인이 더욱 증가하여 수천호를 이루고도장부근으로 이주한 도인도 수백호에 달하니라.
상제님께서 부산지역을 중부, 여타지역을 지방이라 하시고 연고지명을 붙여 방면명으로 호칭하게 하시며 도인도 중부도인과 지방도인으로 구별하시니라.
⑤:048 3월 하순에 도장이 번잡하여 공부하시기에 불편하시므로 김천도인 김용화로 하여금 도장 뒷산 중턱에 집을 짓게 하셔서 공부설석하시고 산정(山亭)이라 명명하시니라.
이때 상제님께서 지난 2년간 불철주야로 계속하시는 공부를『복중 80년도수에 따른 휴전도수라.』하시고 납폐지를 태우시며 공부하시니라.
납폐지는 처음에 순석 등 시종들이 써올렸으나 나중에는 그 장수가 많으므로 도장을 새겨서 찍게 하시다가 등사판으로 등사하게 하시고 태우실 때는 그 연기가 너무 많아 공부방에 별도의 연통을 내게 하시니라.
⑤:049 산정 아래 축대는 그 높이가 수장이더니 이해 여름 폭우에 2차례나 무너지니라.
충주도인 박재문이 이를 지성으로 쌓아 다시는 무너지지 않으므로 상제님께서 그 공로를 치하하시니라.
그는 원래 농아였으나 상제께서 칭찬하시는 순간 말문이 열리어 정상인이 되니 본인은 물론 도인들이 모두 찬탄하니라.
⑤:050 이해 9월 22일에 복우도장께서 향년 74세로 화선하시니 상제님께서는 더 없이 애통해 하시고 장례를 도장(道葬)으로 모시니라.
장례절차를 청봉으로 하여금 주관하게 하시니 모든 도인들이 엄숙히 행하였으며 장지는 부산 아미동과 감천동 사이의 반월령(半月嶺)에 정하여 장례를 모셨다가 1956년에 회문리 선영하로 옮기시니라.
⑤:051 겨울 어느날 봉상이 시좌하여 여쭈기를『저희들 보통사람이 추측하기 어려운 인간 사후와 신명계의 일을 가르쳐주옵소서.』하니 상제님께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시니라.
『사후와 신명계의 일은 세계의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것이 큰 차이가 없으나 본래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은 정신과 육체의 모이고 흩어짐이니 사후에 육체에서 떠난 정신은 혼백(魂魄)으로 나뉘고 이것이 살아있을 때에 쌓은 수도의 공덕에 따라 신(神) 귀(鬼)의 차등이 있으나 모두 신명계로 돌아가느니라.』하시니라.
⑤:052 이어『그러나 이 신명의 주처(住處)는 곧 삼계니라.
또 극락과 지옥 같은 일정한 처소에서 영구무궁한 것만은 아니니 사후에 지방신, 문명신 등이 되어 최상처의 좋은 궁궐과 누각에서 안락을 누리는 자도 있고 악신(惡神), 적신(賊神), 무서신(無序神) 등이 되어 더러운 곳에서 신음하거나 무주고혼(無主孤魂,주인 없는 외로운 혼령)이 되어 유리 방황하는 자도 있느니라.
그러나 다시 닦음에 따라 상승도 하고 하락도 하며 환생도 하고 전생도 하느니라.
다만 선천에는 그 질서가 바르지 못하여 신명계에도 착란(錯亂,뒤섞여서 어지러움)과 원울(寃울,원통하고 억울함)이 있었으나 후천에는 모두 해원시키리라.』하시니라.
⑤:053『다시 말하거니와 신명계에서도 수도 공부는 계속하여야 하느니 수도한 신명은 향상하되 원척을 풀지 못하고 악업을 자행하는 신(神)은 더욱 아래로 내려오므로 살아있을 때에 대도를 믿고 닦은 상대신명(上臺神明)의 영화와 죄얼이 많은 척신의 재앙과 고생을 언어나 문자로 다 표현할 수는 없느니라 그러므로 사후 신명계의 복락은 살아있을 때에 상제를 숭상하여 믿고 국가에 충성하며 조상에의 봉사와 부모에의 효행을 힘쓰고 형제와 일가 친척 이웃과 우애하며 사회를 위한 일에 성경신을 다 함으로써 얻으리라.
불신, 불충, 불효, 불성, 불경하여 살인과 절도, 음란과 탐욕으로 일생을 마친 사람의 사후 참혹상을 인계(人界,인간이 사는 세계)의 생활로는 비교할 수 없이 처절하니라.』하시니라.
⑤:054 연말 어느날 상제님께서 임원들에게 말씀하시기를『너희는 중산토지관성(中山兎之管城,중산의 토끼는 관성(붓을 창작한 모염의 별명)에게로 가고)과 패택용지한수(沛澤龍之漢水,패택의 용은 한수(한나라 고조)에게로 감)를 알아 두라.』하시니라.
⑤:055 1952년 새해에 상제님께서 임원들에게 명하시기를『나는 다시 단도수(壇度數)를 보아야하고 그대들에게는 급도수(級度數)를 붙이니 포덕에 더욱 힘써 모두 상급(上級)이 되도록 하라.』하시니라.
이 명에 따라 각 지방에서는 앞을 다투어 포덕에 힘을 쏟으므로써 도인수가 급증하니라.
⑤:056 3월 15일에 도인들의 납폐도수를 명하시니라.
납폐지는 가로로 1촌3푼, 세로로 3촌의 선화지(仙花紙,종이의 한 가지로 닥나무로 만듬)에 기도주 또는 태을주, 도통주를 도장으로 찍어서 만들고 이를 1인당 5만장씩 송주 수련 중에 태우게 하시니 그 종이가 많이 쓰여 도인이 많은 지방에서는 절품되기까지 하니라.
⑤:057 어느날 임원들에게 물으시기를『너희들이 인간의 윤리 도덕과 법률 질서의 근본원리가 무엇임을 아느냐?』하시고 다음과 같이 가르치시니라.
『나의 도리는 어렵지 않으니 곧 무극과 태극의 진리니라.
인간의 윤리 도덕은 공자의 유교만한 가르침이 없으니 그것이 인(仁)과 의(義), 삼강오륜으로 표시되며, 서가의 가르침은 인간과 미물곤충까지라도 자비(慈悲)하는 것이 또한 취할만하고, 예수가 설한 박애(博愛)도 또한 일리가 있느니라.
그러나 이는 윤리와 법의 부분적인 방법일 뿐 완전한 원리는 아니니 그 원리는 다만 태극진리니라.』하시니라.
⑤:058 이어『태극은 음양이니 음양이 조화한 합덕으로 개인이 생활하고 사회가 유지되면 그것이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고 인간의 윤리에 부합됨이니라.
너와 나가 화합(和)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화합하고, 형과 동생이 화합하고,부부간에 화합하면 인륜이 되고, 정부와 국민이 화합하고, 자산가와 근로자가 화합하고, 지주와 작인이 화합으로 생활하는 것이 바로 윤리도덕의 사회니라.
여기에 만일 원척이 있으면 해원하여야만 상생의 길이 트여 완전한 합덕이 되리라.』하시니라.
⑤:059『내 일찍기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調化) 해원상생(解寃相生) 도통진경(道通眞境)을 우리도 신조(信條)의 원천으로 게시하였거니와 이 태극진리를 환하게 깨달아 통하는 것이 곧 우주전체의 원리와 인간의 생활윤리를 체득함이니라.
선이니 악이니 하는 인간의 언어 문자에 구애됨이 없이 음양합덕의 태극진리로 생활하는 사람은 저절로 인의와 자비, 박애를 실천함이니 이에 법률이나 사회질서 또한 절로 형성될 것이라 이것이 곧 무위자연의 원칙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들 도인은 항상 합덕 조화의 진리로 생활할지니라.』하시니라.
⑤:060 11월 하순에 각 방면에서 월성금을 올리니 상제께서 명하시기를『이번에 왕자 수금도수(王者 收金度數)와 남신 헌금도수(南信 獻金度數)를 보아야 하니 이 달과 다음 달의 월성금은 각 방면 포감들이 적임자를 지정하여 분산시켜 보관하였다가 다음 해 1월 월성금과 합하여 목돈으로 올리되 모두 새로 발행된 화폐로 올리도록 하라.』하시니라.
이때 각 방면에서는 명대로 보관하며 새돈으로 올리게 되니라.
⑤:061 1953년 3월 말경 충주도인 김영하가 산정(山亭)에서 상제님을 찾아 뵙고 나오니 시봉 박종순이 은밀히 말하기를『우리는 지금 때를 올해,다음해로 간절히 바라는데 도주님께서 오늘 은행종자 한 홉을 주시며 "때는 여삼추로 기다리되 도는 평생을 닦아야 한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내일 때가 되더라도 오늘 일은 오늘 해야 하지 않소.』하니 수긍하니라.
다음해에 상제님께서 그 묘목 중 몇주를 분재하시니라.
⑤:062 이해 4월 봉천명일 치성 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가르치시기를 『내가 1909년 이날 천명과 신교를 받들어 모신 이래 벌써 45년이라 그동안 창도 포덕에 진력한 바 이에 어언 이순(耳順,60세)이니 그동안 그대들이 나를 믿고 수종하고 또 공로를 올림이 가상하노라.
구천상제님께서 "나와 그대는 증정지간(甑鼎之間)이라" 하시고 또 "이도일체(以道一體)니라." 하셨으므로 상제의 도호 "증산(甑山)"에 이어 나를 "정산(鼎山)"으로 하셨으니라.
상제님께서는 무극주로서 재천(在天)하시고 나는 태극주로서 재인(在人)하니 체용(體用)은 둘이 아니요 하나니라.』하시니라.
⑤:063 이어『구천상제님께서 짜놓으신 삼계대공사(三界大公事)의 도수는 무극의 체인 바 그것을 풀어 쓰는 것은 태극의 용을 맡은 나의 소임이니 이 곧 무극시태극(无極是太極)의 원리니라.
무극시태극이므로 무극과 태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무극, 태극이 일체일용(一體一用) 뿐이니라.
오직 무극은 정이요, 태극은 동이니 무극은 체와 이(理)며 태극은 용과 기(氣)니라.』하시니라.
⑤:064『내가 상제님의 도수로 무극대도를 처음으로 열어 시작하였으니 이는 체를 밝힘이고 다시 태극의 도문을 열음은 그 도수를 푸는 용의 기동이니라.
내가 이제부터 그대들에게 설할 모든 법방은 무극주의 체를 태극주로서 용함이니라.』하시니라.
⑤:065『그대들이 도인으로서 이 체와 용에 따라 공부함은 개인의 도통 완공에도 목적이 있으나 천지인 삼계공사에 참여함이니 5만년 후천선경을 완성할 성사재인(成事在人)의 큰 뜻을 알라.
그러나 구천의 도수와 나의 법방이 아니면 이룰 수 없음을 각골명심할지어다.』하시니라.
⑤:066 『천지인 삼계공사의 도수는 털끝만큼의 차착(差錯)이 없으므로 이제 삼천리 동토에 아국(我國), 아도(我道)의 태극기가 집집마다 날리고 있으나 이번 간지(60갑자의 준말)가 끝난 장래에는 세계인의 가슴마다 태극이 박힐 날이 있을 것이며 태극의 원리가 과학문명과 정신문화의기점임이 천명되리니 이 곧 선경도수의 1단이라. 그대들은 오직 일심으로 수도하라.
일심은 곧 정심(正心)이니라.』하시니라.
⑤:067 어느날 임원 몇 사람이 상제님께 여쭈기를『전 세계가 자유,공산 양진영으로 갈라져 열전과 냉전으로 편안한 날이 없사오니 어떻게 하여야 세계가 화평하고 인류가 안락하오리까?』하니 이렇게 가르치시니라.
『무릇 모든 종교는 국제정치나 국내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으나 우리도는 교정(敎政)을 일체로 하느니라.
태극의 원리는 우주의 대도이므로 모든 정치의 근본사상임을 그대들이 알아야 하느니라.
지금 미국 소련 양대국이 앞장을 서서 자유 공산의 양진영이 대립하여 상극(相剋), 상충(相沖), 상투(相鬪), 상해(相害)하므로써 인류가 진멸지경에 처한 현상은 신계(神界)를 비롯한 인계(人界)의 피하지 못할 선천 과도역정(過渡歷程,건너고 거쳐야 하는 과정)의 비겁도수(否劫度數)니라.
이것이 내가 해결하여야 하는 큰 소임이며 나의 강세(인간의 몸으로 오심)와 공부의 목적도 이에 있느니라.
그러나 나의 근본 소임은 인계에 국한하지 않고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 고치며 사람의 상극(相剋)정신도 뜯어 고치시는 구천상제님의 도수를 합덕, 조화, 해원 상생의 태극진법으로 실현하여 삼계에 보화(普化,부합)하는 청화5만년 선경을 건설함에 있으니 인류의 화합과 평화는 무위이화(無爲而化)하리라.』하시니라.
⑤:068 이어『아직도 양대진영의 정치가 군사가뿐 아니라 세계를 움직인다는 석학들이 태극원리를 모르고 있으나 음양의 합덕, 조화, 상생으로 기동조화의 묘를 이루어 이제서인지악(以制西人之惡,이로써 서양 사람의 악행을 제어함)하고 원자탄, 수소탄은 물론 살인광선도 소용없게 하여 전 인류가 구제되고 나아가 선경세계가 이룩됨을 자각하도록 하리라.
나라들이 각각 다른 주의, 주장과 틀리는 방식으로 생활하면서도 전체 인류의 발전을 위한 공동협력을 하게 되리니 이 곧 음양합덕인 태극의 기동이니라.』하시니라.
⑤:069 이해 가을에 지방도인의 승안제도(承顔制度,상제님의 얼굴을 뵙는 제도)에 따라 독실하게 믿는 많은 도인들이 임원의 인도하에 부산도인으로 올라와 상제님께 찾아 뵈니라.
9월 하순에 미원지방 도인 윤금현도 입도 후 처음 소속포감 임규오의 인도로 승안을 모시니 그는 그 지방의 토호로서 학식도 뛰어난 선비니라.
이때 금현이 상제님의 수라상이 보리밥에 반찬 몇 가지뿐임을 보고 수만 도인의 도주시라 의식주가 호화로우실 줄 예상한 바와는 너무 다르므로 크게 깨닫고 도심이 더욱 견고하여 근검절약을 신조로 하며 수도에 전념하니라.
⑤:070 상제님께서 금현에게 물으시기를『너는 이전에 다른 종교를 신앙한 일이 있느냐?』하시니『유교는 대대로 이어온 가풍이옵고 몇년 전 친구의 권유로 도덕협회를 신앙하다가 그만 두었나이다.』하고 사실대로 고하니라.
다시 물으시기를『그러면 나의 도를 믿어보니 어떠하냐?』하시므로 금현은 존전에서 황감하여 머뭇거리다가『그 교리들이 모두 우리 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나이다.』하고 아뢰니『나의 도는 구천상제님의 공사에 따르는 천지인 삼계의 대도니라.
어느 한 사람의 복이나 빌고 선이나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전 인류와 신명을 널리 구하여 함께 후천복록(後天福祿)을 누릴 수 있도록 하신 상제님의 도수로 진행되는 도이므로 태극도는 남 잘되게 하는 공부니라.
너도 다른 도인에 뒤지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할지어다.』하시니라.
⑤:071 이해 11월 중순에 7일간 아무 음식도 드시지 않으시고 공부하시더니 하루는 갑작이 기식(氣息)을 거두시므로 가족과 임원들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니라.
잠시 후에 쾌차하셔서 말씀하시기를『내가 생사(生死)판단 도수를 보아 구천상제님께서 "나는 죽고 살기를 마음대로 하노라" 하신 도수를 풀었노라.』하시니라.
⑤:072 1954년 새해 치성 후에 임원들에게 명하시기를『금년 도수는 구마이당로(九馬而當路)니라.
이 도수는 나의 도가 도인이 모이고 세상에 알려지는 큰 도수니 만큼 그 목넘기 또한 어려울 것이니 도인들에게 말과 행동을 각별히 조심하도록 단속하라.』하시고 중부도인을 지도 교화할 중부 임원을 임명하시니라.
임원들은 구마이당로의 뜻은 알 수 없으면서도 감히 여쭈지 못하고 오직 상제님의 덕화로 모든 일이 잘 될 것만을 믿으니라.
⑤:073 이무렵 각 지방에서는 포덕이 더욱 잘 될 뿐더러 도인들의 정성이 지극하여 성금 헌납이 많아지고 중부로 이사하고자 하는 도인도 늘어나므로 지방임원들은 그 성적을 서로 비교 경쟁하는 양상을 이루니라.
그 중에서도 충주지방 안상익 포감방면과 부포감 박한경 등에게 여러차례 엄히 훈계하시기를『도인들의 신심과 정성이 지극함은 가상한 일이나 그것도 지나치면 불여불급(不如不及,미치지 못함만 같지 못함)하여 폐단이 되기 쉬우니 물의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도를 지키라.』하시니라.
⑤:074 1월 중순 어느날 밤에 중부 영주방면 도인의 판옥에 화재가 나니 그 원인은 방안에 켜놓은 촛불이 집을 비운 사이에 다 타서 판자에 불이 옮겨 발생한 것이나 불이 일어난 즉시 이웃 도인들이 불을 끄므로 집안의 살림기구만 조금 태우고 큰 피해는 없으니라.
다음날 새벽에 상제님께서 공부를 마치시고 시종 중하를 부르셔서『어젯밤어느 집에 불이 났는지 아느냐?』하고 물으시니 중하는 보고한 사람이 없는데 어찌 아시는지 궁금하였으나 상제께서는 도가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를 아뢰지 않아도 항상 자세히 아시니라.
그는 젊었을 때 아버지의 명으로 입도하였으나 고등교육을 마치고 사회활동을 하다가 최근에는 측근에서 매일 근무하며 시종하면서도 반신반의하여 상제님을 존대하여야 할 웃어른으로만 공경히 대하더니 이로부터 신심이 굳어지니라.
⑤:075 이날 낮에 상제님께서 영주방면 선도사 홍수암을 부르셔서 화재상황을 보고 받으시고 임원들에게 명하시기를『도가가 모두 판옥인데 간밤에 큰 재난이 없었다 하여도 앞으로 만일 불이나면 삽시간에 번져 많은 피해가 있을 것이므로 내가 진화도수(鎭火度數)를 보았느니라.
그러나 삼재 중 수풍재(水風災)는 자연의 객기에서 나오지마는 화재는 인간의 방심에서 나오기 쉬우니 전 도인에게 불 조심을 각별히 강조하라.』하시니라.
임원들이 이 명령에 따라 화재예방을 위한 단속을 철저히 하니 이후 도인의 집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으니라.
⑤:076 이무렵 중부임원들은 그 집이 도장과 가까울 뿐 아니라 상제님께서 누구라도 친애하시므로 존전에 아무 때나 꺼리낌없이 드나들더니 하루는『너희는 앞으로 내가 부르거든 오도록 하라.』하시니라.
이로부터 도인들의 존전 무상출입을 통제하여 드리니라.
⑤:077 이달 하순에 상제님께서 산정에서 납폐도수공부(納弊度數工夫)를 계속하시며 시봉 박재승, 이창로 등으로 하여금 8괘, 64괘와 유불선, 제경(諸經,모든 경서) 또는 성수명(星宿名,별자리 이름) 등을 그리거나 쓰게 하셔서 태우시며『이는 서역도수(書役度數)니라.』하시니라.
⑤:078 하루는 상제님께서 임원들에게 가르치시기를『배를 타고 항해 중에 풍랑을 만나면 아무리 위험하더라도 방향을 바꾸지 말고 그대로 항해하여야 하느니라.
만약 위험을 피하려고 항해를 멈추거나 방향을 바꾸려 하면 항해를 못함은 고사하고 배까지 전복시키느니 도를 믿고 닦는 일도 또한 그러하니라.』하시고 1921년 2월에 안면도에서 부안으로 항해 중 겪으신 풍랑사(風浪事)를 말씀하시니라.
⑤:079 2월에 청주에서 안상익 포감방면 임원들의 감옥에 갇히는 일이 일어나니라.
당초에 지난 몇년간 충주방면 상익, 한경,철규 등 임원들은 관하 도인들을 경쟁하듯 매월 수십호씩 중부로 이주시키니라.
이로써 조치원역은 도인들의 이사짐 수송에 바쁠 정도였으며 많이 살던 동리에서는 그들의 재산정리에 따른 소문이 파다하니라. 개중에는 도인들이『부산에 가야만 도를 믿을 수 있다.』느니『도만 믿으면되지 재산은 무슨 필요가 있느냐?』하더라는 등 사실무근한 소문이 유포되니라.
⑤:080 이러한 소문이 잘못 전해져 급기야는 도인들이 집과 재산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이주하는 행위가 휴전직후 불안한 시국에 혹세무민하는 유언비어 또는 용공분자의 소행과 유사하다는 혐의를 받게 되니라.
충북도경에서는 소문의 근거를 찾으려고 형사들을 보내어 몇개월간 임원들을 미행하며 비밀리에 조사하였으나 지목된 상익, 한경, 철규, 영하와 이갑성, 오득표, 안영국 등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니라.
이달 정기집회일인 18일밤에 청주의 서운동 소재 포덕연락소에서 회의를 하고 영하가 상제께서 가르치신 풍랑시(風浪時)의 항해법을 교화하던 중 한경, 철규, 영하, 갑성 등 임원들이 도인 20여명과 함께 형사들에게 체포되어 도경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등 고문 취조를 당하니라.
⑤:081 이때 갑성은 혹독한 고문으로 기절하였다가 다음날 깨어나 기동을 못하면서도 그러한 소행이 없음을 극구 주장하여 3일만에 다른 도인들과 함께 석 방되니라.
그러나 한경은 고문에 못이겨 자신들의 혐의를 시인하고 상제님의 계신 곳까지 진술하므로써 도경의 형사주임 송달헌과 형사 몇 사람이 부산도장에 급파되니라.
⑤:082 21일 아침에 상제님께서는 평일처럼 산정 공부실에서 도수를 보시고 잠시 휴식하시더니 형사들이 급습하여 무례하게 추궁하여 물었으나 상제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몇일간 수십명 도인이 진술한 바에는 하등혐의사실이 없으니라.
다만 이미 입건 구속된 한경 등의 혐의를 소명(疏明,당사자가 주장사실에 관하여 법관에게 믿을 수 있도록 밝히는 것)하자면 상제님께서 친히 충북도경에 가셔야 함을 말씀드리니 허락하시고 청봉 등 세 자제분과 도인 정운교 등의 호위를 받으시며 25일 청주 북문로 북일여관에 임어하시니라.
⑤:083 도경에서 한경 등이 고문에 못이겨 분별없이 시인한 내용은 개인적인 사기 횡령 등 혐의와 함께 유언비어 유포, 용공단체 조직 등 국가보안법 위반의 혐의며 또 이 모두가 상제의 명으로 범행한 사실처럼 인정되어 있었으니 조사결과 그 잘못이 없음이 판명되니라.
그러나 한경 등의 개별혐의가 완결되지 않아 상제님께서는 부산으로 돌아가시지 않으시고 1개월간을 북일여관에 설석하시고 공부하시며 간간이 수사에 응하시니라.
이때 도경 사찰분실장(査察分室長) 김두길의 집요한 추궁에도 사건은 더 확대되지 않았으나 한경 등 3사람은 법원에 구속 기소되니라.
⑤:084 3월 27일 양력 4월 29일에 상제께서 부산도장으로 돌아오시는 길에 청주 화양동으로 가셔서 도수를 보기로 하시니라.
화양동은 본시 소백산맥의 중간 산협인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의 계곡으로서 역사적인 유적지와 이름난 곳이 많고 중국 무이구곡(武夷九曲)과 흡사한 절경지지(絶景之地,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경치의 땅)라 하여 예로부터 화양구곡(華陽九曲)으로 호칭되니라.
그 3곡에 송우암(宋尤庵)이 임진왜란에 조선을 도와 준 명나라 신종(神宗) 의종(毅宗)에 대한 보은으로 제자들로 하여금 만동묘(萬東廟)를 짓게 하였으나 흥선대원군이 철폐한 것을 유생들이 다시 짓더니 일본이 다시 철거하여 훼손된 묘지와 묘의 비석만 남아 있으니라.
⑤:085 그 4곡에는 우암이 은거하며 학문연구와 교도(敎導)에 힘쓰던 암서재가 있고 5곡에는 우암이 제자들을 시켜 명나라 의종의 친필인『비례부동(非禮不動)』이라는 대문자를『숭정황제어필(崇禎皇帝御筆)』이라는 소문자와 함께 첨성대 석벽에 새기니라.
그 좌측에『배신 민정중(陪臣 閔鼎重), 봉지 송시열(奉至 與宋時烈) 등 근배수계수(謹拜手稽首) 모륵(摸勒) 시사십칠년(時四十七年) 갑인 4월 일야(甲寅四月 日也)라는 문자를 새겼으며 우측에는 암벽을 석함(石函,돌로된 상자)을 파서 석개(石蓋,돌로된 덮개)를 하고 이를『석문(石門)』이라 이름하니라.
석문 아래에는『대명천지(大明天地) 숭정일원(崇禎日月)』이라는 대문자와『차팔자(此八字) 배신(陪臣) 송시열(宋時烈) 상서(嘗書) 여인자야(與人者也) 정의어차산중(正宜於此山中) 근모이륵(謹摸以勒)』이라는 소문자를 새겨놓으니라.
⑤:086 이날 오후에 상제님께서 청봉과 운교, 상익, 금현 등 시종을 거느리시고 승용차로 화양동에 이르셔서 만동묘의 묘지와 묘의 비석을 살펴보시며 말씀하시기를『이곳 청주 화양동은 명?청 양국이 공존하는 곳이니라.
내가 이곳에 온 것은 황극신도수(皇極神度數)와 대신문도수(大神門度數)를 보려 함이니라.』하시니라.
다시 암서재를 살펴보시는 동안 해가 저무니『화양구곡을 다 볼 것은 없지마는 온 김에 5곡까지 가려 하였으나 해가 저물었으니 신도(神道)로써 공사하리라.』하시고 화양계곡을 떠나시니라.
⑤:087 돌아오시는 도중인 청천, 미원, 주성 등지는 해가 진 후에 공비의 출몰이 잦은 곳으로서 야간통행금지와 군경의 경비가 삼엄하고 검문검색도 심하니라.
시종들이 야간행을 만류하였으나 계속 차로 보은 남일여관에 도착하시니 밤12시가 가까우니라.
⑤:088 미원이 고향인 금현은 상제님을 자신의 집으로 모시고 싶었으나 감히 아뢰지 못하고 시종만하면서 행로의 검문 대응과 묵으시는 곳에서의 때늦은 음식준비 등에 노심하니라.
자정이 되어서야 상을 올리고 시좌하였는데 상제님께서 수저로 상머리를 한번 치시니 순간 갑작이 뇌성이 울리고 비가 오며 번개와 벼락이 천지를 진동하므로 시종들과 여관 사람들이 모두 무섭고 두려워서 벌벌 떠니라.
⑤:089 상제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태연히 수라를 드시므로 금현과 운교는 물러날 수도 없어 시측하고 있으니라.
뇌전은 한동안 계속되다가 마침내 벽력성이 그 부근 일대를 때려 부수듯 한번 진동하더니 그치고 소나기만 내리는데 상제님께서 상을 물리시며 혼자 말씀으로『이제야 신문공사(神門公事)를 마쳤으니 과연 보은지지(報恩之地)로다.』하셨으나 금현 등은 말씀하신 뜻을 깨닫지 못하니라.
⑤:090 보은에서 하루를 묵으시고 시종들에게『내가 이번 길에 속리산을 보고 가려 하였으나 다음 기회로 미루고 그대로 돌아가니 금현은 다음 치성에 올라오되 그 전에 이곳 일을 살펴서 포감을 통하여 나에게 자세히 고하라.』하시며 청봉과 운교를 승용차에 동승시키고 부산도장으로 돌아오시니라.
⑤:091 몇일 후에 청주 일대에『화양동 5곡의 석문이 열렸다.』는 소문이 자자하니라.
금현도 소문을 듣고 그 사실을 확인하고자 인근 도인 윤석현, 오병하, 박동한, 김진협 등과 화양동으로 가서 마침 상제께서 파견하신 종순과 함께 그곳에 사는 빈재로를 만나니라.
그는 본래 만동묘 창건시에 중국에서 파견된 묘직의 9대손으로서 대대로 봉직하다가 묘가 철거된 후에는 묘지 옆에서 농사와 주점으로 생계하는 사람이니라.
⑤:092 재로가 일행에게 말하기를『우암이 석문을 만들고 그 속에 무엇을 어찌하였는지는 아무도 모르나 그 후 비전(秘傳)되는 전설로는 "석문이 열리면 개벽되고 진인이 세상을 구제하리라."하더이다.
만동묘를 철거한 일본경찰이 그러한 비결의 말을 말살하려고 돌장이를 시켜 석문을 정으로 쪼으게 하였으나 그때마다 갑작이 청천벽력이 일어나므로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중지하고 그 흔적을 시멘트로 때우는 것을 눈으로 보았나이다.
또 지난 3월 27일 밤 자정에는 번개가 빛나고 뇌성이 울리며 오는 비와 함께 석문쪽에서 벽력이 크게 일어 첨성대가 무너지듯 진동하므로 놀라 다음날 아침에 가보니 돌 덮개가 열려 암벽 아래 깨진채 떨어져 있고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며 석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나이다.』하니라.
⑤:093 금현 일행이 신기하게 여기며 그 곳에 가보니 과연 그 말과 같이 세로 3척1촌 가로 1척9촌 두께 5촌쯤의 돌 덮개가 두 조각으로 갈라져서 떨어져 있으므로 맞추어 보니『옥조빙호(玉藻氷壺)』라는 대문자와『만력어필(萬曆御筆)』이라는 소문자의 음각이 완연하니라.
금현 등은 그제야 이 일이 구천상제님께서 청도원에서 대신문(大神門)을 여시는 도수를 짜신 공사와 부합되며 또 상제님께서『신도로써 공사하리라.』하심과 석문이 열릴 그 시각에는『이제 신문공사를 마쳤으니 다시 오지 않아도 되리로다.』하신 숨은 뜻을 깨달으니라.
⑤:094 4월 초에 규오가 도장에 올라가 상제님께 뵙고 금현으로부터 들은 화양 동 석문이 열린 일을 상고하니 빙긋이 미소하시고 침묵하시니라.
규오가 다시『이는 필시 구천상제님께서 청도원(淸道院)에서 짜놓으신 황극신도수(皇極神度數)와 대신문도수(大神門度數)가 풀림이 아니오니까?』하고 아뢰니『오직 결자(結者)와 해자(解者)는 동체(同體)니라.』하시고 더 말씀이 없으시니라.
⑤:095 이달 5일 조회시에 상제님께서 가르치시기를『그대들도 이런 일은 알아 두라.
불교의 교리가 좋다 하여도 현실에는 모순이 많으니 남의 자식을 데려다가 제 자식을 만들고 농사도 짓지 않다가 남이 지은 양곡을 얻어 먹으며 사는 걸사도(乞士道)에 불과하니라.
또 공자가 유교를 펴서 그 경서가 오늘까지 전하여 왔으나 그 많은 글들이 현실생활에 그다지 유용하지 못하니 이런 교들이 후천에 무용함은 구천상제님께서 이미 도수로 짜놓으신 바니라.
공자가 일세의 스승으로서 인의(仁義)의 도리를 세상에 펴고도 죽어서는 천상의 제이문방신장(第二門方神將) 밖에 되지 못하였으나 자공(子貢)은 그 제자로되 오히려 제일문방신장(第一門方神將)이 되었느니라.
과거 성인에 대한 이런 말은 함부로 입 밖에 내기가 어려우나 다만 그러한 교들로서는 세상을 구제할 수 없음을 이미 수천년 역사와 오늘의 현실이 증명하고 있느니라.』하시니라.
⑤:096 또 가르치시기를『도덕(道德)이란 도의 꽃을 말함이니 예수교인들이 2천년동안 하느님 아버지만 믿어 왔으나 하느님도 그 근원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느니라.
예수는 인자(人子)로서 인덕(人德)을 펴라는 인(人)의 꽃이요, 불타는 각자(覺者)로서 불덕(佛德)을 펴라는 불의 꽃이니라.
그러나 우리도는 도의 열매를 맺는 진인(眞人), 진신(眞神), 진실(眞實), 진법(眞法)이니라.』하시니라.
⑤:097 이어『도에는 덕이 따라야 하느니 예수나 수운이 어떠하였던가를 보면 아느니라.
두 사람 모두 성인은 성인이나 대성인은 아니니 대성인은 비명에 죽지 않느니라.』하시니라.
⑤:098 이달 23일에 상제님께서 다시 청주에 행하시니 이는 검찰이 한경 등을 기소하면서 그 도의적인 책임이 상제님께도 있음을 인정하고 함께 기소하였으므로 26일에 개정되는 공판에 임어하시기 위함이며 사건의 변호사는 최병길이니라.
⑤:099 이 공판은 청주지방법원장 문기선이 직접 담당하니 그는 젊은 시절에 주역을 천번 읽어 신구학을 겸수하였다고 의기 양양해 하며 자긍과 아집이 강할 뿐더러 서교(西敎) 독신자로서 민족종교를 사교시(邪敎視)하여 말살하려는 고집이 완강한 사람이니라.
그는 10여년전 백백교(白白敎)사건을 재판한 경력이 있어 이번에는 태극도를 말살할 강인한 의지로 임하니 이날 공판에서도 재판을 시작하는 첫 머리부터 우선 상제님의 기백을 꺾으려고『태극도는 혹세무민하는 사교가 아니요?』하고 심문하기 시작하니라.
상제님께서『태극도는 천지의 대도요. 그대가 묻는 사교라는 용어가 도시 어느법, 어느 조문에 있는 가를 알고 싶소.』하고 반문하시니 그는 흥분하며『귀 도의 교리가 좋다 하여도 이를 빙자하여 신도들의 금품을 수탈하고 가산을 탕진하게 하였다 하니 사교가 아니겠소?』하고 트집을 잡아 물으므로『그것은 사실무근한 일로서 수사기록에도 명기(明記)되어 있으니 내가 굳이 답할 필요가 없노라.』하시니라.
⑤:100 재판장이 다시 감정이 격한 어조로『피고인은 도통하였다고 하는데 도통한 도사가 어찌 피고인으로서 법정에 출석까지 하였소?』하며 자신이 가져온 주역을 펴서 그 중 몇 귀절의 해석을 요구하니라.
상제님께서 의연히 해석하여 주신 다음『공자는 진채지액(陳蔡之厄)을 당하고 예수는 십자가의 혹형을 당하였다 하는데 성인군자일수록 천기를 거역하지 않는 법이니 범인이 감히 언설로 논할 수 있으리요.
더구나 그대가 주역까지 꺼내어 나의 도통 여부를 물었으나 이는 인간의 문자로 일러 말할 일이 아니며 이 법정의 일과는 관계가 없지 않소.
그대가 주역을 안다고 하나 팔괘생십이(八卦生十二)와 선기옥형(선璣玉衡)을 아느뇨?』하시니 그는 좌불안석(坐不安席)하다가 다음 공판날짜도 정하지 않은 채 폐정(閉廷)하니라.
⑤:101 상제님께서 1차 공판이 이와 같이 폐정되어 2차기일이 미정일뿐더러 구속기간도 무한정 연장될 전망이므로 여관에서 공부하시며 최변호사로 하여금 한경 등의 보석을 신청하게 하셔서 5월 19일 석방되게 하시니라.
그들이 출감 즉시 상제님께 뵙고 저희들의 소행으로 욕급지존(辱及至尊,욕됨이 지존께 미침)함이 황공무지하여 재배하고 엎드려 사죄하니 상제님께서 그들을 위로하시니라.
⑤:102 하루는 금현이 가물치회를 올리니 상제님께서 드시며『구천상제님께서 이 회를 드시매 하늘에 가물치 형상이 나타났다 하는데 너도 보아라.』하시고 문을 여시므로 우러러보니 과연 하늘에 가물치 형상이 떠 있으니라.
⑤:103 금현이 상제님께『후천에도 반상의 구별이 있나이까?』하고 여쭈니 옆에 있던 운교가 보다 못하여『여기가 어느 존전이라고 당돌하게 그런 일을 여쭈느냐?』하며 꾸짖으니라.
상제님께서 운교에게『관계없으니 그대로 두라.』하시며 금현에게『후천에는 선천의 반상과는 다르나 그 한계는 더욱 명확하되 도통의 높고 낮음으로써 이루어지리라.』하시니라.
⑤:104 5월 29일에 상제님께서 부산도장으로 돌아오시며 한경 등에게 명하시기를『너희들이 지방사업에 공로가 크고 또 이번에 고초도 많았으나 아무리 공로와 고초가 많고 크더라도 그로써 죄가 없어지지는 않는 법이니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더욱 조심하라.
욕속(欲速,일을 너무 빨리 하고자 함)은 부달(不達,달성하지 못함)이고 지나침은 불여불급(不如不及)이니라.』하시니라.
⑤:105 6월 어느날 임원들에게 이르시기를『각(覺)과 미(迷), 통(通)과 색(塞)은 초지 한 장 사이니 허령(虛靈), 허각(虛覺)에 빠질까 경계하되 도통 또한 지나치게 탐내지 말라.
도통이 아닌 도색(道塞,도가 막힘)에 빠질까 걱정되노라.』하시니라.
⑤:106 김천도인 이건우가 해삼을 사서 상제님께 올리니 맛있게 드시므로 다음 날도 또 올리매 드시지 않으시고『너는 웬 돈이 그리 많아서 이런 값비싼 것을 매일 사오느냐? 돈을 허비하지 말라.』하시니라.
⑤:107 7월 22일에 제 2차 공판기일이 결정되어 상제님께서 다시 청주로 가셔서 여관에 머무르시며 그 이층에 공부설석하시니라.
이때 늦더위가 기승하여 움직이시기 조차 곤란하셨으나 한 시도 공부를 중단하지 않으시므로 시종한 청봉과 금현 등은 더욱 황공하니라.
⑤:108 제 2차 공판도 도인들의 방청으로 법정이 초만원인데 재판장은 지난번의 미흡을 생각하여 더욱 준비한 듯 피고인에 대한 심리는 아니하고 또 주역을 가지고 나와 그 계사전(繫辭傳)의 귀신설(鬼神說), 변화설(變化說)로부터 도덕론, 길흉론 등을 의기양양하여 집요하게 따져 물으니라.
상제님께서『우주의 진리가 도요, 인간의 법이 또한 도인데 그 도주인 나에게 그런 진리와 법을 가지고 시험하려 하느뇨?』하시며 그가 미처 묻지 못한 천지현기(天地玄機)와 인사규범의 모든 도리를 설파 하시고『그대가 재판장으로서 나에게 위법이 있다면 법에 따라 판결함이 당연한 소임이거늘 어찌 도를 거론하여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취하려 하느뇨?』하시니라.
재판장이 그제야 마음을 가다듬고『그러하시면 이 자리를 법정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선생이 제자를 가르치듯이 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하므로『그대가 굳이 도를 알고 싶으면 정식으로 나에게 예를 갖추고 배우도록 하라.』하시니라.
⑤:109 재판장이 다시 검사와 변호사의 개별심문과 증거제출 등으로 공판을 진행하게 하니 검사가『피고인은 남북한관계를 수극화(水剋火)의 원리에 비유하여 수(水)방인 북한이 화(火)방인 남한을 이긴다는 논리를 주장한다 하는데 사실이뇨?』하고 심문하자 재판장이『그러한 이론은 동양철학의 상식이니 논할 것이 못되오.』하고 문답을 중지시키니라.
이때 도인 중에서 윤금현, 권오근, 연동흠 등이 증인으로 출석하여 증언하였는데 이날도 공판이 무기연기 된 채 폐정되므로 상제님께서는 다음날 부산도장으로 돌아오시니라.
⑤:110 이해 8월 하순에 청주법원에서는 태극도사건이 반년이 넘도록 종결되지 않은 채 그 재판장 문기선이 대전지법 원장으로 전임되고 부장판사 김동수가 담당하게 되었으나 공판은 그대로 연기되니라.
⑤:111 문기선은 이임 직후 폐백을 갖추어 부산도장으로 와서 상제님께 찾아뵙고 전일의 무엄을 사죄하며『정식으로 배우도록 하라 하신 가르침에 따라 뵈오니 도리를 가르쳐 주옵소서.』하고 집지(執贄,예절을 갖추어 스승으로 모시는 제자가 되고자 함)하기를 간청하니라.
상제님께서 도리를 훈교하시니 감복하고 돌아간 후에 여러차례 와서 찾아 뵙고 가르침을 받드니라.
⑤:112 9월 19일 상제님께서 구천상제 강세일 치성에 중부와 지방의 유공도인(有功道人)들을 참례시키시니 도장이 협소하므로 중부의 일반도인들은 그 시각에 각자의 집에서 도장을 향하여 절을 하며 봉행하게 하시고 음복은 빠짐없이 고루 나누도록 하시며『음복은 상제님께서 내리시는 청복(淸福) 성배(聖杯,성스러운 잔)니라.』하시니라.
⑤:113 한 도인이 상제님께 여쭈기를『우리 도의 도리가 세계 어느 종교나 철학 사상보다도 더 훌륭하오나 저는 우선 현실적으로 생업의 기반을 닦아놓고 수도공부에 전념하려 하나이다.』하니 가르치시기를『인간이 먹고 산다는 일은 생명을 지탱하는 본능일 뿐더러 또 인류의 문명이 그런 욕망으로 발전하기도 하느니라.
육체를 위하여 먹고 살고 부모와 처자를 책임지는 생업에 충실함은 그것이 바로 생의 도리며 직업의 신성성이니라.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면 탐욕이 되느니 명심하라.』하시니라.
⑤:114 이어『육체현실과 심령이상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바로 음양의 도리니 육체만 위주하여 심령을 버리거나 이상만 앞세워 현실을 외면함도 음양합덕이 아니니 육체와 심령의 조절이 곧 합덕이니라.
돈을 벌기 위하여 공부를 버리면 그것은 짐승의 일이요,이상만 찾고 현실을 버리면 아표신(餓莩神,굶어 죽은 귀신)이 될 뿐이니 도는 합덕이라야 이루어지리라.
또 도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농사에도, 장사에도 있으니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심적기도(心的祈禱)와 아울러 도를 함께 닦아야 함이 합덕이니라.』하시니라.
⑤:115 10월 15일에 상제님께서 규오, 중하 등을 거느리시고 양산의 영취산 통도사에 가셔서 경내를 순행하시고 돌아오시니라.
절의 문을 나오실 때 한 개안승(開眼僧)이 보매 절내의 모든 불, 보살이 상제님을 수종하여 떠나가므로 황급히 존전에 엎드려 아뢰기를『저희 절에 녹(祿)줄이나 남겨 주고 가시옵소서.』하니『나의 과차에 어찌 녹줄이 끊어지리요, 안심하라.』하시니라.
⑤:116 하루는 상제님께서 내수(內修, 여성 수도인)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시니라. 『구천상제님께서 정음 정양을 설파하셨거니와 태극에서도 음을 양에 앞서 말하느니라.
그러므로 인류를 위시한 모든 살아있는 생물의 모태가 음이며 여성이니 생명의 바탕이 실로 정음의 자리니라.
무극이 태극으로 기동함에 선음 후양으로 합덕함을 알면 세상의 모든 일이 먼저 여성의 덕에 기인함도 알리라. 내수들은 도를 위하여 분발하라.
도의 기동 생명력이 그대들에게 있느니 도자(道子), 도손(道孫)을 생육(生育)하는 포덕(布德), 합덕(合德)의 명과 임(任)을 다 할지어다.』하시니라.
⑤:117 어느날 청소년, 아동들에 대하여 가르치시기를『너희들은 마음이 때묻지 않은 백지장과 같으니 거기에 좋은 그림이나 바른 글씨를 기록하여야 하느니라.
그런 생각으로 마음 닦는 공부를 할지어다.』하시니라.